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06
00706 160. 토너먼트 =========================
“곤란해.”
젤라와 도담이 모녀를 보호하는 데는 성공했지만, 흑요호들 가운데 아주 일부의 인원에 지나지 않는다.
사실 마을에서 지내던 흑요호들은 곰곰이 생각해 보면 전력상 문제가 될 만한 이들은 아닐 수도 있었다. 젤라와 도담이의 경우를 보더라도, 본래부터 마을을 지키던 몇몇 흑요호들을 제외한다면, 이제 막 출산을 마친 미숙한 흑요호와 그 아이들에 불과하니까.
문제는 포트니아 테론이 이들을 인질로 삼을 경우다. 흑요호는 가뜩이나 개체수가 적은 종족이고, 때문에 아이들은 무엇보다도 중요하게 여겨진다. 집단보다 개인으로서의 성향이 강한 흑요호들이 일부러 마을까지 만들어서 그들을 보살피는 것에는 그런 이유가 있는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었다면, 타나토스 각지에 흩어져 지내는 다른 흑요호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고 도움을 구할 필요가 있다. 적어도 포트니아 테론이 그들과 접촉하기 전에.
문제는, 지금 상황에서 그런 식의 접촉을 할 만한 마땅한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너무 과민하게 생각하는 건 아닐까요?”
“응?”
“포트니아 테론이라는 신 말이에요.”
사과를 깎고 있던 유아의 말에 형진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무슨 소리야?”
유아는 가만히 깎은 사과를 접시에 담으며 말을 이었다.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어요. 정말로 포트니아 테론이라는 신이 나쁜 신일까 하는.“
“…”
형진은 유아의 말에 잠시 말문이 막혔다.
사실 포트니아 테론이 형진이나 이 세계에 뭔가 직접적으로 나쁜 일을 했느냐고 묻는다면 대답이 좀 궁할 수밖에 없다. 직접적으로 누군가를 해친 것이라고는 라야바르트의 국왕을 암살한 것 정도. 하지만 포트니아 테론이 어머니나 그것과 관련된 신격을 가지고 있다면, 이전까지 국왕이 했던 일들은 문제가 될만한 소지가 충분하다. 셋째 왕자의 어머니인 귀비를 형진 자신이 선처한 이유도 따지고 보면 그 때문이 아닌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형진이 포트니아 테론을 경계하고 있는 것은 상대가 언데드의 영역에 도사리고 있는 신이라는 점과, 파괴와 재생이 관련되었을 가능성 때문이다. 물론 안식과 동굴의 예에서 볼 수 있듯이, 타락한 신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쁘다고만 하기는 어려울지도 모른다. 그렇게 따지면, 결국 문제가 되는 것은 파괴와 재생이 어떤 식으로 관련되었는가 하는 점 뿐이다.
“음..,”
하지만 그래도 의문은 생긴다.
포트니아 테론은 지금까지 그와 접촉할 기회가 얼마든지 있었다. 당장 레테의 몸을 장악해 요리 대회에 참가 했을 때만 해도 얼마든지 그럴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멀찌감치에서 그와 제랄딘을 살펴보기만 했다.
“결국 상대도 마찬가지란 얘긴가.”
형진은 유아가 깎아 놓은 사과를 먹으며 그렇게 중얼거렸다.
그렇다. 결국 이런 모든 상황을 고려해 보면, 포트니아 테론 역시 형진을 어째서인지 경계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하지만, 어째서?
잠시 지금까지의 상황을 되짚어 보던 형진은 유아의 어깨를 끌어당겨 입을 맞추며 말했다.
“고마워. 덕분에 조금은 실마리가 생긴 것 같아.”
“도움이 되었다니 다행이에요.”
살짝 미소를 짓는 유아의 모습을 마주보며 빙긋 웃음을 지은 형진은 가만히 손을 뻗어 그녀의 배를 어루만지며 말했다.
“얼른 아이가 태어나야 마음껏 사랑을 나눌텐데.”
“당신도 참.”
함께 밤을 나누지 못하는 대신 스킨십은 더 자주 많이 나누는 중이다. 보듬고 어루만지고 입을 맞추면서 아이가 건강하게 자라기를 계속해서 기원한다.
하지만 그렇게 본신이 유아와 시간을 나누는 동안, 형진의 아바타는 엘리시온으로 들어가 자신과 관련된 신들을 불러 모으고 있었다.
“갑자기 무슨 일이지?”
신뢰와 헌신의 모습에 움찔한 기색을 보이던 허세와 망상은 헛기침을 하며 형진에게 말했다.
“크흠. 인간들에게 마법을 전하기 위해 교본을 만들던 중이었다고. 가급적이면 빨리 얘기를 끝내줬으면 좋겠군.”
가까운 신들 가운데 형진이 존대를 하고 있는 건 허세와 망상을 비롯한 연습생들 정도다. 어떻게 보면 그만큼 존중하는 것으로 볼 수도 있겠지만, 또 어떻게 보면 그만큼 거리가 있는 관계라고 볼 수도 있다.
“시끄러. 저리 비켜봐. 나 좀 앉게.”
“아, 알았어.”
모처럼 거드름을 피우던 허세와 망상이었지만, 희망과 생명이 나타나 한 마디 하자 대번에 깨갱하며 한쪽으로 물러선다. 급히 부름을 받고 온 연습생들은 그 모습을 보고는 감히 말을 걸 엄두조차 내지 못하고 조용히 주위에 둘러선다. 이제는 그들도 대충 이들 사이에 존재하는 권력구도를 어느 정도 이해하고 있었다.
형진의 양옆에 공포와 죽음, 희망과 생명이 당연히 자신의 자리라는 듯이 자리를 잡는다. 그러자 뒤늦게 달려온 보호와 균형이 잠시 울상을 짓더니 이내 주먹을 불끈 쥐고는 형진의 앞으로 다가가 그의 품에 폭 안겨 버린다.
“너! 그건 반칙이잖아!”
“바, 반칙이라뇨. 엄연히 비어 있었던 자리라고요.”
“끙…”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다 모인 자리에서 그런 식으로 폭 안길 엄두는 내지 못했던 희망과 생명이지만, 눈을 마주칠 엄두도 내지 못하는 주제에 필사적으로 형진의 품에 매달려 있는 보호와 균형의 모습에는 입술을 깨물 수 밖에 없었다.
꽃과 바람, 황혼과 망각은 그런 보호와 균형의 모습에 쓴웃음을 지었고, 뒤늦게 터덜터덜 달려온 비와 낭만은 연습생들 옆으로 가서 지친 모습으로 털썩 주저 앉아 버린다.
“크흠! 바쁘신 와중에도 이렇게 모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이렇게 여러분들에게 모여주십사 청하게 된 것은,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포트니아 테론에 관한 건 때문입니다.”
형진은 간략하게 현재 타나토스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들을 설명했다.
“생각보다 상대가 온건한 편이라는 건 알겠어. 하지만 그건 단순히 세가 부족해서 그런 건 아닐까.”
희망과 생명의 말에 형진은 바로 대답했다.
“나도 처음에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타락한 신이 세력의 부족을 염려하는 것도 뭔가 이상하지 않아?”
“그거야…”
물론 집행자나 수호자, 주시자 같은 추종자들에 비하면 일반적인 언데드는 상대하기 어려울지도 모른다. 하지만 언데드의 영역은 넓고 광활해서 아직 형진도 어떤 종류의 언데드들이 도사리고 있는지 전부 파악하지 못한 상태다. 더구나 타나토스는 형진의 본거지 가운데 하나. 어떤 식으로든 언데드가 대량으로 출몰할 경우 그 타격은 실로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다.
이런 상황에 대비하기 위해 거짓된 천국의 유저들을 비롯해 가용한 병력들을 언제든 동원할 수 있도록 준비를 해둔 상태지만, 묘하게도 포트니아 테론은 라야바르트 국왕의 암살 이후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흑요호의 마을을 먼저 장악하고 인원들을 빼돌리긴 했지만, 형진이 거느린 전체 전력과 비교하면 역시 미약한 수준에 불과하다.
“단순히 그런 내용을 보고하기 위해 우리들을 불러모은 것은 아닐테고, 결국 하고 싶은 말이 뭔가.”
가만히 듣고 있던 신뢰와 헌신의 말에 형진은 잠시 눈을 감고 무언가를 생각하더니 이내 이렇게 대답했다.
“토너먼트.”
“뭐?”
신들의 힘을 모두 합쳐 포트니아 테론의 수색에 전력을 다하자는 식의 말을 예상했던 그들로서는 예상치 못한 말이 아닐 수 없었다.
“토너먼트? 지금 시점에서?”
“그래.”
토너먼트는 신들이 일반적인 방법으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에 봉착했을 경우 추종자들을 내세워 서로 대결시키는 방법이다.
하지만 이것은 기본적으로 상대를 인정하고 존중한다는 개념 하에서 성립될 수 있는 방법이다. 지금껏 파괴와 재생이라는 미친 신과의 대결에서 토너먼트가 고려되지 않은 것은, 이미 그런 온건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을 정도의 문제를 넘어서 버렸기 때문이다.
포트니아 테론과의 문제에서 토너먼트가 고려되지 않은 것 또한 그런 이유에서다. 우선 그 미친놈과 손을 잡은 상황이라면 온건한 방법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그런데 지금 형진은 바로 그 토너먼트를 포트니아 테론에게 제안하자는 말을 하고 있었다.
말없이 형진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공포와 죽음이 침묵을 깨고 마침내 입을 열었다.
“그게 무슨 의미인지, 알고 있겠지?”
“물론.”
포트니아 테론에게 토너먼트를 제안한다는 것은, 상대를 엘리시온의 다른 신들과 동격으로 인정한다는 의미까지 포함하고 있었다. 언데드의 영역에 속한 신에게 그런 식의 대우를 하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이미 유례가 없는 일이다.
“전대미문이라고. 알고는 있는 거야?”
희망과 생명의 말에 형진은 어깨를 으쓱거렸다.
“꼭 그렇게 볼 것도 아니지. 이미 저쪽에 속했다가 돌아온 신도 있는 판에.”
“그거야…”
형진이 말한 것은 안식과 동굴의 이야기다. 저쪽에 속해 있는 존재라 해도 이미 정화되어 다시 엘리시온에 받아들여진 선례가 있는 만큼 무작정 배척할 것이 있느냐는 뜻이다.
“그렇다면, 넌 포트니아 테론을 이쪽으로 끌어들일 생각을 하고 있는 건가.”
신뢰와 헌신이 다시 묻자, 형진은 쓴웃음을 지었다.
“그럴 수 있다면 가장 좋은 방법이겠지만, 일이 그렇게 사정 좋게 흘러가지는 않겠지.”
“흠…”
“어쨌든 지금으로서는 상대의 성향이나 능력을 정확히 파악할 수 있다면 그것만으로도 이득이 아닐까 싶은데.”
“그러기 위한 토너먼트라는 얘기군.”
확실히 그런 의도라면 이기든 지든 이쪽이 이득이다.
“하지만… 저쪽이 과연 토너먼트에 응할까요?”
품 안에 안겨 있던 보호와 균형의 말에, 형진은 빙긋 미소를 지었다.
“잊었어? 이쪽에는 포로가 둘이나 있다는 사실을.”
“아…”
라야바르트 국왕의 암살을 실행한 장본인인 케레스는 그렇다 쳐도, 나중에 잡힌 여자는 이용 가치가 충분히 있었다. 케레스야 레테가 사실은 포트니아 테론이라는 것조차 몰랐음을 고려하면 사실상 버리는 돌이라고 봐도 무방하지만, 나중에 잡힌 여자의 경우엔 집적 대화를 나눌 정도로 가까운 사이이니 그런 식으로 버리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고 보니, 케레스 역시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이름이었던 것 같은데.
“이쪽이 질 경우 포로를 석방한다. 그렇게 되면 저쪽 역시 자신이 질 경우의 조건을 걸어야겠군.”
“이길 경우의 조건을 거는 것이 아니니까, 실질적으로는 이쪽에서 이기든 지든 무조건 이득이라는 얘기가 되는 거지.”
“정말… 못 당하겠군.”
신뢰와 헌신은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그리고 진이라는 남자와 적이 아닌 것이 얼마나 다행인가 하는 생각을 떠올린다.
“그런 조건이라면, 반대할 이유가 없지.”
희망과 생명이 고개를 끄덕이자, 다른 신들도 찬성의 뜻을 밝혔다.
“좋아. 필요하다면 내 추종자들을 얼마든지 빌려주도록 하지.”
신뢰와 헌신이 그렇게 말하자, 공포와 죽음 역시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다.
“나 역시.”
희망과 생명은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내 추종자들은 싸움과는 좀 거리가 먼 녀석들이라… 하지만 필요하다면 얼마든지 데려다 써도 좋아.”
가장 강력한 힘을 보유한 세 명의 대신이 그렇게 허락의 뜻을 표하자, 마침내 결정이 지어졌다.
“모두 감사합니다. 그럼, 곧바로 포트니아 테론에게 토너먼트를 제안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전에 토너먼트에 참가한 적은 있지만, 이런 식으로 다른 신에게 토너먼트를 제안하는 경우는 처음이라 형진은 살짝 가슴이 두근거리는 기분마저 느끼고 있었다.
토너먼트의 신청은 간단하게 이루어졌다. 서로 다른 세계에 있다면 모르지만, 상대가 타나토스에 있는 것이 확실한 이상, 이 내용은 확실하게 전달되었을 것이다.
잠시 기다리자, 마침내 포트니아 테론으로부터 답이 돌아왔다.
[포트니아 테론은 밤의 신이 제안한 토너먼트를 수락했습니다.]“오.”
다행히 포트니아 테론은 형진의 제안을 받아들였다 하지만 예상이 들어맞은 것은 여기까지였다.
[토너먼트 규칙에 따라, 대결 방식을 포트니아 테론이 제안합니다.] [포트니아 테론이 제안한 대결 방법은, ‘아르테미스의 마음을 얻어라.’입니다. 기한은 한 달, 이 조건에 동의하시겠습니까?]당사자인 형진은 물론이고, 다른 신들마저 그 내용을 보는 순간 그대로 굳어버릴 수밖에 없었다.
============================ 작품 후기 ============================
오늘은 여기까지.
감사합니다.
컴이 또 맛이 갔습니다.
하지만 나에겐 이럴 때를 대비해 마련해둔 노트북이 있지.
된장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