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06)
박시형은 사업과 정치를 하며 숱한 위기를 겪어왔다. 하지만 그 모든 위기를 극복해내고 이 자리까지 올라왔다.
권력도 누릴 만큼 누렸고, 돈도 벌 만큼 벌었다.
이제 무사히 대통령직에서 내려온 뒤 안락한 노후를 보낼 일만 남았다. 강진후만 아니었다면 말이다.
한국이었다면 권력과 돈을 동원해 어떻게든 막았을 것이다. 하지만 미국에서 벌이는 일은 막을 방법이 없었다.
‘강진후만 없어지면 모든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까?’
정치적 수가 막히니, 온갖 생각이 다 들었다.
일이 이렇게 되기 전에 미리 손을 봐놨어야 하는 건데……,
강진후는 캘리포니아를 구해낸 영웅. 만약 신변에 이상이 생긴다면, 미국이 절대 가만히 있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냉정하게 생각하면 강진후가 없어진다고 해결될 문제도 아니다.
박시형이 결함을 알고도 은폐한 것은 이렇게까지 문제가 될 거라고는 생각지 못했기 때문이다.
차라리 출고 직후 에어백이 줄줄이 폭발하고 수십 명이 사망했다면, 진작 조치를 취했을 것이다. 그런데 5천만 대 이상 출고됐음에도 문제가 생긴 건 수백 대에 불과했다.
‘고작 열댓 명 죽은 것 가지고 이 난리라니.’
사탕 먹다가 목에 걸려서 죽은 사람도 그보다는 많지 않을까?
대책을 찾지 못하는 사이 결국 카로스는 언론에 은성차의 에어백 결함을 공표했다. 은성차는 별다른 대응을 하지 않았다.
괜히 잘못 대응했다가는 사태를 오히려 키울 수도 있기 때문이다.
리콜과 PAS의 파산은 기정사실이나 다름없었다. 그보다 더 큰 문제는 미국 법무부가 고의 은폐에 대해 조사에 나섰다는 것이다.
나쁜 소식은 혼자 오지 않는다고 했던가?
대응책을 찾기 위해 분주한 상황에서 이일선 비서관이 갑자기 경찰청에 모습을 드러냈다. 며칠 동안 연락이 안 되더니,허락도 맡지 않고 출두한 것이다.
놀랍게도 그는 언론 앞에서 대통령이 보수단체에 관제데모를 지시했다는 사실을 밝혔다.
그의 입장에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예전이었다면 적당히 재판을 끌다가 여론의 관심이 식었을 때쯤 집행유예 판결을 내렸을 것이다. 그리고 일이 끝난 다음에는 은성차나 PAS 쪽에서 한 자리 받을 수 있었겠지.
그러나 지금은 경찰이고 검찰이고 잔뜩 벼르는 중이고, 나중에 자리를 약속받기도 힘들었다.
괜히 몸통이라고 주장했다가는 혼자 독박 쓰고 끝날 가능성이 높다. 반면 지시사항을 전달만 했다면, 책임을 피할 수 있다.
청와대 관저에서 TV로 그 모습을 지켜보던 박시형은 충격에 휩싸였다.
“이런 개자식이!”
근본 없는 놈을 거둬다가 비서관까지 시켜줬다. 평생에 걸쳐 은혜를 보답해도 부족할 판에 배신이라니!
그러나 이건 시작에 불과했다.
한 번 생긴 균열은 순식간에 걷잡을 수 없을 만큼 사방으로 뻗어나갔다.
* * *
미국 도로교통안전국은 PAS 에어백 장착 차량에 대해 강제리콜명령을 내렸다. 다른 나라들 역시 비슷한 조치를 검토했다. 손 놓고 있는 건 한국정부밖에 없었다.
반사이익을 입을 것으로 기대되는 자동차업체들은 쾌재를 불렀다. 대놓고 ‘우리 차의 에어백은 안전합니다’라고 광고를 하는 곳도 있었다.
이어서 미국의회 청문회가 열렸다.
PAS 임원들은 줄줄이 미국으로 불려갔다. 자진해서 출석하지 않으면 인터폴(Intelpol)에서 적색수배(Red Notice) 대상으로 등록한다고 하니 다른 방법이 없었다.
토요타 리콜 사태 때도 고의 은폐가 심각한 문제가 되었다. 토요타는 기소유예를 받기로 하는 조건으로 12억 달러의 벌금을 냈다. 하지만 PAS에 그만한 돈이 있을 리 없다. 그리고 그 후 관련법이 강화되어 설사 벌금을 낸다고 해도 기소를 피할 수는 없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책임을 져야했다. 그 책임은 곧 구속을 의미했다. 적어도 몇 년은 교도소 신세를 져야 한다.
미국교도소는 인종차별이 심하기로 악명 높다. 그런 곳에 유색인종이 기업범죄로 들어가면 무슨 일을 당하게 될까?
충성심이나 애사심만으로 총대를 메기에는 반대급부가 너무 크다. 그리고 애사심이라는 것도 회사가 멀쩡할 때나 생기는 법이다. 교도소에서 몇 년 살다 나오면 회사가 없어지게 생긴 마당에 뭔 애사심인가?
상원의원들은 은폐를 지시한 최종책임자가 누구냐고 추궁했다. 어느 선까지 보고가 올라갔고, 누가 명령을 내렸는지가 관건이다.
PAS 임원들은 책임을 피하기 위해 기꺼이 증언했다.
당시 경기도지사였던 박시형에게 수차례 보고했고, 그가 직접 은폐를 지시했다는 것이다. 원래 뭐든 처음이 힘든 법이다. 누군가 먼저 입을 열기 시작하자, 증언과 증거가 쏟아졌다.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매달 결산보고서를 들고 찾아갔다.’
‘에어백 관련 사고가 있을 때마다 보고했다.’
‘박시한 사장을 배제하고, 중요한 결정은 박시형이 직접 내렸다.’
청문회 과정은 생중계되었고, 지켜보던 모두가 경악을 금치 못했다.
설마 PAS의 실소유주가 한국대통령이었을 줄이야!
* * *
-(진여준) 본격 각하 헌정방송을 시작합니다. 안타깝게도 오늘이 마지막 방송입니다. 저희가 그동안 PAS는 누구 거냐고 열심히 이빨을 털었는데, 이제는 더 이상 그럴 필요가 없어졌습니다.
-(조우진) 왜냐하면 PAS가 각하 것이라는 게 드디어 밝혀졌기 때문이죠.
-(조우진) PAS 실소유주 문제가 처음 나온 건 지난 대선 한국가당 경선 때였죠.
-(진여준) 그때 각하 발언을 다시 한 번 들어보시죠.
-뭐 PAS가 어떻다구요? 실소유주가 누구라구요? 전부 새빨간 거짓말입니다! 전 그런 삶을 살아오지 않았습니다! 여러분 이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진여준) 으허허허! 다시 들어도 웃기네.
-(조우진) 저도 매번 들을 때마다 빵 터집니다.
-(진여준) 각하 입장에서는 그동안 얼마나 답답했겠어? 아니, 세상에 자기 회사를 자기 회사라고 말 못하는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어? 홍길동이야, 뭐야?
-(조우진) 이제라도 각하께서 회사를 되찾으셔서 정말 다행입니다.
-(진여준) 그런데 이게 완전 사기꾼 집단인 게 뭐냐면, 미국 청문회에 불려간 놈들이 전부 각하 이름을 불었어. 누구 하나 각하를 위해 총대 멜 생각이 없는 거야. 내가 몸통이다! 내가 각하 대신 감방에 들어가겠다! 왜 말을 못해?
-(조우진) 전부터 말씀드렸지만, 각하께서는 오로지 각하 본인만을 생각하십니다. 각하께서 주변사람들을 챙겨주지 않는데, 그 사람들이 왜 각하를 챙겨주겠어요?
-(진여준) 꼼꼼하신 각하께서는 아무도 믿지 않아. 심지어는 친동생도 못 믿어서 대통령이 된 이후에도 PAS의 일을 직접 챙기셨지. 그 바람에 이렇게 된 거야.
-(조우진) 각하의 성실함이 각하의 발목을 잡았다고 봐야죠. 각하께서는 지금 억울해하시며, 죽은 탁권택 사장을 원망하고 계실 수도 있을 거예요.
-(진여준) 그도 그럴 것이 PAS가 은성차랑 짜고 사기 쳐서 TKT정밀을 인수하지만 않았어도 이런 일이 없었을 거 아니야? 그리고 고 탁권택 사장의 자료가 결정타였지. 에어백 결함을 은성차와 PAS에 여러 차례 알린 것과 해당기관에 신고한 내역이 낱낱이 공개됐으니까. 어쩌면 각하께서는 황제가 노예에게 찔렸다고 생각하실 지도 몰라.
-(조우진) 두 번 찔린 셈이죠. 한 번은 에어백 결함으로, 다른 한 번은 은폐를 폭로한 걸로.
-(진여준) 노예는 두 번 찌른다는 얘기도 있잖아. 아무튼 저희한테 제보해주신 분이 이 말을 꼭 해달라고 부탁했습니다.고 탁권택 사장은 자신이 개발한 에어백에 결함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된 뒤, 그것을 알리기 위해 최선을 다했습니다. 그런데 은성차와 PAS는 그의 입을 틀어막고, 진실을 감추기에 급급했습니다.
-(조우진) 이제 그 대가를 치르게 된 거죠. 각하는 임기 끝나시는 대로 조사받는 일만 남으셨네요.
-(진여준) 으허허! 각하 감방 가신다!
* * *
불씨는 바로 정치권으로 튀었다.
최문길이 대선에 출마하며 보수후보 하나에 진보후보 둘의 구도가 만들어졌다.
자유국민당이 이미지 쇄신을 통해 중도보수층을 흡수하고, 최문길이 허창민의 표를 일부 갉아먹은 덕분에 이정혜는 격차를 벌리며 앞서 가고 있었다.
대통령의 꿈이 눈앞에 있었다.
이대로만 가면 최초의 여성대통령이 탄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투표를 얼마 남지 않은 시점에서 초대형 악재가 터졌다.
아무리 친박계와 각을 세우고 정권교체를 외친다고 해도 자유국민당은 태생적으로 박시형과 관련성을 부정하기 힘들다.
특히나 이정혜는 지난 대선 당시 박시형 선거캠프에서 대변인을 맡았고, PAS 실소유주 문제가 불거지자 적극적으로 변호한 전력이 있다.
대선토론회에서 새정치당 허창민은 그 점을 집중 공격했다.
“지난 대선에서 이정혜 후보님께서는 PAS가 박시형 대통령과 아무 관련 없다고 여러 차례 주장하셨습니다. 지금도 같은 생각이십니까?”
이정혜는 대답을 회피하며, 두루뭉술하게 말했다.
“조사를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PAS가 박시형 대통령 게 맞습니까, 아닙니까? 맞다면, 본인 회사를 위해 권력을 남용하고, 은성차와 정경유착한 거니,이건 임기 끝나자마자 구속해야 할 사안입니다. 이정혜 후보님께서 한 번 말씀해보십시오. 그래서 PAS는 누구 겁니까?”
추궁이 계속되자, 그녀는 애써 부인했다.
“아직 확인되지도 않은 사실을 가지고 이렇게 주장하시면 안 되죠.”
“PAS 임원들이 미국의회 청문회에서 증언하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그 사람들 말을 어떻게 믿을 수 있나요?”
“최근 인터넷에 떠도는 영상은 보셨습니까?”
허창민은 준비해온 영상을 틀었다.
PAS 설립초기 사내강연을 몰래 찍은 영상으로 박시형이 자신이 PAS를 설립했고, 운영하고 있다고 말하는 장면이 있었다.
“이래도 PAS가 박시형 대통령 게 아닙니까?”
“그건…….”
반박할 말이 없자 이정혜는 아무 말이나 나오는 대로 뱉었다.
“주어가 없잖아요.”
“예?”
“‘PAS를 설립해서 운영하고 있다’라고만 말했지, ‘내가’ 한다고 하지는 않았잖습니까?”
허창민은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지금 저랑 말장난합니까?”
“마, 말장난이라니요?”
“그럼 주어가 없다는 게 말장난이 아니면 뭡니까? 이건 국민들을 우롱하는 겁니다.”
정곡을 찔린 이정혜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 삿대질하며 소리쳤다.
“아니,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세요? 당장 후보직에서 사퇴하세욧!”
* * *
[박시형 대통령, 직접 에어백 결함 은폐 지시] [오래 전부터 논란이 된 PAS 실소유주 의혹!] [PAS는 누구 것인가?] [박시형 대통령 묵묵부답] [청와대 입장발표 없어]한민구는 쏟아지는 언론기사를 보며 중얼거렸다.
“결국 이렇게 됐군.”
PAS 실소유주가 박시형이라는 게 밝혀진 이상 은성차가 정부에서 받았던 각종 혜택들도 문제가 될 수밖에 없다.
당장 정부주도 아래 추진되던 수소차 지원은 전부 중단될 것이다.
‘차라리 잘된 일일지도…….’
전기차는 수소차와는 달리 배터리 용량과 충전시간이라는 한계를 지니고 있었다. 그러나 김호민 교수는 그 한계를 뛰어넘는 차세대 배터리를 개발해냈다.
상용화까지는 시간이 걸리겠지만, 이 시점에서 이미 저울추는 전기차 쪽으로 기울었다.
수소차 진영은 진작 이탈 조짐을 보이고 있었는데, 이번 일로 완전히 끝장났다.
은성차는 이제까지 수소차에 막대한 돈을 투자했고, 신차 두 종의 개발을 끝내고 양산만을 앞두고 있었다. 하지만 이런 분위기에서 출시한다고 해도 팔릴 리가 없었다.
지금으로서는 미래차 개발계획을 원점에서부터 재검토해야 한다.
‘대체 어디서부터 잘못됐을까?’
카로스를 매각했을 때부터? 강진후를 적대시했을 때부터? 아니면, DHK엔지니어링이 망했을 때부터?
어쩌면 화해할 수 있는 기회가 여러 차례 있었을지 모르겠다.
은성차로 인해 집안이 망하고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알았을 때 진심으로 사죄하고 협력을 구했다면, 어떻게 되었을까? 지금과는 뭔가 달라졌을까?
후회해봐야 이미 늦었다.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강진후가 아니었어도 언젠가는 터질 일이었다.
어째서 에어백 결함을 알았을 때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던 걸까?
단지 PAS와의 협력관계 때문이었을까? 이 정도 결함은 문제없을 거라고 안이하게 생각했던 건 아닐까?
‘나도 늙었나보군.’
지금 상황은 은성차에게 있어서 최악의 위기였다.
하지만 은성차는 이대로 무너질 만큼 약하지 않다. 버틸 수 있는 현금과 체력은 충분하다.
토요타 역시 리콜 사태로 한때 회사가 휘청거렸으나, 지금은 다 극복하지 않았던가?
은성차 역시 분명히 그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 전에 누군가는 이번 사태에 책임을 져야 했다.
한민구는 회장으로서 마지막 지시를 내렸다.
“기자회견을 준비하게.”
한민구 회장은 본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었다.
“은성차는 소비자 안전을 위해 PAS 에어백이 장착된 모든 차량에 대해 리콜을 실시하겠습니다. 이는 모든 나라에 동일하게 적용될 것이고, 부품이 수급되는 대로 진행될 예정입니다. 조속한 시일 안에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임직원 모두가 최선의 노력을 다할 것을 약속드립니다. 은성차를 사랑해주신 모든 소비자 여러분들께 죄송합니다.”
은성차 리콜 발표는 즉시 속보로 올라갔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발표가 아직 남아있었다.
한민구 회장은 담담하게 말을 이었다.
“이번 일에 대한 모든 책임은 저에게 있습니다. 저는 책임을 지고 이 시간부로 은성차 회장직을 비롯해 모든 직책에서 물러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발표를 끝마친 한민구 회장은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재계 2위 그룹을 이끌던 거인의 퇴임치고는 초라한 모습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