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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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6. 이벤트
두 번째 중간 보스는 스스로 문지기라고 밝혔던 것처럼 다음 구역으로 통하는 문을 지키는 역할이다. 외모 상의 특징은 고릴라처럼 과장되게 표현된 상반신인데, 두터운 중갑을 덕지덕지 붙인 모습은 이 보스가 강인한 방어를 근간으로 하는 캐릭터임을 알 수 있게 만들어 주고 있었다.
첫 번째 중간 보스를 상대하면서 얻은 교훈 덕분인지, 유저들도 이번에는 무조건 닥돌하거나 하지 않고 차근차근 진형을 짜서 움직이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쿵! 쿵! 쿵!
마침내 후방의 마법사들로부터 갖가지 버프를 잔뜩 받은 선두의 탱커진들이 어그로를 끌기 위한 공격을 시작하자, 중간 보스는 지축을 울리는 무거운 발걸음 소리와 함께 앞으로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어쩐지 둔중한 그 모습에 유저들은 이번 보스가 앞서와는 달리 속도가 느릴 거라고 생각했고, 탱커진들은 뒤로 물러서며 최초의 일격을 대비했다.
“온다!”
“버텨!”
중간 보스가 예비 동작도 없이 두꺼운 팔을 휘두르자 탱커진들은 방패를 지면에 박으며 충격을 막아내기 위한 자세에 들어갔다.
퍽!
하지만 그런 방어 자세가 무색하게, 탱커진들은 중간 보스의 스매시에 맞는 순간 마치 야구 방망이에 맞은 공처럼 힘없이 날아가 천장과 벽에 처박히고 말았다.
“컥!”
“으극… 뭐야, 이거…”
방어 자세를 취한 탱커들은 어지간해서는 움직이지 않는다. 공격과 이동을 포기하는 대신, 방어 효율을 극대화시키는 자세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방어 자세를 취한 탱커들이 마치 발길에 채인 돌멩이처럼 훨훨 날아가 버린다.
이 비상식적인 상황에 유저들은 깜짝 놀랐지만, 의외로 날아가 부딪힌 탱커들은 죽거나 하지 않고 곧바로 몸을 일으켰다. 날려버리는 동작이나 그 결과는 호쾌하기 짝이 없지만, 의외로 데미지 자체는 그리 크지 않았기 때문이다.
물론 아무 의미 없이 동작만 호쾌한 건 아니었다. 놈의 공격을 받고 날아가 버린 탱커진들은 이동속도가 느려지는 둔화 상태에 빠졌고, 미처 알아차리지 못하고 있었지만 장비 내구도를 상당히 깎여 버린 상태였다. 중간 보스의 스매시는 방어 자세를 무너뜨리고, 캐릭터의 생명력이 아닌 장비 내구도에 데미지를 집중하는 일종의 파괴 공격이었던 것이다.
날아가 버렸던 탱커들은 급히 원래대로 전열에 복귀하려 했지만 둔화 상태에서는 그야말로 굼벵이가 기어가는 듯한 느낌으로 움직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몇 번의 스매시로 탱커진들을 날려버린 중간 보스는 기다렸다는 듯이 딜러들을 향해 쿵쾅거리며 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맙소사!”
“회피! 회피!”
동작이 굼뜬 중간 보스인 것 같아서 이번엔 제대로 말뚝딜을 해보나 했던 딜러들은 다급하게 발걸음을 옮기며 보스와 술래잡기를 해야만 했다.
중간 보스는 몇 번 그렇게 자신에게 타격을 가하는 딜러들을 붙잡기 위해 쿵쾅거리며 움직이다가, 마치 서서히 화가 치밀어 오르는 것처럼 몸이 붉게 변하기 시작하더니 이내 큰 소리와 함께 양손을 치켜들고 지면을 강하게 내리쳤다.
들썩!
순간 중간 보스가 있는 방 전체가 들썩하며 울리는가 싶더니 천장으로부터 종유석과 바위들이 우박처럼 쏟아져 내리기 시작한다.
“으악!”
“망할! 광역기냐!”
이번에도 역시나 바위의 데미지 자체는 그리 높지 않았지만, 회피하지 못하고 맞는 순간 기절이 걸려 버렸다. 중간 보스는 그렇게 움직이지 못하게 된 유저들을 바라보며 껄껄 웃더니 다시금 거대한 팔로 후려쳐서 날려버리기 시작한다. 그렇게 날아가 버리면 또 둔화. 자칫 운이 나빠서 구석에 몰리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대로 무한 둔화에 걸려버린다.
“미친!”
“여기 중간 보스들 다 왜 이래!”
데미지가 보스치고는 약한 편이라고는 해도, 그렇게 도망도 못치고 계속 두들겨 맞아서야 버틸 방법이 없다. 결국 무한 둔화에 걸려버린 유저들에게서 우르르 사망자들이 속출하기 시작한다.
죽은 유저들은 다시 시작지점으로부터 헐레벌떡 달려와야만 했다. 혹시라도 전투에 참여하지 못한 상태에서 중간 보스가 죽어버리기라도 하면, 그래서 룻을 못 먹게 되면 어디가서 하소연도 못한다. 그런 생각을 떠올리면서 급하게 달려오던 유저들은 중간 보스가 있는 방 입구에 차려진 개인 상점을 발견했다.
[특제 요리, 특대 회복약 팝니다.]좀 어이없다. 던전 안에서 장사라니. 하지만 떡하니 달아둔 그 간판을 보는 순간 유저들은 자신도 모르게 반사적으로 인벤을 살폈다.
그나마 이전에 월드 보스 이벤트를 경험했던 이들은 그때의 일을 교훈으로 삼아 나름 준비를 철저히 했지만, 대부분의 유저들은 그냥 섹시 수영복 코스튬의 보너스 이벤트 정도로 인식한 경우가 많아서 물약이나 비약, 요리 같은 걸 제대로 준비하지 않은 경우도 허다했다. 실제로 지금 사망전대 노릇을 하고 있는 유저들중 대부분은 그렇게 준비가 부족했던 이들이다.
어느 정도 중간 보스가 만만하면 모를까. 지금 상황에서는 그냥 무작정 덤비는 건 의미 없는 일이나 다름없었고, 뒤늦게나마 그것을 깨달은 유저들은 형진이 열어놓은 개인 상점을 보자 우르르 몰려갔다. 비쌀 것이 분명하지만, 개인이 지고 다닐 수 있는 물량이라는 것이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음을 고려하면 살 수 있을 때 사두는 것이 이득이라고 판단한 것이다.
하지만 유저들은 간판 앞에 도달해서 개인 상점을 열어보는 순간 절로 헉 소리를 내고 말았다.
요리는 버프를 고려한 것인지 주로 간단한 디저트류였고, 전투 식량처럼 다양한 기능을 갖춘 것도 있었다. 문제는 효과에 있었다. 보통 특제 요리라고 해봐야 버프 종류는 고작 세 가지. 하지만 이 요리들은 전부 다섯 가지의 효과를 가지고 있었다.
말이 되나! 이게 말이 되냐고!
물론 중첩되는 것도 많았지만, 그것도 문제는 되지 않는다. 아니 오히려 강력한 이점이 된다. 만약 이 요리들이 명장 이상의 실력을 지닌 소유자가 만든 것이라면, 일정 확률로 중첩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렇지 않아도 효과가 일반 요리보다 뛰어난 특제 요리의 옵션이 중첩까지 되어버린다면, 그건 사기라는 말로도 부족한 일이 되어 버린다.
그것을 깨닫는 순간 유저들의 눈에서는 번쩍하고 불빛이 뿜어져 나왔다.
“이럴 수가!”
“어머나 시발!”
“이건 사야해!”
뭔가 중간에 욕이 섞인 것 같기는 했지만, 그만큼 충격적이라는 얘기일터. 가격은 일반적인 버프용 요리보다 두 배 가까이 비쌌지만, 그 진가를 알아본 유저들은 급히 형진의 요리를 구매해서 섭취하기 시작했다.
“허윽!”
“이, 이 맛은!”
“아… 어머니! 어머니!”
아쉽게도 명장을 찍지 못한 상태라 버프 중첩 효과는 일어나지 않았지만 그 황홀한 맛 또한 이제까지 경험해 보았던 어떠한 버프용 요리와도 비견되기 어려울 정도였다. 카나페 하나를 입에 넣은 섹시한 비키니 차림의 여성은 후들거리는 다리를 주체하지 못하고 그대로 주저앉았으며, 건장한 근육질의 전사는 기사단의 전투식량을 사서 한 입 떠먹는 순간 멍한 표정을 지으며 잠시 아무 말도 하지 못한 채 눈물만 뚝뚝 흘리고 있었다.
“…”
여신들은 눈앞에서 벌어지는 호들갑스러운 유저들의 모습이 괴기스럽게 느껴졌는지 형진의 옷깃에 몸을 감춘 채 오들오들 떨고만 있었다. 확실히 여신들로서는 차라리 광기라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듯한 유저들의 반응이 무섭게 느껴질 만도 하다.
형진이 팔고 있는 요리에 뿅 가버린 채 잠시 정신을 차리지 못하던 유저들은 이내 특대형 회복약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 고작 버프용 요리라고만 생각했던 것이 이렇게 말도 안 될 정도의 효과와 맛을 지니고 있다면 그것과 함께 팔고 있는 회복약 또한 보통 물건은 아닐 거라 생각한 것이다.
“헛!”
“따, 딸기?”
사람들의 기대는 훌륭하게 보상 받았다. 형진이 팔고 있는 물약은, 성녀 유아가 가스트샵에서 판매하기 위해 심혈을 기울여 제작한 신제품이다. 정확히는 신제품으로 내놓기 위해 만들었던 실패작중 하나라고 하는 편이 맞겠지만, 어쨌든 그런 이유를 지닌 물품이다 보니 여러모로 독특한 구성이 많았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딸기맛 포션. 포션을 만들 때 단순히 신선하고 깨끗한 물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라, 딸기향 주스를 첨가해 맛을 낸 물건이다.
다만 다른 부재료가 들어가는 만큼 원가를 맞추기 위해 포션의 양을 줄였고, 그 때문에 유아가 만든 일반적인 포션에 비해 회복 효과가 훨씬 약한 편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유아를 기준으로 했을 때의 얘기고, 일반적인 회복약과 비교하면 그야말로 넘어설 수 없는 벽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의 압도적인 회복력을 가지고 있었다. 괜히 특대형이 아니다. 그만큼 쓸데 없는 걸 많이 넣어 희석 시켰기 때문에 양이 몇 배로 뻥튀기 되어 버린 것이다.
“이런 말도 안 되는!”
“아이 시발! 이것도 사야 돼!”
역시나 값은 곱절로 비싸다. 그러나 첨가한 딸기 주스의 버프효과는 물론이고 월등한 용량과 준수한 회복 능력을 확인한 순간, 유저들은 이 특대형 회복약이 지닌 압도적인 가성비를 이해했다. 문자 그대로 정말 욕이 절로 나올 정도인 것이다!
곧바로 유저들은 무언가에 홀린 것처럼 첫 번째 중간 보스에게서 얻었던 금괴를 비롯해 지니고 있던 금화까지 탈탈 털어서 요리와 회복약을 사기 시작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물건들이 수량까지 많을 리가 없다는 생각에 매점매석을 시도한 것이지만, 형진의 크고 아름다운 인벤토리에 담긴 요리와 회복약은 그 정도 푼돈으로 비워질 만큼 만만한 것이 아니었다.
아니, 단순히 인벤토리가 크고 작은 것이 문제가 아니다. 형진은 아바타를 통해 인벤토리를 공유할 수 있고, 그것은 다시 말해 팔리면 팔리는 만큼 계속해서 실시간으로 물량을 충전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마르지 않는 화수분. 그것은 바로 형진의 인벤토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흘흘흘…”
어쨌든 쇼핑을 마친 유저들이 허겁지겁 도핑을 하고 다시 중간 보스와의 전투에 참전하는 모습을 지켜보며 형진은 그렇게 사악한 웃음을 지었다.
지금 벌이는 일은 일전에 라야바르트의 수도 라야에서 작은 포장마차를 열었던 것과 같은 맥락이라 할 수 있었다. 본격적인 요리 대회를 앞두고 자신의 요리가 사람들에게 어느 정도나 먹히는지 확인함과 더불어, 명장이나 달인으로 가기 위한 명성을 쌓기 위한 예행 연습이기도 한 것이다.
형진의 요리로 도핑한 유저들이 다시 가세하자 전투 양상은 조금씩 유저들에게로 기울기 시작했다. 갖가지 요리를 통해 저항수치를 높인 유저들이 가세함으로서 보스가 터뜨리는 여러 가지 디버프를 견뎌내는 유저들이 하나둘씩 생겨나기 시작한 탓이다.
어떻게 보면 별 것 아니라고 할 수도 있었지만, 이건 알고 보면 두 번째 보스를 공략하기 위한 가장 핵심적인 부분이기도 했다.
첫 번째 중간 보스와는 달리 데미지 자체가 그리 높은 타입은 아니었던 관계로, 괴랄하기 그지 없는 디버프만 효율적으로 견딜 수 있다면 두 번째 중간 보스도 그렇게 어려운 적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일단 그렇게 실마리가 잡히자, 역시나 앞서와 마찬가지로 두 번째 중간 보스의 피도 빠르게 줄기 시작했다. 몇몇 사람들은 갑자기 피가 줄어드는 속도가 확 빨라지자 의아한 표정을 지었지만 어쨌든 좋은 것이 좋은 거다 라는 느낌으로 중간 보스를 몰아쳐 마침내 쓰러뜨리고 말았다.
[크으으… 분하다…]두 번째 중간 보스는 그런 말을 외치면서 육중한 거체를 바닥에 뉘었고, 이번에도 역시나 분수처럼 룻이 사방으로 쏟아지기 시작했다.
어떻게 보면 참 호들갑스러운 모습이지만, 힘든 보스전을 마무리 짓는 이펙트로는 더할 나위 없다.
“꺄아! 어쩜 좋아! 희귀템이야!”
“나도!”
“망할… 그렇게 열심히 딜을 했는데…”
“큭. 역시 될놈될.”
사람들은 저마다 룻을 확인하고는 다음 장소를 향해 열심히 달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그들도 이 성대한 이벤트를 즐기기 시작한 것이다.
“그럼, 우리도 이만 가봐야 겠네요.”
형진은 황혼과 망각이 잽싸게 뛰어가서 집어온 금괴를 챙기자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나며 의자와 간판을 챙겼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유람 나온 사람처럼 느긋하게 걸음을 옮기다가 다음 보스방 입구에 도달하자 또다시 개인 상점을 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간판이 하나 더 늘었다.
[특제 요리, 특대 회복약 팝니다.] [장비 수리해드립니다.]============================ 작품 후기 ============================
일단 두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