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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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 격전?
지구와 타나토스의 차이점 가운데 하나는, 개인이라도 상당히 강력한 기록 매체를 보유하고 있는 경우가 아주 많다는 점이다.
이번에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사람들도 그건 예외가 아니었다. 아니, 오히려 더 심했다. 보통 사람들도 아니고, 특종에 죽고 사는 기자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하는 말이 아니라, 개중에는 정말 목숨 걸고 이번 일을 촬영한 자들이 적지 않았다.
몇몇 기자들은 사진을 넘어 동영상을 자신들이 속한 언론사로 전송했고, 몇몇은 아예 스트리밍 서비스에 업로드해 버렸다. 그렇지 않아도 전대미문의 대규모 살인 사건으로 인해 초미의 관심이 집중되어 있던 상황에서, 다시금 살인 사건이 일어나고 그 용의자로 보이는 사람이 처참한 최후를 맞이하는 장면이 실시간으로 인터넷 상에 뿌려지자 사람들은 그것을 믿어야할지 말아야할지 몰라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다.
거짓이라고 하기엔 너무나 생생하고, 사실이라 하기엔 너무나 허무맹랑했기 때문에. 차라리 한두 명 정도만 그런 영상이나 소식을 전해 왔으면 그런가보다 하겠는데, 그것도 아니다. 이내 모든 방송사들은 그들이 획득한 동영상을 기반으로 속보를 내보내기 시작했으며, 그 뉴스가 미국을 넘어 전세계로 퍼져 나가는 건 그야말로 순식간의 일이었다.
그리고 여기, 누구보다도 이 사건과 밀접한 관계를 지니고 있으면서, 또한 누구보다도 당혹스러움을 감추지 못하고 있는 존재가 또 하나 있었다.
“도대체 이건…”
인터넷 상에서는 용의자가 두들겨 맞은 벼락에 대해 스태틱 에이리어니, 사이어닉 템페스트니 하는 드립들이 난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용어들은 고작해야 자신들이 즐기던 게임에서 가져온 말에 불과할 뿐이고, 계속해서 떨어져 내린 벼락의 실체나 원리에 대해 명확한 의견을 제시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나 다른 누구도 아닌 허세와 망상은 그 실체를 아주 명확하게 인지하고 있었다. 모를 수가 없다. 엄연히 자신도 쓸 수 있는, 신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는 그런 능력이니까.
그것의 이름은 천벌. 흔히 자신의 추종자가 저지른 잘못을 징치하기 위한 수단 가운데 가장 대표적으로 손꼽히는 것이다.
“천벌이라니… 설마 놈이 직접 나선 건가.”
오래 전에 타나토스를 떠나온 허세와 망상에게 있어 천벌은 신이 아니면 사용할 수 없는 수단 가운데 하나로 인식되고 있었다. 애초에 대리자라는 개념이 형진으로부터 시작되어 희망과 생명이 승인한, 문자 그대로 사상최초 전대미문의 지위였기 때문이다.
대리자라는 것이 존재하고, 지금까지 그 대리자라는 직위를 소유한 인간이 오직 형진이라는 것을 알았다면 차라리 이 정도로 놀라지는 않았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수많은 사람들 앞에서 대놓고 천벌을 뿌려버리는 모습을 직접 보고 나니, 제아무리 허세와 망상이라도 솔직히 움찔할 수밖에 없는 일이다.
허세와 망상을 놀라게 만든 것은 그것만이 아니었다.
“게다가 그 마지막 모습… 아무리 봐도 파편의 힘인 것 같은데.”
다른 이들은 갑작스럽게 터져 나온 빛의 정체를 전혀 이해하지 못했지만, 허세와 망상은 그것을 보는 순간 파편들이 서로 합쳐지는 현상이라는 것도 파악했다. 이러니 저러니 해도 신은 신이니 그 정도는 바로 알아보는 것이 당연하다.
“설마… 놈도 이미 이곳에 퍼져 있는 파편의 존재를 알고 있었던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건 상당히 심각한 일이다. 공포와 죽음이 이미 파편의 존재를 알고 그것을 찾아내 추종자로 삼았다면, 이렇게 느긋하게 있을 틈이 없다. 그냥도 가장 강력한 추종자들을 거느리고 있는 판에, 거기에 파편까지 가세해 버리면 토너먼트든 뭐든 놈을 이길 가능성은 전무해지기 때문이다.
물론 그건 이미 늦어도 한참이나 늦은 일이다. 애초에 공포와 죽음은 파편의 존재를 아는 것을 넘어, 그 중 가장 강력한 파편을 이미 자신의 품에 끌어 안은 상태이기 때문이다. 이런 걸 뒷북이라고 하는 것이겠지만, 허세와 망상은 자신이 그렇게 오케스트라 사운드에 버금가는 뒷북을 열심히 두드리고 있다는 사실조차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젠장.”
하지만 뒷북이든 아니든, 공포와 죽음에게 파편의 소유자를 단숨에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있다는 것을 확인한 것만으로도 허세와 망상에게는 충분히 큰 이득이라 할 수 있었다. 만약 그것을 알지 못했다면, 이후 야심차게 준비했을 토너먼트에서 갑자기 뒤통수를 두들겨 맞았을 테니까. 최소한 그런 상황을 모면한 것만으로도 허세와 망상으로서는 파편 하나 값은 충분히 한 셈이다.
허세와 망상은 마침내 몸을 일으켰다. 솔직히 지금까지는 마음이 급하긴 했어도 이 세계 각지에 흩어져 있는 파편들을 일일이 찾아다니는 수고를 할 생각은 없었지만 이제는 상황이 달라졌다. 먼저 움직여서 선점하지 않으면, 또다시 공포와 죽음이 선수를 치고 말 것이라는 생각에 마음이 조급해지기 시작한 것이다.
“아사드.”
“네.”
허세와 망상은 바로 어딘가로 향하려다, 자신의 뒤쪽에 조용히 서있는 소년을 바라보며 주의를 주었다.
“저렇게 되기 싫으면 쓸데없는 짓은 할 생각 말아라. 그리고, 이곳에서 머물며 지금까지처럼 전투 능력을 강화시켜야 한다. 무슨 말인지 알겠나.”
“알겠습니다.”
허세와 망상은 그 말을 끝으로 다시 아사드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하지만 이 아랍계의 소년은 사라진 허세와 망상이 아닌 텔레비전에서 끊임없이 모습을 비춰주고 있는 검은 날개의 천사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
“아름다워…”
그렇다. 아사드는 지금 이 순간 태어나 처음으로 무언가에 매혹되어 있었다. 두려움이 아니다. 매혹이다. 지금껏 느껴본 적이 없는 그런 강렬한.
검은 날개의 천사라니. 설마 지브릴이 강림한 것은 아닐까.
수태고지의 주역이며, 이슬람에서는 예언자에게 계시를 알려 가장 중요한 천사로 인식되는 존재. 물론 아사드는 지금까지 종교 따윈 어찌되어도 상관없다는 식의 인식을 가지고 있었지만 이런 걸 보고나면 아무래도 혼란스러워질 수밖에 없는 일이다.
“이길 수… 없겠지.”
오늘 처참한 최후를 맞이한 저 누군가가 자신과 같은 존재라는 건 이미 눈치 채고 있었고, 상대의 힘이 자신보다 월등했었다는 것 역시 알고 있었다. 그런데 그런 자가 저렇게 아무런 힘도 쓰지 못한 채 간단하게 제거되는 모습을 보고 나니, 아사드는 검은 날개의 천사에게 두려움보다 차라리 경외심을 느끼고 있는 중이다.
거기에 더해, 지금껏 지켜봤던 허세와 망상의 모습이 더해지니 아사드의 마음 속에서는 점차 갈등이 생겨나고 있었다.
“해치!”
하지만 막상 그렇게 지구에 사는 모든 이들에게 커다란 충격을 안겨준 이는 이미 그곳을 벗어나 왕성 라이언하트로 돌아와 있었다.
“빠아, 감기 걸려써여?”
“아니. 그런 건 아니고. 갑자기 코가 간지러워서.”
아침 댓바람부터 전투 준비를 하고 어딘가에 갈 준비를 하길래 뭔가 큰일이라도 난줄 알고 가슴을 졸이고 있던 마눌들은, 얼마 지나지도 않아서 멀쩡한 모습으로 돌아오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사실 위험한 상대인 것 맞았지만, 그런 위험함 따위 가볍게 씹어 먹을 정도로 형진은 강했다.
하지만 아무렇지도 않은 모습으로 돌아와 아기들과 낚시 갈 준비를 하고 있는 아바타와는 달리, 펜트하우스의 방 하나를 차지한 채 뒹굴거리고 있는 아바타는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이거… 못 지우겠지?”
“아마도요.”
아무리 요안나의 영향력이 커도 이 정도로 전 세계에 퍼져 버린 영상을 지운다거나 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이미 수습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라고 해야 하나. 적당히 전문가들이라는 사람들에게 압력을 넣어서 눈속임 같은 것으로 치부하도록 만드는 거라면 또 몰라도. 물론 그 전문가라는 용어부터가 참 적당적당한 느낌이긴 하지만.
“영화 같은 걸 보면 정보 통제 같은 것도 잘 하더만.”
“영화니까요.”
“끙..”
형진이 앓는 소리를 내자 요안나는 빙긋 웃으며 그의 얼굴을 쓰다듬었다.
“사람들이 보기 전이라면 몰라도, 이미 봐버린 시점에서는 방법이 없어요. 게다가 이번엔 목격자마저 많은지라.”
“쳇. 그 놈은 하필이면 상황을 그렇게 만들어서.”
“노력은 해보겠지만, 아마 쉽게 가라앉지는 않을 거에요.”
그래봐야 얼굴이나 목소리 같은, 형진을 특정할 수 있는 그 어떤 특징도 드러나지 않았으니 딱히 앞으로의 일에 지장을 초래하거나 하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런 식의 비현실적인 무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사람들에게 공개되었다는 자체가 뭔가 탐탁지 않은 느낌이다.
“어쩔 수 없나.”
이미 지나가 버린 일을 되돌릴 수는 없는 일. 어쨌든 임무를 달성 했으니 이제는 보상을 받을 차례다.
[축하합니다!] -‘수배자 처형’ 퀘스트를 무사히 완수하였습니다.-퀘스트 보상으로 ‘바이겔 기념 금화’ 10개가 분배되었습니다.
-퀘스트 보상으로 ‘팩션 공헌도’가 100000이 분배되었습니다.
-축하합니다! 특별 임무에 대한 포상으로 팩션 공헌도 50000이 추가됩니다!
-축하합니다! 공포와 죽음께서 당신의 업적을 인정하였습니다.
-축하합니다! 업적 보너스로 한 달간 의뢰 달성시 팩션 공헌도를 두 배로 습득 가능합니다.
-축하합니다! ‘변태 같은 놈’ 칭호가 부여되었습니다.
-‘변태 같은 놈’ 칭호 효과: 아바타 성장률 +10퍼센트.
“…”
아니 뭐… 보상이야 그렇다 치고. 다 좋은데 칭호가 이게 뭔지.
[불만이라도?] “그게… 물론 칭호야 공포와 죽음께서 마음대로 붙이시는 거지만, 그래도 이건 좀 그렇지 않나요?”[아, 미안. 내가 너무 심했지.] “뭐… 이해해 주시니 다행입니다. 이래봬도 한 집안의 가장이니 좀 참작을 해주십시오.”
[그래. 내가 미안하다. 너 같은 진성 변태에게 변태 ‘같은’ 놈이라니. 역시 내가 너무 심했던 것 같아.] “…” [축하합니다!] -‘변태 같은 놈’ 칭호가 ‘변태왕’으로 변경되었습니다.
-칭호 효과는 동일합니다.
“…”
설마 임무를 내렸을 때 요안나와 꽁냥거리며 밍기적거린 것 때문에 그러나. 은근 뒤끝 있네. 쫀쫀하게스리.
[뭐라고?] “네? 아뇨.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가 뭐라고 그랬나요?”[쳇.] “하하하…”
이름은 좀 그렇지만 효과는 나쁘지 않다. 게다가 이번에 파편을 하나 더 흡수하면서 운용할 수 있는 아바타의 숫자는 모두 넷으로 늘었고, 이 정도면 다른 집행자들을 제외하고 혼자서 본신과 아바타들을 이끌고 5대 5 토너먼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물론 그걸 다른 신들이 인정해줄 지는 미지수지만 어쨌든.
“주식 시장 쪽은 어때?”
형진의 물음에 요안나는 노트북 화면을 보여주며 말했다.
“우호지분은 충분히 확보했어요. 하지만 경영권을 가져 오려면 임시주총을 소집해야 하니 좀 더 시간이 걸려요.”
우호지분이라고 말은 하지만, 소유한 재산 거의 대부분이 다른 사람의 명의를 빌린 형태인지라 사실상 전부 요안나 개인이 소유한 것이나 다름없다.
“여기저기서 눈독을 들이고 있어서 쉽지 않았을 텐데?”
“매물이 있다면 사는 건 문제가 아니니까요.”
“하하…”
하기야 이번에 엘리시온의 제작사를 흔들어 놓은 이유 자체가 견고하기 이를 데 없는 회사 측의 우호지분을 흔들어 놓는 것에 있었다. 일단 흔들어서 주춧돌 몇 개만 빼놓으면, 그 다음은 요안나에겐 큰 의미가 없는 일이다.
애초에 해당 회사의 우호지분이라면 이번 일이 벌어지기 전부터 이미 꾸준하게 모아놓던 중이고.
“수고했어.”
“별말씀을요.”
형진이 가만히 끌어안으며 이마에 입을 맞추자, 요안나는 못 이긴 척 품에 안겼다. 그러자 어디에선가 또다시 목소리가 들려온다.
[질리지도 않는 거냐.]형진은 씩 웃으며 허공에 대고 답했다.
“변태왕이라서 그런 거 모릅니다.”
[쳇. 말이나 못하면.]
“신마저도 인정한 변태왕인데, 이름 값은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멋대로 해라.]
“멋대로 하라는 분부, 확실하게 접수했습니다.”
“킥.”
허공에 대고 뭐라뭐라 떠드는 형진의 모습에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던 요안나는 다시 웃음을 터뜨렸고, 형진은 감히 주인의 말을 비웃는 무엄한 메이드에게 벌을 주기 시작했다.
“어흥! 잡아먹을 테다.”
“꺄아…”
물론 그런 꼴을 지켜봐야만 하는 누군가는 한숨을 푸욱 내쉬며 이렇게 중얼거릴 뿐이다.
[잘 논다.]============================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나머지는 새벽에 이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