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05
00705 159. 조치 =========================
사실 초대에 응하기는 했어도 완전히 의심이 사라진 것은 아니다. 무엇보다도 열둘이나 되는 아이를 키우고 있다는 말이 그런 의심의 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지만, 막상 정말로 꼬리를 하나씩 단 아이들이 빠아거리며 날아와 안기는 모습을 보니 뭐라고 표현해야 좋을지조차 모르겠다.
“얘들아. 인사해야지.”
“안녕하세여.”
“안녕하세여!”
열둘이나 되다보니 인사 하나에서도 서로 다른 성격이 그대로 드러난다. 한 손을 번쩍 들고 해맑게 웃으며 인사를 건네는 다희 같은 아이가 있나 하면, 수줍게 배꼽 인사를 하는 이슬이 같은 아이도 있다.
“저, 정말로… 열둘이나 있었군요.”
살짝 얼빠진 목소리로 그렇게 말하자, 미엘이 웃으며 설명해 주었다.
“일곱은 제 아이고, 다섯은 여기 하엘의 아이에요.”
“이, 일곱이요?”
“놀랍죠? 저도 처음에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아… 하하하…”
일곱 쌍둥이나 다섯 쌍둥이는 인간에게서도 보기 드문 일이지만 가뜩이나 숫자가 적은 흑요호로서는 문자 그대로 뒤집어질만한 일이다. 때문에 형진은 뒤늦게 조금이나마 후회하고 있는 중이다. 이 사실이 흑요호들에게 알려지기만 했어도 흑요호들의 마을과 진작부터 교류가 이어졌을 것이고, 그랬다면 최소한 포트니아 테론이 선수를 치는 일은 없었을 테니까. 물론 그랬다면… 왕성 라이언하트를 날아다니는 아이의 수가 지금의 몇 배가 되었을지도 모르는 일이긴 하다.
“빠아!”
“응?”
“아기에요?”
“그래. 아기. 너희들과 같아.”
형진이 대답하자 아기 공주들은 흑요호와 그녀의 아기 주위로 다가갔다.
“아기다.”
“꼬리가 없어.”
“어려서 그래.”
“세하보다도?”
“그건…”
이미 꼬리가 나 있기는 해도 하엘의 다섯 아이들 역시 그리 나이가 많은 건 아니다. 당연한 얘기지만, 미엘의 일곱 아이들 역시 한 살도 안 된 아이들인 건 마찬가지고.
“몇 살이에요? 꼬리도 나오고 말도 잘 하는 걸 보면 꽤 되었을 것 같은데.”
말을 하다 보니 뭔가 이상하다. 분명 이 열두 명의 아이들은 미엘과 하엘이라는 각기 다른 어머니에게서 났다고 했다. 그렇다면 먼저 태어난 쪽의 아이들이 좀 더 크거나 꼬리가 더 많이 나 있거나 하는 차이가 있어야 한다. 남자쪽이 신이라고 했으니 수명이야 그렇다 치더라도 흑요호 아이가 태어나는데 걸리는 시간을 생각하면 그것이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런데 막상 이 아이들은 척 보기에도 나이 차이가 거의 없어 보인다. 도대체 이게 어떻게 된 일일까.
미엘은 살짝 얼굴을 붉혔고, 하엘은 그런 미엘의 등 뒤에 숨었으며, 형진은 드디어 올 것이 오고야 말았음을 깨달았다.
“크흠… 그게, 아직… 전부 한 살이 안 됐습니다.”
“네?”
흑요호는 크게 놀라고 말았다.
“그, 그게 가능해요? 아니… 가능할 리가 없잖아요?”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하하하. 제가 정기가 좀 넘치다 보니.”
“…”
아니, 아무리 정기가 넘쳐도 그렇지.
하지만 흑요호는 이내 이 남자가 보통 사람이 아닌 신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렇다. 신이다. 한 평생이 걸리는 기나긴 임신 기간도, 아이를 낳아 기르는데 걸리는 시간도 일반적인 인간을 기준으로 삼았을 때의 얘기다. 하지만 인간과는 비할 데 없는 힘을 갖춘 신이라면?
물론 미엘의 경우엔 형진이 인간이었을 때 아이를 가졌으니 이것도 정확한 얘기는 아니지만, 얘기가 더 복잡해지니 그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어 버렸다.
“그럼… 아이들이 터울이 거의 없어 보이는 것도…”
“네. 낳을 때까지 걸린 시간이 얼마 되지 않아서.”
“맙소사.”
흑요호가 안고 있는 아이는 사실 올해로 두 살이다. 원래대로라면 태어나자마자 헤어져서 마을로 와야 했지만, 아무리 그래도 아이를 낳자마자 떠나오는 것은 너무 심한 일이었기 때문에 잠시나마 추억을 쌓기 위한 시간을 가졌다. 이것이 일반적인 흑요호들의 삶이다. 어찌 보면 그들이 쉽게 남자를 고르지 못하는 이유도, 이런 일들을 겪어야 한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사실 이 아이는 그래도 성장이 빠른 편이었다. 다른 아이들보다 털뭉치 상태에서 벗어나는 시간이 훨씬 빨랐으니까. 일부러 이 년이라는 시간을 더 보내고 온 것도 이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였다.
“하아…”
흑요호는 어쩐지 맥이 빠지는 기분을 느꼈다. 그리고 부러운 기분이 들었다. 물론 아이의 아버지와 지냈던 시간들을 후회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허탈한 기분이 드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아가. 며짤?”
“아우?”
영리하긴 해도 아직 어른들의 분위기까지 파악할 정도는 아닌 터라 그 와중에도 아기 공주들은 흑요호가 안고 있는 아기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일단은… 두 살이야.”
흑요호가 쓴웃음을 지으며 그렇게 대답하자, 아기 공주들은 눈이 휘둥그레졌다.
“두 살이요?”
“응.”
“하지만, 꼬리도 없는데.”
“맞아요. 꼬리도 없는데.”
“하하…”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고개를 갸웃거리는 아기 공주들의 모습에 어른들은 웃음을 지었다. 덕분에 조금 어색해졌던 분위기가 한결 나아졌다.
“그럼 아기가 아니라, 언니가 되는 거에요?”
“이, 일단은.”
“하지만, 꼬리도 없는데.”
“맞아, 맞아. 꼬리도 없는데.”
어째서 꼬리가 언니가 되기 위한 조건으로 정해진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아기 공주들은 여전히 납득이 가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그럼 이렇게 하는게 어때요?”
그때, 문득 미엘이 한 가지 제안을 하고 나섰다.
“어떻게요?”
흑요호의 말에 미엘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인간들을 보면 유모라는 직업이 있어요. 알고 계시나요?”
“네. 젖이 모자란 엄마를 대신해서 아이를 먹이는 이들을 말하는 걸로 알아요.”
“마찬가지에요. 이 아이에게 아직 꼬리가 나오지 않은 건, 꼬리가 나올 정도로 충분한 정기를 얻지 못한 탓이죠. 그리고, 여기엔 누구보다도 많은 정기를 지닌 사람이 있고요.”
순간 미엘과 하엘, 그리고 흑요호의 시선이 형진에게로 향한다.
“엣? 나? 나보고 유모 노릇을 하라고?”
당황한 형진의 말에 미엘이 눈을 살짝 흘긴다.
“어때요. 어차피 펑펑 남아도는 정기. 이럴 때 쓰면 좋잖아요.”
“아니, 그거야… 그렇지만. 하지만 난 남자라고. 남자 유모라니. 들어본 적도 없어!”
“어때요. 당신이 가지고 있는 여러 가지 최초 타이틀 가운데 새롭게 하나를 추가하는 것 뿐인데.”
“맞아요. 아이를 새로 낳으라는 것도 아닌… 크흠. 죄송합니다. 실언이었어요.”
옆에서 듣고 있던 하엘이 미엘의 말을 두둔하고 나섰다가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얼른 헛기침을 하며 얼버무린다. 하지만 이미 흘러나온 얘기를 주워 담을 수도 없는 일. 다시 분위기가 어색해지고 말았다.
그때, 미엘의 일곱 아이 가운데 맏이인 하늘이가 나섰다.
“빠아!”
“응?”
“빠아가 유모라는 거 하면 이 아기도 말할 수 있어요?”
“이, 일단은.”
“그럼 해주세요! 얘기하고 싶어요. 같이 놀아도 주고, 음… 친구도 되고 싶어요.”
“저도여!”
“저도 친구 하고 시퍼여!”
“빠아! 부탁해여!”
“부탁드려여!”
맏이인 하늘이의 말에 다른 아기 공주들도 일제히 입을 모아 외치며 형진에게 몰려와 부비부비를 시전하자 형진은 좋아서 입이 헤 벌어지고 말았다.
방금 전에 남자가 무슨 유모냐고 펄쩍 뛰던 모습과는 완전히 다른 사람처럼 느껴질 정도다.
“우리 공주님들이 원한다면 당연히 해줘야지. 자, 저에게 아기를 건네주십시오. 바로 예쁜 꼬리가 퐁! 하고 나오게 해드리겠습니다.”
“아니, 저기…”
흑요호는 갑자기 태도가 돌변한 형진의 모습에 당황했고, 미엘과 하엘은 못 말리겠다며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괜찮은 걸까 싶긴 했지만, 한편으로는 하루라도 빨리 아이와 대화를 해보고 싶은 거도 사실이라 결국 흑요호는 아이를 건네주었다.
“아이가 아주 예쁘군요. 이름이 뭡니까.”
“도담이에요. 아시겠지만… 흑요호들은 성인이 되었을 때 스스로 이름을 짓는 것이 관례니까요.”
“그렇군요. 자, 도담아. 아저씨가 맛있는 정기를 나눠주마. 예쁘지.”
“아우!”
사실 아기는 형진을 처음 봤을 때부터 이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척 보기에도 정기가 아주 이글이글 끓어 넘치는 수준이었기 때문이다. 엄마만 아니었다면, 이전에 아기 공주들이 그랬던 것처럼 단숨에 날아가 형진의 정기를 배불리 섭취했을 것이다.
그래서 아기는 형진이 손을 내밀자 주저 없이 그의 품에 답싹 안겼다.
“옳지. 착하구나.”
“아우!”
“그래. 그래.”
아직 한 살도 안 된 아이들이기는 해도 열둘이나 되는 아기 공주들을 돌본 짬밥이 어디 가는 것은 아니다. 형진이 능숙하게 안아들자, 아기는 그에게 찰싹 달라붙어 정기를 섭취하기 시작했다.
“아이가 아주 튼튼하네요.”
“가, 감사합니다.”
허락을 하기는 했어도, 이런 식으로 아기를 다른 사람에게 맡긴 것은 처음이라 흑요호는 안절부절 못하는 모습을 보였다. 미엘은 그런 흑요호에게 다가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그러고 보니 아기 이름은 들었어도 당신 이름은 듣지를 못했네요. 이름이 어떻게 되죠?”
“저요? 아… 그러고 보니 제 소개도 안 했네요. 저는 젤라에요. 젤라 모네트. 모네트는 아이 아버지의 성이에요.”
“그렇군요. 저 사람 이름은 벨크라드진 엘 파르드에요.”
“네? 그 이름은…”
아무리 흑요호라도 세상 돌아가는 것쯤은 알고 있다. 게다가 젤라는 얼마 전까지 인간과 함께 살고 있었던 흑요호이기도 하다. 당연히 요즘 타나토스에서 가장 유명한 인물의 이름 정도는 들어본 일이 있다.
“그럼 엘 파르드의 국왕 폐하셨던 거에요?”
“네.”
“하지만… 그 분은 인간이라고…”
“다들 그렇게 알고 있지만, 사실은 신이에요. 젤라님과 도담이도 새로 식구가 되었으니 그 정도는 아셔도 상관없어요. 이미 말했던 얘기기도 하고.”
“아…”
어차피 유모 역할까지 한 마당이기도 하고, 앞으로 다른 흑요호들을 포섭하기 위해서도 조금쯤은 친근하게 대할 필요가 있었다. 미리 형진이 언질을 준 것은 아니지만, 이 정도는 미엘이 스스로의 판단으로도 충분히 할 수 있는 일이다.
하엘은 미엘이 다른 흑요호에게 친근하게 대하는 것이 조금 불만스러워 하는 표정이었지만, 그렇다고 그녀의 행동을 제지할 엄두는 내지 못했다.
“어이쿠. 녀석, 아주 잘 먹네. 옳지. 그래. 착하지.”
세 흑요호들이 그렇게 얘기를 나누는 동안에도 형진은 품에 안긴 아기에게 정기를 먹이느라 여념이 없었다. 아기 공주들은 다른 아기가 아빠의 품에 안겨 정기를 먹는 모습이 신기한지 구경하느라 여념이 없다.
“갑자기 너무 정기를 많이 주면 좋지 않을 수도 있어요. 그쯤 해두고 나중에 천천히…”
혹시 다른 사람의 아이가 탈이라도 나지 않을까 싶어 미엘이 그렇게 말을 꺼냈지만,
퐁!
미처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아기가 잠시 용을 쓰는가 싶더니 코르크 뚜껑이 열리는 듯한 소리와 함께 푸른빛이 감도는 탐스러운 검은 꼬리가 모습을 드러낸다.
“어?”
“앗!”
“와아!”
경악과 탄성이 어우러지는 가운데, 아기는 기지개를 늘어지게 켜고는 엄마를 향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엄마! 나 꼬리 나와쪄여.”
“세, 세상에.”
방금 전까지 아우 하는 소리를 내는 것이 고작이었던 아기가 약간 혀 짧은 목소리긴 해도 똑똑하게 엄마라고 말하고 있다. 젤라는 이게 꿈인지 현실인지 구분하기도 어려울 정도였다.
정기를 나눠준다고 하기는 했어도, 이렇게 즉석에서 꼬리가 바로 나와 버리다니. 이걸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는 건지.
“하하, 아이가 꽤 튼튼하더군요. 기틀이 잘 잡혀 있었다고 해야 하나요. 이미 준비가 끝난 터라 생각보다 쉽게 꼬리가 나왔습니다. 자, 엄마한테 가볼래?”
“네!”
도담이는 형진의 말에 얼른 대답하고는 얼른 엄마의 품으로 날아가 안겼다.
“엄마!”
“그, 그래. 착하지.”
형진은 두 모녀의 모습을 흐뭇하게 바라보다가 다시 한 마디를 건넸다.
“궁 안에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 마음대로 쓰시면 됩니다. 우리 집이다 생각하시고 편하게 지내십시오.”
“감사… 합니다.”
앞으로 얼마나 흑요호들을 끌어들일 수 있을지는 알 수 없는 일이다. 하지만 젤라의 모습을 보게 되면 저쪽에 참가한 흑요호들의 마음도 조금쯤은 흔들리지 않을까. 얼마나 통할지는 미지수. 그러나 적어도 가능성이 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 작품 후기 ============================
두편째.
흐아아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