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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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돌파
천천히 걷고 있자니 문득 여신이 묻는다.
“진님.”
“네.”
“진은 이 던전을 소유하고 싶은 건가요?”
여신의 말에 형진은 피식 웃어 버렸다.
“사람들이 들어서지 못하도록 만드는 것이 목적이긴 합니다만, 바꿔서 생각하면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서브코어를 촘촘히 깔아서 전체가 완전히 영향권 안에 들어오면 그 자체로 대미궁 전체를 소유했다고 볼 수도 있으니 확실히 틀린 말은 아니다.
“어째서 그런 일을 하는지 물어봐도 되나요?”
“대단한 일은 아닙니다. 대미궁 저편의 나라에서 한 가지 일을 추진 중인데, 그 일이 끝마쳐지기 전까지 다른 나라의 간섭을 최대한 막으려는 의도죠.”
“아하.”
솔직히 말하자면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필요한 일이라는 것은 대충이나마 이해할 수 있었다.
“갑자기 그런 건 왜 물으십니까?”
“물으면 안 되나요?”
“그건 아닙니다만. 갑작스러운 것 같아서요.”
혹시 자신이 왜 이런 일을 해야 하는 건가에 대해 의문을 품기 시작한 건가 싶어서 조심스럽게 물었지만, 여신은 조금 새침한 표정으로 이렇게 답할 뿐이다.
“그냥… 궁금해서요.”
“그렇군요.”
그냥이라는 말은 참 쓰기 편한 단어지만, 듣는 사람 입장에서는 어떻게 해석해야 할지 난감한 단어이기도 하다. 이미 셋이나 되는 반려와 함께 지내고 있는 형진이지만, 그런 그로서도 여자 마음이란 건 역시 알다가도 모를 미스테리다.
어쨌거나 그렇게 현재 상황과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분위기로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며 조금 걷는데, 저편에서 누군가 급히 달려오는 기척이 느껴진다. 여신은 그것을 느끼자마자 주머니 속으로 내놓고 있던 상반신을 얼른 감추고는 눈만 내놓은 채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소리가 들려오는 방향을 바라보았다.
“서둘러라!”
조금 높은 톤의 목소리가 울려퍼지며 급한 발걸음 소리가 다가온다. 하지만 형진은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며 자신을 향해 다가오는 누군가를 맞이했다.
“헛!”
“정지!”
“당황하지마라! 진형을 갖춰!”
앞서서 달려오던 트래커들이 놀란 표정을 지으며 멈춰 서자 지휘관으로 보이는 사람의 목소리가 울려 퍼지며 일사분란하게 진형이 갖추어진다. 최전방의 공략대라 그런지 역시나 상당한 정예로 보인다.
“빛이여!”
그때, 다시 한 번 높은 톤의 목소리가 들려오는가 싶더니 행렬의 뒤편에서 강렬한 빛이 터져 나온다. 앞에 선 자신들의 동료는 영향을 받지 않으면서, 자신들을 바라보는 자의 시력을 일시에 앗아갈 수 있는 시기적절한 마법이다.
“앗!”
여신은 깜짝 놀라며 얼른 눈을 감았지만 나름 신이기도 하고 신도들이 꽤 늘어난 덕분에 그런 종류의 빛 공격에 시력을 잃는다거나 하는 상황은 발생하지 않았다. 그것은 형진도 마찬가지. 심연의 눈가리개를 쓰고 있는 그 역시 이런 식의 빛 공격은 아무 의미가 없는 일이다.
“공격!”
상대는 어김없이 이 공격으로 상대의 시력을 일정 부분 차단했으리라 믿고 곧바로 장전된 석궁을 발사했다. 나름대로 상당한 효과를 지닌 공식화된 패턴 중 하나였지만, 그만큼 위력적인 공격 방법이고 어지간한 몬스터들은 이러한 방법만으로도 단숨에 무력화시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형진은 어지간한 수준의 상대가 아니다.
퍼퍼퍽!
화살들은 맥없이 형진을 둘러싸고 있는 꼬리에 부딪히며 맥없이 튕겨 나가 버렸다. 강렬한 빛의 폭발도 그의 몸을 에워싸고 있는 어둠은 벗겨 내지 못했다.
“화살이!”
“당황하지 마라! 진형을 유지하라! 전열! 방패 들어!”
“오우!”
회심의 일격이 맥없이 무위로 돌아가자 당황스런 목소리가 흘러나왔지만, 지휘자의 외침이 다시금 울려 퍼짐과 동시에 전열의 병사들이 방패를 들고 전진한다.
“마법사님!”
“힘이여!”
지휘자의 외침과 동시에 공략대 전원의 몸에 작은 빛무리가 어린다. 일종의 버프 마법인 모양이다.
생각보다 일사분란한 그들의 모습에 형진은 잠시 고민했다. 아무래도 앞서의 얼뜨기들처럼 겁을 줘서 쫓아버리기는 힘들 것 같은 예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럼, 역시 다 죽여야 하나.
공포와 죽음께서는 심심하다고 아무나 막 죽이고 다니지 말라 하셨지만, 또한 가급적이면 강하고 현명한 자를 죽이라는 말씀도 남기셨다.
형진은 다시 걸음을 옮겼다. 그러자 주춤주춤 물러서던 진형으로부터 갑자기 날카로운 창이 그의 전신을 향해 찔러 들어온다.
퍼퍼퍽!
하지만 이번에도 소용없었다. 라이언하트를 발동한 형진의 눈에 그 찌르기는 너무나도 느려 보였고, 일일이 꼬리를 휘둘러 창날을 후려쳐 뭉개버리는 것조차 그에게는 별로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헉!”
“창날이!”
2열의 창병들로부터 당황한 목소리가 흘러나오는 순간, 형진은 후열에 서 있는 한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그 사람은 두툼한 장포와 두건으로 전신을 감싸고 있었으며 손에는 작달막한 완드를 쥐고 있었다. 아마도 앞서 빛과 힘의 마법을 발현한 마법사인 모양이다.
어둠으로 감싸인 형진이 코앞까지 다가오자 방패를 든 병사들의 얼굴에 식은땀이 흐른다. 적의 공격을 막아내는 것이 그들의 역할이긴 하지만, 이런 식으로 알 수 없는 어둠의 존재와 아무런 대비 없이 접촉하게 되면 어떤 저주가 전해질지 아무도 알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바로 그때, 마법사가 나섰다.
“물러서세요. 이 녀석은 제가 맡겠습니다.”
지휘자로 보이는 기사가 놀란 표정을 짓는다.
“네? 하지만…”
“어서요.”
하지만 이어진 강경한 말에 기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다른 이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물러나라!”
그리고 그 명령이 떨어짐과 동시에 마법사가 허공으로 몸을 날리는가 싶더니 병사들을 뛰어 넘어 형진 앞에 우뚝 선다.
형진의 눈에 순간 호기심이 감돈다.
마법사는 분명 강한 힘을 가지고 있지만, 이렇게 근접전으로 나서면 그 힘은 터무니없이 반감될 수밖에 없다. 마법사로서 가장 강력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거리를 내팽개치고, 이렇게 스스로 앞에 나선다면, 그럴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을 터.
아마도 비장의 한 수가 있는 것이겠지만, 형진은 굳이 그런 걸 기다려 줄 생각이 없었다. 호기심은 생기지만, 그건 일단 제압해 놓고서 천천히 알아봐도 되는 일이니까.
곧바로 형진의 몸을 감싸고 있던 꼬리들이 성난 고슴도치처럼 올올이 곤두서며 마법사를 향해 날아든다.
“헉!”
갑자기 확 하고 날아드는 어두운 힘에 주춤거리며 뒤로 물러서던 병사들은 자신도 모르게 헛숨을 들이켰다. 순간 지켜보던 모두의 뇌리 속에는 어둠의 힘에 꿰뚫린 채 비명을 지르는 마법사의 모습이 연상되었다.
그러나 바로 그 순간.
화악!
마법사의 몸을 감싸고 있던 장포가 갑자기 확 하고 불타오르더니, 그 안에서 밝은 불길에 휩싸인 인간의 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형진은 그 모습을 보는 순간 눈살을 찌푸리며 공격을 멈추었다. 단순한 공격으로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바로 알아챘기 때문이다.
저것은 단순한 불꽃이 아니다.
보는 순간 바로 알 수 있었다. 딱 한 번뿐이긴 하지만, 저것과 같은 불꽃을 이미 형진은 본 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을 알아본 것은 형진만이 아니었다. 여지껏 눈앞에 선 자를 마법사라고만 알고 있던 공략대들은 그 모습을 단순히 새로운 마법의 한 가지라고 이해한 모양이었지만, 이 불꽃은 그런 식의 힘과는 차원이 다른 종류의 것이었다.
“파괴와 재생…”
주머니 속에서 눈만 살짝 드러낸 채 바라보고 있던 여신의 입에서 그러한 이름이 흘러나온다.
정확히는 파괴와 재생의 구현자. 즉, 미친놈이라 불리는 신의 추종자다. 하지만 이런 곳에서 하필 미친놈의 추종자라니. 게다가 그 미친놈의 추종자가 아무렇지도 않게 사람들과 어울려서 던전 탐험 따위를 하고 있다니?
미친놈이 괜히 미친놈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어떻게 보면 폭력배 놈들보다도 더 이해하기 어려운 부류라서 미친놈이라고 불리는 것이다. 그런 관점에서 보면 지금 눈앞에서 실체를 드러낸 미친놈 역시 이해불가인 것은 마찬가지다. 어떻게 보면 꽤 영리한 놈인 것 같기도 하고.
구현자라면 이런 식으로 평범하게 마법사 행세를 하며 사람들 속에 섞여 있으리라고는 감히 상상도 하지 못하는 상황을 훌륭하게 이용한 셈이니까.
어차피 구현자와는 이미 한 번 악연으로 묶인 상황. 다른 누구도 아니고 파괴와 재생의 강림을 막은 당사자가 바로 형진이다. 그렇다면 싸움을 거절할 이유도 없다.
뽀드득.
형진이 단검을 쥔 손에 힘을 가하자, 손잡이를 감싼 가죽이 마찰하며 비명을 터뜨린다.
그 순간, 온몸이 불덩어리로 변한 구현자의 입으로부터 나지막한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그것은 뒤에 선 공략대들이 미처 알아듣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은밀한 목소리였다.
“너, 누구랑 계약한거야?”
“…”
곧바로 공격을 가하려던 형진의 머릿속에 물음표가 생겨난다.
계약이라니. 설마 지금 자신의 몸에 둘러진 검은 기운의 정체를 알아본 것인가?
“여기서 얘기하긴 좀 그러니까, 일단 밖으로 나가자.”
밖으로? 이건 또 무슨 소린가 싶었지만, 그 순간 구현자는 갑자기 허공으로 치솟는가 싶더니 그대로 지면을 뚫고 미궁 밖으로 사라져 버렸다. 순식간에 지반을 녹이며 뚫고 나가 버린 것이다.
미친.
파괴와 재생이 불을 다룬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이런 말도 안 되는 짓을 아무렇지도 않게 저지를 수 있으리라고는 미처 생각지 못한 터라 형진은 혀를 찰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이 미엘과 계약했다는 사실을 단숨에 알아본 것에 대해 궁금증이 일었기에 곧바로 허공으로 몸을 솟구쳐 방금 뚫린 구멍을 통해 바깥으로 뛰쳐 나갔다.
생각보다 그들이 있던 지역은 지상으로부터 그리 멀리 떨어진 곳이 아니었던 모양이다. 흑요호의 힘을 통해 허공으로 치솟아 오른 형진은 채 한 호흡도 되지 않는 짧은 거리를 통과하는 순간 바로 지상에 도달할 수 있었다.
구현자는 여전히 온 몸을 불꽃으로 감싼 채, 형진이 나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그가 모습을 드러내자 다짜고짜 물었다.
“다시 물을게. 너 누구랑 계약한 거야?”
하지만 형진이 그 말에 대답하기도 전에, 지금껏 그의 목덜미에 몸을 감은 채로 꾸벅꾸벅 졸기만 하던 미엘이 입을 열었다.
“시끄러. 닥쳐. 조용히 해.”
“…”
순간 구현자는 입을 다물더니,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이렇게 묻는다.
“혹시… 미엘 언니? 언니 맞아?”
미엘은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그러니까 좀 닥쳐. 하엘.”
그러자 하엘이라고 불린 구현자는 몸 전체에 두르고 있던 불꽃을 거둬들였고, 그 순간 형진은 몸 전체에 푹신한 꼬리를 마치 외투처럼 두르고 있는 한 사람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닮았다. 딱 봐도 닮았다. 미엘이 완숙한 미녀의 모습을 하고 있을 때와 딱 닮았다. 차이가 있다면 몸에 두르고 있는 꼬리에 살짝 붉은 기운이 감돈다는 것과, 끄트머리에 새치처럼 살짝 하얀 털이 나있다는 정도.
이 구현자는 바로 미엘의 동족이었던 것이다.
미엘을 언니라고 칭한 걸 봐도 그렇고, 딱 봐도 흑요호인 것 같은 느낌이라 형진은 속으로 한숨을 푸욱 내쉬며 몸에 두르고 있던 힘을 거두어 들였다.
미친놈과 흑요호의 조합이라니. 어쩌면 이것은 이 세계에서 상상할 수 있는 최강의 조합인지도 모른다. 그러고 보면 앞서 베이스 캠프에 설치되었던 결계 마법도 바로 눈앞의 구현자가 만들어 놓은 모양이다. 미엘처럼 결계 마법을 통해 자신들에게 내려진 천형을 극복하려 했던 것일까. 어쩌면 구현자가 된 것도 그런 이유에서인지도 모르겠다.
하엘이라고 불린 구현자는 형진이 힘을 거둬들여 본래 모습을 드러내자 다시 크게 놀란 표정을 지었다,
“너… 남자였어?”
“그렇습니다만.”
“그, 그럴 수가…”
하엘은 형진의 모습과 더불어 그의 목을 마치 목도리처럼 휘감은 채 꾸벅꾸벅 졸고 있는 미엘의 모습을 보고는 잠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한 채 아연한 표정을 짓고 있더니, 갑자기 크게 분노하며 꼬리를 활짝 펼치며 전신에 다시금 불꽃을 피워 올렸다.
그 와중에 그녀의 알몸이 잠깐 드러났지만 형진은 그것을 여유롭게 관람할 틈이 없었다.
갑자기 미친년처럼 하엘이 그를 향해 무차별 적으로 공격을 퍼부어대기 시작한 탓이다.
“네놈이, 네놈이 감히 미엘 언니와! 미엘 언니가 네놈 따위와! 용납 못해! 죽어! 죽어 버려! 사라져 버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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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소설을 본문에 넣어야 할지 말아야 할지 심각하게 고민하다가 그냥 한 편 더 써서 올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