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stant Kill RAW novel - Chapter 780
00780 178. 회견 =========================
각국 정상들에게는 일단 숙소가 배정되었다. 이대로 바로 돌려보내면 만에 하나라도 자신들이 경험하고 들은 모든 것들이 그저 착각이라고 생각할 여지조차 있기 때문이다. 게다가 여기까지 와서 무엇을 했는지, 이곳이 어떤 환경인지 그들이 각기 속한 국가에 알릴 시간도 주어야만 했다.
소수의 이주민들이나 이미 이곳으로 옮겨와 일하고 있는 이들을 제외하고는 바뀐 달의 모습을 제대로 파악하고 있는 이들이 적은 것도 사실이고, 그래서 시중에는 이런 저런 허무맹랑한 얘기들이 많이 떠돌고 있었다. 이를테면 사실은 달의 개발이 아직 끝나지 않은 상태라 산소호흡기와 우주복을 입고 다녀야하고, 그런 상태에서 헬륨3 광산 같은데서 노역에 동원된다든가 하는 식의 소문이 바로 그런 것이었다.
그런 식의 얘기들이 퍼져 나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도 각국 정상들이 직접 달을 돌아보고 이곳의 실태를 국민들에게 알릴 기회를 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저 미라지 코어가 공식 자료를 배포하는 것보다 훨씬 공신력을 줄 수 있는 홍보 기회를 형진이 나몰라라 하고 버릴 이유가 없다고나 할까.
“장난이 심했어요.”
“응? 뭐가?”
허벅지를 쓰다듬으며 태연하게 답하는 형진에게 제랄딘은 살짝 눈을 흘겼다.
“마지막에 했던 말이요. 아무리 그래도 그런 중요한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잖아요.”
그녀의 말에 형진은 피식 웃어버렸다.
“그게 본심인걸.”
“못 말려.”
그러자 요안나가 다가와 조심스럽게 옆에 앉으며 말했다.
“숙소의 배정이 끝났습니다.”
“그래? 수고했어. 나머지는 프리츠에게 맡기도록 해.”
“네.”
제랄딘과는 달리 요안나는 조금 상기된 표정이었다. 지금까지 대외적으로 미녀 비서 정도로만 알려져 있던 그녀가 소수의 인원이기는 해도 당당하게 형진의 부인으로 소개된 탓이다. 물론 지구의 관습을 생각해 보면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지만, 그래도 남몰래 조금 아쉬운 기분을 느끼곤 했던 것이 사실이었다.
“자, 그럼 우리도 다시 일을 해볼까?”
형진의 말에 제랄딘과 요안나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일이요?”
대놓고 각국 정상들에게 놀고먹겠다고 공언해놓고 일이라니. 형진은 그런 둘의 모습을 보며 씩 웃었다.
“부부가 이런 한적하고 조용한 곳에서 할 일이 뭐가 있겠어. 안 그래?”
“벼, 변태.”
“어허, 우주를 생명의 빛으로 가득 채우려면 솔선수범을 보여야지. 그렇지 않아도 지구는 출산율 저하 때문에 사회 문제가 되고 있다고. 우리가 먼저 모범을 보여야만 하는 거라고.”
천연덕스럽게 진지한 표정으로 그렇게 말하며 손을 슬금슬금 뻗어오는 형진의 모습에 제랄딘과 요안나는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말았다.
“못 말려.”
“누가 아니래요.”
그렇게 공언한대로 형진이 도대체 언제 끝나는 건지 의심스러운 신혼 생활을 즐기는 일에 다시 돌입하고 있을 때, 숙소를 배정받은 각국 정상들은 수행원들과 함께 지금부터 해야만 하는 일들에 대해 열띤 논의를 이어가고 있었다.
“일단… 컨소시엄을 구성해야만 합니다.”
“컨소시엄? 우리나라 혼자서도 충분히 가능할 것 같은데?”
“물론 그렇습니다.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것은 행성 하나만 손에 넣으면 끝나는 문제가 아닙니다.”
“맞습니다. 밤의 신께서 굳이 G20 정상회의 참가국에 이러한 내용을 밝힌 이유가 무엇이겠습니까.”
“주변국들을 선도할 수 있음을 증명해 보임과 아울러, 컨소시엄을 주도하는 국가로서 그렇지 않은 나라들을 이끌 수도 있습니다.”
“혼자서는 한계가 있게 마련입니다.”
“저 역시 컨소시엄 구성에 찬성합니다.”
“득실을 따져봐야겠습니다만 미국이나 중국, 러시아처럼 체급이 다른 나라들과 당당하게 경쟁하기 위해서도 컨소시엄 구성은 반드시 필요합니다.”
느닷없는 형진의 이런 저런 얘기에 놀라긴 했어도, 그들 역시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고 각국 정상에 자리잡은 정치인들이었다. 본격적인 대우주시대의 개막에 있어서, 자국이 지닌 장단점을 파악하고 그것을 해결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것부터 시작한 것이다.
자국이 현재 지니고 있는 영토의 몇십 몇백 배에 달하는 거대한 땅에 사람들을 보내 이주시키고 개발하는 것은 단순히 노동자를 얼마 정도 보내는 정도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런 일을 단기간에 진행하게 되면 당장 현재의 자국 산업에 문제가 생길 수밖에 없다. 컨소시엄 구성은 그런 역효과를 최소화함과 더불어, 차후 초강대국들과의 대결 역시 염두에 둔 포석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식으로 정치인들이 논의를 이어가고 있는 동안, 동행한 취재진들은 새롭게 개발된 달의 이모저모를 확인하느라 여념이 없었다.
“후… 큰일이군. 혀가 근질거려서.”
“조심해요. 함부로 잘못 입을 놀렸다가는 죽음의 천사가 찾아올지도 모른다고요.”
“쳇. 이건 명백한 언론 통제잖아. 차라리 이럴 거면 알려주지나 말던가.”
“하하…”
말로는 투덜거리고 있었지만, 한편으로는 홀가분한 표정을 감추지 못하고 있었다. 그동안 궁금해 하고 있던 여러 가지 의문들이 이번에 확실하게 해결되어 버린 탓이다. 아마도 오늘 보고 들은 일들은 평생 비밀로 해야 할 것 같지만, 몰라서 끙끙대는 것보다는 훨씬 나은 일이다. 아마도.
취재진들은 일단 G20 정상회의에 참가한 각국 정상들이 미라지 코어 측과 회담을 가졌다는 내용을 지구에 알리는 한편, 이주가 시작된 달의 여러 가지 모습들을 취재하는 일에 열을 올리기 시작했다. 형진과의 대화는 보도할 수 없었지만, 이런 식으로 달의 모습을 알리는 것 역시 따지고 보면 형진이 이루고자 하는 목표를 돕는 훌륭한 방법이었다.
“그렇다면, 생태계 조성은 앞으로도 많은 시간이 필요한 일이라는 말씀이시군요.”
“말씀대로입니다. 사실 이것은 정확히 언제 끝을 맺을 거라고 확신할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합니다. 지구의 생태계는 셀 수도 없을 정도의 오랜 시간을 거쳐서 변화된 결과물인데, 그런 것을 얼마 되지도 않은 짧은 시간에 확립하는 건 신이라도 불가능한 일이니까요.”
태연하게 신을 언급하는 프리츠의 모습에 취재진들은 자신도 모르게 쓴웃음을 지었다. 이전이었다면 그저 단순한 비유겠거니 하고 넘어갔겠지만, 이제는 이런 사소한 단어 하나하나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는지 알 수 있었다.
각국 정상이 머물고 있는 곳에서 벗어난 취재진들은 일차로 이주를 마치고 정착한 사람들을 찾아가 그 모습을 살피는 일을 시작했다.
“이곳은 천국입니다. 네, 그렇고말고요! 감사합니다! 저희들에게 이런 기회를 주신 것에 대해. 감사합니다! 정말로 감사합니다.”
기후 난민이 되어 고향을 떠났던 제드카이아와 그의 가족들은 넓은 정원과 텃밭이 딸린 집에서 행복한 모습으로 취재진들을 맞이했다. 제드카이아가 가진 기술이라고는 논과 밭을 돌보는 것뿐이다. 그것도 현대 영농과는 동떨어진 오래된 재래식 농법이라 상식적으로는 이런 장소에 어울리지 않는 인물일 수도 있었다.
“현대식 농법을 배울 생각은 없으십니까?”
“물론 있죠. 하지만, 미라지 코어에서는 각각의 장단점이 있으니 절충을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는 전통적인 방법을 유지하면서도, 보다 건강한 작물을 많이 기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을 찾아보고 있는 중입니다.”
“과연. 그런 것이로군요.”
힘들게 달을 개발해 놓고 하는 일이 고작 농사냐고 할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달은 지구의 사람들이 우주로 뻗어나가기 위한 중요한 전진기지의 역할을 하게 될 것이고, 새롭게 획득한 드넓은 대지는 그 보급창으로 기능하기에 매우 적합했다. 또한 이것은 테라포밍을 통해 개발된 환경에서 각각의 작물이 어떻게 적응하는지를 확인하기 위한 중요한 과정이기도 하다. 효율면에서야 떨어질지 몰라도, 이러한 과정을 거치지 않으면 나중에 오히려 더 큰 문제가 생길 수도 있다.
“와…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신청해 볼 걸.”
“귀농이라도 하려고? 경력이 아깝지 않아?”
“경력은 무슨. 게다가 요즘은 취준생이 아니라 퇴준생이라잖아. 나도 슬슬 준비해 둬야지.”
“하긴.”
한적하고 여유로운,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보람이 넘치는 신세게에서의 삶은 지친 현대인들에게 선망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한 일이었다. 게다가 달에는 그런 식으로 한가롭게 논과 밭을 돌보는 이들만 있는 것도 아니다. 미라지 코어에 종사하는 이들은 현대 지구에서도 최첨단 기술을 다루는 이들이었고, 거대한 도시 안에는 그런 식의 생산시설 또한 차차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원한다면 귀농이 아니라 자신의 경력을 살려 일하는 것도 충분히 가능한 것이다.
G20 정상들의 방문 첫날, 언론을 통해 밝혀진 그와 같은 내용들은 다시 한번 바뀌어 가는 세상의 모습을 사람들의 뇌리에 각인시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소식은 아직 시작도 하지 않은 상태였다.
다음날, 각국 정상들은 자국의 국민들에게 이와 같은 소식을 알렸다.
“우리나라는 미라지 코어와의 기술 협력을 통해 독자적인 우주 개척 사업을 진행하기로 양해 각서를 체결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천체를 개척할 것인지에 대해서는 이번 G20 정상 회의 기간 중에 조율을 마치기로 결정했습니다.”
기껏해야 이전에 해왔던 대로 상호 협력이니 경제 활성화니 환경 문제니 하는 식의 성명서를 채택하는 것이 고작일 거라고 생각했던 사람들은 갑작스런 이 소식에 화들짝 놀라버렸다.
“뭐? 독자적인 우주 개척 사업이라고?”
“그럼 우리나라도 우주 식민지를 가지게 되는 거야?”
“미라지 코어가 그걸 허락했다고? 말도 안 돼!”
“협박이라도 했나?”
“모르지. 하지만 어쨌든 우리한테는 좋은 일 아닌가?”
“좋은 일이지! 당연히!”
단순히 도로나 철도를 놓고 아파트 단지를 건설하고 공항을 짓는 식의 일만으로도 엄청난 경제적 효과가 창출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이번에 발표된 것은 그런 지엽적인 개발 계획과는 차원이 다른 일이다. 어떤 천체를 개발하게 되더라도, 기존에 가지고 있던 영토의 규모를 까마득하게 뛰어 넘는 규모의 사업이 될 것이다. 그것이 어떤 식의 파급효과를 가지고 올지는 달리 말할 필요도 없는 일.
“젠장! 이럴 줄 알았으면 무슨 핑계를 대서라도 회의에 참석하는 건데!”
이렇게 되자 당장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것은 G20 정상회의에 참석하지 못한 다른 나라들이다. 그렇지 않아도 뒤쫓아 가는 것이 쉽지 않은 마당에, 이런 식으로 우주 개발 경쟁마저 뒤처지게 되면 미래를 장담하기 어렵게 된다.
“각하. 여, 연락이 왔습니다.”
“연락? 누구?”
“XX국의 총리입니다. 이번 우주 개발 건에 대해 급히 논의할 일이 있다고…”
“뭐? 당장 바꿔!”
곧바로 각국의 물밑 접촉이 이어지기 시작되었고, 다음날에는 G20 정상회의 참가국들을 중심으로한 컨소시엄 구성에 대한 발표가 우후죽순으로 잇따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하루가 지나자, 이번에는 구체적으로 어떤 천체를 개발할 것인지에 대한 각국의 조율이 시작되었다.
“빠릿빠릿하네. 진작 좀 이렇게 일했으면 얼마나 좋아.”
제랄딘의 무릎을 베고 누워 텔레비전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오는 속보들을 보고 있던 형진이 그렇게 말하자, 요안나가 한 마디 거들었다.
“당신이라는 존재를 인식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 아닐까요.”
“그런가.”
따지고 보면 그럴 수도 있었다. 형진이라는 존재가 위에서 딱 버티고 앉아 지켜보고 있으니, 서로 눈치보고 각을 재는 식의 일을 제껴 두고 빠르게 성과를 낼 수 있는 것이다. 만약 그렇지 않았더라면, 컨소시엄을 구성하는 일이나 각각 어떤 천체를 담당하게 될 것인지 논의하는 것만으로도 한 해를 훌쩍 넘기게 되었을 것이다.
“아차차.”
텔레비전을 느긋하게 보고 있던 형진이 갑자기 그렇게 소리를 지르며 벌떡 일어나자 제랄딘은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왜 그러세요?”
“달이 녀석 기저귀 갈 시간이 된 걸 깜빡 잊고 있었어. 금방 다녀올게.”
“…”
후다닥 사라져 버리는 형진의 모습에 제랄딘과 요안나는 고개를 설레설레 저었다. 과연 지금 흥분된 표정으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는 각국 정상들이 이런 형진의 모습을 보면 뭐라고 할지 궁금하다. 하기야, 이미 신혼생활 운운하며 본색을 드러내 버렸으니 이제 와서 놀라거나 당혹해할 일도 없을 것 같기는 하지만.
============================ 작품 후기 ============================
일단 한편.
밥먹고 오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