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98)
중진국의 함정이라는 말이 있다.
경제개발 초기에는 빠르게 성장하지만, 일정 수준에 올라선 이후에는 성장이 정체된다. 결국 선진국으로 도약하지 못하면, 중진국으로 남거나 오히려 추락하게 된다.
다행히 한국은 국민소득 3만 달러에진입하는 데성공했다. 이쯤 되면 충분히 선진국 반열에 올라섰다고 할 만하다. 정치,경제, 사회적으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이 여전히 많긴 하지만.
어쨌거나 이는 엄청나게 대단한 일이다.
미국, 유럽, 호주 같은 서방국가나, 아시아에서 가장 먼저 근대화를 시작한 일본을 제외하면, 인구가 5천만 명 이상인 나라 중 국민소득 3만 달러가 넘는 나라가 몇이나 되겠는가?
그 나라들은 이미 전부터 경제발전을 해온 반면, 한국은 고작 수십 년만에 이 정도로 성장을 이뤄냈다.
그러나 아직 안심하기는 이르다.
한국은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자본축적의 역사가 짧은 만큼 경제성장이 멈추는 순간 급격히 무너져 내릴 가능성이 있다.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라도 계속 성장을 해나가야 한다.
택규는 눈을 껌뻑이며 말했다.
“니가 언제부터 이렇게 애국자였어?”
난 어이가 없어서 물었다.
“그럼 매국노겠니?”
원래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다. 기왕이면 다른 나라보다는 한국이 잘나갔으면 하는 바람이다.
“적어도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해야지. 누가 알아주든 알아주지 않든.”
택규는 팔짱을 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원래 절대자의 길은 고독한 법이야.”
“…….”
* * *
난 상엽 선배와 함께 청와대로 향했다.
백악관은 가봤지만, 정작 청와대에 온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역시나 입구부터 검문검색이 이뤄졌다.
임진용 회장은 물론이고, 10대그룹 관계자들은 대부분 와있었다.
한찬영 회장은 부친상으로 인해 빠졌고, 대신 임현홍 은성차 사장이 참석했다. 나는 리테그룹 진동민 부회장, 신세기그룹 장용철 부회장 등과 차례대로 인사를 나눴다.
내가 처음 한국에 정체를 드러냈을 때만 해도 다른 재벌그룹들의 시선이 그렇게 곱지는 않았다.
아마 투기로 운 좋게 돈 번 애송이 정도로 여겼겠지. 그러나 그 생각이 완전히 바뀌기까지는 그리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았다.
재벌그룹들이 신산업에서 고전하고 있는 사이 OTK컴퍼니가 투자한 기업들은 급속도로 성장했다.
카로스가 은성차를 집어삼킬 거라고 누가 상상이나 했겠는가?
지금은 산업계, 금융계 할 것 없이 OTK컴퍼니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그리고 그만큼 내 위치는 올라갔다.
재벌가들끼리 역사니 전통이니 해봐야, 시장에서는 돈 많은 놈이 최고다.
실제로 OTK컴퍼니와 초기에 손을 잡은 서성그룹은 덩달아 함께승승장구하고 있다. 그러나 다른 그룹들은 어려움을 겪는 중이다. 그리고 그건 주가로 나타났다.
놀랍게도 RCK브로스 류철균 회장도 참석했다. 이런 자리에는 잘 참석하지 않는 걸로 아는데.
그는 웃으며 말했다.
“괜히 왔나 했는데, 강진후 대표님도 오셔서 다행입니다.”
난 반가워하며 말했다.
“회장님 혼자 오신 거예요?”
“병두 그 친구는 중국 쪽에 일이 좀 있어서요. 그때 같이 있던 부대표님은 안 오셨네요.”
“제 친구는 얼굴 팔리는 걸 싫어해서요.”
잠시 앉아서 기다리자 대통령이 들어왔다.
허창민 대통령은 기업인들에게 다가와 일일이 악수를 했다. 이어서 나에게도 손을 내밀었다.
“하하, 강진후 대표님도 오셨군요. 정말 반갑습니다.”
“안녕하세요.”
인사가 다 끝난 뒤 우리는 다시 자리에 앉았다. 직원들은 테이블 위로 음식을 날라주었다.
메뉴는 비빔밥. 안에 담긴 쌀과 나물은 팔도에서 올라온 것들이라고 한다.
허창민 대통령이 말했다.
“비빔밥은 서로 다른 재료가 모여 최고의 맛을 냅니다. 이 비빔밥처럼 정부와 기업도 하나가 되어서지금의 경제상황을 헤쳐나갔으면 합니다.”
뻔하고 오글거리는 멘트였다.
식사가 끝나고 나자 커피와 차가 나왔고, 본격적인 간담회가 시작됐다.
비공개 간담회도 아니고, 언론사 카메라가 와있는 공개 간담회다.
역시나 재벌회장들은 최선을 다해 투자하고,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원대한 포부를 밝혔다. 앞으로의 전망이 어둡다거나, 경제상황이 안 좋다는 말 따위는 하지 않았다.
경제는 심리고, 자기실현적 예언이 잘 이뤄진다. 경제가 나빠질 거라 생각해서 소비와 지출을 줄이면 진짜로 나빠지고,좋아질 거라 생각해서 소비와 지출을 늘리면 진짜로 좋아진다.
때문에 어느 정부든 간에 웬만해서는 경제가 어렵다는 사실을 잘 인정하지 않는다. 침체가 가속화될 우려가 있기 때문이다.
물론 인식을 하고 있되 말하지 않는 것과, 아예 인식조차 하고 못하고 있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지만.
난 조용히 다른 기업인들의 말을 들었다.
“또 말씀하실 분 없으십니까?”
아무도 나서지 않자 허창민 대통령이 나에게 말했다.
“강진후 대표님께도 한 말씀 부탁드리고 싶습니다.”
마이크가 내 손으로 넘어왔고, 카메라도 내 쪽으로 향했다.
난 자리에서 일어나서 말했다.
“먼저 이런 자리에 참석하게 돼서 영광입니다. 제가 경제에 대해 잘 알지는 못하지만, OTK컴퍼니를 운영하고 투자를 하며 느끼고 있는 점에 대해 말씀드리려고 합니다.”
허창민 대통령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고, 분위기는 화기애애했다.
난 계속해서 말했다.
“지금 한국경제는 어려운 상황이고, 많은 기업들이 신산업에 뒤쳐져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된 데에는 여기 계신 분들의 책임이 전혀 없다고 할 수는 없을 겁니다.”
한국 재벌들은 정치권과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재벌그룹들이 신산업 육성에 적극적이었다면, 정부도 어느 정도 호응했을 것이다.
그러나 재벌그룹들은 그동안의 성공에 취해 안주했다. 관성이라는 물리법칙은 기업에도 적용된다. 새로운 일을 처음부터 시작하는 것보다는 하던 일을 계속하는 게 편하니까. 그리고 이제까지는 그 방법이 먹혔다.
기존 마차보다 더 편하고 고급스러운 마차를 만들어서 내놓으면 소비자들이 좋아했으니까. 그런데 그런 사이 어디선가 자동차라는 게 만들어졌다.
CL전자는 스마트폰 시장을 놓쳤고, 유통그룹인 신세기와 리테는 온라인마켓에서 고전 중이다.
지난날의 성공이 지금에 와서는 발목을 잡게 된 셈이다.
갑자기 분위기가 싸해졌다. 다들 불편한 표정을 지었다. 지금 대화내용은 당장 오늘 저녁에 뉴스로 나갈 것이다.
“무엇보다 시대에 뒤떨어진 규제가 너무 많습니다. 기업 활동에 규제가 필요한 것은 맞지만, 한국은 너무 심합니다. 세계적인 스타트업들도 한국에 들어오는 순간 불법이 됩니다. 그렇다고 외국기업들의 진입을 막고 있는 사이 국내 산업을 제대로 육성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이대로라면 몇 년 안에 신산업들을 외국에 빼앗기게 될 겁니다.”
참모들은 낭패라는 표정을 지었고, 허창민 대통령 역시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는 최대한 불편한 기색을 숨긴 채 물었다.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습니까?”
“지금까지처럼 소수이익집단의 표를 눈치 보며 개혁을 미루는 일을 멈춰야 합니다. 그것이 옳은 일이고 국가와 국민을 위한 일이라면, 당의 유불리나 선거에서 표 계산을 따지지 말고 진행해야 합니다.”
내 발언은 정치권을 대놓고 비판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순식간에 분위기가 싸해졌다. 아무도 숨소리조차 내지 않았고, 허창민 대통령의 얼굴을 살짝 붉혔다.
그러나 난 눈치를 보지 않고 계속 말했다.
“정부든 기업이든 미래를 준비해야 합니다. 남은 시간은 그리 많지 않습니다.”
허창민 대통령은 쓸씁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잘 들었습니다.”
그후로 두세 시간 정도 대화가 더 이어졌다.
허창민 대통령은 기업인들을 둘러보며 말했다.
“오늘 아주 뜻깊은 자리였습니다. 정부가 보는 시각과 현장에서 기업인들이 보는 시각은 다를 거라 생각합니다. 계속 힘써주시고, 우리 정부가 큰 도움이 될 수 있도록 더욱 노력해나가겠습니다. 앞으로도 주기적으로 이런 자리를 통해 기업인들과 계속 소통을 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 * *
청와대 간담회가 끝나고 나자, 강진후의 발언은 바로 이슈가 됐다.
[강진후, 허창민 정부 경제정책 전면비판!] [신산업에 뒤쳐진 한국경제] [기업혁신지수 바닥……] [정부와 국회, 제 역할 못해……] [청와대, 경기침체 공식적으로 인정하나?]여당인 새정치당은 강진후 발언에 대해 유감을 표했고, 자유국민당은 청와대와 강진후를 동시에 비판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며칠 후, 허창민 대통령은 직접 기자들 앞에 서서 발표했다.
“규제개혁을 통해 신산업을 육성하고, 새로운 일자리를 만들어나가겠습니다. 새로 만드는 규제는 존속기한을 설정해 타당성이 없는 것으로 판명되면 바로 폐기하고, 규제 법안은 현재의 포지티브 방식에 네거티브 방식으로 바꿔가도록하겠습니다.”
포지티브 방식은 할 수 있는 일을 정해놓고, 그 외는 허용하지 않는다. 반면 네거티브 방식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적어놓고, 거기에 해당되지 않으면 폭넓게 허용한다.
당연히 후자의 경우가 산업변화에 훨씬 빠르고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다.
“또한 청와대 홈페이지에 불합리한 규제에 대한 국민청원을 받아 10만 명 이상이 동의하면, 해당부처가 답변하고, 폐지나 수정을 위한 논의를 시작하겠습니다.”
이런 방식은 청와대가 처음 시도하는 것은 아니고, 백악관의 ‘위 더 피플’을 모방한 것이다. 발표가 나가고 나자 홈페이지에는 기다렸다는 듯이 규제를 풀어달라는 청원이 쏟아졌다.
[게임 셧다운제부터 폐지하자. 대체 어떤 정신 나간 새끼가 이런 규제를 만든 거냐?] [음식점과 카페의 테라스와 루프탑 영업을 허용해주세요.] [단통법 안 없애냐?] [한국도 승차공유 해야 합니다.] [숙박공유에 대한 규제를 풀어야 합니다.] [자율주행과 무인차를 허용하라!] [개인도 공매도 할 수 있게 해주세요.] [달풍선 상한제 풀어주세요. BJ들은 땅파 먹고 삽니까?] [국회의원들 해외출장에 대한 규제를 신설합시다.] [재건축 활성화를 위해 고도제한 풀어주세요. 우리 아파트 80층까지 올리고 싶습니다.] [합리적 규제를 만들어서 드론산업을 활성화시켰으면 합니다.] [원격의료와 AI 진료를 도입할 필요가 있습니다.]불필요한 규제개혁을 촉구하는 청원도 많았지만, 중복된 청원, 또는 무리한 요구나 쓸데없는 내용도 많았다.
그런데 유독 한 청원이 사람들의 눈길을 끌었다.
[(포르노 규제철폐) 정부는 단 한번이라도 우리 국민들에게 행복한 꿈을 꾸게 해본 적이 있습니까?]저는 정부에게 묻고 싶습니다. 정부는 우리 국민들이 마음 편하게 포르노를 볼 수 있게 해준 적이 있나요?
포르노가 나쁜 거라구요?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고, 각종 문제를 일으킨다구요?
그렇다면 대체 우리나라보다 인권수준이 높은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왜 허용하고 있을까요?
저는 포르노로 인해 여태껏 현실에서 가져보지 못한 행복한 시간을 보낼 수 있었습니다.
어쩌면 나도 저런 애인을 만날 수 있을지 모른다.
어쩌면 나도 (검열삭제)를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지금 포르노가 불법이라고 해서, 우리 국민들이 포르노를 안 보나요?
국민들은 바보가 아닙니다. 건전한 성인남녀가 보는 포르노는 허용돼야 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보는 것이며, 그냥 마구잡이로 보는 것이 아닌 제작사와 출연배우, 품번을 꼼꼼하게 알아보며, 일상에 무리가 가지 않는 수준에서 현명하게 좋은 작품만 찾아서 봅니다.
그런데 일부 불법촬영물로 인해, 정상적이고 합법적으로 제작된 포르노를 보는 우리들까지도 범죄자 취급을 받고 있습니다.
포르노제작사에 대한 철저한 관리, 세금부과, 배우들의 인권보호, 미성년자 접근 금지. 이는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제도입니다. 저는 반대하지 않습니다.
물론 현재에도 인터넷에서 포르노를 찾아보는 것에는 아무 어려움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이런 청원을 올리는 것은 시대의 흐름상 포르노는 4차 산업혁명의 주요 산업이라 판단되기 때문입니다.
언제까지 자라나는 성인들이 한국 실정에도 맞지 않는 미국 포르노나 일본AV를 봐야 하나요?
이제 한국도 포르노를 제작할 시기가 됐습니다.
선진국들이 이미 포르노산업에 투자하고, 더 발전해 나가는 상황에서 대한민국만 타당하지 않은 규제로 인해 경제가 쇠퇴하고 있습니다.
부디 한국에서 당당하게 한국 포르노를 볼 수 있는 꿈을 빼앗지 말아주십시오.
익명의 네티즌이 올린 이 청원은 순식간에 다른 사이트들로 퍼져나갔다.
-진짜 간만에 보는 띵문이었다.
-보다가 울 뻔했음ㅜㅜ
-야동에 있어서만큼은 우리나라는 아직도 일본의 식민지나 다름없다!
-서구열강의 야동에 의존하는 사대주의적 행태를 멈춰야 한다!
-살포시 동의 누르고 갑니다.
-정부는 포르노산업에 대한 규제를 풀어라!
-신산업을 육성하자!
-성인이 성인물 보는 게 뭐가 문제냐?
-동의 누르고 링크 퍼갑시다!
포르노 규제철폐 청원은 올린지 단 이틀 만에 10만 명의 동의를 받는데 성공했고, 그 이후 일주일 만에 무려 100만 명의 동의를 받았다.
모든 청원을 통틀어서 최단시간, 최대인원 동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