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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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이벤트
형진은 가공 특화 가운데 세공을 익혔다. 세공은 이미 만들어진 제품에 대한 2차 가공 기술이며, 이것은 수리와 내구도 복구에 가산점을 주는 기술이기도 하다. 원래 형진은 강화 실패후 그 여파로 최대 내구도가 깎인 아이템의 복구를 위해 이 기술을 익혔지만, 이것은 또한 수리에도 놀라운 효과를 발휘한다. 더구나 장인 등급이 되면서 추가적인 보너스가 붙기 때문에, 일반적인 마을의 NPC보다 훨씬 효율과 성능 면에서 압도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개인 상점 옆에 수리 도구들을 늘어놓고 진열하고 있자니, 다음 방으로 가는 입구를 가로막고 있는 비석을 유저들이 파괴하는데 성공했고, 그와 동시에 땅속에서 하체가 뱀으로 이루어져 있는 중간 보스 하나가 모습을 드러냈다.
[크후흐흐… 크후흐흐흐흐흐…]이름이 없는 건지 입의 구조가 말을 할 수 없는 형태인 건지. 세 번째 중간 보스는 보랏빛 숨결을 내뿜으며 그런 기괴한 웃음을 내뱉고는 다시 땅 속으로 들어가 버렸다.
“응?”
“뭐지?”
등장하기가 무섭게 다시 땅속으로 들어가 버리는 보스의 모습에 황당해 하고 있던 유저들은 갑자기 지면을 뚫고 솟아오르는 날카로운 가시들의 공격을 받았다. 마치 과거 한 시대를 풍미했던 어떤 게임에 나오는 유닛의 그것을 본뜬 것 같은 공격에, 미처 대비 못한 유저 몇이 치명적인 일격을 당하고는 또다시 죽음을 맞이했다.
“젠장! 끌어낼 방법은 없는 건가?”
“이래서는 공격을 할 수가 없잖아!”
땅 속에 있는 상태에서는 공격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유저들은 이리저리 우왕좌왕하며 솟구치는 가시들을 피하는 것 외엔 딱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었다. 그렇게 몇 번 정도 가시 공격을 하던 보스는 다시 지면으로 올라오더니 예의 이상한 웃음을 흘리기 시작했다.
사람 놀리는 것도 아니고.
이리 저리 쫓기기만 하던 유저들은 그제서야 우르르 몰려가 때리자 보스는 마치 이불을 뒤집어 쓴 것 같은 모습으로 가만히 웅크리기만 할 뿐 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다.
“이거… 뭔가 불안한데.”
“그러게.”
미친 듯이 땅속을 쏘다니며 공격을 하던 녀석이 그런 식으로 가만히 웅크린 채 때리는 걸 다 맞고 있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 뭔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낄 수 밖에 없는 일.
아니나 다를까.
문득 보스의 몸이 초록색으로 빛나기 시작하더니 보스 방의 반 가까이를 기이한 형태의 문양이 뒤덮기 시작한다.
“미친! 장판이다!”
“피해!”
사람들은 웅크리고 있던 보스가 광역기를 쓰려는 것임을 알고 서둘러 범위에서 벗어나려고 했지만, 워낙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데다 미처 상황을 파악 못한 사람들이 멈칫거리는 바람에 반수 가까이가 장판의 범위 안에 그대로 머문 상태로 보스의 광역 스킬을 맞이하고 말았다.
콰아아아아!
얼핏 보면 그것은 이전의 보스들이 죽을 때 룻을 쏟아내는 장면과 닮았다. 하지만 지금 쏟아지고 있는 것은 룻이 아닌 기이한 초록빛으로 빛나는 맹독이었다.
“으아아아악!”
“젠장! 부식독이냐!”
그랬다. 보스가 뿜어낸 독은 그냥 단순한 맹독이 아니라 장비를 부식시키는 강산성의 부식독이었고, 그것을 맞는 순간 유저들은 장비와 함께 체력이 쭉쭉 빠지는 체험을 해야만 했다.
후방에서 지원 중이었던 힐러들이 급히 해독과 힐을 병행해서 난사했지만, 그 과정이 다 끝나기도 전에 보스는 다시금 땅속으로 파고들며 앞서의 가시 공격을 시작했다.
온전한 상태에서도 뼈속까지 아프다는 말이 나올 정도의 파괴력을 지닌 공격인데, 방어구 내구도 하락으로 인해 방어력이 깎인 상태라면 볼 것도 없는 얘기다. 또다시 유저들은 줄줄이 사망 전대 노릇을 할 수밖에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부활한 유저들은 본능적으로 자신의 장비를 살펴보고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떠올렸다.
그럴 수밖에 없다. 뻔히 부식독에 맞은 걸 아는데도 그들이 걸친 코스튬은 아무 이상 없이 말짱한 모습을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혹시 이벤트라서 부활시에 장비 내구도가 알아서 수리되는 건가 싶었지만, 혹시나 하고 장비창을 확인해 본 순간, 유저들은 입이 떡 벌어지고 말았다. 어느 틈엔가 파괴 직전까지 내구도가 깎여 있었기 때문이다.
“장비 파괴가 되지 않는다는 얘기는 이런 뜻이었나.”
“미친… 이래서야 맨몸이나 마찬가지잖아.”
그나마 다행이라면 바닥을 찍은 장비 내구도에도 불구하고 수영복에는 별 이상이 없다는 점. 만약 다른 코스튬들처럼 장비 내구도에 따라 헐벗은 모습으로 바뀌었다면, 그들중 대부분이 전라나 다름 없는 상황에 처했을 것이다.
이상한 일이다. 분명 처음에만 해도 다른 코스튬과 마찬가지로 장비 내구도의 변화에 따라 파손 정도가 드러났었는데, 지금은 또 그런 현상이 싹 사라져 버렸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
간단하다. 이것은 바로 형진이 손을 쓴 결과다. 이벤트 던전 안에서는 수영복이 파손되지 않은 것처럼 보이도록 망상구현의 단장으로 손을 써둔 것이다. 지금과 같은 상황이라면 보나마나 얼마 가지 못해서 전부 헐벗은 모습이 되어 버릴 텐데, 그렇게 되면 막보까지 가기도 전에 대부분의 유저들, 특히 여성 유저들은 모두 던전 공략을 포기하고 도망쳐 버릴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여기에는 또 하나의 다른 함정이 숨어 있었다.
그것은 바로 망상구현의 이와 같은 효과가 정작 형진에게는 통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바꿔 말하자면, 지금 형진은 다른 유저들과는 달리 내구도 하락으로 인해 헐벗은 모습으로 변한 광경을 액면 그대로 빠짐없이 관람하고 있다는 뜻이 된다. 공포와 죽음이 앞서 변태 운운한 것은 이런 그의 흉계를 꿰뚫어 본 탓이다.
“흐흐흐흐…”
눈앞에서 나체쇼를 벌이고 있는 유저들의 모습을 흐뭇한 웃음을 지으며 지켜보고 있던 형진은 입구 쪽에서 사람들이 달려오는 인기척이 느껴지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근엄하고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
사람들은 헐레벌떡 입구로부터 달려오다가 마침내 그의 앞에 이르러 간판을 보았다.
“어?”
“수리도 된다고?”
“어? 정말이네?”
그렇지 않아도 사실상 맨몸이나 다른 없는 상태로 전투를 임해야 하는 상황이 못내 부담스러웠던 유저들에게 있어, 형진의 개인 상점은 그야말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찾은 듯한 기분마저 느끼도록 만들고 있었다.
“저… 수리비가 얼마나 되죠?”
예쁘장한 여성 유저 하나가 형진에게 조심스럽게 말을 걸어온다. 형진은 흐뭇하기 이를 데 없는 눈앞의 광경에 자꾸만 입이 벌어지려는 걸 필사적으로 견뎌내며 가만히 손가락 하나를 들어올렸다.
“금화 한 개요?”
여자가 그렇게 묻자, 형진은 고개를 저어 보이고는 품에서 금괴 하나를 꺼내 보였다. 손가락 한 개는 바로 금괴 한 개를 뜻하는 표현이었던 것이다.
금괴라고 해서 벽돌 같은 그런 것은 아니다. 보통 금화 열 개부터 오십 개까지 다양한 금괴가 존재하는데, 형진이 내밀어 보인 것은 이벤트 던전에서 나온 금화 열 개짜리 금괴였다.
“윽…”
터무니없이 비싸다. 무슨 수리비로 금화 열 개를 받아먹는단 말인가.
물론 이대로 그냥 거의 맨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계속 싸울 수는 있다. 다만 그렇게 되면 보스는커녕 일반 몹한테 공격 받아도 그대로 끔살 당해서 다시 입구부터 뛰어와야 한다는 차이가 있을 뿐이다.
여자는 잠시 고민했지만, 지금 상태에서는 역시 수리를 받는 것이 낫다는 결론이 나왔다. 어차피 보스를 처치하면 최소한 금화 열 개짜리 금괴 하나 정도는 떨어지니까 그야말로 밑져야 본전이다.
“수리해 주세요.”
“감사합니다.”
유저에게 수리나 가공 같은 것을 맡겼을 때 사기나 먹튀 같은 경우가 일어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 엘리시온은 안전 거래 시스템을 도입하고 있었다. 소유권이 넘어가지 않은 상태에서 수리나 가공을 맡길 수 있도록 만들어서 사기나 먹튀 같은 일이 발생해도 바로 회수할 수 있도록 해주는 방식이다.
이것은 수리나 가공을 하는 입장에서도 도움이 된다. 기껏 수리를 했는데 돈을 내지 않고 그냥 튀어버리는 경우를 막아줄 수 있기 때문이다.
아무튼 안전 거래 시스템을 통해 아이템을 건네받은 형진은 곧바로 옆에 늘어놓은 도구들을 활용해 아이템의 수리를 시작했다.
사람들은 개인 상점에서 요리와 물약을 사면서 어떻게 수리가 되는지 지켜보았다.
“대단한데…”
“최소 전문, 아니 이 정도면 장인 이상이라고 봐야 할 것 같아.”
길드에서 몇몇 생활러들의 일하는 모습을 지켜본 이들이 그렇게 수군거리는 동안, 형진은 맡겨진 장비의 수리를 빠르게 마치고는 본래의 주인인 여자에게 보여주었다.
“확인해 보시죠.”
“네.”
여자는 얼른 아이템을 확인해 보았고, 그 순간 눈이 휘둥그레졌다.
“세, 세상에…”
“만족하십니까?”
“네? 네! 무, 물론이죠!”
당연히 만족할 수밖에, 수리는 물론이고 간단한 세공으로 추가 능력까지 부여해줬는데 만족을 못한다면 그게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이런 식이라면 수리비가 아깝지 않다. 아니, 오히려 싸다! 사실상 아이템을 몇 단계 업그레이드 시켜주는 것이나 다름없으니, 절대로 돈이 아깝지 않다!
여자는 얼른 값을 치르더니, 이내 허겁지겁 입고 있던 장비를 벗어 형진에게 전부 수리를 맡겨버렸다.
형진은 자신도 모르게 입이 헤 벌어지고 말았다. 다른 사람들은 보지 못하는, 은밀한 정경이 눈앞에 펼쳐지니 자연스럽게 몸이 반응해 버린다.
“크흠. 여러 개를 맡기시니까 특별히 십 퍼센트 할인 해드리죠.”
“정말요? 감사합니다!”
“감사하긴요. 저야말로 이 은혜로운 모습에 감사를 드려야죠.”
종교인인가? 여자는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방긋 방긋 웃어 주었다. 까짓 이 정도 실력을 지닌 장인이 값을 깎아 주겠다는데 미소 정도 얹어주는 건 일도 아니다.
형진은 큭큭거리는 웃음소리가 흘러나오려는 것을 삼키며 빠르게 장비의 수리를 이어갔다. 어디서 힘이 솟는지는 모르지만 아까보다 속도마저 훨씬 빠르다. 조마조마한 심정으로 지켜보고 있는 여자나 다른 유저들은 눈으로 확인하기조차 어려운 그 엄청난 수리 실력에 그저 입만 쩍 벌리고 있을 뿐이다.
마침내 수리가 끝나자, 여자는 장비를 확인하고는 다시 입이 떡 벌어졌다.
“마음에 드십니까?”
“감사합니다! 정말 감사합니다!”
금괴는 물론이고 금화까지 잔뜩 지불했으면서도 오히려 그렇게 몇 번이나 인사를 하는 여자의 모습에서 사람들은 형진의 실력이 보통이 아님을 바로 이해했다.
여자가 얼른 형진에게서 산 음식으로 도핑을 마치고 전투가 벌어지고 있는 보스방 안으로 뛰어 들어가자,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던 건장한 체구의 사내가 자신의 장비를 몽땅 벗어서 형진에게 내밀었다.
“나도 전부.”
말이 반토막이다. 남자 놈이 그 불측한 모습으로 시야를 딱 가리고 서 있는 것도 짜증나는 판에.
“이건 꽤 고가 장비군요.”
“보는 눈이 좀 있군. 그렇다.”
남자는 팔짱을 척 끼고 배를 쭉 내밀며 잘난 척을 했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는 형진의 얼굴은 압도되기는커녕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느낌으로 와락 구겨져 있었다.
“난이도가 있으니 좀 더 받아야겠습니다. 50퍼센트 추가입니다.”
“뭐? 아까는 깎아주지 않았나.”
“싫으면 말든가. 다음 분!”
“자, 잠깐. 농담이다. 아니, 농담입니다. 하하하… 드려야죠. 네. 수리해 주십시오.”
형진이 배짱을 부리자 남자는 아차 싶었던지 급공손해졌다.
여기서 수리를 못 받으면 맨몸이나 다름없는 상태로 싸워야 하는데, 피통이 아무리 많은 탱커라 해도 방어구 없이 보스의 공격을 맨몸으로 버티는 건 무리다. 다행히 앞서의 중간보스들한테서 희귀템도 하나 먹었으니 까짓 금괴 몇 개 더 얹어 주는 것도 딱히 문제될 건 없다. 오히려 이후의 보스들을 생각하면 더욱 적극적으로 싸움에 임해야 하고, 그러기 위해서는 장비의 수리가 반드시 필요하다.
형진은 흥하고 콧방귀를 뀌고는 대충대충 수리한 다음 건네주었다. 화딱지 나면 확 인스턴트 킬로 부셔버리고 손이 미끄러졌다고 하려고 했는데, 나중에라도 존대를 했으니 이 정도로 참아 주는 것이다. 앞서의 여자한테 정성껏 세공까지 해주었던 것과는 완전히 다른 대접이지만, 남자는 끽소리도 못한 채 장비를 받고 수리비를 지불한 다음 보스방으로 허겁지겁 달려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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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분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