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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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3. 신고식
뭔가 범상치 않다. 딱히 캐시템을 떡칠한 것도 아니고, 걸치고 있는 복장 역시 게임 안에서는 본적이 없는 것들. 그렇다면 일부러 커스텀 형태로 의복을 저런 식으로 만들어서 입고 다닌다는 건데, 그렇게까지 캐릭터 컨셉에 공을 들일 정도의 강자들이라면 한번쯤은 들어봤어야 정상 아닌가.
“이거 참.”
오귀스트는 방패를 맞대고 천천히 다시 기세를 돋우는 돌격조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다. 딱 봐도 자신과 비슷한 컨셉인 것 같기는 한데, 아무리 봐도 강하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어색하다는 느낌이 더 강하다.
“어떻게 할 거에요?”
“글쎄.”
하마란은 별로 흥미가 없어 보인다. 강한 자라면 모르되, 저렇게 기본도 안 되어 보이는 자들에게 신께서 내려주신 힘을 쓰는 건 오히려 낭비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다.
그런 모습에 자존심이 상했던 걸까. 슬금슬금 입구를 향해 접근하던 돌격조들은 방진을 짜는가 싶더니 일제히 함성을 외치며 차지 어택을 걸어온다. 아직 정체를 파악하지는 못했지만, 어쨌든 나타난 두 사람뿐이니 숫자든 뭐든 밀어서 입구만 뚫으면 된다는 판단이었던 모양이다.
“쯧.”
하지만 방진을 짜고 차지 어택을 걸어오는 그들의 모습에 오귀스트는 짧게 혀를 차더니 마찬가지로 방패를 앞세운 채 돌격조들을 향해 똑같이 차지를 걸어버린다.
일대 다수. 한 사람이 이런 식으로 방진을 짠 탱커들의 조합을 동일한 차지로 상대하는 건 상식적으로는 거의 자살행위나 다름없다. 차라리 할처럼 허를 찌른다면 몰라도, 정면 승부라니. 완전히 미친 짓 아닌가.
때문에 돌격조들은 이번에야 말로 구겨진 자존심을 되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그런데, 그런데!
“어?”
선두열의 돌격조들은 갑자기 시야 안으로 화악 번져 오는 듯한 오귀스트의 모습에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깨달음을 다른 이에게 전달할 틈도 없이, 그들은 자신들에게로 돌진해오는 오귀스트와 정면으로 충돌하고 말았다.
꽝!
다시 한 번 폭음이 터진다. 그리고 그와 동시에 돌격조의 인원들이 충격을 견디지 못하고 묵사발이 난 모습을 한 채 사방으로 튕겨 나간다.
스트라이크!
아마도 형진이 이 광경을 목격했다면 그렇게 외치며 환호했을 것이다. 그렇다. 방진을 짠 모습으로, 일사불란하게 한 몸처럼 차지 어택을 실행했던 돌격조의 대열은 맹렬하게 달려드는 오귀스트와 격돌하는 순간, 볼링공에 얻어맞은 볼링핀처럼 허무하게 무너져 버린 것이다.
“마, 말도 안 돼… 컥!”
격돌시의 충격으로 반쯤 넋이 나간 채 땅바닥을 나뒹굴던 유저의 목에 한줄기 빛과도 같은 번뜩임이 스치고 지나간다. 그렇지 않아도 방금의 격돌로 피가 반 넘게 날아가 버린 상황. 그런 상황에서 방어력을 넘어서는 날카로운 일격이 가해지자 유저는 비명조차 지르지 못하고 그대로 사망처리가 되고 말았다.
푹!
“커억!”
오귀스트는 가차 없이 널브러져 있는 돌격조들의 숨통을 끊는 일을 주저하지 않았다. 너무나 무덤덤한 모습이라 오히려 무슨 밭에서 김매는 농부처럼 보일 지경이다. 하긴 틀린 말도 아니다. 어떻게 보면, 감히 대낮에 남의 집을 노리고 들어온 도적들의 생명이라는 이름의 잡초를 뽑아내는 농부나 다름없는 상황이니까.
격돌의 순간 후열에 위치한 덕분에 가까스로 빈사상태로 널브러지는 상황을 모면한 몇몇 돌격조들이 입구에 버티고 선 하마란을 향해 달려든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현재 하마란의 모습은 제대로 무장이나 방어구조차 갖추지 않은 것 같은 상태의, 키가 상당히 크다는 걸 제외하면 별다른 특별한 구석이 없어 보이는 메이드일 뿐이다.
물론 실제 장비하고 있는 물품들을 감추어주는 꾸미기 아이템의 존재가 있으니 지금 눈앞에 보이는 모습을 액면 그대로 믿을 수는 없는 일이지만, 그래도 최소한 방진을 짠 탱커들의 전열을 정면에서 깨부수는 괴물을 상대하는 것보다는 나으리라는 판단. 여기에 입구만 뚫으면 어쨌든 절대적으로 다수인 자신들에게 승기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판단 역시 그들의 행동에 포함되어 있었다.
하지만 그들이 접근해 옴과 동시에 조금은 귀찮은 기색이 역력하던 하마란의 전신에서 밝은 빛이 확 하고 터져 나온다. 마침내 헌신의 일격이 엘리시온에 첫 선을 보이게 된 것이다.
커헝!
그리고 연이어 터져 나온 사자후!
일순 귀가 먹먹해지는 느낌의, 여자 입에서 저런 고함 소리가 터져 나와도 되는 건가 싶은 느낌의 그런 굉음과 함께 마법사들이 걸어준 버프들이 마치 폭풍에 휩쓸린 낙엽처럼 돌격조들에게서 씻겨 내려간다.
갑작스럽게 버프 효과들이 사라지는 바람에 잠시 휘청하는 순간, 하마란이 그들의 눈앞에 갑자기 확 밀어닥치더니 손을 뻗어 앞선 자의 머리를 콱 움켜잡는다.
“끄아악!”
단순히 머리를 잡힌 것 뿐이다. 하지만 하마란의 말도 안 되는 악력은 그것만으로도 절로 비명이 터져 나오도록 만드는 위력을 가지고 있었다.
“미친! 그 손 놔!”
놀란 유저 하나가 하마란을 향해 메이스를 휘둘렀다. 하지만 하마란은 피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자신의 머리로 그 메이스를 들이받았다.
쾅!
보통 사람의 머리와 메이스가 부딪히면 사람의 머리가 깨지든 부서지든 하는 것이 상식이다. 메이스를 휘두른 당사자도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이게 웬 걸. 하마란의 머리와 부딪히는 순간 유저는 자신의 손아귀에 찢어질 듯한 통증을 느끼는 바람에 무기를 놓쳐야만 했다.
“흠…”
하마란의 이마로부터 피가 잠시 흘러내리는가 싶었지만, 재생력이 발휘되어 상처는 아물고 피는 그대로 멎어 버린다. 하지만 이마로부터 얼굴을 적시며 흘러내린 피 한 방울이 그녀의 턱에 잠시 매달렸다가 지면으로 떨어지는 순간, 하마란은 손으로 움켜쥐고 있던 유저의 머리를 천천히 들어올렸다.
“끄아아아악!”
“세, 세상에…”
전신에 중갑을 두른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그녀의 손 아래 천천히 들어 올려지고 있었다. 지면으로부터 발이 완전히 떨어진 상태에서 머리를 죄어 들어오는 말도 안 되는 악력에 발버둥치고 있는 동료의 모습에 그나마 오귀스트를 피해 입구에 접근했던 유저들은 전율마저 느껴야만 했다.
하지만, 그건 시작에 불과했다.
적의 머리를 움켜잡은 하마란의 손이 번쩍 치켜 올라가는가 싶더니, 그대로 다른 이들을 향해 휘둘러진다.
인간 흉기.
이것은 흉기 같은 사람이라는 뜻이 아니다. 인간 그 자체를 흉기로 삼는 이 상황을 뜻하는 말이다. 지금 이 순간 하마란은 자신에게 달려들었던 유저 그 자체를 무기로 휘둘러 다른 이들을 때려 눕히기 시작한 것이다.
“이거 참.”
하마란이 메이스에 가격당하는 모습에 흠칫했던 오귀스트는 이내 성난 암사자처럼 사람으로 사람을 두들겨 패는 말도 안 되는 짓을 하고 있는 그녀의 모습에 허탈한 표정이 되어 버리고 말았다.
저러니 보약을 먹어도 감당이 안 되지.
“컥!”
그런 오귀스트의 빈틈을 노리고 간신히 비틀거리며 몸을 일으킨 유저 하나가 기습을 가하려다가 갑자기 날아든 갈고리에 목이 잡혀 그대로 끌려간다. 아니, 뭔가 확 끌려간다 싶은 순간에는 이미 시퍼런 검광 수십개에 의해 몸이 난자되어 버린다.
마지막 하나 남은 돌격조를 그렇게 끝장내버린 오귀스트는 잔뜩 화가 나서 날뛰고 있는 자신의 신부에게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아무리 봐도 결혼한지 얼마 안 되는 새 신부의 모습이 아니니 조금 자제시키려는 생각에서다.
한편, 그렇게 입구에서 한창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동안 불사신 길드의 기습조는 길드 하우스의 담을 넘기 위한 준비를 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상황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은데.”
지금 불사신 길드의 길챗은 완전히 아비규환이나 다름없었다. 아이템 깨먹었다는 사람부터 시작해서 저게 말이 되냐고 울부짖는 이들까지. 구체적인 상황 전개는 알 수 없어도 입구 쪽의 상황이 완전히 개판이라는 것은 바로 알 수 있을 정도다.
“괜찮아. 저쪽에 신경 쓰고 있는 만큼, 우리가 성공할 가능성도 높아지니까.”
거점전의 승패는 길드 하우스의 심장부에 존재하는 길드 홀의 점거에 달려있다. 길드 홀 안에는 커다란 크리스탈이 있는데 그것을 깨부수게 되면 바로 수비측의 패배가 선언되며 파괴한 길드의 소유로 넘어가 버리게 되는 것이다.
벽 너머의 기척을 조심스럽게 살피던 길드원이 고개를 끄덕이며 오케이 사인을 보내자, 그들은 곧바로 지니고 왔던 사다리 십여개를 성벽에 걸치고는 신속하게 올라가기 시작했다.
길드 하우스에 경비병이 배치 되어 있다면 이런 기습은 사실 매우 성공이 어려워진다. 보통은 적들의 시선과 전력을 분산시키는 정도의 효과 밖에 없는 것이 사실. 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다르다. 이 길드 하우스를 차지한 자들은 경비병이라는 아주 기초적인 방어 대책조차 구비해두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약 저들이 알아차리지 못하는 사이에 십여명 이상의 길드원들이 길드홀로 내려가 크리스탈에 일점사를 가한다면, 그야말로 훌륭한 빈집 털이가 완성되는 셈이다.
잘하면 자신들이 이 전투에서 가장 혁혁한 공을 세울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기대에 부푼 채 그들은 열심히 사다리를 올라갔다.
말이 길드 하우스지 이건 그냥 성벽이다. 오죽하면 길드 하우스 1호의 별명이 길드성일까.
하지만 그렇게 힘들게 사다리를 올라가던 그들은 문득 사다리가 맞닿은 성벽 위로 작고 하얀 털뭉치 같은 것이 나타나는 것을 발견했다.
“어?”
“저건?”
북슬북슬한 하얀 털. 그리고 머리 위로 삐죽 솟은 두 개의 커다란 귀. 그리고 마지막으로 누가 씌워준 것인지 모를 시커먼 선글라스 하나.
그것을 확인하는 순간 그들은 자신들이 매달려 있는 사다리가 갑자기 휙하고 떠밀려 버리는 것을 깨닫고는 비명을 질렀다.
“으, 으아아앗!”
“잠깐! 그만 둬!”
하지만 지금 상황이란 것이 어디 그만두라고 해서 그만 둘 상황인가. 결국 그들은 사다리에 매달린 채 포물선을 그리며 성벽 밖의 가시덤불 속에 내동댕이쳐지는 꼴이 되고 말았다.
“아따따따따!”
“악! 독 올랐어!”
“미친! 독 가시덤불이었냐!”
어떻게 된 영문인지는 모르겠지만, 기습이 들통나 버렸음을 깨달은 그들은 다시 대책을 마련했다.
“몇 사람은 남아서 사다리를 넘어가지 않게 꽉 잡아! 어떻게든 일단 성벽만 넘어가면 우리가 이긴다!”
“오오!”
곧바로 다시 조를 재편성 해서 세 개의 사다리를 앞세운 채 돌진한다. 그러자 성벽 위에서 불덩이와 얼음덩이 같은 것이 날아오기 시작한다.
“아뜨뜨뜨!”
“뜨악!”
치명적인 파괴력을 지닌 건 아니다. 다만 불덩이든 얼음덩이든 일단 몸에 엉겨 붙으면 지속적으로 도트뎀이 들어오는데다, 장비 내구도마저 팍팍 까먹으니 신경이 안 쓰일 수가 없다.
하지만 기습조들은 그렇게 계속해서 날아오는 자잘한 마법 세례를 꿋꿋이 견디며 다시 성벽에 사다리를 걸치는데 성공했다.
“올라가!”
조장의 명령이 떨어지자 곧바로 사다리를 타고 올라가기 시작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거의 성벽에 도달할 즈음, 역시나 북슬거리는 털뭉치 같은 것이 불쑥 성벽 위에 모습을 나타낸다.
“토끼?”
아까는 혹시 잘못 본 것일수도 있었다 싶었지만, 이번에는 틀림없었다. 상대는 선글라스를 끼고 턱시도를 입은 토끼였던 것이다!
화환 사만 구천워이.
어디선가 그런 노랫소리가 들려오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갑자기 토끼가 허공으로 뛰어오르며 그 짧은 다리로 무영각을 펼쳐 기습조의 머리를 마구 걷어차기 시작한다.
“켁! 컥! 꾸엑!”
사다리에 매달려 있는 터라 피할 엄두도 못 내고, 성물의 효과 때문에 반격조차 불가능한 상황. 속절없이 그 발차기를 다 얻어맞은 선두의 기습조원은 쌍코피를 터뜨리며 그대로 굴러 떨어졌고, 앞선 이가 그런 식으로 떨어지자 뒤따르던 이들 역시 우르르 떨어지고 말았다.
“우… 이러다가 우리는 나서보지도 못하겠어. 어쩌지?”
“그러게. 아, 진짜. 이번에 공을 좀 세워서 존재감을 좀 드러내 보일까 했더니! 어쩌지?”
“힘 좀 내라고! 이 바보들아!”
“그래! 힘 좀 내라고! 이 바보들아!”
성벽 위에서 기습조들을 응원하는 것은 다름 아닌 몽마들이었다. 식사 자리에서조차 있었는지 아무도 기억 못할 정도로 존재감을 드러내지 못한 그들이라 이번에는 기필코 공을 세우겠노라 다짐하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토끼들 때문에 그것조차도 그리 쉽지 않을 것 같은 느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