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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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풍문
“어때?”
“뭐가요?”
뜬금없는 형진의 말에 크루그는 뭘 묻고 싶은 거냐는 듯한 표정을 던진다.
“훈련시켜 보니까 어떻더냐고.”
“그야 뭐…”
이미 다 상황 파악 해놓고 뭘 또 굳이 묻느냐는 식으로 답하자, 형진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
“저 아이들은 집행자가 아니야.”
“…”
뭔가 특별한 부분이 있다면 몰라도 저 정도 실력으로는 애초에 공포와 죽음의 부름을 받을 자격이 없다. 추종자에 목말라서 어쩔 줄 모르는 보호와 균형 같은 신이라면 몰라도. 사실 따지고 보면 카트린도 마찬가지 아닌가.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그래. 그럼 된 거야.”
형진은 크루그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는 여자들이 점령한 응접실 옆에 자리한 작은 방으로 크루그를 데리고 갔다.
“봐서 알겠지만, 이곳은 조금 특이한 곳이다.”
크루그를 앉혀 놓고 음료수를 만들어서 내놓으며 형진은 그렇게 다시 말을 시작했다. 이곳에 오기 전에 거짓된 천국이라고 말은 했어도 어떤 식으로 돌아가고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직 구체적인 설명을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오귀스트나 하마란, 할 같은 이들은 직접 나가서 자신들이 살펴보면 어렵지 않게 저쪽 세계와 이곳의 차이를 알 수 있겠지만, 카트린의 보호에 얽매여 있는 크루그는 그런 식으로 스스로 확인하는 일조차 쉽지 않으니 그가 일일이 설명을 해주어야만 했다.
“황당한 곳이군요. 죽고 죽이는 걸 유희로 삼다니.”
“바꿔 말하자면 그만큼 현실쪽이 지루한 세계라는 말도 되겠지.”
물론 지구 전체가 그렇지는 않지만. 형진은 속으로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쓴웃음을 지었다.
“그래서라고 하긴 뭐하지만, 이런 이유 때문에 오히려 집행자를 선발하는 건 더 어려울 수밖에 없어. 자칫 악용되면 큰 혼란을 초래할 수밖에 없으니.”
“하긴.”
쌍둥이들의 예에서도 확인한 것이지만, 일단 신의 추종자가 되어 낙인이 새겨지면 그 효과는 게임 밖에서도 적용된다. 보호와 균형 같은, 어떻게 보면 다른 이에게 해를 끼치기 어려운 종류의 것이라면 몰라도 공포와 죽음의 힘은 잘못 전수가 되면 자칫 큰 악영향을 끼칠 수 밖에 없다. 이름부터가 범상치 않으니 정말로 게임에서처럼 사교도로 몰릴 가능성조차 있는 것이다.
“그러니 네 역할이 중요하다. 저 쌍둥이들의 심성은 이미 대충 파악을 했지만, 자칫 그들에게 전해진 힘이 악용되지 않도록 충분히 조심스럽게 가르칠 필요가 있다는 얘기지.”
“무슨 말인지 알겠습니다.”
처음이라는 건 그만큼 중요할 수밖에 없는 일. 크루그는 자신이 어째서 저런 둔탱이들을 가르쳐야 하는지에 대해 다소 의문을 품고 있었지만, 그들을 가르치는 것 자체가 문화나 사고방식이 다른 이들에 대한 적극적인 포교를 위한 시험이라면 얘기는 달라진다. 쌍둥이들을 교육하면서 발생할 수 있는 모든 일들이 이후의 포교를 위한 기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렇게 짤막하게나마 음료수를 마시며 대화를 나누기를 얼마나 했을까. 마침내 유아로부터 메시지가 전해져 왔다.
[다 됐어요!] [그래? 그럼 바로 가보도록 할게.] [네!]크루그를 데리고 다시 응접실로 들어서자, 두 남자는 붉어진 얼굴로 쭈뼛거리고 있는 쌍둥이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오, 역시 잘 어울리는군.”
“그렇죠?”
사실, 정말 정말 솔직하게 말하자면 뭔가 좀 어색한 느낌이다. 딱히 못난이 같다거나 그런 느낌이라기보다는, 하마란에게 처음 메이드복을 입혔을 때 같은 그런 어색함이라고나 할까. 다소 중성적인 느낌이긴 해도 꼬맹이들이라 제법 귀엽긴 한데, 옷을 입은 품이라든가 서 있는 자세부터가 역시 좀 애매하다.
그녀들이 입고 있는 것은 고스로리 풍의 드레스다. 흰색과 검은색이 섞여 있는 디자인에, 리본과 프릴이 달려 있는 전형적인 고스로리 풍. 검은 바탕에 흰색의 프릴이 달린 치마는 무릎 위까지 살짝 드러나 있고, 발에는 정강이까지 오는 가죽 부츠를 신고 있으며, 머리에는 토끼 인형 모습의 푹신한 털모자를 쓰고 있다.
쌍둥이들은 얼굴이 잔뜩 상기된 채 어쩔 줄 몰라 하고 있었다. 어릴 적부터 운동에만 전념하다보니 드레스라고 불리는 물건은 정말 처음 입어 본다. 하물며 이렇게 리본과 프릴이 잔뜩 달린데다 무릎이 드러나는 짧은 치마라니. 그야말로 상상조차 해본 일이 없는 모습이다.
하지만 이것도 형진이 많이 봐준 거다. 본래 계획했던 대로라면 영락없이 토끼귀 머리띠에 망사 스타킹과 킬힐을 조합한 올인원 스타일의 검은색 코르셋, 다시 말해 바니걸 복장을 입혔을 터. 그러나 아직 꼬맹이에 불과한 그녀들에게 그런 걸 입히는 건 역시 범죄 같은 느낌이라 고스로리 정도로 양보한 것이다. 물론 현실에서의 그녀들을 봤다면 얘기는 달라졌겠지만, 게임 안에서는 영락없는 꼬맹이들이니까.
물론 겉모습만 이렇고 속은 또 다르다. 그녀들이 걸친 방어구는 모조리 사교도 인던에서 나오는 +10 강화된 진귀급이고, 액세서리 역시 일괄적으로 +3 강화된 물건들이다. 만약 그녀들이 걸친 장비 목록을 불사신 길드의 마스터인 임진철이 봤다면 바로 뒷목을 잡고 쓰러져 버렸을 것이다.
“저기…”
이 어색함을 고치려면 역시 전문적으로 몸가짐을 가다듬는 법을 배우는 편이 나을지도 모른다. 그리고 그런 분야라면 이미 형진의 주위에는 둘이나 되는 전문가가 있다. 하나는 명실상부한 귀족영애 제랄딘, 그리고 또 하나는 그런 제랄딘을 사실상 어릴 때부터 키워낸 미엘. 물론 그런 일로 미엘을 깨웠다가는 당장 목덜미를 콱 하고 깨물릴 테니, 이 경우에는 제랄딘이 가장 적격이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던 형진은 머뭇거리는 아름을 향해 푸근한, 그야말로 겉과 속이 다른 사기꾼이란 이런 것이다 싶은 표정을 지은 채 대답했다.
“말씀하십시오.”
“아무리 생각해도 이건 너무 과한…”
드러난 무릎이 신경 쓰이는지 자꾸만 치맛자락을 아래로 내리며 아름이 그렇게 더듬더듬 얘기를 꺼낸다. 아무리 여신의 첫 번째 추종자라지만, 머리부터 발끝까지 고강템으로 두르고 다시 캐시템까지 얻어 입는 건 아무래도 너무 과하다는 생각이 들어서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아름의 말에 단호한 태도로 답했다.
“과하지 않습니다. 잊으셨습니까? 두 분은 여신님의 첫 번째 추종자입니다. 그런 분들이 어디 가서 없어 보인다는 식의 소리를 들으면, 그건 여신님의 명예와도 직결되는 문제입니다. 저희들로서는 절대로 용납할 수 없는 일이죠.”
“…”
첫 인상은 중요하다. 매우 매우 중요하다. 물론 사람의 내면이란 겉으로 드러난 무언가만으로 단숨에 파악하기 어려운 점이 있지만, 일단 한 번 고정되어 버린 첫 인상을 바꾸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는 사회 생활을 조금이라도 해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고 있는 일이다.
형진의 조용하면서도 단호한 말에 아름은 꿀 먹은 벙어리가 되고 말았다. 운동 밖에 모르는 쑥맥인 그녀로서는 국가 단위로 사기를 쳐서 입에 홀랑 털어 넣는 일이 일상사인 형진의 말발을 당해낼 도리가 없는 것이다.
“앗!”
그 때였다. 갑자기 새름이 놀란 표정을 지은 건.
“무슨 일이라도?”
형진의 물음에 새름은 잠시 주저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그게… 스케줄, 아니 약속이 있어서…”
스케줄. 그 단어를 듣는 순간 형진의 눈은 다시금 살짝 빛났다. 스케줄이라는 단어, 일개 꼬맹이가 입에 담을 수 있는 말이 아니다. 적어도 누군가에 의해 일상생활을 규칙적으로 관리 받고 있는 사람이 아니라면. 이를테면, 운동선수나 연예인 같은.
어쩌면 예상외의 대박이 난 것인지도.
하지만 형진은 그런 것을 알아챘다는 사실을 감춘 채, 아무것도 모르는 척 고개를 끄덕이며 선선히 답했다.
“그랬군요. 괜찮습니다. 다만 일이 없을 때는 자주 여신님의 말벗이라도 해주십시오. 보시다시피 여신님은 외로움을 많이 타는 분이시라.”
“네! 그럴게요. 물론이죠.”
“알겠습니다. 그럼 살펴 가십시오.”
“죄송합니다. 그리고… 여신님, 있다가 다시 얘기 나눠요.”
“네!”
새름은 그렇게 얼른 자리를 비웠지만, 아름은 화장실이 급한 것처럼 우왕좌왕하기 시작했다. 재활 중이기 때문에 딱히 예정이 있는 것은 아니지만 규칙적인 수면 시간은 컨디션 관리를 위해서도 반드시 준수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렇게 잔뜩 받아놓고 지금 바로 자러 가야한다고 말하려니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는다.
“아름님은 뭔가 예정이 없으십니까?”
“그… 그게… 저도 이만 자러 가야…”
“그렇군요. 그럼 먼저 들어가셔도 좋습니다.”
“감사… 합니다. 그리고 죄송해요. 이렇게 먼저 가버려서…”
“아닙니다. 그런 건 개의치 않으셔도 됩니다.”
“그래도…”
아름은 다시 몇 번이나 여신과 카트린에게 미안하다는 말을 하고서야 겨우 로그 아웃을 할 수 있었다.
“후아아아…”
로그 아웃을 마친 아름은 게임에서 벗어나고서도 한참이나 꿈인지 생시인지 몰라 멍한 표정을 지은 채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다.
그러다가 문득 손을 들어 올려 손등에 새겨진 낙인을 바라보았다.
꿀꺽.
정말로 나올까.
그 진이라는 사람은 분명히 그랬다. 낙인을 매개로 하기 때문에 현실에서도 얼마든지 불러낼 수 있을 거라고. 그런 꿈같은 일. 역시 좀처럼 믿기지 않는다.
하지만 확인해 보는 건 간단하다. 실제로 불러내 보면 되기 때문이다.
아름은 후다닥 침대에서 몸을 일으키고는 가볍게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는 이내 손등을 바라보며 작은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꼬마야.”
별로 큰 목소리도 아니었다. 일부러 입에다 귀를 가져다 대고 듣지 않는 이상 알아 듣기조차 힘든, 말한 본인이 아니고서야 일반적으로는 말을 했다는 것조차 인식하기 어려운 그렇게 작은 목소리로 불렀다.
하지만 그 목소리가 흘러나온 순간, 손등에 새겨진 문양이 옅은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그곳으로부터 작은 털뭉치 같은 생명체 하나가 폴짝 뛰어 오른다.
바로 그녀가 꼬마라고 이름붙인, 바로 그 미니 토끼다.
“세상에…”
손 안에 쏙 들어가는 귀여운 미니 토끼가 무릎 위에 자리를 잡은 채 고개를 갸웃거리는 모습에 아름은 잠시 아무런 말도 할 수 없었다.
가만히 손을 뻗어 본다. 그러자 꼬마는 그녀의 손에 가만히 머리를 기대며 부비부비를 해보인다.
“아우우우우우…”
아름은 순간 가슴 한 구석에서 짜릿하게 전해져 오는 어떤 감각에 자신도 모르게 그런 괴성을 내뱉으며 몸을 부르르 떨고 말았다.
그런 떨림이 전염되기라도 한 것일까. 문득 침대 옆에 놓아둔 전화기가 부르르 떨린다.
얼른 손을 뻗어 집어 보니, 역시나 동생 새름이다. 얼른 받아보니 곧바로 화상 통화로 연결이 된다.
“언니! 보여?”
흥분한 그녀의 얼굴 옆에 자리 잡고 있는 것은 선글라스를 끼고 턱시도를 걸친, 괜히 근엄해 보이는 토끼의 모습이다.
“보여? 보이지?”
아무래도 자기가 지금 보고 느끼는 것이 꿈인지 생시인지 확인해 보기 위해 일부러 전화를 건 모양이다.
“어, 보여. 여기… 꼬마 보여?”
“응. 보여. 어쩜 좋아! 어쩜 좋아!”
꿈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자 새름은 자신이 세바스찬이라고 이름붙인 협객 토끼를 끌어안고 어쩔 줄 몰라 한다. 협객 토끼는 조금 귀찮아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새름을 밀치거나 하지는 않은 채 점잖은 모습을 유지하고 있다.
“아, 맞다!”
그렇게 잠시 폭주하던 새름은 뒤늦게서야 자신이 깨달은 한 가지 사실을 언니에게 말했다.
“언니.”
“응.”
“언니도 아까 그 유아라는 분에게 회복 받았지?”
“그랬지.”
앞서 장비와 옷을 챙겨 입기 전에 유아라는 이름의 여자가 그녀들의 몸에 난 생채기를 보고는 회복을 걸어주었었다. 그러자 훈련 중에 넘어지고 뒹구는 바람에 생겨났던 생채기 같은 것이 흔적도 없이 사라졌었다.
아름의 대답을 들은 새름은 잠시 주저하더니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언니, 무릎 어때?”
“무릎?”
설마 부상으로 재활 중이라는 걸 모르지는 않을 터. 어째서 이런 걸 묻나 싶었지만 아름은 일단 무릎을 가볍게 움직여 보았다.
“어?”
그런데 뭔가 이상하다. 수술 후 줄곧 느껴지던 부자연스러운 느낌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역시!”
그런 아름의 모습을 전화기 너머로 본 새름은 기쁜 표정으로 이렇게 외쳤다.
“이상하더라고. 아까 밥 먹다가 입안을 깨물었었거든. 근데 게임에서 나와서 물 마시는데 아무렇지도 않은 거야.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하고 얼른 거울을 봤는데…”
새름이 그렇게 흥분해서 자신이 이 사실을 알게 된 이유를 설명하기 시작했지만, 아름은 그녀의 말이 이미 들리지 않고 있었다. 최근 그녀를 가장 상심에 젖게 만들었던 무릎 부상이 어이없이 완치되어 버렸다는 사실에 이미 정신을 차릴 수가 없게 되어 버린 것이다.
============================ 작품 후기 ============================
아름이 고스로리 움짤버전, 공지에 올려놨습니다.
공지에 올리면 모바일에서도 움짤이 보이기 때문이니 양해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