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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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승급
메시지와 상자가 내려왔을 때, 형진은 지하의 수련장에서 은신과 잠행을 수련하던 중이었다.
사안의 중대함을 기젤에게 보고하는데 동참한 다른 집행자들은 전투식량의 구입이나 군납에 대한 것은 차후의 상황을 지켜본 뒤 결정하기로 하고 일단 그날은 다시 각자의 거처로 돌아간 상황.
“헐?”
모처럼 장인을 찍고 기분이 좋았다가 일이 이상하게 꼬여서 뭔가 복잡한 기분이던 형진은, 갑자기 낙인 업데이트의 메시지가 나오고 황금 상자까지 덩달아 내려오자 잠시 얼떨떨한 표정으로 지켜보다가 뒤늦게서야 화들짝 정신을 차리고 그것을 살펴 보았다.
[낙인의 중대한 결함이 발견되어 긴급히 갱신을 실행합니다. 집행자 여러분께서는 필히 낙인의 갱신을 실행해 주시기 바랍니다.]이런 신속한 업데이트라니, 형진은 속으로 놀란 기색을 감추며 상자의 내용을 확인했다.
[감사합니다. 공포와 죽음께서 당신의 행동에 매우 흡족해 하시며 합당한 보상을 내리셨습니다.] [보상 내역은 다음과 같습니다.] 바이겔 기념 금화 5개, 반트 동화 100개, 가스트 주화 5000개.강화석 5개.
고급 액세서리 상자 1개.
인벤토리 10칸.
무게 +100
팩션 공헌도 1000.
-공포와 죽음께서 당신의 이름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계십니다.
-앞으로도 훌륭한 활약을 기대하겠습니다.
“컥!”
얼마 전 페스타를 통해 받았던 황금 상자의 보상도 눈이 뒤집힐 정도였는데, 이것은 그것보다 더하다. 기본 보상만 따져도 다섯 배 이상이고, 이 세계 와서 지금껏 본 적조차 없는 강화석이 무려 다섯 개에, 희귀 등급 이상의 액세서리 한 개가 무작위로 나오는 고급 액세서리 상자가 담겨 있다.
그 뿐인가. 인벤토리 10칸과 무게 +100, 그리고 팩션 공헌도 1000점까지.
정말 이건 맘먹고 크게 한 방 쐈다는 느낌이 딱 뒤통수를 갈기는 기분이다.
구체적인 업데이트 내역이 공개되지는 않았지만, 이 보상 내용만 놓고 보더라도 공포와 죽음께서 이 사안을 얼마나 중대하게 여기고 있는지 알 수 있다.
게다가 보고를 올린지 얼마 되지도 않아서 이루어진 이 신속한 처리라니. 이러니 어찌 공포와 죽음을 찬양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세심하시며 신속하신 데다 통까지 크신 공포와 죽음께 경의를!
“대, 대박.”
파격적인 보상 내용에 놀라 그렇게 얼이 빠져 있는데, 문득 눈앞에 메시지 하나가 다시 등장한다.
[누적된 팩션 공헌도가 다음 단계 승급을 위한 조건을 만족합니다.] [승급을 위해 필요한 최저 스킬 숙련도가 부족합니다.] [‘하급 성도’에서 ‘일반 성도’로 승급하기 위해서는 기본 등급의 스킬 4가지를 10레벨 이상 수련해야만 합니다. 스킬 수련에 관해서는 소속된 지부의 지부장이나 스킬 마스터에게 문의하세요.]한 방에 팩션 공헌도 1000점을 받자, 곧바로 승급 조건마저 달성된 모양이다. 잘은 모르지만 승급이 이루어지면 낙인의 효과가 증가할 뿐만 아니라 기타 여러 가지 이점이 있다고 들은 것 같다.
“그렇지 않아도 이동 스킬이라든가 기본 전투 스킬 정도는 찍으려던 참이었으니까.”
다른 건 몰라도 지난 페스타 이후로 이동 스킬의 필요성은 여실하게 느끼고 있던 참이라, 형진은 날이 밝는 대로 기젤을 만나 스킬 수련에 대한 것을 문의하기로 했다.
“일단… 강화석은 킵 해두는 게 나을 것 같군.”
집행자 세트는 분명 좋은 물건이긴 하지만, 아직 다른 아이템을 접해본 적이 없는 형진으로서는 천금 같은 강화석을 막 남발하기 좀 애매한 점이 있다. 아직 강화에 대한 제대로 된 정보도 없는 상황에서 막 질러대다가 강화도나 최대 내구도가 하락하면 그것도 골치 아픈 일이고, 자칫 아이템이 날아가거나 하면 참 난감한 일이기 때문이다.
엘리시온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이 세계 역시 안전 강화 개념이 있는지, 있다면 어느 정도인지, 그리고 패널티는 어떤 것인지 등등 알아야 할 것이 너무 많다. 사실 강화 자체가 복불복인 거야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아닌가. 강화석이나 아이템에 유효기간이 있는 것도 아닌 이상 서툰 도박은 자제하는 것이 옳다. 애초에 형진은 이곳에서 강화석이 어느 정도의 가치를 지니는지조차 알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니 더욱 그러하다.
그러고 보면 이전에 사냥개의 코장식이 두 개 나왔을 때 바로 강화를 시도했던 것이 얼마나 간 큰 일인지 새삼 깨닫게 된다. 하지만 그 때 단번에 철커덕 붙었다고 이번에도 그러리란 보장은 없다. 그냥 초보자의 행운 정도로 이해하고 넘어가는 것이 현명하겠지.
그렇다면 문제는 바로 고급 액세서리 상자.
설명에는 희귀 이상의 등급을 지닌 액세서리 하나가 무작위로 나온다고 되어 있다. 즉, 열었을 때 뭐가 나올지는 아무도 모른다는 얘기.
인스턴트 킬로 몹을 잡으면 무조건 레어급 이상이 떨어지는 형진이야 그런가보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다른 이들에게는 이것 역시 엄청난 보상일 것이다.
강화석은 쟁여두기로 했지만 이것은 바로 열어보기로 했다. 어차피 아직 부위별로 착용할 아이템조차 아직 다 장만하지 못한 형진으로서는 괜히 놔둬봐야 의미 없는 일이다.
상자를 집어든 형진은 잠시 심호흡을 하고는 그것의 뚜껑을 열어젖혔다.
[축하합니다! ‘심연의 눈가리개’를 획득했습니다.]“눈가리개?”
목걸이나 반지 같은 것이 나오지 않을까 예상했던 것과는 달리 이상한 것이 나왔다. 눈가리개라고는 되어 있는데, 천조각으로 된 것은 아니고 금속으로 된 것이 눈구멍이 없는 반가면 같은 느낌이다.
아이템정보
명칭 : 심연의 눈가리개
등급 : 진귀
착용제한 : 없음
설명 : 심연의 기운이 담긴 눈가리개. 착용하는 순간 어둠은 이미 당신의 편이다.
효과 : 시야거리 상승, 집중력 증가, 시각 관련 상태이상 무시, 어둠의 영향을 받지 않는다.
강화시 효과 : 시야거리 상승.
“헐? 진귀?”
희귀도 아니고 진귀다. 형진으로서도 이런 것이 있었나 싶은 느낌이 드는 그런 생소한 등급이지만 보통 희귀 등급의 아이템이 두 가지 옵션을 지니는 것과 비교해 이 아이템은 무려 네 가지나 되는 옵션을 지니고 있다.
“무시? 면역도 아니고 무시라고?”
시야거리 상승이나 집중력 증가는 그렇다 치더라도 뒤의 두 가지 옵션은 입이 떡 벌어지는 느낌이다. 다시 말해 이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캄캄한 어둠 속에서도 주변을 살피는데 아무런 지장이 없으며, 또한 상대가 섬광탄이나 연막, 암흑 마법처럼 시각을 마비시키기 위한 수단을 사용하더라도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는다. 이쯤 되면 실로 대단한 능력이 아닐까.
면역은 일단 상태이상이 발현된 상황에서 그것을 받아들이는 과정을 거친 다음 저항굴림등의 과정에서 무조건 성공등이 일어나는 식의 개념이다. 하지만 무시는 그런 과정 자체를 건너 뛰어 버린다. 면역 등의 효과가 이론적으로 저항 무시 등의 속성에 영향을 받을 수 있는 것과는 달리, 무시는 그런 과정 자체가 생략되어 버리니 훨씬 강력한 효과로 볼 수 있다.
게다가 강화시 효과는 시야거리 상승이다. 사냥개의 코장식을 +1로 강화했을 때 얼마나 엄청난 능력의 증폭이 일어났는지를 감안하면, 아마도 이 아이템을 강화하게 되었을 경우 원시 능력에 버금가는 효과까지 얻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액세서리는 강화석으로는 강화가 불가능하고 같은 액세서리를 구해서 하나로 합쳐야 한다는 문제가 있다는 문제가 있다. 게다가 실패시의 패널티는 시도된 아이템이 전부 사라지는 것. 설령 같은 아이템을 구하더라도 합치는 것 자체가 엄청난 용기를 필요로 하는 일이라는 얘기다.
꿀꺽.
공포와 죽음께서 통이 크다는 건 이미 몇 번의 경험을 통해 익히 알고 있는 일이었지만, 이건 정말 너무 대단해서 잠시 아무런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다.
일단 한번 착용해 보았다. 눈을 완전히 가리고 있는데도 착용하는 순간 어두컴컴하던 수련장 내부가 구석구석 또렷하게 보인다. 얼마 전에 미엘이 걸어줬던 적외선 시야와 비교하면 그야말로 안경 잃어버린 근시와 몽골 양치기 정도의 차이가 아닐까 싶다.
수련장 한켠의 거울을 바라보았다. 눈구멍이 없는 반가면 형태의 눈가리개를 쓴 모습이 꽤 그럴 듯 하다. 집행자의 두건과 망토를 착용한 상태여서 그런지는 몰라도 이 정도면 보는 순간 확 암살자라는 느낌이 와 닿지 않을까 싶다.
“어디보자…”
가지고 있는 아이템을 죄다 착용해 보았다. 그래봐야 코장식과 귀걸이 뿐이지만.
“…”
뭔가 미묘하다. 눈가리개를 착용하고 집행자의 두건을 쓰고 있으면 확실히 뭔가 있어 보이는데, 사냥개의 코장식을 착용하니 갑자기 개그가 되어버리는 느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1 강화까지 된 사냥개의 코장식을 버릴 수는 없는 일. 결국 목토시를 끌어올려 가리자 완전히 얼굴을 가린 복면 사내가 완성되었다.
눈코입은 물론이고, 두건을 써서 두상조차 완전히 가려져 버린 모습을 보니 동양의 저승사자 보다는 서양의 그림리퍼 같은 분위기다. 아직 기초 스킬조차 제대로 익히지 못해 승급도 못하는 처지인 주제에 겉모양만 최종보스 같은 느낌이랄까.
형진은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피식 웃어버리고는 인벤토리에 장비들을 챙겨 넣었다. 장비가 꽤나 늘어나긴 했지만, 자상하신 공포와 죽음께서 인벤토리를 팍팍 쏘신 덕분에 여유가 넘친다.
수련을 마치고 위층으로 올라가자 청소를 한다고 난리법석을 떨고 있는 유아의 기척이 느껴진다. 형진의 요리 실력이 장인에 올라서자, 그렇지 않아도 식탐이 많던 유아는 중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었다. 지금도 마치 주문을 외우듯 뭐라 중얼거리면서 열심히 이곳저곳에 걸레질을 하고 있다.
“웨딩드레스는 절대로 포기할 수 없어. 포기해선 안 돼. 포기하면 안 돼. 유아야, 넌 할 수 있어.”
“…”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이런 내용이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벌써부터 웨딩 드레스 타령이냐.
뒤에서 지켜보자니 바닥을 손걸레로 닦고 있는 유아의 엉덩이가 제법 탐스러워 보이긴 한다. 역시 요 며칠 잘 먹인 보람이 있는지, 처음 봤을 때의 그 없어 보이던 느낌도 지금은 상당히 희석되어 있었다. 어쩌면 그렇게 토실토실 살이 오르기 시작하니 본인 스스로가 더 위기감을 느끼고 있는 건지도 모르겠다.
“적당히 하고 그만 자. 내일부터는 그렇게 먹어 댈 일도 줄어들 테니까.”
“힉! 까, 깜짝이야.”
뒤에서 넌지시 그렇게 말하자 유아는 화들짝 놀라며 얼른 돌아보더니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정말… 기척 좀 내고 다녀요. 깜짝 놀랐잖아요.”
확실히 얘는 모범적인 메이드는 아니다. 세상 천지 어느 집구석에 이렇게 대놓고 집주인에게 툴툴거리는 메이드가 있단 말인가.
하기야 그런 걸 바라고 데리고 온 것이 아니기는 하지만.
“그런데… 방금 뭐라고.”
“요리 쉴 거라고. 한동안 다른 일을 좀 해야 할 것 같거든.”
유아는 눈이 휘둥그레졌다.
“정말요?”
“그래. 정말.”
혹시나 싶었는지 다시 한 번 이어진 반문에 선선히 대답하자, 유아는 울먹거리기 시작했다.
“다행이다… 흑.”
“…”
그게 기뻐서 울 일이냐. 게다가 그래봐야 어차피 새로운 요리를 내밀면 볼이 발그레해진 상태로 은하수 너머 딴 세상에 갈 거면서.
집행자들이야 낙인의 취약점 때문에 그렇게 격렬하게 반응했다 치더라도, 얘는 그런 것조차 없는데 별나라를 넘어 저 멀리 알 수 없는 곳으로 승천하는 듯한 리액션을 선보인다. 이쯤 되면 정체가 뭘까 궁금해질 정도다.
“알았으면, 이만 가서 씻고 자. 나도 쉬어야 하니까 그만 법석 떨고.”
“네!”
꾸벅 인사를 하고는 걸레와 물통 같은 것을 챙겨서 달려가는 유아의 뒷모습을 피식 웃으며 지켜보던 형진은 벽난로에 장작 몇 개를 더 집어넣고는 수련으로 땀에 젖은 몸을 간단하게 씻은 다음 개운한 기분으로 잠자리에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