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69
00569 129. 나비효과 =========================
일단 그렇게 구동 체계를 표준화 시키는 일을 시작하자, 요안나가 조심스럽게 말을 건넸다.
“저기…”
“또 왜? 무슨 문제야?”
“문제라기보다는, 이런 식으로 구동 체계를 표준화시켜서 판매하게 되면 군사용으로 전용할 가능성이 있지 않나 해서요.”
“아, 그거라면 됐어. 내버려 둬.”
“네?”
요안나는 깜짝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차피 하지 말란다고 안 할 놈들도 아니니까. 기왕 할 거면 허가 받으라 그래. 물론 생산되는 구동 체계에는 일련번호를 넣어야 겠지.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확인되지 않도록. 에이씨, 이건 뭐 일이 끝이 없어?”
“하하…”
형진의 말대로 군사용으로 쓰지 말라고 해서 그 말을 철석 같이 지킬 거라는 기대 따위 처음부터 하지도 않았다. 멀리 볼 것도 없이 경찰용으로 먼저 판매한 호버 보드 같은 경우만 봐도 경찰 기동대 산하에 SWAT 조직을 밀어 넣는 편법으로 군사용도의 가능성을 시험해 볼 정도다.
어차피 완전히 막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판매된 구동 체계에 대한 관리를 좀 더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다. 엔진에 일련번호를 찍어 넣듯이 구동 체계에도 일련번호를 넣어 이 녀석이 어떻게 사용되었는가 하는 사항을 새롭게 자리 잡게 될 위성 체계를 통해 감시하면 되는 일이다.
“감시는 미라지 코어 내부에서 하는 것보다 엘리시온에서 하는 편이 낫겠어요.”
“잘 됐군. 엘 파르드에서 똘똘한 애들 몇 불러다가 시키면 되겠네. 아니다. 요정들 시키면 딱이겠군. 걔들 시켜.”
“제랄딘님이랑 상의해야 겠군요. 그렇게 처리할게요.”
곧바로 왕성 라이언하트 한켠에 통합 정보실이 들어섰다. 지구와 타나토스, 그리고 차야 메사로부터 전해지는 위성 정보를 관리하는 장소다.
“오오오! 이건 그야말로 비밀리에 세계를 지배하는 악의 비밀 기지스러운 느낌!”
“큭큭! 오랜 만에 내 오른손에 잠든 검은 용에게 먹이를 줄 수 있겠군.”
“세계를 굽어보는 이런 자리를 원했어!”
서로 다른 세계들의 정보를 통합 관리하는 역할은 요정들의 중2병을 자극하는 아주 훌륭한 소재였고, 그렇지 않아도 반복되는 왕궁 생활에 다소 싫증을 느끼고 있던 요정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았다.
어쨌든 그걸로 지구 쪽의 일은 마무리 되나 싶었지만, 그게 또 그렇게 만만치가 않았다. 자동차와 선박은 그런 식으로 구제를 받았지만, 또 하나의 운송 수단이 남아있었기 때문이다.
-비행기의 시대는 종언을 고하는가.
-자동차와 선박이 제2의 도약을 맞이한 이때, 비행기만 따돌림 당하는 이유는.
-항공 우주 산업, 갈림길에 서다.
언론들이 떠드는 바대로, 사실 정말로 타격을 받은 것은 따지고 보면 바로 항공 우주 산업이다. 특히 심각하게 타격을 받은 것은 바로 로켓 관련 기술이었는데, ‘하늘’호의 항해는 그 자체로 심장에 칼을 꽂은 거나 다름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새로운 기술에 의해 기존 기술이 도태되는 거야 어쩔 수 없는 일이라 할지라도, ‘하늘’호 같은 운송 수단이 실제로 사용되는 순간 기존의 로켓 기술은 완전히 묻혀 버린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특히나 미래를 내다보고 천문학적인 비용을 들여 이런 기술을 축적해 왔던 몇몇 강대국들은 자신들의 손 밖에서 하나씩 실현되어 가는 그러한 미래 기술들을 바라보며 어떻게 해야할지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버리자니 지금까지 들인 돈이 아깝고, 그렇다고 놔두자니 자동차나 선박이 날아다니는 시대에 비행기나 로켓은 구시대의 유물 밖에 안 된다. 대기권 내에서든 우주든 간에, 도무지 수지 타산이 맞지 않게 되어 버린 것이다.
“비록 자동차나 선박이 하늘을 날게 되었다 할지라도, 비행 그 자체에 대한 데이터는 우리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습니다. 고고도에서의 비행 특성 같은 걸 땅위를 굴러가는 자동차나 만들던 자들이 알 도리가 있겠습니까?”
“그렇습니다. 어차피 자동차 역시 호버 보드와 마찬가지로 고도 제한이 걸릴 것이 분명합니다. 안전을 위해서라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니까요.”
“그곳에 우리가 살 길이 있습니다. 고도 제한을 넘어서는 공간에서의 비행이라면, 우리가 전문이니까요.”
항공 관련 기업들이 그렇게 미라지 코어에 손을 뻗으려는 움직임을 보이자, 항공 우주국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들 역시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 당장 미라지 코어에 의해 실현되기 시작한 달 개발조차 멀뚱히 바라보며 손가락만 빨고 있어야 하는 판국이다. 이 상태에서 항공 관련 기업들이 우주 항행 능력을 갖춘 비행체를 손에 넣는 순간, 지난 세월 엄청난 비용을 들여 유지해왔던 항공 우주국들이 모조리 무용지물이 되어 버리는 것이다.
하지만 문제가 있었다. 이런 항공 우주국들이 지금까지 쌓아온 정보의 양은 실로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 물론 ‘하늘’호와 같은 운송 수단이 등장하면, 실질적인 우주 개발에서는 완전히 밀려나 버릴지라도 그동안 모아온 자료와 연구 성과들은 절대로 가볍게 볼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만약 미라지 코어가 만만한 회사였다면, 미국은 당장에 공권력을 동원해서라도 그 기술을 빼앗아 왔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지가 못하다. 그런 짓을 저질렀다가는 미국이라는 국가 자체가 조각조각 찢겨져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 되어 버린 것이다.
“후… 차라리 미라지 코어가 다른 나라의 회사였다면 이 정도로 골치가 아프지는 않았을 텐데.”
그렇지 않아도 새치 때문에 희끗했던 머리가 이제는 완전히 반백이 되어 버렸다. 얼마 전에는 자동차 회사와 조선소 때문에 일개 회사에 가서 다른 나라 정부 수반들과 함께 아쉬운 소리를 해야 했는데, 이번에는 규모가 훨씬 크다.
“저들의 반응은 어떻게 예상이 되나.”
“민영화와 더불어 지분을 요청할 가능성이 가장 큽니다.”
“민영화라니. 허…”
예상했던 수순이긴 하지만 너무나 아프다. 하기야 이대로 쥐고 있어도 별다른 방법이 있는 건 아니지만, 그동안 들인 돈과 노력이 얼마인데.
“그래도 정부에서 지분을 쥐고 있으면 계속해서 영향력을 발휘할 수 있습니다. 이 상태로 고사시키는 것보다는 그쪽이 낫지 않겠습니까.”
“후…”
물론 끝까지 국가에서 틀어쥔 채로 다른 업체들을 통해 부품 같은 걸 수급하는 형태로 독자적인 개발 계획을 이어나가는 방법도 있다. 하지만 문제는 예산이다. 과연 국민들이 미라지 코어와의 제휴가 이루어지지 않은 채 독자적으로 우주 개발을 이어가는 걸 용납할 것인가 하는 점이 결정적인 문제인 셈이다.
게다가 그런 식으로 해도 미라지 코어가 항공 우주국으로 유통될 구동 체계에 고도 제한 같은 걸 걸어버리면 그야말로 항공 우주국은 낙동강 오리알 신세가 될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남들은 다 우주 전함 같은 걸 타고 우주를 누비는데 혼자서 로켓을 쏘아올린다고 법석을 떨 수도 없는 일 아닌가.
이것은 처음부터 승자와 패자가 결정되어 있는 게임이었던 셈이다.
결국 항공 관련 기업들이 미라지 코어와 업무 협약을 맺고 지분을 할당한 지 일주일이 채 못되어 전 세계에서 가장 큰 규모를 자랑하는 미 항공 우주국이 민영화를 선언했다. 지분 비율은 연방 정부와 미라지 코어가 반씩 나누어 가지는 형태가 되었지만, 결국 우주 개발의 주도권과 명분은 이로써 완전히 넘어가 버린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미 항공 우주국의 항복 선언이 있은 뒤에도 러시아나 중국과 같은 다른 나라의 항공 우주국들은 어떻게든 항공 우주국을 자국 정부의 손에서 놓지 않으려고 안간힘을 썼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미국의 항공 관련 기업과 미 항공 우주국이 전격적으로 달 개발에 직접 참여가 결정되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보도되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그들 역시 항복 선언을 하고 말았다.
달 개발의 지분은 각국 정부가 희망과 생명 재단에 기부하는 액수를 통해 결정되기 마련이지만, 그냥 멀뚱히 서서 뒷짐 지고 구경만 하는 것과 그 현장에 직접 참여하는 것은 그야말로 하늘과 땅 만큼의 차이가 있었다. 누구나가 이미 알고 있듯이, 달 개발은 고작 시작점에 불과한 일이다. 그 뒤에 어떤 미래가 펼쳐질지 확인하기 위해서도 직접 참여는 그만큼 큰 의의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 식으로 빅3라고 할 수 있는 항공 우주국들이 민영화의 길로 들어서자, 다른 나라들의 항공 우주국들도 결국 버티지 못하고 민영화의 대열에 합류했다. 그렇게 지구상의 항공 우주 산업체들이 미라지 코어라는 하나의 중심으로 뭉치자, 마침내 형진은 그들에게 먹이감을 던져 주었다.
오랜 만에 언론 앞에 모습을 드러낸 프리츠 베커의 말과 함께 하늘로부터 기괴한 형상의 우주선 한척이 내려온다.
“이것이 바로 기본형 우주 개발용 수송선, 스파이더입니다.”
앞서 우주로의 항해를 처음으로 선보였던 ‘하늘’호와는 다르게, 이 함선은 철저하게 기능성을 우선하고 있었다.
그 형상은 거대한 거미나 문어를 연상시켰다. 둥글둥글한 몸체에 무언가를 잡아채기 위한 거대한 세 개의 팔이 부착되어 있는 형태이기 때문이다.
“달 표면에 투하할 물은 지구에서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우주 상에 존재하는 소행성 등에서 확보될 예정입니다. 스파이더의 가장 중요한 임무는 그러한 소행성을 채취해 달까지 가져가는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러자 곧바로 기자들이 질문을 요청했다. 하지만 프리츠는 진정하라는 듯이 손을 들어 보이고는 다시 말을 이었다.
“얼핏 보기에 이 우주선은 그다지 큰 운송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 같지 않은 느낌입니다. 게다가 세 개의 거대한 팔도 정교한 작업과는 거리가 있어 보이는 느낌이죠. 어쩔 수 없습니다. 이것은 다른 부분을 제외하고 수송이라는 부분에 특화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프리츠가 그렇게 설명을 마치고 스파이더를 향해 손을 들어보이자, 발이 세 개 달린 거미와 같은 형상의 우주선은 천천히 이륙하더니 근처에 쌓여 있던 컨테이너 묶음을 향해 다가갔다.
“이 컨테이너들은 우주 공간에서의 활용을 위해 특수 제작한 것들입니다. 얼핏 보기에는 콩깍지와 비슷한 형태지요.”
사실 콩깍지라기보다는 MOSS형 LNG운반선을 연상시키는 모습이었지만, 지금 중요한 것은 그런 것이 아니다. 지금 중요한 것은 저 작은 스파이더가 과연 자신의 몸체보다도 훨씬 큰 컨테이너들을 옮길 수 있겠는가 하는 점이다. 소행성을 가져다 달에 떨어뜨리는 작업이 가능하려면, 저 정도 화물 정도는 가뿐하게 운반이 가능해야만 한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다소 불안스러운 시선 앞에서 스파이더는 자신보다 몇 배나 큰 규모의 컨테이너를 세 개의 다리로 붙잡더니, 그대로 둥글둥글한 작은 몸체를 컨테이너에 연결시켰다. 그러자 곧이어 웅웅거리는 소리와 함께 컨테이너와 스파이더의 선체가 잠시 공명을 일으켰고, 그 소리가 끝남과 동시에 하나로 연결된 거대한 선체가 공중으로 둥실 떠올랐다.
“우와!”
“엄청나다!”
곧바로 카메라 플래시 터지는 소리와 함께 사람들에게서 거대한 탄성이 흘러나왔다. 하지만 프리츠가 진짜로 전달하고자 하는 내용은 이제부터였다.
“달과 같은 천체를 개발하기 위해서는, 이런 수송선이 많이 필요합니다. 그냥 많이도 아니고 아주 아주 많이 필요하죠. 그래서 저희 미라지 코어는 세계의 모든 조선소와 항공 우주국에 이 스파이더와 컨테이너의 건조, 그리고 그것을 운용할 인원의 교육을 의뢰하는 바입니다.”
지금까지처럼 혼자 다 하겠다는 얘기가 아니다.
실제로 우주 개발에 사용될 함선을 만들고, 그것을 운용할 인원을 각국으로 하여금 스스로 교육시킬 기회를 부여한 것이다.
형진이 던져준 먹이감은, 단순히 새로운 수송선의 공개가 아니라 그것에 대한 세계 규모의 발주였던 것이다.
프리츠가 말한 대로 우주개발에는 엄청난 양의 운송 수단과 그것을 운용할 인력을 필요로 한다. 그렇지 않아도 이것 저것 신경 쓸 일이 많은 형진에게 있어서 이런 단순 반복 작업은 귀찮기만 한 일에 불과했지만, 지구의 인류들에게 있어서는 이 거대한 물량의 발주만으로도 관련된 국가들이 단숨에 호황에 접어들 정도의 대규모 사업이 아닐 수 없다.
곧바로 각국의 제철소가 풀가동되기 시작했고, 스파이더와 컨테이너를 만들기 위한 드라이독이 마련되었다. 각국의 항공 우주국들은 자신들의 나라에 배정된 스파이더 운용 인원의 선발에 들어갔고, 사람들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호황에 어쩔 줄 몰라 했다.
“허세와 망상님. 수고 하셨습니다.”
“크윽… 너 이 녀석. 날 말려 죽일 셈이냐.”
“설마요.”
당연한 얘기지만 프리츠가 시연장에서 선보인 스파이더와 컨테이너는 허세와 망상 혼자서 만들어낸 물건이다. 호버 보드와는 차원이 다른 거대한 물품인지라, 허세와 망상도 며칠 동안 꼬박 밤을 새야만 했다.
하지만 형진은 그런 허세와 망상에게 다시 도면을 하나 내밀었다.
허세와 망상은 자신 앞에 도면이 내밀어지자 그것만으로도 흠칫 놀라며 몸을 떨었다.
“이, 이건 또 뭐야?”
“별 거 아닙니다. 순찰정이죠. 별로 큰 것도 아니에요. 허세와 망상님의 능력에 비하면 소소한 물품이죠.”
“…”
뒤에서 그 모든 일을 지켜보고 있던 아유무는, 허세와 망상을 노려보는 형진의 미소를 보는 순간 어쩐지 교미 후에 수놈을 잡아먹는 사마귀를 떠올리고 말았다.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안녕히 주무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