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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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신고식
거점전 선포의 알림은 스킬 수련중인 쌍둥이에게도 전해졌다.
“으앗!”
“꺅!”
인터벌 트레이닝 같은 느낌으로 두 가지 이동 스킬을 번갈아 사용하던 쌍둥이들은 갑자기 눈앞에 나타난 급박한 메시지에 화들짝 놀라는 바람에 발이 뒤엉켜 쓰러지고 말았다.
“조심하십시오. 고속 이동 중에는 어떤 상황이 일어나도 흔들리지 않을 정도의 침착함이 없다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죄송합니다.”
“조심할게요.”
사실 다리가 뒤엉켜 쓰러진 것은 본래의 육체와의 괴리감도 크게 작용하고 있었다. 지금까지 현실의 게임이라는 두 가지 상반된 공간에서의 육체 차이가 존재하더라도 그냥 좀 신기한 정도에 불과했지만, 이렇게 육체를 극한까지 몰아넣는 고속 이동의 와중에는 은연중에 현실에서의 감각이 되살아나기 일쑤다. 정신을 잔뜩 집중해도 헷갈리는 판에 눈앞에 느닷없이 의도치 않은 메시지, 그것도 거점전 선포 메시지가 나와버렸으니 당황해서 다리가 꼬여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하지만 크루그가 보기에 이 쌍둥이는 영 미덥지가 못했다. 여신의 일이 있기는 하지만 형진이 그렇게 심혈을 들여 포섭해야 할까 싶은 생각이 들 정도로 둔하다고나 할까. 물론 현실에서의 그녀들을 감안하면 터무니없는 저평가이긴 하지만, 평가 대상자가 어릴 때부터 라이언하트를 수련한 크루그이고 보면 오히려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게다가 크루그의 신경을 거스르는 건 그것만이 아니다. 처음 봤을 때부터 남자인지 여자인지 헷갈린다 싶기는 했는데, 알고 보니 둘 모두 여자였다.
제랄딘과 혼담이 오가기도 했고, 카트린을 오랜 기간 돌보면서 여자라고 특별할 것도 없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던 크루그였지만, 이렇게 또래의 여자 아이 둘을 살피게 되니 아무래도 심경이 복잡해질 수밖에 없는 노릇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크루그는 질풍노도의 시기라 불리는 사춘기에 막 접어든 처지니까.
“저기…”
“뭡니까.”
그래서일까. 카트린을 돌보던 모습에 비하면 아무래도 쌍둥이들을 대하는 태도가 퉁명스러워질 수밖에 없다. 쌍둥이들로서는 어쩐지 이 미소년이 무서운 코치처럼 느껴질 정도다.
“거점전이 시작되었다는 말이 나왔는데… 이렇게 있어도 괜찮은 건가 싶어서요.”
아름의 말은 지극히 상식적인 발상에서 나온 얘기다. 지금까지 소개받은 길드원이라고는 고작해야 열 명 정도. 물론 그들을 이곳으로 이끌었던 진이라는 이름의 초고렙을 생각해 보면 그들도 상당히 강할 거라는 예상 정도야 할 수 있겠지만, 본격적인 길드전을 치르기엔 역시 수가 부족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게 한 명이 아쉬울 수도 있는 상황에서 자신들을 가르치기 위해 크루그와 카트린이 빠져 나와 있으니 아름이나 새름으로서는 당연히 걱정이 된다.
“훗.”
하지만 그런 아름의 상식적인 발언에 대한 크루그의 반응은 코웃음이었다. 단순히 어이없다는 느낌을 넘어 기분이 나쁘다는 식의 감정까지 섞인.
“우리는 약하지 않습니다. 도적이 아니라 군대가 쳐들어온다 해도, 그분들이라면 막아낼 겁니다.”
“…”
터무니없는 자신감. 하지만 옆에서 수련을 지켜보고 있던 카트린조차도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지금 거점전을 걸어온 길드를 맞이하기 위해 나간 사람들은 다름 아닌 집행자와 수호자. 신들을 따르는 추종자 가운데서도 최강으로 손꼽히는 무력집단에 속한 이들이다.
아름과 새름은 크루그와 카트린의 그런 반응에 조금 놀랐다. 그리고 던전에서 보았던 형진의 모습을 떠올리고는 그럴 수도 있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다. 인던 보스로 하여금 할 말조차 못하고 꽥이라는 비명을 지르게 만들 정도의 강자들이라면, 확실히 어지간한 이들로는 상대 자체가 불가능한 것이 사실이니까.
안에서 그런 일이 벌어지고 있는 동안, 할은 오랜 만에 자신의 존재감을 뽐낼 수 있는 상황이 오자 지니고 있는 모든 장비를 착용하고 완전 무장 상태로 기세 등등하게 길드 하우스의 입구로 나섰다.
“괜찮을까요?”
그런 할의 뒷모습을 지켜보며 유아가 걱정스럽게 묻는다. 어쩔 수 없다. 그녀가 보아온 할은 걸핏하면 천벌에 얻어맞아 시커멓게 그을린 상태로 고목처럼 쓰러지는 모습 정도가 고작이었으니까.
“물론입니다.”
하지만 오귀스트는 그렇게 대답하고는 웃음을 지었다. 할이 도박 중독이나 그것 때문에 두들겨 맞는 일 때문에 이미지를 왕창 깎아 먹고 들어가는 경향이 있긴 해도 집행자로서의 실력 자체는 일류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의 여동생인 힐 데 마그만 해도 실질적으로 망자의 대지라는 아주 중요한 지역을 관할하는 지부장이다. 즉, 이것을 바꿔 말하면 적어도 실력만큼은 할 역시 지부장 대열에 합류할 수 있을 정도라는 얘기가 된다.
“그렇다면 다행이지만요.”
오귀스트의 자신만만한 대답에 유아는 그렇게 말하면서도 혹시라도 위험한 순간이 오면 할에게 얼른 회복을 넣어주기 위해 만반의 준비를 갖추고 잔뜩 긴장한 표정으로 파티창의 체력 게이지를 노려보았다.
어쨌든, 그렇게 할이 입구를 열고 모습을 드러내자 마침 길드 하우스를 향해 쇄도하고 있던 불사신 길드의 인원들은 흠칫하며 멈춰 섰다.
“크다.”
“크네.”
“크군.”
식구들은 이제 만성이 되어 그런가보다 하지만, 할 데 마그의 덩치는 처음 보는 사람들에게는 인간이라기보다는 골렘 같은 걸 연상시킨다. 덩치 자체도 보통 사람보다 큰 데다, 떡 벌어진 어깨와 비정상으로 느껴질 정도로 압도적인 두께를 자랑하는 팔뚝이 뿜어내는 위압감 때문이다.
하지만 이곳은 게임 안. 대부분의 경우 미형 캐릭터가 주류를 이루기는 하지만 간혹 특이한 취향을 가진 이들은 저런 모습을 선호하기도 한다. 사실 그들이 잠시 멈추어섰던 것도 할의 외모에 놀라서라기보다는 혹시나 매복 같은 건가 싶어 멈칫한 정도에 불과하다.
“뚫어!”
하지만 그것도 잠시, 조장을 맡고 있는 길드원의 외침과 동시에 탱커 위주로 구성된 돌격조가 할을 향해 방패를 내민 채 스크럼을 짜고 일제히 차지 어택을 실행한다. 이것이야 말로 불사신 길드가 자랑하는 합동 공격인 불도저. 앞세운 방패의 대열이 밀려오는 모습이 마치 불도저와 같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훗.”
하지만 할은 그 모습을 보고는 가볍게 콧방귀를 뀌더니 갑자기 돌격조의 시야에서 모습이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응?”
“어디?”
돌격조들은 아주 잠깐 할의 모습을 놓쳤다. 그런 그들의 물음에 답하듯 뒤따르던 저격조들이 외쳤다.
“위다!”
“미친! 뭐야 저거!”
“쏴!”
돌격조의 시야에서 할이 사라진 것은 그가 힘차게 허공으로 도약했기 때문이다. 뒤따르던 저격조들이 기겁하며 화살과 마법들을 쏘았지만, 미처 그것이 도달하기도 전에 할의 거대한 덩치가 급히 가속하며 돌격조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린다.
콰직!
“끄아악!”
짓밟힌 돌격조 가운데 하나가 죽는다고 비명을 지르는 순간, 할의 양 손은 이미 그 옆에 서 있던 돌격조원의 목을 꽉 움켜잡고 있었다.
“컥!”
“큭!”
목덜미를 잡힌 돌격조원들은 놀라서 자신들의 팔을 잡고 있는 할의 두꺼운 팔목을 향해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이게 웬 걸.
깡!
땡!
그들이 휘두른 무기가 할의 드러난 팔뚝에 부딪히는 순간 살이 베이는 느낌은커녕 무슨 깡통 두들기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훗.”
그리고 할이 가볍게 코웃음을 치는 순간, 그들은 느닷없이 하늘로 날아올랐다. 더 높이. 더 빠르게. 멀리멀리 날아라 우리 비행기 하는 느낌으로.
“흐어어어어…”
“우아아아아아…”
사람이 내지르는 비명이 도플러 효과를 일으킬 수 있다는 사실에 놀랄 틈도 없이 할에게 목을 잡힌 모습 그대로 두 명의 돌격조는 유성처럼 지면으로 떨어져 내렸다.
쾅!
그리고 지진을 연상시키는 작은 땅울림과 함께 격렬하게 지면과 격돌하는 순간 그들은 혼이 빠져 나가는 듯한 충격을 받아야만 했다.
“더, 더블 초크 슬램?”
누군가의 입에서 그런 얼빠진 말이 흘러나왔다. 그렇다. 지금 할이 선보인 모습은 프로레슬링에서도 거인들만 선보일 수 있다는 초크 슬램, 그 중에서도 양손에 한 명씩을 움켜잡고 바닥에 내리 꽂는 더블 초크 슬램을 연상시키기에 충분한 모습이다. 아니, 굳이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이건 메테오 초크 슬램이라고 이름을 붙이는 편이 더 나을지도 모르겠다.
할의 일격에 당한 자들은 지면을 뚫고 들어가 팔다리만 겨우 밖으로 빠져 나온 형상이었다. 할의 완력은 물론이고 낙하 데미지까지 가산되는 바람에 이런 모습이 되어 버린 것이다.
“흠.”
할은 생각보다 적들이 꽤 단단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저쪽 세계라면 목부터 시작해서 척추가 부서지고 내장은 단숨에 다 터져 나갈 법한 충격임에도 이 녀석들은 여전히 버둥거리며 살아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할은 별로 개의치 않았다. 사실 상대가 수호자급만 되도 이런 경우는 꽤 많기 때문에 당황하지도 않았다. 대신 그는 목을 잡고 있던 손을 풀고 마치 절구질하듯 땅속에 처박힌 적들에게 가차없이 주먹을 내리 찍었다.
퍽! 퍼퍽! 퍼퍼퍽!
마치 철퇴를 연상시키는 할의 주먹이 내리꽂히자 그렇지 않아도 지면에 처박혀 꼼짝도 못하던 이들은 마치 설날에 절구 안에서 짓이겨지는 찰떡처럼 뭉개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몇 번 더 주먹질이 이어지자 계속해서 이어지는 압도적인 파괴력을 견디지 못한 방어구가 박살나면서 한꺼번에 사망처리가 되고 말았다.
“미, 미친…”
“뭐야… 저거.”
길드 내에서도 방어와 체력이 높은 탱커들을 모아 만든 돌격조 가운데 두 명이 제대로 저항도 못하고 손 쓸 틈도 없이 주먹질 몇 번에 떡이 되어 사망하자 지켜보던 이들은 질려버리고 말았다. 도대체 공격력이 얼마나 되기에 저런 말도 안 되는 일을 저지른단 말인가.
“뭘 멀뚱히 보고 있… 어라?”
조장 가운데 하나가 얼른 공격을 하라고 외치려다가 깜짝 놀랐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느긋하게 몸을 일으키는가 싶었던 할이 어느 틈엔가 다시 모습을 감추어 버렸기 때문이다.
방금 전의 일을 떠올린 저격조들은 다시 공중으로 시선을 돌렸다. 하지만 할은 그곳에 없었다. 그들로서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었지만, 할은 지금 이 순간 은신과 잠행을 연속으로 펼쳐 저격조 안으로 파고 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공중에 아무도 없다는 것을 알아차린 저격조들이 다시 시선을 아래로 내리는 순간,
뻑!
“크악!”
할이 저격조들 사이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거대한 철퇴와 같은 주먹을 미친 듯이 휘둘러대며.
탱커들에 비해 상대적으로 방어가 약한 저격조들은 할의 거대한 주먹에 얻어 맞고 그의 손에 잡혀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는 순간 곧바로 빈사상태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 당황한 격수들이 얼른 할에게 달려들어 그를 저지하려 했지만, 이미 시동이 걸려서 고삐 풀린 황소처럼 날뛰기 시작하는 할을 막을 수단은 처음부터 존재하지 않았다.
“와…”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할의 모습을 지켜보던 유아는 자신도 모르게 탄성을 터뜨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설마 이 정도로 압도적인 차이가 날 줄은 미처 예상치 못한 탓이다.
“저 녀석… 번개에 잘 맞는 이유가 있었군.”
오귀스트는 할의 모습을 보며 그런 말을 했고, 하마란 역시 고개를 끄덕였다. 저들의 무기가 할의 몸에 부딪히는 순간 흘러나오는 깡통 두들기는 소리 때문이다.
“비켜! 켁!”
순식간에 저격수들의 전열이 무너지자 보다 못한 정예들이 달려들었지만, 이내 사납게 날뛰는 할의 손에 잡힌 채 메테오 초크 슬램의 제물이 되어 버린다.
“미친… 뭐야, 저거…”
뒤따르던 임진철은 지금까지 당해왔던 모든 일에 대한 울분을 이 자리에서 모두 풀어 버리겠다는 듯이 날뛰는 할의 모습에 새파랗게 질려버리고 말았다. 그럴 수 밖에 없다. 저 정도로 강한 유저라면 이미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져 있어야만 한다. 도대체 이런 말도 안 되는 놈이 어디서 튀어나왔단 말인가.
“놈은 혼자다! 무시하고 입구부터 뚫어!”
그제야 패닉 상태에서 겨우 벗어난 조장의 외침에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우왕좌왕하던 돌격조들은 비로소 정신을 퍼뜩 차리고 몸을 돌렸다. 하지만 그들의 눈에 들어온 것은 검과 방패를 든 사내와 메이드 복을 입은 장신의 여자가 입구로부터 모습을 드러내는 장면이었다.
꿀꺽.
올테면 오라는 식으로 팔짱을 낀 채, 마치 자신들을 내려다보는 듯한 시선을 던지고 있는 이 막강한 부부의 모습에 돌격조들은 자신도 모르게 마른 침을 꿀떡 삼키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