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to Creation (Yu hee app life, a simulation and hunter novel) RAW - chapter (262)
〈 262화 〉 262. 인형 놀이
262. 인형 놀이
“누가 신사 앞에서 소란을 피우는 가!!”
고개를 위로 올렸다.
하얀 상의와 붉은색 치마. 일본 전통 무녀 복장을 한 묶은 머리의 여자가 있었다. 여자는 두 눈에 힘을 부릅뜨고는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나는 힐끗 시선을 내렸다. 땅에 꽂혀 있는 언월도를 자세히 보자 내가 알고 있는 언월도가 아님을 알았다. 언월도라고 하기에는 날부분이 가늘다. 창에 일본도를 붙여놓은 것 같다.
‘일본의 무기였는데… 나기나타라고 했던가.’
무기의 종류 같은 건 헌터 학과에서 배웠다. 헌터들은 냉병기를 주로 다루기 때문이다.
칼날 부분에는 하얀 검기가 아직까지 맺혀 있었다. 이걸 던진 저 여자는 최소 B급 이상의 헌터임이 틀림없었다.
나는 마나를 거두었다. 주먹에서 파지직 거리던 스파크도 사라졌다.
“…칫.”
양아치가 혀를 차며 전투 기세를 거뒀다. 그의 주먹에서 타오르던 불꽃이 연기와 함께 사라졌다.
주위가 웅성거렸다.
어느새 사람들이 몰려들어 우리를 구경하고 있었던 것이다.
툭.
하늘위에 있던 무녀가 가볍게 아래로 내려왔다.
나는 반사적으로 그녀의 얼굴과 몸매를 확인했다. 각진 턱 때문인지 약간 남자답게 생겼고, 가슴은 A컵 수준이다. 내 취향의 미녀는 결코 아니었다.
“이곳에서 소란을 피우는 건 금지입니다.”
그리 말한 무녀는 바닥에 꽂혀 있는 나기나타를 빼내었다.
무녀는 나와 진세영을 한 번 보고는 양아치를 쳐다봤다. 곧바로 무녀의 입에서 한숨이 나왔다.
“하아. 니시오카 켄. 또 당신입니까?”
“저 자식이 먼저 시비를 걸었다고.”
“웃기지도 않는 소리. 지금껏 당신이 피운 소란만 몇 건 인지 아십니까?”
“…….”
“오늘은 풍향제의 첫 날. 아주 중요한 날입니다. 당신의 섣부른 행동이 풍향제를 망칠 수도 있습니다.”
“나는 그럴 생각이 없었다. 다 저 놈이 먼저 내 어깨를 치고 가지만 않았어도…!”
놈이 손가락으로 날 가리켰다. 나는 인상을 찌푸리며 놈을 죽일 듯이 노려봤다.
“이 자식이…!”
“니시오카!”
“…윽.”
무녀의 호통에 놈이 움찔거렸다.
“이 축제에는 일본인뿐만이 아니라 외국인들도 찾아왔습니다. 뿐만 아니라 외국의 방송들도 촬영중입니다! 당신이 말썽을 피우면 망신당하는 것은 일본입니다!”
망신은 이미 당한 것 같은데.
나는 주위를 보았다. 우리를 둘러싼 사람들이 웅성거리고 있다. 그 중에는 스마트폰으로 이쪽을 찍고 있는 사람도 다수 있다.
“……이미 사건은 벌어졌습니다. 여러분을 이대로 보낼 수는 없습니다. 모두 절 따라오시지요.”
그 모두에는 양아치 남자와 여자 뿐만이 아니라 나와 진세영도 포함되어 있었다.
일본어를 모르는 진세영이 내게 시선을 보낸다. 무녀가 뭐라고 하는지 궁금한 모양이다.
“따라오라는데.”
“…왜? 아직 사고는 일어나지 않았잖아.”
마나를 일으키긴 했지만 전투를 하진 않았다. 그 전에 무녀가 나타났으니까.
“글쎄. 벌금이라도 내게 하려나 모양이지.”
나도 확신할 수는 없었다. 한국에서는 이 경우 최소 50만 원 이상의 벌금을 내고 끝나지만, 여긴 한국이 아닌 일본이었다.
“그 말…. 한국인이었습니까?”
무녀가 내게 일본어로 물었다.
“네.”
“…혹시 초대장을 가지고 오신 손님이십니까?”
“네.”
“…죄송합니다. 저희 길드원이 폐를 끼쳤군요. 초대장을 확인해봐도 되겠습니까?”
무녀는 진세영에게 받아 초대장을 확인했다. 그리고 우리에게 다시 한 번 고개 숙여 인사하고는 우리를 이끌고 신사로 향했다.
무녀가 말하는 길드는 풍신(風神) 길드 일 것이다.
후카 신사는 일본의 5대 길드 중 하나인 풍신(風神) 소속이니까.
‘저 양아치가 풍신 길드 소속이라고?’
5대 길드. 다시 말해 일본에서 가장 잘 나가는 길드 중 하나다. 그런 길드에 저 양아치가 소속되어 있을 줄 몰랐다.
‘부모가 풍신 길드의 간부인가?’
계단을 올라가는 도중에 양아치와 두 눈이 마주쳤다. 양아치가 얼굴을 일그러뜨리며 소리 없이 으르렁거렸다.
나는 그에게 중지를 세우며 입모양으로 말했다.
Fuck you.
•••
우리는 벌금을 내는게 아닌 무녀로부터 훈계를 받았다. 손님 입장인 우리는 잔소리 수준으로 끝났지만, 양아치와 갸루는 훈계로 끝나지 않고 벌을 받았다.
듣자하니 양아치와 갸루는 이와 비슷한 사고를 몇 번 친 모양이다. 양아치와 갸루는 근신 처분을 받았다. 신사 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된 것이다.
특히나 양아치는 풍향제가 진행되는 동안 방밖으로 나갈 수 없게 되었다.
“후카 신사를 찾아와주신 손님들에게 무척이나 죄송스럽습니다. 풍향제는 일본 정부에서도 신경 쓰고 있는 무척 중요한 행사입니다. 부디 넓은 아량으로 이해해주십시오.”
“아, 아니에요. 저희가 잘못했어요. 상대가 시비를 걸었다고 해도 싸워서는 안 됐는데….”
진세영이 손사래를 치며 말했다. 나는 분위기를 읽으며 대충 사과했다.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무녀가 인사를 하고 방을 떠났다.
나와 진세영 단 둘이 남게 되었다.
나는 진세영을 향해 다가갔다. 진세영이 잔소리를 시작하기 전에 덮칠 생각이었다. 마침 두 명밖에 없는 공간이기도 하고.
그러나 문에서 들리는 노크 소리에 멈출 수박에 없었다.
“계십니까? 가하라 시게루라고 합니다. 두 분과 대화를 나누고 싶습니다.”
진세영의 얼굴이 굳어지는 것이 보였다.
나는 조용히 그녀에게 물었다.
“왜 그래? 아는 사람이야?”
“…후카 신사의 신주(神主)이자, 일본의 참의원이야.”
일본의 참의원이라면 즉, 국회의원이다. 정치인이라는 뜻이다.
진세영의 얼굴이 굳은 것도 이해가 갔다. 타국의 정치인, 그것도 일본의 정치인이 우리를 찾아오는 게 영 불편하니까.
진세영은 고민하다가 내게 눈치를 줬다.
“…들어오십시오.”
일본어를 잘하는 내가 말했다. 영락없이 통역을 하게 생겼다.
“실례하겠습니다.”
문이 열리고 가하라 시게루가 안으로 들어왔다. 하얀색의 일본 전통의를 입은 남자였다.
“가하라 씨께서 저희에게 무슨 볼일이 있으신지요?”
나는 진세영의 말을 그대로 일본어로 통역해 말했다.
“두 분은 영천류의 제자라 들었습니다. 본래 저희는 영천류의 종주(宗主)이신 진우성 님을 초대했습니다만…, 진우성 님은 사정이 있어서 오시지 못한 모양이군요.”
“네. 아버지를 대신해 저희가 후카 신사에 오게 되었습니다.”
“개인적으로 무척이나 아쉽군요. 저는 개인적으로 진우성 님을 존경하고 있습니다. 또한 영천류의 극기(極技)를 한 번이라도 좋으니 직접 보고 싶었습니다만….”
시게루가 중얼거리며 한탄한다.
영천류의 극기(極技).
영천류 기술의 정점이라 할 수 있다. 다른 식으로 말하자면 오의(奧義)다.
나는 영천류의 극기를 배우지 못했다. 내가 약하기 때문이다. 진세영은 극기 중 하나를 배우고 있다고 하는데 완벽하게 습득하진 못한 모양이다.
“후카 신사는 겨울이 무척이나 아름답습니다. 신사에 소복히 쌓인 하얀 눈들을 보면 제 마음까지 하얗게 표백되어….”
우리는 시게루와 40분이 넘도록 대화를 이어나갔다. 본론이 아니라 그냥 의미 없이 내뱉는 말이었다. 한국과 일본의 상황, 후카 신사, 풍향제 등등 시게루는 우리가 묻지도 않은 말들을 쏟아냈다.
그리고 우리가 정신적으로 지쳐갈 무렵 본론을 말했다.
“후카 신사의 대표 무녀는 풍향제가 지속되는 3일 동안 매일 대련을 치러야 합니다. 신께 바치는 대련이지요.”
“예. 들었습니다. 일정을 보니 오늘 오후 8시로 준비되어 있더군요. 무척 기대됩니다.”
“예. 풍향제의 꽃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곤란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둘째 날의 대련 상대가 던전 공략 중 중상을 입고 병원에 입원한 상태입니다.”
시게루의 두 눈이 날카롭게 빛난다.
“…정말 곤란하게 되셨군요. 다른 준비된 대련 상대는 없습니까?”
“있었습니다만, 그와 함께 던전을 공략하다가 그만….”
“…….”
“염치없는 부탁인 건 압니다. 하지만 여러분이 아니면 마땅히 부탁드릴 곳이 없습니다. 후카 신사를 위해, 풍향제를 기대하는 수 천 만의 사람들을 위해 둘째 날의 대련 상대가 되어주지 않으시겠습니까?”
진세영은 입을 다물고 고심하다가 말했다.
“……저희가 대련 상대가 되기에는 여러모로 부족해요. 저희보다 다른 헌터들을 알아보는 쪽이 어떻습니까?”
“다른 헌터를 찾는 건 어렵지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그들에겐 정통성이 없습니다. 여러분에겐 영천류란 정통성이 있지 않습니까. 풍향제의 대련은 신에게 바치기 위한 대련. 근본이 없는 자들을 대련 상대로 세울 수는 없습니다.”
시게루가 타협은 불가하다는 듯 단호하게 말했다.
“…….”
진세영이 머뭇거렸다. 그녀도 알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이미 외통수에 걸렸음을.
“부디 부탁드립니다.”
시게루는 우리를 향해 고개와 상체를 숙였다.
머리를 땅에 박고 양손으로 바닥을 짚었다.
일본에서는 도게자라 불리는 행위를 거리낌 없이 우리에게 한 것이다. 일본에서 도게자는 그 의미가 남다르다. 도게자를 하는 것만으로도 커다란 굴욕이나 다름없다. 무엇보다 시게루는 정치인이다.
나는 눈살을 찌푸렸다. 여기서 도게자를 한다고? 정치인이? 에바 아닌가?
“……알겠습니다. 둘째 날의 대련 상대가 될 테니 고개를 드십시오.”
진세영이 불편한 얼굴로 말했다.
시게루는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빠르게 몸을 바로 했다.
“감사합니다. 대련에 필요한게 있다면 저희에게 말씀해주십시오. 저는 이후에 준비해야 할 게 있어서… 이만 가보겠습니다. 아, 여러분이 신사에 머물 수 있도록 무녀들에게 말해두겠습니다.”
그가 자기 할 만만 하고 빠르게 떠나려는 찰나였다.
드드드드드득!
땅이 흔들렸다. 지진이었다. 지진은 2초 정도 지속되다가 사라졌다.
“가벼운 지진이군요. 흔한 일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시게루가 떠나고 방안에는 나와 진세영 둘만 남았다.
“누나. 이건 함정이나 다름없어.”
“……도게자까지 하는데 어떡해. 여기서 물러서면 우리 영천류가 조롱당할 거야.”
맞다.
만약 거절했다면 내일… 아니, 오늘 오후쯤에 기사가 날 것이다. 시게루 참의원은 풍향제를 위해 도게자까지 해가며 그들에게 부탁했으나, 한국 영천류의 제자가 대련이 두려워 거절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그리고 이건 일본이나 한국뿐만이 아니라 국제적으로 알려질 것이다.
“이건 걸어온 싸움이야. 영천류인 내가 피할 수 없어.”
전투를 피한다.
영천류의 이름이 걸린 이상 그건 불가능했다.
“싸운다고 해도 이길 가능성은 어느 정도 될 것 같아?”
“…….”
진세영이 입을 다물었다.
진세영은 이제 A등급 헌터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B급 헌터다. 반면에 대련 상대는 S급 후보라 불리는 A급 헌터다.
승산은 거의 없다.
“그 새낀 비열한 놈이야.”
결국 진세영은 대련에서 질 것이다. 이건 분명 일본 전국과 인터넷에 국제적으로 생방송 될 테고, 일본은 역시 일본이라며 자화자찬하고, 한국은 일본에게 진 영천류를 욕할 것이다. 안 봐도 뻔하다.
우리는 쇼의 제물이 된 것이다.
“그래도 걸어온 전투를 피할 순 없어. 설령 지게 되더라도… 도망가서는 안 돼.”
나는 각오 서린 얼굴의 진세영을 빤히 보다가 말했다.
“대련에는 내가 나갈게. 그 놈은 누나가 나오라고 하지 않았어. 나도 영천류야.”
시게루가 실수한 건 나의 존재다. 놈은 진세영과 대화를 이어나가며 진세영이 대련에 나올거라고 생각했다.
“아니야. 내가 나서야 돼. 지더라도 영천류의 가능성을 보여줘야 돼.”
“누나. 현실적으로 생각해. 누나는 영천검관의 관주야. 영천류의 사범이라고. 그에 반해 난 그냥 제자야. 무려 E등급의 헌터지. 내가 대련에 나가서 1초 만에 져도 이상하지 않아. 제 정신이 박혀 있는 사람이라면 오히려 날 불쌍하다고 생각할 걸?”
진세영은 조용히 생각했다.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내가 나가는 것이 영천류를 위한 일이라는 걸 알아차릴 것이다.
“……괜찮겠어? 전세계에서 조롱 당 할 수도 있어.”
“괜찮아. 별로 신경 안 써.”
진짜 신경 쓰지 않는다. 어차피 이것도 시간이 지나면 잊혀 질 테고, 나중에 내가 강해졌을 때 조롱한 새끼들 전부 기억해뒀다가 죗값을 치르게 하면 된다.
‘내겐 오히려 잘 된 일이야. 이 대련을 통해 아마츠카 코요리의 피나 머리카락을 얻을 수 있을 테니까. 크크큭. 날 이긴 년이 사실은 나의 섹스돌?! 같은 상황이 일어나는 거지. 크크크큭.’
내일이 기대 될 정도다.
“유진아. …고마워.”
“누나. 나도 영천류야. 누나 혼자서 감당할 필요는 없어. 날 의지해도 돼.”
“…….”
날 보는 진세영의 두 눈이 촉촉해졌다. 나는 그녀의 어깨를 잡고 얼굴을 천천히 가져갔다.
내가 무엇을 원하는 지 알아차린 진세영이 두 눈을 감았다.
서로의 입술이 포개진다.
“하응…. 하아앙! 아아윽!”
방안은 곧 뜨거운 신음소리로 후끈 달아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