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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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1. 죽은 자 vs 죽지 않는 자
유저들의 투입으로 페스타 폭주 상태는 안정 국면에 접어들었지만 그것이 타나토스 전역이 안전해졌다는 의미는 아니다.
“아직 멀었나!”
“조금만 더 가면 됩니다.”
마을에 머무는 기간보다 길 위에서 보내는 일이 더 많은 사람들. 이를테면 상인이나 여행자들에게 있어 이번 사태는 악몽이나 다름없었다. 우선적으로 인구 밀집 지역을 보호하다 보니 인구가 희박한 지역을 다니는 이런 사람들은 고립된 채 도움이 올 때까지 자력으로 버텨야만 하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언데드라고 하면 흐느적거리는 좀비 같은 것을 떠올리기 쉽지만, 타나토스의 언데드들은 추종자들도 혼자보다는 여럿이서 덤벼드는 것을 선호하는 강한 존재들이 대부분이다. 지금 그들을 쫓고 있는 언데드는 그나마 속도가 느린 편에 속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타고 있는 마차가 부서지지 않을까 걱정될 정도로 미친 듯이 달려야만 했다.
“…”
미나는 입술을 깨물었다. 본래 집행자는 임무 이외에는 가급적 정체를 들키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하지만 지금 같은 위기 상황에서는 아무래도 고민이 될 수밖에 없다.
힘을 숨긴답시고 오랜 시간 동안 동고동락해온 동료들이 희생되도록 놔둘 수는 없는 일. 그러나 여기서 정체를 드러내게 된다면, 또한 그것은 이들과 더 이상 함께 할 수 없게 됨을 의미하는 일이기도 하다.
급히 도망을 치고 있지만 짐이 잔뜩 실린 마차들의 내구성이 더 이상 버텨줄지도 의문이다. 제대로 포장되지도 않은 길을 그런 식으로 달리면 조악한 완충 장치로 지탱되는 축이나 바퀴 따위 언제 부서져도 이상하지 않은 일이다.
할 수 없다.
미나는 마침내 결심했다. 지금 같은 상황이라면, 공포와 죽음께서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 정든 유랑 극단은 떠나야겠지만, 이것 또한 결국은 언젠가 일어났을 일이다.
왈칵!
마차의 문을 열고 미나가 몸을 일으키자, 같은 마차를 타고 있던 동료들이 기겁을 하며 외친다.
“단장! 어쩌려고요!”
놀란 표정의 동료들을 보며 미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사를 건네려던 그 찰나.
꽝!
거대한 폭음이 뒤쪽에서 울려퍼진다.
급히 몸을 내밀어 뒤를 바라보자, 짐을 가득 싣고 있는 마지막 마차의 뒤쪽에서 폭발이 일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아차!”
미나는 그제서야 자신이 맡고 있던 존재 하나를 깨닫고는 날렵하게 공중으로 몸을 뒤집으며 마차 위에 올라섰다.
“이 녀석이…”
마차 위에 올라서자 상황이 명백하게 드러났다. 백골로 만들어진 지네 같은 것이 구불텅 거리며 행렬의 후미를 향해 이빨을 드러내는 순간, 그것을 향해 무언가를 쏘아대는 한 명의 소년이 바로 방금 전 일어난 폭발의 원인이었다.
“아사드!”
미나는 그렇게 외치며 미친 듯이 달리는 마차의 지붕들을 타고 넘으며 행렬의 후미를 향해 움직이기 시작했다. 아무리 그녀가 유랑 극단에서도 손꼽히는 곡예술사라고는 해도, 지금 같은 상황에서 그 같은 묘기를 보이는 것은 너무나 위험천만한 일이었기에 마차를 모는 사람들은 물론이고 그 안에 타고 있던 사람들까지도 절로 비명 같은 소리를 질러야만 했다.
아사드는 뒤로 흘깃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달려오는 미나를 보았지만, 개의치 않고 행렬의 뒤를 쫓아오는 백골 지네를 향해 양손으로 연거푸 불덩이를 날렸다.
꽝! 꽈광!
원래 그의 능력은 조용히 상대의 살과 뼈를 태우는 꺼지지 않는 불의 속성을 지니고 있었지만, 어찌된 영문인지 백골 지네의 몸을 두드릴 때는 강렬한 폭발을 일으키고 있었다. 소리만 요란한 것이 아니라, 제법 폭발이 일어날 때마다 백골 지네의 다리가 부서져 나가고 몸을 움찔거리는 것이 제법 큰 타격을 주고 있는 것이 분명하다.
미나가 마지막 마차를 뛰어 넘어 옆으로 내려앉자, 아사드는 그제서야 입을 열었다.
“오셨습니까.”
하지만 아사드는 그렇게 말하며 그녀가 의미심장한 시선으로 바라보거나 말거나 계속 해서 불덩이를 날리며 백골 지네의 접근을 차단하는 일에 매진했다.
아사드는 지금까지 미나는 물론이고 극단의 사람들에게 자신이 지니고 있는 능력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집행자들의 행동에 휩쓸려 힘을 휘두르고 다녔다가 죽을 뻔 했던 일도 있고, 자신이 있는 장소에 어떤 위험 요소가 있는지 또한 모르는 상황에서 무작정 힘을 드러낼 정도로 이 소년은 어리석지 않았던 것이다.
다행히 아사드는 꽤 영리한 축에 속했고, 사회의 밑바닥을 헤집고 다닌 전력이 있는 탓에 능력만이 아닌 자신의 성격이나 생각 같은 것을 숨기는 것에도 꽤 능숙했다. 극단의 단원들은 처음에는 이 정체 모를 소년의 존재를 꽤 꺼림직하게 생각했지만,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차츰 경계를 풀고 그 성실함을 높이 사기 시작했다.
그대로 시간이 지났다면, 아사드는 아마도 이 유랑 극단에 제법 잘 녹아들 수도 있었으리라. 하지만 갑작스럽게 나타나 유랑 극단의 행렬들을 덮치기 시작한 백골 지네로 인해 그 모든 것이 망가지고 말았다.
사람은 자신과 다른 부류를 두려워하게 마련. 지난 시간 동안 아사드가 살펴본 바로는 이 극단에 속한 이들은 자신을 죽음 직전으로 몰아넣었던, 잔상을 다루는 사도 같은 이들이 아닌 극히 평범한 사람들에 불과했다. 그런 이들에게 있어 이렇게 자유자재로 불을 다루는 자신 같은 존재가 어떻게 보일까. 당장 자신의 옆에 다가온 단장조차도 자신에게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지 않은가.
역시 떠나야 할까.
아사드는 쓴웃음을 지은 채 그런 생각을 떠올리며 다시 불덩어리를 집어 던졌다.
키에에엑!
별 생각 없이 던졌던 불덩이지만, 이번에는 별로 좋지 않은 곳에 맞았는지 백골 지네의 입으로부터 끔찍한 비명 소리가 터져 나왔다.
“뿔이 약점이었던 건가.”
그때 옆에서 미나의 중얼거리는 소리가 들려온다. 조건 반사처럼 미나를 향해 시선을 던졌던 아사드는 방금 전과는 전혀 다른 그녀의 모습에 화들짝 놀랐다.
어느 틈엔가 그녀는 어둠을 연상시키는 칠흑빛의 무언가로 몸을 감싸고 있었다. 아사드는 그것을 보는 순간 깨달았다. 힘을 숨기고 있었던 것은 자신만이 아니라는 사실을.
순간 미나의 몸이 허깨비처럼 사라진다. 마차를 쫓던 백골 지네가 촉수인지 다리인지 모를 것을 휘둘러 그녀를 공격했지만, 이미 그림자와 현실에 반쯤 걸쳐져 있던 그녀의 몸은 그 공격을 유유히 피하며 놈의 머리 위에 올라섰다.
“핫!”
그녀는 어느 틈엔가 빼단 단검을 놈의 뿔에 휘둘렀다.
키에에에엑!
그러자 백골 지네는 찢어질 듯한 비명을 지르며 마구 몸을 뒤틀기 시작했고, 발광하는 녀석의 머리에서는 검은 기운이 분수처럼 쏟아져 내리기 사작한다.
“마차에 닿지 않게 기운을 태워버려!”
“네!”
미나의 외침을 들은 아사드는 온 몸에 불길을 두른 채 마차에서 뛰어 올랐고, 쏟아져 내리는 검은 기운들을 자신의 불꽃으로 차단해 버렸다.
꽝! 꽈과광!
마치 천둥이 터지는 듯한 굉음과 함께 백골 지네가 뿜어내는 검은 기운은 아사드가 일으켜 세운 불의 벽에 부딪히며 터져 나갔다.
“이럴수가…”
앞쪽의 마차에 타고 있는 이들은 보지 못했지만, 뒤쪽 마차에 타고 있는 이들은 확실하게 보았다. 자신들을 이끌고 있던 단장과, 얼마 전 합류했던 정체 불명의 꼬마 녀석이 바라보는 것조차 두려운 거대한 백골 지네를 박살내는 광경을.
“멈추지 말고 그대로 달려! 명령이다!”
그런 단원들에게 다시 한 번 미나의 외침이 쩌렁쩌렁 울려 퍼진다. 생각 같아서는 단장과 소년을 돕고 싶지만, 지금 상황에서 자신들이 나서봐야 오히려 짐밖에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들은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신전에서 기다리겠습니다!”
“꼭 오셔야 해요!”
단원들은 그렇게 외치면서도, 어쩌면 이것이 이별이 될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떠올렸다. 단장이나 소년이 지금까지 힘을 숨겨야만 했던 것에는 분명 이유가 있을 터. 그것이 드러난 이상, 더는 자신들과 함께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어떤 예감을 떠올린 것이다.
“흥.”
코웃음을 치면서도 미나의 입가에는 미소가 번진다. 그래도 지난 세월이 영 헛되지 만은 않았다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허나 그것도 잠시 그녀의 표정은 이내 차가운 암살자의 그것으로 변한 채 발버둥치는 백골 지네의 몸에 연신 타격을 가하고 있었다.
비록 형진에게 어이없을 정도로 무력하게 패배하긴 했지만, 그녀 역시 집행자로서의 실력은 일류다. 그저 형진이 너무 빨리 너무 강해진 것이 문제였을 뿐.
백골 지네는 자신의 힘을 온전히 드러낸 미나와 아사드의 상대가 되지 못한 채 차츰 부서지며 불타올랐고, 그렇게 한참을 발버둥치다가 마침내 한줌 연기처럼 풍화되어 모습을 감추었다.
“후우우우…”
오랜 만에 실력을 유감없이 드러낸 미나는 깊은 숨을 내쉬며 스러져 가는 백골 지네를 바라보다가 이내 시선을 아사드에게로 돌렸다. 아사드 또한 사라져 가는 백골 지네를 바라보다가 그녀의 시선을 느끼고는 고개를 돌려 마주 보았다.
잠시 그렇게 말없이 바라보던 두 사람 가운데 먼저 입을 연 쪽은 아사드였다.
“단장님도… 사도였습니까.”
아사드의 말에 미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바로 인정하는 대답이 흘러나오자 아사드는 쓴웃음을 지어 버렸다.
“그럼 처음부터 제가 누군지 알고 있었겠군요.”
“그것도 맞아.”
“그럼… 저는 이제 어떻게 되는 겁니까.”
“글쎄, 나도 그건 알지 못하는 일이라.”
미나가 받은 명령은 아사드의 일을 빠짐없이 살피라는 것 뿐이었기에 그런 식의 대답밖에는 할 수 없었다. 하지만 바로 그 때,
어디선가 한 무리의 사람들이 그들이 있는 곳 주위로 내려 앉는다.
“…”
“…”
갑작스런 그 등장에 놀라 바라보는 두 사람 앞에, 짙은 빛의 두건과 장포로 몸을 감싼 한 사람이 나섰다.
“형제여. 오오, 형제여. 그대를 기다리고 있었다오. 나의 형제여.”
아사드가 무슨 귀신 풀 뜯어 먹는 소린가 하는 표정을 짓는 순간 미나는 천천히 소년에게로 다가가 그를 등 뒤에 숨기며 말했다.
“우리 꼬맹이에게 용무가 있으면 나에게 먼저 말하시지.”
그러자 사내는 웃으며 답했다.
“그러지 않아도 그렇게 하려던 참이라네. 집행자여.”
미나의 얼굴이 구겨졌다. 자신이 집행자임을 알고 있다는 건, 이미 앞서의 전투를 다 지켜보고 있었다는 의미. 뻔히 이런 존재들이 옆에 달라붙어 있음에도 불구하고 눈치조차 채지 못하다니, 그야말로 집행자 망신이다.
자신이 기척을 눈치 채지 못할 정도의 상대가 수조차 많다. 과연 이 위기를 벗어날 수 있을까.
그런 그녀의 물음에 답하듯, 한 사람이 모습을 드러냈다.
듬직한 체구의 남자 하나가 얼굴을 반쯤 가린 눈가리개를 쓴 채 미나의 눈앞에 스르르 모습을 드러냈다. 미나는 움찔하며 방어 자세를 취하려다가 그 뒷모습이 어쩐지 매우 눈에 익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넌…”
그는 주위를 스윽 훑어보더니 미나에게 고개를 살짝 숙여 아는 척을 했다.
“오랜 만이군. 미나. 언제 아란에게 한번 들리지 그래. 보고 싶어 하던데.”
방금 모습을 드러낸 방법은 권능 같은 것이 아니다. 이 남자는 자신조차 눈치채지 못할 정도의 은신과 잠행으로 계속 곁에서 지켜보고 있었던 것이다.
미나는 쓴웃음을 지었다. 어떻게 보면 악연이랄 수밖에 없는 이 남자의 등이 이번만큼은 더없이 듬직해 보인다는 걸 인정해야만 했기 때문이다.
갑작스럽게 모습을 드러낸 형진을 본 괴한들은 흠칫하며 뒤로 물러났다. 아직은 딱히 힘을 드러낸 것도 아니건만, 형진의 내면에서 느껴지는 무언가가 그들을 움츠러 들게 만들고 있는 탓이다.
“미안하지만.”
형진은 괴한들에게 그렇게 말하고는 스윽 움직여 아사드의 등뒤로 다가서더니, 다짜고짜 소년의 등에 손을 쑤셔 박았다.
“커헉!”
아사드는 예상치 못한 기습에 피를 토했지만, 형진은 아무렇지도 않은 표정으로 그의 몸에서 무언가를 꺼내어 가졌다.
“좀 아프겠지만, 죽지는 않을 테니 걱정 마라. 집행자를 사칭한 네 죄는 무거우나, 스스로 나서서 사람들을 구한 점을 참작해 공포와 죽음께서 처벌을 유예해 주기로 결정하셨다.”
“크으으…”
“이것은 유예일 뿐, 사면이 아니다. 명심해라.”
갑작스런 상황에 놀라 어쩔 줄 모르던 미나는 그 말을 듣고서야 정신을 화들짝 차리며 아사드를 안아들고는 그에게 포션을 먹여 주었다.
형진은 그런 둘의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이내 못박힌 듯이 자신들을 바라보고 있는 괴한들에게 말했다.
“미안하지만, 너희들이 원하는 건 나에게 있다. 어떻게 할 텐가. 구현자들이여.”
그렇다. 지금 모습을 드러낸 이들은 바로 아사드가 지닌 파편과 그가 일으킨 불의 힘을 따라온 구현자들이었던 것이다.
“크크크크…”
하지만 압도적이라고 밖에 할 수 없는 형진의 힘을 느끼면서도 구현자들은 물러서거나 하지 않았다. 오히려 기괴한 웃음을 터뜨리는가 싶더니, 갑자기 모두 함께 전신에서 폭발하듯 불길이 터져 나오며 그대로 불덩이로 화해 버린다.
그렇게 불타오르는 구현자들에게서 마치 합창하는 것 같은 느낌으로 전혀 다른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두쿵!
순간 형진은 자신의 심장으로부터 마치 거대한 북소리와도 같은 울림이 터져 나오는 것을 느꼈다.
이미 죽은 자와, 그것으로부터 태어나 죽지 않는 자의 첫 만남은 마침내 이렇게 이루어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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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셔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