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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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회합
다음 날 아침.
“휴…”
밤새도록 그렇게 노력했지만 여전히 한손으로 그러쥐기에도 부족한 유아의 가슴에 형진은 안타까움을 가득 담아 한숨을 쉬었다. 그렇게 가슴을 만지작거리고 있음에도 밤새도록 시달린 탓인지 유아는 깨어날 기색을 전혀 보이지 않는다. 하기야 괜히 곰탱이겠는가.
“쌀쌀하네.”
아쉬운 마음에 조금 더 그렇게 조물락거리다가 슬슬 하루 일과를 시작해야겠다는 생각에 조심스럽게 몸을 일으켜 벽난로에 장작을 더 넣고는 옷을 입었다. 그리고 여전히 쿨쿨 잠들어 있는 유아의 몸에 담요를 잘 덮어주고는 지하의 수련장으로 내려갔다.
수도로 가 있는 동안 방치된 탓인지 공기가 조금 답답하게 느껴진다. 림도 여기까지는 미처 청소를 하지 못했나 싶은 생각에 일단 환기를 시키고는 간단하게 청소를 한 뒤에야 비로소 매크로 수련을 시작한다.
매크로 수련이 신을 불러들이는 효과가 있다는 사실이 밝혀진 이상, 이제는 함부로 밖에서 수련하는 것은 삼가야만 한다. 자칫 이것이 외부로 흘러나가기라도 하는 날에는 큰 사단이 일어날 수도 있기 때문이다. 희망과 생명 같은 호구신이야 그렇다 쳐도, 파괴와 재생 같은 미친놈이나, 신뢰와 헌신 같은 폭력배가 지상에 강림하기라도 하면 그건 문자 그대로 천재지변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다만 기이한 것은, 어째서 매크로 수련이 그런 효과를 가지게 되었는가 하는 점. 그리고 또한 어째서 자신에게는 그런 효과가 일어나지 않는가 하는 점이다. 단순히 생각하면 형진이 알고 있는 매크로 수련 가운데 공포와 죽음을 불러내는 것이 없는 것이라고 볼 수도 있다. 물론 이것을 확인하는 건 어렵지 않다. 크루그를 불러다가 알고 있는 매크로 수련을 전부 가르쳐 보면 되니까.
하지만 솔직히 좀 불안한 것도 사실이다. 공포와 죽음은 분명 성도들을 세심하게 보살피는 좋은 신이지만, 그 이름이 의미하는 바는 절대로 가볍지 않으니 함부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는 것 자체만으로도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아무도 모른다.
그런 생각들을 떠올리며 매크로 수련을 마친 형진은 아래층에서 물을 덥힌 후 그것을 가지고 다시 방으로 올라갔다. 물론 여전히 유아는 누가 업어가도 모를 정도로 쿨쿨 잠이 들어 있었다.
어제 그렇게 시달렸으니 좀 더 자게 내버려 두는 것이 좋을까 싶기도 했지만, 세상모르고 음냐거리며 곤하게 잠들어 있는 모습을 보자 장난기가 생긴다.
“언능 못 일어나!”
“꺅!”
담요를 훌떡 뒤집어 버리자 도롱이 벌레처럼 돌돌 말린 채 잠들어 있던 유아가 비명과 함께 굴러 떨어지며 잠에서 깨어난다.
아, 역시 아침에 이걸 하지 않으면 영 개운하지가 않단 말이지.
“우우…”
곤히 자다 깨어난 탓에 눈을 찌푸리고 있는 유아에게 다가가 그대로 번쩍 안아 올린다. 유아는 그제서야 자신이 실오라기 하나 걸치지 않은 상태임을 깨닫고 당황해서 어쩔 줄 몰라 한다.
“부끄러워?”
피식 웃으며 그렇게 묻자 유아는 손으로 가슴을 가리며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대답했다.
“네…”
“뭘 새삼스럽게. 네 몸이야 어제 구석구석 아주 실컷 봤구만.”
“그래서 더 부끄러워요.”
“훗.”
형진은 그대로 유아를 안고 욕실로 향했다. 그리고 뭘 하려는 건가 싶어 얼떨떨한 표정을 짓고 있는 그녀를 욕실 의자에 앉혀 놓은 다음 머리를 감겨 주었다.
“하아…”
처음에는 형진과 함께 욕실에 들어간다는 사실이 부끄러웠던 모양이지만, 이내 두피를 부드럽게 조물거리는 손놀림에 유아는 작은 탄식마저 흘리기 시작한다. 머리를 감겨주는 일이 끝났을 때는 아쉬운 기색마저 보일 정도다.
“이번엔 내 차례.”
“네.”
형진이 옷을 벗기 시작하자 유아는 눈을 어디에 둬야할지 몰라 우물쭈물하면서도 한편으로는 흘깃거리느라 여념이 없었다. 어젯밤 실컷 보기는 했지만, 촛불이라는 것이 그리 밝은 것도 아니고 이렇게 밝은 아침 햇살에 비치는 모습과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방금 전 형진이 자신에게 해주었던 것을 떠올리며 유아는 열심히 그의 머리를 감겼다. 그리고 마침내 그 일이 끝나자, 둘은 함께 욕조 안에 들어갔다.
“몸은 좀 어때?”
“괜찮아요.”
“정말?”
“네. 조금 졸린 것만 빼면 딱히 아프다거나 하지도 않아요.”
“다행이네.”
형진은 그렇게 말하고는 가만히 물을 끼얹으며 유아의 몸을 어루만졌다. 욕조가 생각보다 그리 크지 않은 탓에 겹치듯 앉은 상태라 도망갈 수도 없다. 가만히 그의 손길이 자신의 몸 이곳저곳을 어루만지는 모습을 지켜보자니 다시 어젯밤의 일이 떠올라 야릇한 기분이 되어 버린다.
“조금 커지긴 한 건가. 잘 구분이 안 되네.”
“…”
그렇게 물을 끼얹으며 몸을 어루만지던 손길이 가슴에 멈춰서 그것을 조물락거리기 시작하자 유아는 이내 볼을 부풀렸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마음 속으로 여신께 조심스럽게 감사의 기도를 올린다. 적어도 가슴을 키운다는 목적이 달성될 때까지는 형진의 눈이 다른 곳으로 향하지 않을 거란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뭐든 한 번 꽂히면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다른 곳에 눈을 돌리지 않는 그의 성격을 그 짧은 순간 제대로 파악하셨던 모양이라고, 유아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서 자신도 모르게 키득거리고 말았다.
“아무래도 부족해. 좀 더 키워볼까?”
그러나 이내 은근한 목소리로 그렇게 물으며 귀를 살짝 깨무는 형진의 행동에 유아는 화들짝 놀라고 말았다.
“하, 하지만… 아침 식사 준비도 해야 하고.”
“흠… 그런가.”
둘이서만 지낸다면야 며칠 정도 인벤토리에 들어있는 도핑 음식이나 전투 식량으로 때우며 버틸 수도 있다. 하지만 이 집에는 그들 외에도 오누이와 요정 하나, 그리고 목줄이 잡힌 채 메이드 신세로 전락한 신성 폭력배까지 있다. 더구나 마침내 유아와 거사를 치렀으니, 오늘은 신전에 다시 들러 앞으로의 일에 대한 논의도 해야한다.
“쳇. 아쉽군.”
툴툴거리며 화풀이하듯 가슴을 조물락거리는 형진의 어린애 같은 모습에 유아는 다시금 키득거리며 웃었다.
그렇게 함께 몸을 씻는 일이 끝나자 둘은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시치미를 뚝 떼고 주방으로 내려갔다. 하지만 아무 소용없는 일이었다. 카트린을 제외하고는 모두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함께 내려온 그들을 바라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이가 있습니다. 좀 신경을 써주셨으면 하는데요.”
특히나 크루그는 상당히 신경이 날카로운 상태였다. 한창 때의 청소년에게 있어 확실히 어젯밤의 사태는 고문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을 터. 게다가 카트린이 깨기라도 하면 어쩌나 싶어 노심초사한 것 까지 생각하면 당연한 일이다.
“미안. 앞으로는 조심하마.”
“그것보다는 미엘 누나에게 결계라도 하나 만들어 달라고 하는 편이 나을 것 같은데요.”
“그, 그런가.”
“어쨌든 축하드려요.”
확실히 미엘이라면 간단한 방음 결계 정도는 쉽게 만들 수 있을 터. 하지만 그 이유를 설명하려니 역시 좀 머쓱한 기분이 든다. 차라리 남자라면 모를까. 더구나 미엘은 그 내용물은 어찌 되었든 작은 소녀의 모습이기까지 하니 더 난감하다.
크루그가 고개를 갸웃거리는 카트린에게 별 일 아니라고 둘러대는 동안 림이 다가온다. 생긴 것과는 달리 제법 오랜 세월을 살아온 요정인 그녀는 눈이 반달이 된 채 의미심장하게 웃으며 축하 인사를 건네왔다.
-축하드려요.
“크흠. 고맙다.”
“고, 고마워요.”
어쩐지 머쓱한 표정을 짓고 있자니 가만히 장승처럼 서있는 하마란의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딱히 표정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았지만 그녀도 잠을 설친 것은 마찬가지. 하지만 입장상 크루그처럼 뭐라 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림처럼 넉살 좋게 인사를 건넬 수도 없으니 그냥 모르는 척 하기로 입장을 정한 모양이다.
어쨌거나 그렇게 조금은 쑥스럽고 어색한 아침 식사 시간이 끝나자, 둘은 다시 신전으로 향했다.
유아를 데리고 신전의 경내로 들어서자, 마침내 기다리고 있던 메시지가 눈앞에 나타난다.
[‘희망과 생명의 대리자’ 자격을 확인했습니다. 교단 관리자 메뉴가 활성화됩니다.]짤막한 메시지지만, 그것은 형진이 이 교단 안에서만큼은 신을 제외한 그 누구보다도 강력한 권한을 획득했음을 의미하고 있었다. 정상적으로 권한의 획득이 이루어졌음을 확인한 형진은 가뿐한 기분으로 사제들의 안내를 받으며 최고 사제의 방으로 들어섰다.
“반갑습니다. 어제는 경황이 없어서 자세한 설명을 드리지 못하고 그냥 돌아가 버려서 죄송합니다.”
“별 말씀을요. 그나저나 유아 사제님, 몸은 괜찮으신지.”
“네? 괘, 괜찮습니다.”
도둑이 제 발 저린다는 식으로 허둥대는 유아의 모습에 피식 웃으며 형진은 최고 사제에게 이렇게 말했다.
“우선 한 가지 알려드릴 내용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여기 있는 이 녀석은 이제 더 이상 견습 사제가 아닙니다.”
“네? 그게 무슨…”
“그녀는 최근 신녀의 자격을 획득했습니다. 이것은 희망과 생명께서도 확인해 주신 내용입니다.”
“네?”
“엣?”
최고 사제는 물론이고 유아마저 깜짝 놀란 표정을 짓는다.
“왜 너까지 놀라? 희망과 생명께서 말씀 안 하시든?”
“어, 그게… 그러니까.”
“하여튼. 하기야 그게 너답기는 하다만.”
“…”
그렇게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을 보고서야 최고 사제는 어제 자신이 느꼈던 순수한 신성력의 잔재가 어떻게 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깨달았다.
“그럼… 설마 어제 이곳에 희망과 생명께서 강림하셨던 겁니까?”
적어도 최고 사제에게는 숨기고 말고 할 것도 없는 일이라 형진은 굳게 고개를 끄덕여 긍정의 뜻을 표했다.
“그렇습니다. 이 녀석이 어제 그렇게 녹초가 되어 버렸던 것은 바로 그래서죠.”
“아아… 그런 놀라운 일이. 신녀님, 여신의 신성함이 그 몸에 깃들었던 것을 진심으로 감축드립니다.”
“그, 그게… 저야말로.”
유아는 최고 사제가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극상의 예를 취하자 급히 일어나 마주 예를 취했다.
“일단 앉으십시오. 더 중요한 얘기가 남았습니다.”
형진의 말에 최고 사제는 얼른 자리에 앉아 기대 어린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여신께서 모습을 드러내셨다면, 필히 무언가 말씀이 있으셨을 터. 아직까지 여신을 영접한 적이 없는 최고 사제로서는 무슨 얘기가 오고 갔을지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가슴 떨리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여신께서는…”
“여신께서는?”
“저에게 이 교단의 전권을 부여한다 말씀하셨습니다.”
“네?”
최고 사제는 잠시 멍한 기분을 느껴야만 했다.
그녀가 예상한 것은 이런 내용이 아니었다. 그 동안 고생했다든가, 지금까지 기도에 응답하지 못해 미안하다든가, 앞으로 잘 하겠다든가, 힘든 일이 있으면 말해보라든가 하는 식의, 또는 이러이러한 것은 잘못 되었으니 고치라든가, 앞으로도 수고하라든가 하는 식의 내용을 예상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막상 형진의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그가 앞으로 이 교단의 전권을 거머쥐게 되었다는 얘기다.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란 말인가.
“믿기 어려우실 겁니다. 그래서 지금부터 간단하게 그것을 증명해 보일까 합니다.”
“증명이라면…”
“잠시만요. 저도 처음 해보는 거라… 아, 여기있군요.”
형진의 말과 함께, 최고 사제의 시야에 하나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희망과 생명의 대리자’께서 최고 사제 회합을 소집하셨습니다. 눈을 감고 기도로 응답하십시오.] “이, 이건…”당황한 최고 사제를 향해 형진은 씩 웃어 보였다.
“뭐하세요. 어서 기도로 응답하십시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