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270
270====================
56. 탄생
“어디보자.”
일단 현재 위치를 확인한다. 단순히 아이템을 얻기 위한 막사냥이 아니라 대미궁을 완전히 정복하기 위한 탐색이니 이전과는 아무래도 다를 수밖에 없다.
이전의 탐색과 코어 이식을 통해 대부분의 외곽 지역에 대한 탐색은 어느 정도 끝이 났다. 하지만 미궁이라는 것이 평면적인 것이 아니다보니 단순히 탐색이 된 영역의 넓이만을 가지고는 지금 어느 정도 정리가 된 것인지 확인하기가 어렵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새로 이식한 코어를 통해 주변 지역의 변화를 실시간으로 알아볼 수 있다는 정도. 만약 이런 식의 탐색이 아니라 횃불 들고 일일이 돌아다니며 지도를 그리는 식이었다면, 아무리 뛰어난 능력이 있어도 혼자서는 어림도 없는 일이었으리라.
정보를 취합해 중심 코어가 있으리라 예상되는 지점을 몇 개 정도 추려내고는 왜 안가고 멈춰 서있나 하며 멀뚱히 바라보는 여신을 향해 말했다.
“출발하겠습니다.”
“네!”
하엘은 여신이 고삐를 움켜쥐고 몸을 숙이는 것을 느끼고는 속으로 한숨을 포옥 내쉬었다. 가끔은 이 바보 여신이 자신을 흑요호라는 환수가 아니라 진짜 여우로 생각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떠오를 정도다. 에효. 어쩌다 이런 꼴이 되어 버렸는지.
“!”
그렇게 연거푸 한숨을 내쉬던 하엘은 옆구리에 짜릿하게 전해지는 어떤 감각을 느끼는 순간 화들짝 놀라 앞으로 달려 나갔다. 망할. 그냥 안장만 달아 놨어도 자존심 상할 판에 등자와 박차까지 달아 놨다. 이래서야 정말 탈것 이상도 이하도 아니지 않은가.
하지만 하엘이 그렇게 등 뒤에서 울분을 삼키며 달려오거나 말거나, 형진은 예상 경로를 빠르게 짚어 가며 전율의 질주를 이어갔다.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것은 후크웜 두 마리.
촤락!
양손을 펼치자 손목에서 갈고리가 뻗어 나가 천장에 매달려 있던 후크웜을 끌어당긴다. 이전 같았으면 단검을 뽑아 들고 콕콕 찔러서 마무리를 했겠지만, 지금은 굳이 번거롭게 다시 단검을 쓸 필요가 없다.
[인스턴트 킬! ‘후크웜’이 죽었습니다!] [인스턴트 킬! ‘후크웜’이 죽었습니다!]연속으로 인스턴트 킬이 터지며 룻이 떨어지자 뒤따라오던 여신이 얼른 달려와 그것을 집어 든다. 그야말로 물 흐르는 듯한 연계가 아닐 수 없다.
“아차.”
뭔가 허전한 기분이 들어서 뭘 까먹었나 했더니 도핑과 라이언하트의 발동을 잊었다. 하지만 나쁘지 않다. 도핑이나 라이언하트의 도움이 없어도 후크웜 따위는 쉽게 상대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니까.
이대로 계속 진행할까 하다가, 그래도 중심 코어를 상대하는 일임을 고려해 후딱 도핑을 마치고 라이언하트 역시 발동했다.
휘유우우우우…
순간 그의 몸에서 한줄기 돌풍이 뿜어져 나온다. 그리고 그것을 느낀 순간 어쩐지 시야가 좀 더 넓어지고 밝아진 것 같은 착각이 든다.
정말로 눈이 좋아졌다거나 한 것은 아니다. 그저 라이언하트를 사용하지 않았을 때보다 더 많은 것을 보고 그것으로부터 더 많은 정도를 얻을 수 있게 되었을 뿐이다. 무작정 받아들이던 정보를 보다 효율적으로 받아들이고 처리하게 되면서 반대급부로 시야가 더 넓어진 것 같은 기분이 느껴지는 것이다.
문득 시큼한 냄새가 느껴진다. 땀이 흘렀다가 말라붙은 듯한 그런 느낌. 특히 이 냄새에 섞여 있는 약한 쇳가루 같은 느낌은 파트반족 특유의 것이다.
골목을 돌아 나가자, 예상대로 파트반의 모습이 보인다. 활을 든 녀석이 셋, 짤막한 단창과 방패를 든 녀석이 둘, 그리고 다른 녀석보다 머리 하나는 크고 커다란 몽둥이를 든 녀석이 하나.
형진의 두뇌는 곧바로 최적의 동선을 계산한뒤, 놈들이 기척을 알아차리고 돌아보기도 전에 공격에 들어갔다.
타닷!
벽을 딛고 달려 올라간 형진은 그대로 천정에 도달한 뒤 놈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렸다. 그리고 가장 큰 놈의 머리 위로 곧장 떨어져 내리며 놈의 후두부에 단검을 박아 넣었다.
“끄윽…”
소리도 없이 벼락처럼 내리 꽂힌 형진의 기습에, 몽둥이를 든 커다란 체구의 파트반은 짧은 신음 소리를 내며 그대로 우뚝 멈춰섰다.
갑작스런 그 작은 신음 소리에 앞장서서 걷던 다른 파트반들이 반사적으로 고개를 돌려 바라본다. 하지만 그 순간에는 이미 형진의 모습은 놈들의 시야에서 완전히 사라진 뒤였다.
후욱!
환영의 반딧불로 일순 놈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형진은 고개를 돌린 녀석들의 앞을 가로막듯 떨어져 내리며 날카로운 촉수와 같은 꼬리를 뻗어 단창과 방패를 든 놈들의 간과 심장은 단숨에 관통했다.
“켁!”
“키릭!”
바람 빠지는 듯한 신음 소리와 함께 다시금 앞장 서 있던 두 명의 파트반이 피를 흘리며 쓰러지자, 중간에 서있던 세 마리의 궁수는 다시금 화들짝 놀라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역시나 형진의 모습은 그들의 시야에서 사라진 뒤였다. 이번에는 은신을 사용해서 그들의 시야를 벗어난 것이다.
쿵!
가장 먼저 공격을 당했던 덩치 큰 파트반의 무릎이 툭 하고 꺾이는가 싶더니 그대로 앞으로 무너지듯 쓰러져 버린다. 남은 파트반 궁수 셋은 이제 완전히 당황하고 말았다. 적의 모습은 보지도 못했는데, 벌써 동료의 반이 쓰러져 버린 탓이다.
파트반 궁수들은 본능적으로 서로의 등을 맞대는 대형을 만들고자 했다. 그러나 바로 그때, 자신들의 등 뒤에서 나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를 찾아?”
“힉!”
기겁을 하고 급히 몸을 돌리려 했지만, 그보다 형진의 단검이 더 빨리 움직였다. 순식간에 세 번의 찌르기가 끝나자, 세 마리의 파트반 궁수들은 마치 남자에게 버림받은 비련의 여주인공이 핑그르르 몸을 돌리며 쓰러지는 듯한 모습으로 바닥을 나뒹굴고 말았다.
확실히 몸이 가벼워졌다. 요즘 강해진 것 같다고 느끼고는 있었지만, 직접 전투를 치러보니 좀 더 명확하게 그 느낌이 전해져 온다.
전투가 끝나자 곧바로 여신이 하엘을 몰고 와서 얼른 룻을 집어 든다. 일체의 의문도 갖지 않고 자신의 역할에 최선을 다하는 그 모습에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피식 웃음을 떠올리고는 다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그런 식으로 몇 번의 전투를 더 거치자, 마침내 좁았던 동굴이 조금씩 넓어지기 시작한다. 마치 차 하나가 겨우 드나들 정도의 좁은 골목에서 벗어나 여덟 개의 차선이 시원스럽게 뻗어있는 도심으로 들어섰을 때의 느낌이랄까. 어쩐지 이제부터가 진짜 대미궁의 중심이라는 느낌이 확 전해지는 기분이다. 정말로 통로가 8차선 수준으로 넓어졌다는 건 아니다. 그냥 기분이 그렇다는 얘기지
길이 넓어진 만큼 천장도 훨씬 높아졌다. 이 정도 높이라면 안에 건물을 지어도 될 것 같다. 단순히 중심 코어가 지닌 힘이 그만큼 강력한 것인지, 아니면 코어가 자리 잡은 뒤로 그만큼 오랜 세월이 지난 것인지 지금으로서는 알 길이 없지만, 이 정도라면 확실히 터널이라고 불러도 될 것 같은 느낌이다.
조금 더 안쪽으로 들어가는데, 문득 눈앞에서 뭔가 번뜩이는 빛이 터져 나오는가 싶더니 거대한 형체의 생물이 모습을 드러냈다.
“쿠워어어어!”
그것은 마치 코뿔소와 닮았다. 하지만 형진은 그것이 어디까지나 정면에서 봤을 때의 얘기라는 것을 곧바로 알아차렸다. 뭐라고 불러야 좋을지 모를 이 놈의 형태는 마치 거대한 뱀과 같았는데, 일반적인 뱀이라면 머리가 달려있어야 할 자리에 코뿔소가 달려있는 형상이었다. 그러니까 코뿔소의 머리만 달린 것이 아니라, 머리와 몸통, 그리고 팔과 다리까지 전부 달린 그런 형상. 아닌가. 이 경우엔 코뿔소는 코뿔소인데, 몸통 뒤쪽으로 몸 길이의 수십 배는 됨직한 뱀의 꼬리가 달려있다고 해야 하나.
“이크!”
새로 발견한 괴물의 형태를 분석하느라 잠시 잡생각을 떠올린 순간 놈의 돌진이 시작되었다. 형진은 반사적으로 환영의 반딧불을 발동해 몸을 피했지만, 뒤따라 오던 여신은 갑작스런 놈의 돌격에 놀랐는지 비명을 질렀다.
“꺄악!”
하지만 그것 뿐이었다. 어이없게도 놈의 돌진은 여신이 엉겁결에 펼친 보호의 권능에 막혀 튕겨 나가고 말았던 것이다.
텅! 꾸에에엑!
돌진이 어이없이 막히고 도리어 튕겨 나가기까지 하자 놈은 충격을 온전히 되돌려 받았는지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며 그 큰 몸을 꾸불텅거리며 발악하기 시작했다.
“젠장.”
어떻게 된 것이 돌격보다 아프다고 발악하는 것이 더 위협적이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 이러다가 동굴이 무너져 내리는 것 아닌가 싶을 정도다. 재수 없이 저 꾸불텅거리는 몸부림에 맞아서 죽으면 어디 가서 억울하다 하소연도 못할 것 같은 분위기.
뭐 저런 놈이 다 있나 하고 지켜보는데 그렇게 여기저기 몸을 부딪히더니 몸에서 피가 터져 나온다. 그런데 그 피가 또 뭔가 이상하다. 터져 나와 바위에 묻자 이상한 연기를 뿜어내기 시작하는 것이다. 바위를 녹여내는 수준까지는 아니어도, 괜히 저걸 뒤집어 쓰기라도 하는 날에는 건강에 아주 심각한 악영향을 초래할 것 같은 느낌이다.
뭐라 부르는 놈인지는 모르겠지만, 확실히 저런 놈 하나 통로에 박아 놓으면 지연이든 길막이든 아주 유용하게 쓸 수 있을 것 같다. 어이없이 여신에게 막히긴 했지만 돌격도 제법 위력적일 것 같고, 설령 돌격을 막아내더라도 저런 식으로 발버둥치면 어지간한 파티 하나 정도는 아주 우습게 쓸려 나갈 테니까.
형진은 갈고리를 던져 천장에 매달린 채로 그렇게 새로 마주친 괴물에 대한 분석을 하고는 약점을 찾아 시선을 돌렸다.
“얼씨구.”
덩치가 커서 약점을 찾기도 쉬울 거라 생각했지만, 의외로 놈의 약점은 찾아보기가 매우 어려웠다. 잠시 눈을 가늘게 뜨고 몇 번이나 꾸불텅거리는 놈의 몸을 살핀 뒤에야 비로소 코뿔소 형태의 몸체 뒤쪽 즈음에 자리잡은 약점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거… 쉽지 않겠는데.
계속 몸부림을 치는데다, 상처로부터 이상한 연기가 나는 피가 계속 튀어오르는 상황이라 좀처럼 쉽게 접근하기 어려울 것 같다. 하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지켜보고만 있을 수는 없는 일. 여자가 나오는 뱀쇼라면 몰라도 코뿔소 몸뚱이의 뱀쇼 따위는 계속 보고 싶은 생각도 없다.
형진은 타이밍을 잠시 계산하고는 매달려 있던 천정으로부터 훌쩍 뛰어 내려 놈의 몸에 내려 앉았다. 그리고 라이언하트를 끌어올리며 미끌거리는 놈의 동체를 내달려 약점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집중력이 극한까지 끌어올려진 탓일까. 아니면 라이언하트의 상승작용 때문일까.
구불텅거리는 놈의 몸과 거기서 뿜어져 나오는 핏방울 하나 하나까지도 모두 느린 화면으로 보는 것처럼 시야로부터 천천히 전해진다. 감각과 사고가 극한까지 끌어올려지는 순간, 마치 시간 자체가 느려진 것 같은 착각이 느껴지기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바로 그것을 깨달은 순간 형진의 눈앞에 하나의 메시지가 나타났다.
[축하합니다! ‘라이언하트’를 체득하여 Lv.40을 달성하였습니다.]레벨 40.
그것은 바로 마스터 레벨을 의미한다.
스킬 레벨의 제한은 최대 50레벨. 하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익힐 수 있는 최대한의 레벨이고, 실질적으로 그 스킬이 지니고 있는 능력의 한계를 모두 끌어낼 수 있는 것은 레벨 40부터이다. 마스터레벨은 바로 그러한 레벨 40을 바꾸어 부르는 말이다.
형진은 지금까지 여러 가지 스킬들을 익혔지만, 마스터 레벨에 도달한 것은 단검 숙련이 유일했다. 하지만 그것은 패시브 스킬에 가까운 것이라 눈으로 확 드러나는 변화 같은 것은 찾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라이언하트는 다르다.
이것은 엄연히 액티브 스킬이며, 더욱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습득 자체가 불가능한 히든 스킬이기까지 하다. 당연한 얘기지만, 그런 스킬의 진면목은 다른 일반적인 스킬들과는 차원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일이다. 여기까지는 형진도 충분히 예상했던 일이지만, 현실은 그의 예상보다도 한 단계 더 나아가고 있었다.
“아…”
갑작스런 괴물의 돌격에 놀라 보호의 권능을 발현했던 여신은, 얼른 뒤로 물러난 채 놀란 가슴을 쓸어내리다가 그 광경을 목격했다.
그것을 무엇이라고 불러야 옳을까.
다른 평범한 인간이라면 알아볼 수 없는 현상이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여신은 그런 인간들과는 만물을 보는 관점 자체가 다르다. 그래서 그녀는 놀란 표정을 감추지 못한 채 자신의 눈앞에서 벌어지는 그 모든 광경을 홀린 듯이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당선작발표 소개가…
버그 아닌데…
게임속 세계 아닌데…
시무룩…
덧) 부랴부랴 연락 보내서 수정했습니다.
수정전 내용:
가상현실게임에서 한 방에 몹을 죽이고 레어 아이템을 획득할 수 있는
‘인스턴트 킬’이라는 버그를 사용하게 된 주인공.
게임속 세계로 떨어진 그는 현실보다 더욱 치열한 세계를 접하게 된다.
수정후 내용:
게임에서 한 방에 몹을 죽이고 레어 아이템을 획득하는 히든피스
‘인스턴트 킬’을 마음대로 쓸 수 있게 된 주인공.
그러나 이내 버그를 썼다는 누명을 쓰고 계정 삭제가 되어 버린다.
홧김에 술을 진탕 마시고 깨어보니 이게 웬 일.
그곳은 그가 했던 게임과는 무관한 전혀 새로운 세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