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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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확장
지중해로 접어들자 곧바로 수많은 배들이 바다 위에 가득 나와 있는 모습이 눈에 들어온다. 모르긴 해도 지중해 인근 항구에 정박해 있던 배들은 모조리 몰려나온 것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하늘’호가 하늘을 가로질러 지나가자 모여있던 배들이 그 뒤를 따르기 시작한다. 그 모습을 본 프리츠는 빙긋 웃더니 ‘하늘’호의 속도를 늦추었다. 그러자 배에 타고 있던 사람들이 손을 들어 환호한다.
그렇게 수많은 배들을 이끌고 대서양을 가로 지르던 마침내 로마에 도착했다. 오래된 역사가 살아 숨쉬는 도시 위를 천천히 가로지르고 있자니, 요안나가 다시금 형진에게 말했다.
“이번엔 교황이에요.”
요안나의 부드러운 손이 어깨를 조물조물 거리는 느낌에 풀린 표정을 짓고 있던 형진은 그 말을 듣고는 얼굴을 찌푸렸다.
“설마 이번에도 히치하이킹을 부탁하는 건가?”
그 말에 요안나는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네. 하지만 교황 자신이 타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에요.”
“뭐?”
형진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자신이 타고 싶다는 얘기가 아니라니? 요안나는 그런 형진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탈리아에 머물고 있는 난민 아이들 가운데, 시한부 인생을 선고 받은 아이들 열두 명을 뽑았대요. 그 아이들에게, 마지막으로 추억을 남겨 주고 싶으시다고.”
“쳇… 잔머리 굴리긴.”
형진은 혀를 찼다. 그냥 교황 자신이 타보고 싶다고 투정부리는 거라면 그냥 가볍게 웃어 넘기고 말텐데, 이런 식으로 나오면 거절하기가 어렵다. 뭐라 해도 형진 본인도 일곱 아이의 아빠이며, 얼마 전에는 새로 아이 둘을 맞이하기도 했다.
결국 잠시 투덜거리던 형진은 빙긋 웃고 있는 요안나를 향해 불퉁거리며 대답했다.
“태워.”
“네.”
요안나는 곧바로 프리츠에게 이 일을 알렸고, 그 역시 형진의 투덜거리는 모습을 떠올리며 빙긋 웃음을 지었다. 툴툴 거리긴 해도 역시나 아버지들은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하늘’호는 방향을 틀어 바티칸 시국으로 향하더니, 베드로 광장에서 북쪽에 위치한 솔방울 정원 상공에서 멈추었다. 그리고 미리 나와서 대기하고 있던 열두 명의 아이들과 그들을 보살피기 위한 한 명의 의사와 간호사 네 명을 함께 태웠다.
탑승대를 통해 옮겨진 아이들의 모습에 함께 타고 있던 승객들은 모두 안타까운 표정을 지었다. 모두 깡마른 모습으로 휠체어에 앉거나 그마저도 불가능해서 침대 위에 누워 있다.
“어쩜… 어쩌면 좋아…”
탑승자 가운데 가장 나이가 많은 노부부는 그런 아이들의 모습에 어쩔 줄 몰라하더니 이내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자신들의 숙소에 가서 냉장고에 들어있던 포션을 모조리 들고 나왔다.
“저건…”
“아…”
승객들 역시 어제 밤에 잠을 자기 전에 자신들의 숙소를 돌아보았고, 1인당 두 병씩 냉장고에 포션이 들어있는 것을 확인했다. 아마도 오랜 항해동안 일어날지 모르는 여러 가지 상황에 대비해 구급약 대신 넣어둔 것이리라 생각하던 중이다.
“미안해요. 원래 네 병이 있었는데, 저희가 먼저 먹어버렸네요. 이럴 줄 알았으면…”
승객들은 잠시 주저하기 시작했다. 분위기상 자신들의 포션도 내놓아야 할 것 같긴 한데, 그러자니 역시 아까운 기분이 든 탓이다.
하지만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프리츠가 빙긋 웃더니 노부부에게 다가가 말했다.
“이러지 않으셔도 됩니다.”
“네? 하지만…”
“이 아이들도 이제는 엄연히 이 배의 승객입니다. 당연히 아이들을 위한 포션도 준비되어 있다는 뜻이죠.”
“아…”
그제서야 노부부는 잘됐다는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나마 포션이 아까워서 주저했던 사람들은 그런 자신들의 모습에 부끄러움을 느끼며 노부부에게 박수를 보냈다.
아이들은 곧바로 선실로 안내되었고, 그곳에서 준비된 포션을 복용했다.
“어?”
약을 삼키는 것조차 힘들어 하던 아이들은 어느 순간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천천히 자신의 손을 바라보았다.
“어때? 효과가 있는 것 같아?”
간호사의 말에 아이는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렇게 말했다.
“아프지 않아요. 그리고…”
“그리고?”
“배가 고파요. 갑자기. 아주 많이.”
“아…”
간호사는 자신도 모르게 눈물을 글썽거렸다. 식욕. 어떻게 보면 정말 별 거 아닌 일이지만, 그것은 바꿔 말하자면 몸이 생존을 위한 본격적인 활동에 접어들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니나 다를까. 의사가 얼른 다가와 살펴 보니 아이의 생체 반응이 놀랍도록 활발해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다.
“세상에… 설마했는데… 정말로 이런…”
의사가 그렇게 놀라워하고 있는데, 문득 프리츠가 유령처럼 모습을 드러내더니 의사와 간호사를 향해 말했다.
“아직 이 약은 임상실험이 끝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니 이번 일은 비밀로 해주십시오. 아셨죠?”
“네? 아… 무, 물론입니다. 물론이고 말고요.”
다행히 이 의사와 간호사들은 독실한 가톨릭 신자였고, 자신들의 신앙만큼이나 환자의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참된 의료인들이었다.
아이들은 그렇게 차례차례 포션을 복용하고 활기를 되찾았다. 다행히 이번에 탑승한 아이들은 유전자 질환 같은 만성적인 병이 아니라, 생명이 위험한 급성 질환을 앓고 있는 아이들이었기에 포션으로 큰 효과를 볼 수 있었다.
침대에 누운 채 꼼짝도 못하던 아이들이,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갑판을 걸어 다니는 모습은 세계의 모든 사람들에게 큰 충격으로 다가왔다. 물론 병으로 쇠약해져 있는 상태라 마구 뛰어다니거나 하지는 못해도, 오늘 내일 하던 아이들이 발그레하니 상기된 모습으로 힘겹게라도 사람들의 부축을 받으며 걸어 다니는 모습은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하늘’호의 어떤 모습보다도 더욱 사람들의 마음을 감동시켰다.
“쳇… 물꼬를 틔워 버렸으니, 가는 곳마다 아이들이 우글거리겠네.”
형진은 입가에 빙긋 미소를 짓고 있으면서도 그렇게 계속 툴툴거렸다. 자기 뜻과는 다르게 엉뚱한 손님을 태워버리고 말았던 것이 마음에 들지 않는 모양이다.
아니나 다를까. 다음 기착지인 아테네에서도 그리스 정부가 급히 모은 일곱 명의 아이들이 대기하고 있었다. 물론 이번에도 형진은 툴툴거리며 그 아이들을 받아들였고, 다시 한 번 아이들은 포션의 기적 같은 효험으로 자리에서 일어날 수 있었다.
“현재까지 탑승한 아이들이 앓고 있던 병의 종류입니다.”
대통령은 이제 만사 포기한 듯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이미 항복 선언을 해버린 것도 있고, 이제는 ‘하늘’호라는 말도 안 되는 물건이 자신의 손에서 완전히 벗어났음을 납득해 버린 것도 한 가지 이유였다. 밤을 꼬박 새워서 비몽사몽한 상황이기도 하고.
“당장 임상 시험의 다음 단계 허가를 내리지 않으면 폭동이 일어날지도 모르겠군.”
“…”
몇몇 사람들은 아예 임상 시험이고 뭐고 바로 시판을 해야 한다는 말까지 하고 있는 판국이다.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극단적인 경우. 물론 지금 분위기를 봐서는 유례없이 임상 시험이 빨리 끝날 가능성이 높다고 봐야한다.
“포션이 만능은 아니라는 얘기가 있습니다.”
“그래? 어떤 병이 문제인데.”
“대표적인 것이 유전병입니다. 미라지 코어에서는 이번 기회에 더 많은 임상 시험을 통해 포션이 효과를 보이지 못하는 질병을 확인하겠다는 방침인 듯 합니다. 그리고 알려지지 않은 부작용 같은 것도 면밀하게 검토하겠다고 합니다.”
대통령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어떻게 된 게 이건 완전히 반대로군. 보통은 어떻게든 효과를 입증하거나 과장하려고 발버둥치는 법 아닌가?”
“원래는 이게 정상이죠.”
“그렇긴 하지만.”
그렇게 각국 정부 관계자들을 잠못들게 하면서 ‘하늘’호는 지중해에서의 세 번째 기착지인 이스탄불에 도착했다.
그리스에서와는 달리, 터키는 여유 시간이 좀 더 있었던 탓에 더 많은 인원을 준비했다. 아이들만 서른한 명에, 그들을 돌볼 의사 다섯 명과 간호사 열 명이다.
아무리 미라지 코어에서 아이들을 받아들이기로 했어도 이건 좀 심한 거 아니냐는 말이 나왔지만, 이번에도 ‘하늘’호는 그냥 그 인원을 다 받아들여 버렸다.
그제서야 사람들은 뭔가 이상한 점 한 가지를 더 깨달았다.
보통 ‘하늘’호 정도의 규모를 가진 범선의 탑승 인원은 삼사백 명 정도가 보통이다. 이렇게만 따지면 그동안 탑승한 인원들 정도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지만, 이것은 어디까지나 그 인원들에게 최소한의 거주 공간만 제공되었을 때의 얘기다. 누워서 잘 수만 있는, 그것도 접고 펼 수 있는 간이식 침대 같은 것을 이단이나 삼단으로 배치했을 때 삼사백명이란 탑승인원이 나오는 것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하늘’호의 숙소는 그런 것과는 거리가 멀다. 최고급 호텔 스위트룸을 방불케 하는 숙소가 각 팀에 배정되어 있고, 이것은 아이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선박의 용적과 탑승한 인원들에게 제공된 공간의 계산이 맞지 않는 것이다. 기관실이나 조타실 같은 것이 없어서 더 많은 공간을 활용할 수 있다지만, 그걸 감안해 봐도 역시 계산이 맞지 않는다.
아무래도 이상하다는 것을 깨달은 기자들이 바로 움직였다. 가지고 있던 줄자나 연결 케이블 같은 것을 사용해 갑판의 폭과 각 선실의 폭을 확인해 본 것이다.
“맙소사…”
“왜 진작 이걸 알아채지 못한 거지?”
그 결과는 놀라웠다 갑판의 폭과 비교해, 선실의 폭은 무려 두세 배 이상 차이가 났던 것이다.
물론 갑판이 비정상적으로 좁고 선실이 넓은 형태의 선박이 없는 것은 아니다. 과거 네덜란드에서는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한 편법으로 갑판의 넓이를 극단적으로 줄인 기형적인 형태의 범선인 프류트 같은 것을 건조하기도 했으니까. 하지만 지금 그들이 타고 있는 ‘하늘’호는 딱 봐도 그런 기형적인 형태의 범선과는 거리가 먼 외형을 가지고 있었다.
사람들은 비로소 깨달았다.
이 범선의 내부에는 그들이 미처 상상도 하지 못한 새로운 기술이 적용되어 있음을, 그제서야 이해한 것이다.
단순히 선체의 폭만 그런 식으로 확장되어 있는 것이 아니었다. 각 선실의 입구 간격을 재보고 실제로 방으로 들어가 입구로부터 벽의 거리를 재봐도 마찬가지로 계산이 맞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왔다.
길이와 폭만이 아니다. 높이 또한 맞지 않는다.
솔직히 이쯤 되면 어째서 그걸 이제까지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이상할 정도지만, 사실 이건 승객들의 잘못이 아니다. 탑승한 뒤로 이것저것 워낙 놀랄 일이 많아서 거기까지 미처 생각이 도달하지 못했을 뿐이니까. 게다가 선실에 틀어박혀 있기 보다는 밖으로 나와 주위 모습을 보는 것만으로도 정신이 없는 터라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한 것도 있고.
사람들은 이 놀라운 신기술에 이런 이름을 붙였다.
“공간 왜곡?”
공간 왜곡이라니. 이게 도대체 말이나 되는 일인가? 사실 공중 부양부터 시작해서 정체를 알 수 없는 공간 격리 기술에 이르기까지 ‘하늘’호에 적용된 기술은 이해하기 어려운 것 투성이였지만, 이건 도대체 그냥 그런가보다 하고 넘어갈 수가 없다.
미국 대통령은 머리가 지끈거리기 시작했다.
“누구라도 좋으니… 대충이라도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 줄 수 있는 사람 있나?”
대통령의 말에 장관 가운데 한 명이 자신 없는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일반 상대성 이론에 공간 왜곡에 대한 내용이 나오긴 합니다. 중력장과 관련된 부분이긴 한데… 그건 어디까지나 거시적인 관점에서 적용되는 이론이고, 저렇게 인공적인 구조물… 그것도 사람이 활동할 수 있는 거주 공간의 용적을 넓히는 용도의 기술은… 도무지…”
“일반 상대성 이론? 그것조차 넘어서는 개념이라고?”
“확신하긴… 어렵습니다.”
“허…”
어이가 없다는 듯한 목소리로 그렇게 대통령이 허탈한 웃음을 짓자, 옆에서 다른 보좌관 하나가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어쩌면… 지금까지는 있을지도 모른다고 여겨지기만 했던 ‘모든 것의 이론(Theory of Everything)’이 적용된 것인지도 모릅니다.”
솔직히 이쯤 되면 과학이 맞는지조차 의심스러워지기 시작한다. 아니, 어쩌면 그런 의심 자체가 너무 때늦은 일인지도 몰랐다.
“맙소사. 저들은 신의 영역에 도달하기라도 한 건가!”
어떻게 보면 마지막에 내뱉은 대통령의 외침이 진실과 가장 근접한 것일 수도 있었다. 엄연히 이 모든 것들은 일반적인 과학의 개념으로는 설명조차 어려운 신의 권능과 밀접하게 연관이 되어 있는 부분들이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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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