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595
00595 135. 접촉 =========================
황혼의 경계를 통과하자 지구에서 보았던 우주와는 다른 느낌의, 좀 더 은은한 느낌의 어둠이 들어찬 공간이 드러난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하늘’호의 항해로부터 보았던 우주와는 어쩐지 느낌이 다르다고 해야 하나.
분명 어둡긴 한데, 완전한 칠흑이 아니라 희미한 느낌의 옅은 아지랑이가 낀 것 같은 그런 어둠이다. 어떻게 보면 지구 쪽의 우주가 더 어둡다고 느껴질만한 그런 공간이랄까.
잠시 주위를 돌아보며 자신이 알던 우주와는 다른 이질적인 공간의 모습을 살피던 형진은 이내 인벤토리로부터 날렵한 형상의 비행체 하나를 꺼냈다.
전체적인 외형은 근접 항공 지원용 무인기를 확대시켜 놓은 듯한 느낌. 하지만 자세히 살펴 보면 무인기와는 다르게 탑승 가능한 운전석이 장착되어 있다 다리미를 연상시키는 삼각형 구조는 동일하지만 중심적인 구조는 스포츠카의 그것을 닮아 있음을 알 수 있다.
이 비행체는 희망과 생명, 그리고 요안나가 사용하는 부양형 자동차의 기본 틀에 외우주 활동을 전제로 한 추진 장치와 강력한 외부무장을 추가한 것이다. 이 추가 부품은 탈착이 가능해서, 기존의 부양형 자동차에 옵션 형태로 부착할 수 있다. 이를테면 모듈화를 통한 기능 확장 버전인 셈이다.
전용의 스마트 키를 꺼내어 출입문을 개방하자, 독수리의 날개를 닮은 형태의 문이 위쪽으로 열린다. 시저 도어나 걸 윙 도어와는 다른, 팔콘 윙 도어다. 팔콘 윙 도어의 가장 큰 특징은 문 자체가 이중 경첩 구조로 되어 있어서 옆쪽의 공간이 협소한 상태에서도 자유롭게 문을 열 수 있다는 점이다.
차체의 옆면에 추가 모듈을 장착한 상태에서는 기존의 방식으로는 문을 열고 닫기가 매우 곤란할 수밖에 없는데,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도입한 것이 바로 팔콘 윙 도어이다.
운전석에 자리 잡은 형진은 문을 닫고 기밀 상태를 확인한 다음, 실내에 공기를 채웠다. 그리고 아무 문제가 없음을 확인하자, 위성으로부터 전송받은 폭발 위치를 향해 비행을 시작했다.
‘하늘’호와 같은 대형의 범선과 비교하자면 추가 모듈을 장착한 자동차는 여러모로 차이점을 가진다. 우선 작은 덩치로 인해 더 날렵한 움직임이 가능하지만, 장거리를 운항하게 될 경우에는 상대적으로 가속력이 부족하여 최고 속도는 아무래도 범선에 비해 부족할 수밖에 없다.
물론 여기서 장거리라는 것은 최소 행성간 이동을 전제로 한 것이고, 궤도상의 순찰이나 요격에 있어서는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시동을 걸고 가속을 하자, 형진이 탄 시작형 순찰정은 빠른 속도로 행성 스하의 하나뿐인 위성을 향한 질주를 시작한다.
행성 스하의 위성은 화성의 위성인 포보스나 데이모스 같은 불규칙한 형태를 하고 있다. 형태를 봐서는 처음부터 스하의 위성으로 만들어졌다기 보다는 앞서 언급한 포보스나 데이모스처럼 근처의 소행성이 스하의 인력에 사로잡혀 위성이 된 것이 아닐까 싶다. 물론 보다 정확한 부분은 전문적인 천문학자의 분석이 필요한 부분이겠지만.
‘하늘’호처럼 순간적으로 도착하는 수준은 아니지만, 가속을 시작하자 작은 위성의 모습이 점차로 확대되어 가기 시작한다. 좀 더 속도를 내면 더 빨리 도착할 수도 있겠으나, 형진은 일부러 속도를 늦췄다. 근처에 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를 탐지하기 위해서다.
조종간에 달려있는 버튼 하나를 누르자, 추가 모듈의 한쪽이 열리더니 전방을 향해 소형 위성들이 빠른 속도로 발사되었다.
적당한 위치를 겨냥해 위성 열 기 정도를 발사하고 나자, 형진은 전진을 멈추고 위성들로부터 정보가 들어오기를 기다렸다.
하나, 둘, 셋.
느릿하게 셋을 셀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마침내 발사된 위성으로부터 정보가 들어온다. 우주 공간을 떠다니는 자잘한 물체들에 대한 정보들이 수집되자 차량에 탑재된 컴퓨터가 그것을 분석해 위험 요소를 걸러내는 작업을 시작한다.
그런 식으로 주위의 정보를 확인하던 형진은 문득 일반적인 물체와는 구별되는 무언가가 우주 공간에 표류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었다.
“이건…”
위성을 통해 파악된 그것은, 행성 스하에 살고 있는 밤의 종족을 닮아 있었다. 어두운 우주를 배경으로 표류하고 있는 중이라 일반적인 시각적 탐색으로는 찾기조차 어려운 그런 모습이다. 하지만 위성이 파악한 그것은 일반적인 밤의 종족보다 훨씬 큰 규모를 가지고 있었다. 밤의 종족 중에서도 상당히 큰 덩치를 가진, 이 행성에서 그의 첫 번째 추종자가 되었던 스하와 비교해도 몇 배는 될 것 같은 느낌이다.
“흠…”
형진은 위성을 접근시켜 해당 물체를 좀 더 면밀히 살폈다. 하지만 위성들이 접근해도 그 물체는 달리 움직이는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마치 차디찬 우주공간의 냉기에 그대로 얼어버리기라도 한 것처럼.
잠시 더 그것을 살피던 형진은 위성들은 물체 주위에 배치한 다음, 차량을 몰아 폭발이 일어났던 장소로 향했다.
다행히 폭발의 흔적은 그리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었다. 주위를 떠다니는 잔해는 물론이거니와, 위성 표면에도 명백하게 그 자국이 남아 있었던 탓이다.
차에서 내린 형진은 주위를 떠돌고 있는 잔해 가운데 하나를 손으로 움켜 잡았다.
“이건… 뼈조각이군.”
잘게 부서진 파편 상태이긴 했지만, 뼈조각에는 은은하게 언데드의 힘이 남아 있었다. 잘은 모르겠지만, 위성의 표면을 통해 언데드를 들여보내려 했던 것만은 분명한 모양이다.
하지만 왜 하필 이곳이었을까. 티폰 같은 녀석도 아니고 고작해야 해골 병사 따위로는 행성 스하에 영향을 미칠 방법이 달리 없을 텐데. 창이나 화살 같은 걸 던져 봐야 닿을지조차 의문이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던 형진은 일단 주위의 잔해들을 끌어 모아 작은 흔적조차 남지 않도록 깔끔하게 소멸시켜 버렸다. 비록 작은 조각에 불과하더라도 언데드의 잔해 따위가 자신의 영역에 남아 있는 건 그리 기분 좋은 일이 아니니까.
위성 표면에 남아 있는 흔적에서도 별다른 것은 찾을 수 없었다. 의외로 폭발의 규모가 컸던 모양인지, 움푹 패인 위성 표면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점을 찾아보기도 어려웠다.
일단 인공위성을 발사해 이곳 역시 황혼의 결계로 감싸 버린다. 만에 하나 비슷한 시도가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기 위한 일이다. 행성 스하에 비하면 훨씬 작은 규모의 천체이다 보니 위성망을 구축하고 황혼의 결계를 덮어씌우는 일은 순식간에 끝나버렸다.
위성에 대한 일을 마친 형진은 앞서 발견한 미확인 물체로 다가갔다. 하지만 밤의 종족을 닮은 비정형의 무언가라는 것을 제외하고는 달리 알 수 있는 것이 없었다.
“스하 녀석에게 물어봐야 하나.”
만에 하나, 이것이 일종의 부비트랩일 가능성을 염두에 두어야만 했기 때문에 형진은 자신의 또 다른 영역으로 설정된 위성 표면에 작은 성역을 설치하고 그 안에 미확인 물체를 끌어다 놓았다.
그렇게 조치를 취해 놓고, 스하를 불러들이기 위해 성역 내부의 환경을 조절하고 있는데 지금까지 영락없이 죽은 줄만 알았던 그 물체가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한다.
“죽은 게 아니었나.”
형진은 영혼포식자를 꺼내 들고 그것을 겨눈 채 상대의 움직임을 지켜보았다.
비정형의 검은 물체는 잠시 꾸물거리더니 이내 넓게 퍼져 있던 몸을 천천히 응축시키기 시작했고, 잠시 시간이 지나자 스하와 비슷할 정도의 크기를 지닌 밤의 종족으로 모습이 바뀌었다.
밤의 종족이 인간과는 다른 종족임을 알고 있었던 형진으로서도 이런 식으로 형체가 자유자재로 변화하는 모습에는 조금 놀랄 수밖에 없었다.
상대가 완전히 밤의 종족의 모습을 되찾자, 형진은 영혼포식자를 놈에게 겨눈 채 질문을 던졌다.
“넌 누구냐. 어째서 이곳에 있는 것이지.”
그러자 놀랍게도 녀석에게서 대답이 돌아왔다.
-저, 안식과 동굴, 모신다, 추종자, 노예, 시종, 여신, 뜻, 받들다, 이곳, 신, 만난다.
조사 없이 단어의 나열만으로 이루어진 내용. 게다가 음성을 기반으로 한 것조차 아니고, 형진의 시야에 문자로서 표시되는 형태다. 원리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도 집행자들이 사용하는 메시지와 비슷한 것이 아닐까 싶다.
“안식과 동굴을 모시는 추종자이고, 이곳의 신을 만나기 위해 온 것이라고?”
-긍정.
“무엇 때문에? 선전 포고라도 하러 온 건가?”
-이해, 불능.
“싸우자는 뜻을 밝히러 온 거냐고.”
-부정.
“그럼?”
-도움, 요청.
“도움? 나에게?”
그 말에 스스로를 안식과 동굴의 추종자라고 밝힌 밤의 종족은 잠시 대답을 하지 않은 채 형진을 물끄러미 바라보더니, 땅에 넙죽 엎드려 말했다.
-부탁, 부탁, 부탁, 부탁.
“그러니까, 뭘?”
-여신, 감금, 파괴와 재생, 나쁘다, 여신, 착하다.
“…”
답답하긴 했지만, 그래도 대충 의미는 알아들을 수 있었다. 요컨대, 안식과 동굴은 원래 착한 여신인데, 나쁜 파괴와 재생이 와서 감금하고 그녀의 능력을 갈취하고 있다… 뭐 이런 얘기인 모양이다.
“흠…”
대충 어떤 상황인지 그림이 그려지기는 하지만, 이 녀석의 말만 믿고 무턱대고 나설 수는 없는 일이다. 톡 까놓고 말해서 이 일이 자신을 끌어들이기 위한 파괴와 재생의 함정이 아니라고 누가 장담할 수 있겠는가.
“증거는?”
-여신, 착하다.
“그러니까, 착한지 나쁜지는 내 알 바 아니고, 네 말이 사실이라는 증거가 뭐냐고.
-여신, 착하다. 진실, 착하다.
“어휴, 답답해.”
어휘력이 부족한 건지, 그냥 맹목적으로 여신을 받드는 추종자인 건지 구분이 되질 않는다. 이런 답답한 녀석을 추종자라고 부리는 걸 보면 인내심이 상당해야 할 테니 그건 어느 정도 인정해야 할지도.
형진은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서 일단 스하를 불러들이기로 했다, 자기들끼리라면 좀 더 원활한 의사소통이 가능할 테니, 어느 정도 자세한 내막을 알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을 떠올린 것이다.
곧바로 황혼의 경계를 넘어 스하가 그에게 불려왔다. 스하는 형진을 보기가 무섭게 땅바닥에 머리를 조아리고 극상의 예를 취해 보였다. 처음에야 녀석도 다소 미심쩍은 부분이 있었겠지만, 형진이 내린 회복의 권능은 실로 대단한 것이어서 이제는 그가 신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인 모양이다.
“잘 지냈냐.”
끄덕. 끄덕.
“그래. 잘 지냈다니 다행이다. 실은 내가 너에게 부탁하고 싶은 일이 있어서 좀 불렀다. 저기 저 녀석 보이지?”
끄덕. 끄덕.
“저 녀석이랑 얘기 좀 해봐. 난 답답해서 통 대화를 나누기가 곤란해.”
끄덕.
스하는 알았다는 듯이 크게 고개를 끄덕이더니 상대에게 다가가 특유의 가랑잎 굴러가는 목소리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갑자기 모습을 드러낸 스하의 모습에 흠칫 놀라는 기색이던 상대도 스하가 뭔가 열심히 말을 걸자 이내 열띤 태도로 대화를 이어나갔다.
조금 옆으로 물러나서 가만히 대화하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기를 얼마나 했을까.
문득 놈이 형진에게 크게 머리를 조아리더니 갑자기 무언가를 꺼내 그에게 공손한 모습으로 바쳤다.
놈의 손바닥 위에 놓여진 그것은, 이 세계와는 어울리지 않는 찬란한 빛을 머금은 하나의 알이었다.
색이라는 것을 찾아보기 힘든 이 공간에서 그 알은 찬란한 무지개빛을 발하고 있었다. 크기는 어른 손바닥보다 조금 큰 정도. 알의 표면에서 흐르는 빛은 주위의 환경으로부터 알을 보호하기 위한 일종의 결계로 보인다.
좀 더 자세히 살펴보니, 알은 마치 심장이 울리듯 잔잔하게 맥동하고 있었다.
“이게… 뭐지?”
형진의 물음에, 놈은 대답했다.
-여신, 아이
“아이? 여신이 낳은 아이라는 얘기? 이 알이?”
-알, 껍질, 아이, 보호.
“흠…”
정확한 건지는 모르겠지만, 아이를 보호하기 위해 이런 알껍질 형태로 감싸버렸다는 뜻인가 싶다.
신의 아이라.
스스로도 완전하지는 않지만 신의 위계를 얻어가고 있는 상황이다보니, 자연스럽게 신의 아이라고 칭해진 이 알에 대한 호기심이 생겨난다.
형진은 조심스럽게 손을 가져가 알을 감싸고 있는 결계를 살폈다. 그것은 놀랍게도 어둠의 힘으로 가득 찬 이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이 믿기지 않을 정도로 순수한 신의 힘이었다.
놈은 형진이 아무런 장애 없이 그 결계와 접촉하는 것을 확인하자, 더 망설이지 않고 머리를 마구 바닥에 찧으며 자신의 진짜 목적을 밝혔다.
-여신, 아이, 엘리시온, 부탁, 부탁, 부탁, 부탁, 부탁, 부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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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고생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