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3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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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 풍문
“응?”
영양가도 없는 싸움인데다 보는 눈이 점점 많아지는 것 자체도 마음에 들지 않아서 빨리 끝내려고 항복을 받았다. 그랬을 뿐인데 항복 패널티로 자산이 넘어온다는 말이 나오자 형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항복 패널티라.
패전 패널티가 아니라 항복 패널티다. 이것은 그냥 시간이 다 되어 패배했을 때 주어지는 패널티가 아니라 지금처럼 항복을 했을 때 주어지는 패널티라는 뜻.
이런 식으로 패전 방식에 따른 사후 처리의 구분이 생긴 건 여러 가지 이유가 복합적으로 작용한 결과이다.
길드 하우스가 생기고 나서 거점전이라는 컨텐츠가 생겼을 때, 사실 대부분의 유저들에게 있어 이런 상황은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싸움이 벌어지고 있는 길드성은 물론이고, 대부분의 길드 하우스들은 상당한 거금을 들여야 구입할 수 있는데, 그것이 한 번 싸움에 몽창 털릴 수도 있는 상황이 되어 버렸으니 어찌 당황스럽지 않겠는가. 차라리 육식 길드라면 상관이 없는데, 생활러가 많은 초식 길드들의 경우에는 이건 정말 날벼락이나 다름없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이런 점이 파악되자 곧바로 육식 길드들이 약탈에 나섰다. 물론 하나의 길드가 소유할 수 있는 길드 하우스의 숫자는 하나. 이런 상황에서 길드 하우스 점령에 성공할 경우 기존에 가지고 있던 길드 하우스를 포기할지, 아니면 그냥 새로 얻은 길드 하우스를 포기하고 길드 자산의 반을 가져갈지를 선택하게 된다. 즉, 합법적으로 다른 길드를 약탈할 수 있는 장치가 마련되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육식 길드에 대한 약탈이 시작되자 이것을 견디기 힘들었던 초식 길드들은 머리를 굴리다가 대책을 생각해 냈다. 바로 초식 길드끼리 거점전을 벌인 다음 무승부로 몰아가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승패가 없으니 길드 하우스와 자산은 그대로 유지되면서 일주일 간 안전하게 지낼 수 있다. 이 얼마나 좋은 방법인가.
하지만 이런 꼼수가 밝혀지자 곧바로 패치가 이루어졌다. 거점전 진행 시간 도중 난입이 가능해진 것이다. 초식 길드끼리 선전 포고만 해놓고 시간 보내기를 하는 동안 육식 길드가 난입해서 둘 다 쓸어버리는 일이 가능해지자 사태는 다시 악화일로로 치달았다.
이렇게 되자 또다시 초식 길드들은 대책을 마련했다. 난입이 들어오기 전에 재빨리 항복을 해버리는 것이 바로 그 방법이었다. 거점전이 시작되었다는 것을 육식 길드들이 확인하기도 전에 전투를 종결지어버리는 방법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이번에도 운영자들은 새로운 패치를 내놓았다. 항복을 하게 되면 약탈당한 것과 동일한 효과가 주어지도록 만든 것이다. 방금 전에 나온 항복 패널티는 바로 이런 과정을 거쳐서 만들어진 장치인 셈이다.
이런 일련의 패치들을 보면 운영진이 육식 길드를 편애하고 있음이 여실히 드러난다. 이유는 간단하다. 초식 유저들에 비해 육식 유저들의 현질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기 때문이다. 쟁이 격화될수록 스펙 업을 위한 유저들의 노력은 심화될 수밖에 없고, 그것이 일반적인 영역의 파밍으로 불가능한 일이라면 결국은 현질로 이어질 수밖에 없으니 당연한 귀결이다.
길드 하우스는 처음부터 공성의 전단계로 디자인되었기 때문에, 초식 길드들이 이곳을 점유하고 평화로운 길드 생활을 영위하게 되는 건 개발 취지와 어긋나는 일이었다. 아무리 봐도 불합리한 이런 일련의 조치들은 바로 이런 배경을 안고 있었던 것이다.
사실상 불사신 길드나 저쪽에서 구경중인 바이러스, 별바람 같은 경쟁 길드들이 급속하게 성장한 배경 역시 이런 공공연한 약탈이 자리 잡고 있었다. 격렬한 전투를 통해 유저들의 경험이 늘어나는 것과 맞물려 약탈을 통해 벌어들인 재화로 그만큼 더 빠른 스펙업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제 불사신 길드는 자신들의 성장기반이었던 자산의 반을 형진의 길드에 털리게 되었다. 패배하는 일은 있었어도 항복하는 일은 없었고, 그래서 항복 패널티나 약탈 같은 것은 당해본 적도 없었던 그들이기에 이것은 더한 충격으로 다가올 수밖에 없었다.
“에게. 이게 뭐야.”
하지만 막상 길드 자산으로 넘어온 내용 상세를 본 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실질적으로 바로 사용할 수 있는 현금 자산은 그야말로 금화 몇천 개 정도가 고작이고, 용도가 뭔지 알 수 없는 각종 지분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하기야 금화 몇천 개를 고작이라고 말하는 것도 어폐가 있는 일이긴 하지만, 어쨌든.
길드 자산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길드 창고에 들어가 있는 현금 자산이 그 첫 번째이고, 길드가 현금 자산을 각지의 생산 시설에 투자하면서 생긴 지분이 바로 그것이다.
하지만 현금 자산의 경우는 대부분의 길드가 길드 창고에 직접 보관하는 대신 임진철이 그랬던 것처럼 길드 마스터나 신뢰할 수 있는 몇몇에 의해 분산 예치되어 관리되는 것이 보통이었다. 자칫 약탈이나 항복 패널티 같은 일이 생기면 남 좋은 일만 될 수 있으니 이런 식의 편법을 쓰는 것이다.
물론 불사신 길드처럼 패배는 겪었어도 항복은 겪어 본 적이 없는 길드라면 이런 것에 구애받지 않고 그냥 길드 창고에 현금을 예치하는 경우도 있었지만, 역시나 미래의 일은 어찌될지 알 수 없는 일이기에 대부분의 경우 신뢰할 수 있는 이들이 분산 관리하는 것이 보통이다. 물론 이 경우 나쁜 마음을 먹은 유저들이 자산을 들고튀는 경우가 종종 생기지만, 최소한 약탈을 당해서 전부 빼앗기는 것보다는 나은 일 아니겠는가.
이런 식으로 분산 예치하는 것이 불안하다면 현금 자산을 각지의 생산 시설에 투자하는 방법이 사용된다. 현금 자체를 들고 있기 보다는 그것을 투자하여 지분으로 소유하는 방식이다.
이것은 단순히 현금을 예치하는 것을 넘어 투자라는 방식으로 이차적인 수익을 낼 수 있고, 누군가에 의해 횡령 같은 일이 벌어질 가능성이 거의 없다는 장점이 있지만, 역시나 약탈이나 항복 패널티에 의해 소유권이 한순간에 넘어갈 가능성이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투자는 초식 길드에서 더 활성화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실제로는 육식 길드들에서 대부분 이루어지는 이유도 그래서이다. 실제로 불사신과 바이러스, 그리고 별바람이라는 세 길드는 자산의 반 이상을 이런 식으로 투자에 사용하고 있으며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수익을 올리고 있었다.
그야말로 부익부 빈익빈이라고나 할까.
많은 수의 초식 유저들이 이런 운영 정책에 항의하고 있지만, 엘리시온은 그런 유저들의 의견에 귀를 기울이지 않은 채 현재의 정책을 밀어붙이고 있다. 기본적으로 엘리시온은 처음부터 약육강식을 전제로 구현되고 운영되는 게임인 것이다.
따지고 보면 형진이 이전에 그렇게 어이없이 계정 삭제를 당했던 것도 이런 운영 정책 때문인 셈이다. 운영진들로서는 캐시 한 푼 쓰지 않는 초식 유저보다 열심히 캐시를 써주는 호구스런 육식 유저를 더 편애할 수밖에 없었다. 유저들이 피 튀기게 경쟁하면 할수록 허세와 망상은 더 많은 공헌도를 벌어들일 수 있다. 엘리시온은 처음부터 그렇게 만들어진 게임이었던 것이다.
“흠…”
이런 구체적인 내용까지는 아직 모르고 있었지만, 어쨌든 전투가 종료되었기에 형진은 물론이고 길드 하우스 밖으로 나왔던 식구들 역시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불사신 길드는 어깨가 축 늘어진 모습으로 돌아갔고,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바이러스와 별바람은 자기들끼리 모여 긴급회의에 들어갔다. 아마도 그리 멀지 않은 시일 내에 전투를 관망하고 있던 두 길드가 동맹을 맺고 약화된 불사신 길드를 들이칠 가능성이 매우 높아 보인다. 이것은 이전에 암살단 길드가 박살났던 것과 같은 수순인 셈이지만, 막상 그 단초를 제공한 형진에게는 아직 관심 밖의 일이었다.
“으앗!”
“꺅!”
거점전이 종료 되었다는 메시지가 나오자 크루그의 지도하에 열심히 이동스킬을 연습 중이던 쌍둥이들은 다시 다리가 엉키며 넘어져 버리고 말았다.
“후…”
크루그는 다시 한숨이 나왔다. 이래서야 어디다 얘들을 써먹을 수 있을까 싶은 생각이 절로 들 정도다. 차라리 라이언하트를 가르쳐 줄까 싶은 생각마저 들 정도니 말 다한 것 아닌가.
“정신 안 차립니까.”
“죄송… 합니다.”
“정신 차릴게요.”
이미 쌍둥이들의 머리 속에는 눈앞의 미소년이 자신보다 연하라는 생각 따위는 사라진지 오래다. 물론 모습이야 얼른 달려가 꼭 껴안아 주고 싶을 정도로 귀엽게 느껴지지만 그것을 실행할 엄두조차 내지 못할 정도로 쌍둥이들은 크루그의 엄격함에 압도당하고 있었다.
“여어. 열심히 하고 있군요.”
거점전을 마무리 짓고 돌아온 형진은 곧바로 스킬 연습 중인 쌍둥이에게로 다가왔다.
“수고하셨습니다.”
“고생하셨어요.”
쌍둥이들은 형진과 여신의 모습을 보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공손하게 인사를 건넸다.
“힘들지 않아요? 아픈 곳은 없어요?”
그녀들의 목소리를 들은 여신이 미엘의 꼬리 속에서 고개를 쏙 내밀며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그렇게 묻는다. 그 귀여운 모습을 보고나니 쌍둥이들은 방금 전까지 구박 당했던 일조차 다 잊어버릴 것 같은 기분이 되어 버린다.
“아뇨. 전혀 힘들지 않았어요.”
“열심히 가르쳐 주셨거든요.”
“아하.”
쌍둥이들은 그렇게 좋은 말로 대답했지만, 형진은 그것조차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는 듯이 불퉁거리고 있는 크루그의 모습을 보고는 대충 어떻게 돌아가는 상황인지 바로 알아차렸다. 하기야 라이언하트를 수련하는 입장에서는 어지간히 특출난 사람이 아니고서야 좀처럼 마음에 들기가 쉽지 않다.
형진은 그들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뒤따라 길드 하우스 안으로 들어오는 사람들 가운데 할을 향해 말했다.
“할.”
“네.”
“오늘 정말 수고했다.”
“하하, 별 말씀을요.”
모처럼 스트레스를 확 풀어 버린 덕분인지 할의 표정은 아주 밝았다. 모르긴 해도 이쪽의 일이 무척이나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래서 하는 말인데, 용돈 좀 줄테니 적당히 아무데나 가서 놀다와.”
“네? 그게 무슨…”
마치 호환 마마와 비교되는 무언가를 몰래 보기 위해 조카들을 내쫓는 삼촌 같은 말투에 어리둥절해 하는 할을 향해 형진은 이렇게 한 마디를 덧붙였다.
“강화할 거거든.”
“힉! 노, 놀다 오겠습니다. 그럼 이만!”
기겁을 하며 도망치는 할의 모습에 피식 웃던 형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짓고 있는 쌍둥이들을 향해 다시 말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급한 일이 있으시면 가시기 전에 말씀 주시고요.”
“네.”
“그렇게 할게요.”
형진이 식구들을 데리고 안으로 들어가자 쌍둥이들은 크루그의 엄격한 지도 아래 다시 수련을 이어갔다. 부스터와 도핑, 그리고 크루그라는 엄격한 스승까지 더해진 상태에서 열심히 수련에 전념하기를 얼마나 했을까. 마침내 쌍둥이들은 오늘 배운 이동 스킬을 모두 10레벨까지 습득하는데 성공했다.
“고생했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하죠.”
“수고하셨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인사를 하자 크루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다시 말했다.
“이제 형한테 가 봐요. 아마 두 분을 위한 선물을 준비하고 기다리는 중일 겁니다.”
“네? 선물이라고요?”
“또요?”
지금까지만으로도 엄청나게 받아버렸는데 또 선물이라니. 쌍둥이들은 당황스러운 표정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크루그는 구체적인 설명은 하지 않은 채 그들의 훈련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고 있던 카트린에게 말했다.
“카트린. 이 두 분을 형한테 안내해 주렴.”
“응! 알았어! 맡겨줘, 오빠!”
구경만으로는 조금 지루해 보였던 카트린은 자신에게 임무가 주어지자 두 팔을 걷어붙이고는 얼른 쌍둥이들에게 다가가 그녀들의 손을 잡고는 어디론가 이끌기 시작했다. 크루그는 그런 세 사람을 호위하듯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카트린이 쌍둥이들을 데리고 간 곳은 길드 하우스 안의 응접실이었다.
“마침 그렇지 않아도 부르려던 참인데 잘 오셨습니다. 이쪽에 서보세요.”
“…”
보통은 응접실에 오면 앉으라는 말을 하는 것이 보통이다. 그런데 대뜸 옆에 서라고 하니 쌍둥이들은 이 사람들이 또 무슨 일을 벌이려고 이러나 싶어 불안한 표정이 되어 버린다.
“카트린, 유아를 좀 도와주겠니.”
“네!”
카트린은 토끼들을 몰고 깡총거리며 뛰어가더니 이내 유아와 함께 카트 하나를 몰고 안으로 들어온다. 뭔가 싶어서 바라보던 쌍둥이들은 카트에 담긴 물품들을 보고는 입이 딱 벌어지고 말았다.
아이템이다. 그것도 완전히 풀셋이 갖추어진, 고강템이라는 것을 자랑하는 듯한 휘황한 광채를 뿜어내고 있는 아이템이다.
그런 쌍둥이들을 바라보며 형진은 이렇게 말했다.
“오늘 일을 봐서 아시겠지만, 저희 길드는 앞으로 많은 주목을 받게 될 겁니다. 당연히 길드원인 여러분도 주목을 받을 수밖에 없고, 또한 많은 도전을 받게 될 겁니다. 물론 필요하다면 언제든 저희들이 달려가 도움을 드리겠습니다만, 여러분 역시 스스로 강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이것은 그것을 위한 작은 선물입니다.”
“…”
작은 선물이라니. 이게 어딜 봐서 작은 선물이란 말인가. 상세 정보를 살펴 볼 엄두조차 나지 않는 고강템을 이렇게 늘어놓고 작은 선물이라니.
하지만 형진은 쌍둥이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좋을지 몰라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즐기며 자리에서 일어나더니 유아와 카트린에게 말했다.
“입혀.”
“네.”
“맡겨 주세요!”
유아와 카트린이 힘차게 대답하자 여신이 그의 어깨에서 빠져 나와 기대어린 시선을 던진다. 형진은 그런 그들의 모습에 씩 웃고는 한쪽에 서있던 크루그를 데리고 밖으로 나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