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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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8. 권유
시작하기가 무섭게 한 골을 두들겨 맞은 상대팀은 당황했다. 처음부터 아름과 새름 자매에 대한 정보는 익히 확인을 해 둔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자기 팀 센터로부터 간단히 볼을 따내는 점프력은 물론이고, 파워포워드와 센터의 역할을 동시에 수행하는 빅맨인 주제에 가드급에나 어울릴 법한 기동력을 보여주니 정신이 쏙 빠질 수 밖에 없는 노릇이다.
보통 농구의 가장 이상적이고 기본적인 팀 구성은 포인트 가드, 슈팅 가드, 스몰 포워드, 파워 포워드, 센터의 다섯 명으로 일컬어 진다. 하지만 실제로는 이런 고전적인 팀 구성을 넘어 보유하고 있는 선수들의 기량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한 다양한 구성이 존재한다.
새름과 아름은 누가 봐도 초고교급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의 선수들이고, 이 팀의 감독은 쌍둥이들의 기량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 1포인트 가드, 2스윙맨, 2빅맨의 구성을 들고 나왔다.
본래 쌍둥이들이 선호하는 플레이 스타일은 슈팅 가드와 스몰 포워드의 역할을 섞은 스윙맨에 가깝지만, 이것은 국가 대표팀처럼 다른 장신 선수들이 많은 팀에 속했을 때의 역할이다.
국가대표급 선수들에 비하면 아무래도 신장이 조금 열세이기 때문에 스스로 이런 포지션을 선택한 것이지만, 소속된 고등학교 팀의 선수들 가운데 가장 신장이 큰 것도 사실이라 지금은 파워 포워드와 센터의 역할을 합친 빅맨의 역할을 맡고 있었다. 하지만 포지션이 그렇다 해도 선호하는 플레이 스타일 자체는 변하지 않으니, 사실상 스몰 포워드와 파워 포워드, 그리고 센터의 역할을 모두 수행하는 프론트 코트나 다름없다.
어떻게 보면 만능이고, 또 어떻게 보면 이도 저도 아닌 어중간한 선수라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런 식의 역할 수행 자체가 기본적인 전술 능력이 뒤따르지 않는 이상 불가능한 것도 사실이니, 결국 쌍둥이들이 초고교급 실력의 소유자라는 건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인 셈이다.
“천천히! 천천히!”
느닷없이 한 방을 두들겨 맞은 상대 팀의 선수들은 그렇게 당황했던 마음을 추스르고 슬슬 공을 돌리며 반격을 준비하기 시작했다.
상대 팀의 포인트 가드가 슬슬 공을 몰고 나오다가 3점 라인 근처에 자리를 잡고 있던 슈팅 가드에게 공을 전한다. 슈팅 가드는 공을 잡기가 무섭게 살짝 뛰어 오르며 3점 슛을 시도했지만, 공은 림을 맞고 튀어 나와 버린다.
곧바로 골대 밑으로 파고들던 상대 팀 센터가 리바운드를 위해 달려들었으나, 아름이 버티고 선 틈을 타 새름이 잽싸게 뛰어 올라 공을 가로채 버린다.
아름과 새름의 2빅맨 시스템에 대항하기 위해 상대 팀이 들고 나온 구성은 3가드 1포워드 1센터. 외곽에서 가드 세 명이 슛을 노리고, 아름과 새름보다 10센티 이상 신장이 큰 센터가 중앙을 장악한 상태에서 공격 리바운드로 팀 전체의 슛 능력에 버프를 걸어주는 팀 구성인 셈이다. 아름과 새름의 실력이 아무리 좋아도 자신들보다 10센티 이상 큰 선수를 커버하기 위해서는 그만큼 체력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는 노릇. 잘만 활용하면 충분히 우세를 점할 수 있는 팀 구성이라 할 수 있겠지만, 세상 일이라는 것이 언제나 그렇듯 마음먹은 대로 이루어지지는 않는 법이다.
리바운드를 따낸 새름은 곧바로 대기 중이던 스윙맨에게 공을 돌렸고, 스윙맨은 공을 받기가 무섭게 뛰쳐나가는 포인트 가드에게로 볼을 전달했다. 아차 하는 순간 다시 속공 모드로 전환 되어 버린 것이다.
“돌아와! 돌아와!”
다급한 외침과 함께 상대 선수들이 자신의 코트로 돌아가기 시작한다. 포인트 가드는 날렵한 움직임으로 드리블을 시도하며 상대 선수를 몰고 가다가 슬쩍 뒤따르는 스윙맨에게 볼을 돌렸고, 3점 라인 부근에서 대기하던 스윙맨은 그 공을 받기가 무섭게 노마크 찬스에서 3점 슛을 시도한다.
하지만 이번에도 슛은 실패. 림을 맞고 외곽으로 튕겨 나가던 공은 뒤쪽에서 부웅 뛰어오른 누군가의 손에 빨려 들어갔다. 바로 새름이었다.
새름이 공을 낚아채며 땅으로 내려서자 상대팀 센터가 손을 치켜 든 채 그 앞을 가로 막았다. 하지만 새름은 무리해서 슛을 시도하지 않고 대신 뒤따라오는 아름에게 공을 돌린다. 다시 한 번 노마크 찬스가 만들어진 것이다.
“슛!”
자신도 모르게 형진이 그렇게 외친 순간, 아름은 우아하게 공중으로 뛰어오르며 점프슛을 시도 했다. 상대 팀의 포워드가 급히 그녀를 가로 막으려 했지만, 미처 뛰어 오르기도 전에 공은 이미 아름의 손을 떠나 아름다운 포물선을 그리며 그대로 림 안으로 빨려 들어가 버린다.
“와아아아!”
방금 전까지만 해도 사람들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형진의 팔을 꼭 끌어안고 있던 카트린이었지만, 어느새 그런 것 따위 다 잊어 버렸는지 자리에서 일어나 폴짝폴짝 뛰며 환호성을 지르고 있었다. 어느 틈엔가 스포츠의 매력에 푹 빠져 버린 것이다.
이로써 4대 0.
자신들은 골을 넣지 못했는데, 상대 팀만 연속으로 득점하는 상황이 벌어지자 선수들은 다급해지기 시작했다.
“차분하게! 차분하게!”
상대팀 감독으로 보이는 사람이 그렇게 소리를 지르자 선수들은 다시 한 번 천천히 공을 돌리며 자신들의 페이스대로 경기를 이어가고자 하는 노력을 시작한다.
상식적으로 생각했을 때, 아름과 새름이 중앙으로 들어와 있으니 3가드로 구성된 상대 팀이 수적인 우위를 바탕으로 외곽을 완전히 장악해야겠지만 그게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니었다.
오히려 아름과 새름은 수시로 위치를 바꿔가며 중앙에 자리 잡은 상대 센터를 농락하고 있는 중이었고, 실제로 외모마저 쏙 빼닮은 쌍둥이이다 보니 센터로서는 자신의 앞을 가로 막고 있는 것이 아름인지 새름인지도 구분이 되지 않고 있었다. 때문에 실제로는 상대 팀 센터가 중앙에서 우왕좌왕 하는 사이, 아름과 새름은 스윙맨으로서의 역할마저 충실하게 해내고 있었다.
“대단하긴 한데, 저래서 체력이 감당이 될까 걱정이네.”
“그러게요.”
펄펄 날아다니는 모습이 보기는 좋았지만, 후반을 생각하면 체력 안배를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싶은 걱정이 자연스럽게 들 수밖에 없다.
“후! 후! 후!”
그러자 형진과 요안나의 얘기를 듣고 있던 보호와 균형이 허리에 손을 척 얹은 모습으로 잘난 척 하며 이렇게 말했다.
“그래서 제가 아까 특별히 아름님과 새름님의 힘을 한껏 북돋아 드렸지요. 하하핫!”
“…”
형진은 그 말을 듣는 순간 쓴웃음을 지었다. 지금 쌍둥이들이 펄펄 날고 있는 것이 사실은 그녀들의 본심이 아니라 보호와 균형이 저질러 놓은 버프 효과 때문임을 깨달은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초고교급 선수인 쌍둥이들인데, 여신의 버프 효과까지 곁들였으니 오죽하겠는가. 게다가 팬클럽이 되면서 기본적으로 보호와 균형의 권능마저 사용할 수 있는 그녀들이고 보면 이건 사실상 사기나 다름없는 경기인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모처럼 상대 팀의 슈팅 가드가 3점 슛을 시도하는 순간 어디 튀어 나왔는지 아름이 붕 뛰어 오르며 그 공을 블록 해버린다.
“세상에! 어느 틈에!”
“방금 뛰어 오른 거 봤어?”
“말도 안 돼. 도대체 서전트 점프가 얼마나 되길래!”
아름이 블록한 공을 받아든 스윙맨은 앞서와는 달리 천천히 공을 몰고 앞으로 나오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급하게 자신들의 코트로 돌아가는 상대팀 선수들을 바라보며 공을 돌리기 시작한다.
아름과 새름은 앞서와는 다르게 천천히 상대 코트 안으로 들어가 자리 싸움을 하기 시작했다. 누가 봐도 그것은 골밑을 노리겠다는 행동으로 보여졌으며, 이미 두 번이나 쌍둥이에게 농락당한 상대 선수들의 시선은 일시적으로 그녀들에게 쏠렸다.
하지만 그렇게 빈틈이 생기자 천천히 공을 돌리며 상황을 살피던 스윙맨 가운데 하나가 3점 슛을 시도했다.
하지만 이번에도 공은 림을 맞고 멀리 튕겨져 나갔고, 어느 틈엔가 쏜살 같이 달려온 아름이 그 공을 낚아 채 버렸다.
“어딜!”
연거푸 리바운드를 빼앗겨서 자존심이 잔뜩 상한 센터가 그녀가 슛하려는 동작을 가로 막았다.
그러나 또다시 믿기지 않는 일이 벌어졌다.
“헉”
아름의 슛동작을 방해하며 뛰어오른 상대팀 센터가 어이없이 튕겨 나가 버린 것이다. 곧바로 심판의 휘슬이 울리며 수비자 파울이 선언되었으나, 사람들은 아름에게 튕겨 나가 버린 센터의 황망해 하는 표정에 더 시선을 집중하고 있었다.
그럴 만도 하다. 신장이 10센티 이상 차이가 나면 체급 자체가 이미 다르다. 그런데 이렇게 어이없이 튕겨 나가 버렸으니 센터로서는 황당할 수밖에 없다.
“미쳤어…”
“저런 몸 놀림에 맷집까지 있으면 어쩌라는 거야…”
“인간 맞아?”
지켜보던 사람들이 그렇게 놀라는 사이, 보호와 균형은 기분 좋다는 듯이 허리에 손을 얹고 핫핫핫 하며 웃음을 터뜨리고 있었다.
형진은 그런 여신의 모습을 보며 한숨을 푸욱 내쉬었다.
“어쩐지… 상대 팀 선수들에게 미안해지는 걸.”
“그러게요.”
아름이 연거푸 프리드로우 두 개를 성공시키자, 점수 차는 다시 6대 0으로 벌어졌다. 이쯤 되면 거의 농락 수준이라고 봐도 될 정도였고, 결국 상대 팀은 내부로부터 붕괴하며 1쿼터 31대 5라는 말도 안 되는 점수 차이로 끝을 맺었다. 야구로 치면 거의 콜드 게임 수준이라고 봐도 좋을 지경이다.
점수차도 점수차지만, 1쿼터에 30점 이상의 득점을 올린 것도 고교 여자 농구는 커녕 프로 여자 농구에서조차 보기 드문 일이다.
형진은 1쿼터가 끝나자 여신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보호와 균형님.”
“네?”
“아름양과 새름양에게 걸어준 힘, 되돌리세요.”
갑작스런 형진의 말에 보호와 균형은 당황했다.
“네? 하지만…”
그런 여신에게 형진은 차분한 목소리로 다독이듯 말을 건넸다.
“이런 식으로 어느 한쪽에 신의 힘이 과하게 실리는 건 오히려 저 두분에게 독이 됩니다. 진정한 자신의 능력이 아니니까요.”
“아…”
“게다가 당하는 쪽의 기분도 생각하셔야지요.”
형진이 진지하게 말하자 보호와 균형은 의기소침해진 모습으로 그에게 사과했다.
“죄, 죄송합니다… 그러려던 생각은…”
방금 전의 잘난 척 하던 모습을 생각하면 한번쯤 고집을 부려볼 만도 하다 싶지만, 형진이 진지하게 말하자 덜컥 겁이 난 모양이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여전히 의존증 기질은 저버리지 못하고 있는 여신이었고, 그런 그녀에게 형진의 질책은 무엇보다도 두려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형진은 겁먹은 여신의 모습에 차분하게 미소를 지어 보였다.
“괜찮습니다. 정말로 미안하시다면 상대 선수들에게 살짝 힘을 베풀어 주시는 것도 좋겠죠.”
“네. 그럴 게요.”
보호와 균형은 두말없이 형진의 말대로 아름과 새름의 힘을 북돋아 주었던 것을 취소하고, 대신 상대팀 선수들에게 같은 효과를 부여했다.
1쿼터의 졸전으로 의기소침했던 상대팀 선수들이지만, 그렇게 자신들도 모르는 사이에 여신의 힘을 전해 받자 2쿼터에서는 방금 전의 그 선수들이 맞나 싶을 정도의 팽팽한 접전을 보여 주었다. 하지만 그렇게 기껏 힘을 북돋아 주었어도 기본적인 기량 차이가 나는 데다 1쿼터에서 벌어진 점수차를 극복하기 어려웠던 탓에 결국 경기는 아름과 새름이 속한 팀의 승리로 결정되었다.
“수고하셨습니다. 정말 좋은 경기였습니다.”
“감사합니다!”
경기를 마치고 땀에 흠뻑 젖은 모습으로 아름과 새름이 찾아오자 보호와 균형은 미안함을 가득 담은 표정으로 머뭇거리며 사과했다.
“죄송해요. 제가 뭣도 모르고 주제넘게 나서서…”
힘들게 받아들인 추종자들이 이런 자신에게 질려서 떠나 버리면 어쩌나 싶었던지 여신의 목소리는 살짝 떨리기까지 했다.
“네? 무슨…”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던 아름과 새름은 조금 놀란 표정을 지었지만 이내 자초지종을 전해듣고는 고개를 끄덕이며 사과를 받아들였다.
“중간에 상대팀이 갑자기 강해진 것 같아서 좀 놀랐는데, 그런 일이 있었군요.”
“괜찮아요. 덕분에 아주 재미있는 경기를 했으니까.”
“정말… 죄송합니다.”
거듭 그렇게 사과를 하는 여신을 오히려 쌍둥이들이 달래는 모습을 흐뭇하게 지켜보던 형진은 요안나를 바라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마침내 형진의 허락이 떨어지자, 요안나는 그들에게 다가서며 한 마디 말을 건넸다.
“두 분, 미국에서 농구를 해 보실 생각은 없으신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