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299)
익명의 네티즌이 올린 포르노규제 반대 청원은 일주일 만에 100만 명의 동의를 받았고, 열흘 만에 120만 명을 넘어섰다.
30일 동안 청원동의를 받으니, 이대로라면 200만 명도 돌파하지 않을까?
이렇게 되자 언론에서도 일제히 이 사실을 주요뉴스로 보도했다. 난 실시간으로 올라가는 동의수를 보며 황당해했다.
“이게 뭔 일이야? 규제개혁에서 포르노가 왜 나와?”
택규는 당연하다는 듯 말했다.
“몰라서 물어? 포르노야말로 가장 먼저 규제를 풀어야 할 산업이지. 때가 어느 때인데 아직도 포르노가 불법이라는 게 말이 돼?”
“그렇긴 하다만.”
성매매의 경우 선진국들 중에 허용하는 나라도 있고, 하지 않는 나라도 있다. 그러나 포르노의 경우 모두가 허용하고 있다. 선진국들 중 포르노가 불법인 나라는 사실상 한국이 유일하다.
대체로 글로벌 스탠다드를 따르는 한국이지만, 포르노에 있어서만큼은 이슬람국가들과 비교해도 결코 뒤지지 않을 만큼 강력한 규제를 자랑했다.
엘리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예전부터 궁금했는데, 왜 한국만 포르노가 불법인 거예요? 성인이 성인물을 즐기는 건 문제가 없잖아요. 즐기는 게 문제가 없다면 만드는 것도 문제가 없고.”
“음…….”
친구 앞에서 여자친구와 포르노에 대해 얘기를 나누게 될 줄이야.
엄밀하게 말해 성인물 자체가 불법은 아니다. 에로영화는 합법이니까. 그러나 실제 성행위를 하는 포르노는 불법이다.
“일단 유교문화권인 게 가장 큰 이유겠죠. 급속한 산업화 과정에서 제대로 된 논의가 이뤄지지 못한 것도 있을 테고.”
포르노에 한해서만큼은 진보와 보수 모두 반대 입장이다. 여기에 기성세대의 보수적 성향, 여성인권, 청소년 교육 문제까지 겹치며 더욱 복잡해졌다.
택규가 말했다.
“신기한 건 법으로는 금지되어 있는데, 모두가 보고 있다는 거지.”
한국에서 포르노는 단 한 번도 합법이었던 적이 없다. 그러나 단 한 번도 포르노가 없었던 적도 없다.
인터넷이 없던 시절에는 용산이나 청계천 뒷골목 같은 곳에서 잡지, 비디오테이프, CD 등을 몰래 거래했고, 인터넷이 열린 이후에는 네트워크를 통해 본격적으로 외국 포르노가 쏟아졌다.
지금도 클릭과 검색 한두 번이면 얼마든지 손쉽게 포르노를 찾아볼 수 있다.
“그럼 이제는 허용해도 되지 않아요?”
규제를 없애면 피해를 입게 될 기존사업자들이 거세게 반대하는 게 보통이지만, 포르노의 경우 반대할 만한 기존사업자도 없는 상태다.(에로영화 업계가 피해를 입게 되겠지만, 이미 불법 포르노로 인해 전멸한 상태다)
이쯤이면 합법화를 위한 사회적 논의를 시작할 때도 됐지만…….
“한국에서 성과 관련된 얘기는 대단히 민감해서요.”
아무리 음지에 광범위하게 퍼져 있더라도 그걸 양지로 끌어올리기는 쉽지 않다. 어른들의 체면이랄까?
“한국은 아시아국가들 중에서 꽤 개방적인 편 아닌가요?”
“겉으로 보기에는 그럴지 몰라도 의외로 보수적이에요.”
택규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치. 청소년이 콘돔 사기도 힘든 나라인데.”
그 말에 엘리는 깜짝 놀랐다.
“정말요? 피임방법 등은 학교에서도 가르치잖아요.”
“이게 내용이 좀 웃긴데…….”
콘돔은 의료용품인 만큼 청소년도 약국이나 편의점 등에서 얼마든지 구매가 가능하다. 그러나 돌기형이나 기능형 콘돔은 성인용품으로 지정돼 청소년에게 판매가 금지된다. 만약 판매할 경우 1년 이하의 징역이나, 5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질 수 있다.
“어째서요?”
“청소년들이 쾌락을 느끼는 것을 막기 위해서라는데요.”
내 말에 엘리는 웃음을 터트렸다.
“한국에는 그런 농담이 있어요?”
택규와 나는 동시에 고개를 저었다.
“농담이 아니라 진짜예요.”
엘리는 당황하며 말했다.
“아니, 쾌락을 안 즐길 거면 그걸 왜 하는데요?”
“뭐…… 그렇긴 하죠.”
대체 이게 뭔 소리인지 나도 이해가 안 된다.
정확히는 청소년보호위원회가 고시한 사항이고, 이후 청소년보호위원회는 여성가족부에 소속됐다. 그리고 여성가족부는 20년이 넘도록 이 규정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말도 안 되는 규정 하나 바꾸지 못할 만큼 한국에서 성 문제는 논의 자체가 힘들다. 하물며 그게 포르노라면 말할 것도 없겠지.
법으로는 불법이지만, 모두가 보는 그런 애매한 상황이 지금까지 이어졌고, 언젠가는 공론화될 문제이기도 했다.
이런 식으로 갑자기 불거질 줄은 몰랐지만.
합법이냐 불법이냐를 떠나서, 중요한 사실은 포르노가 거대한 산업이라는 것이다.
포르노산업은 끝없이 성장 중이다. 심지어는 경기가 불황일 때나 호황일 때나 가리지 않았다.
한국을 제외하면, 거의 모든 나라들이 포르노산업을 키우고 있고, 미국, 영국, 일본, 프랑스 등에서는 이미 엄청난 규모의 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포르노 시장은 커지면 커졌지, 절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실제로 신기술과 결합하며 폭발적인 성장세를 보였다.
기술발전에 따라 포르노의 소비방식은 계속 변해왔다. 초창기에는 주로 성인영화관에서 상영했으나, 이후 컬러TV와 비디오플레이어 보급으로(포르노가 보급을 앞당겼다) 집 안에서 보는 것으로 바뀌었다.
인터넷 발달 이후에는 TV에서 컴퓨터로 매체가 변했고(역시나 포르노가 보급을 앞당겼다), 현재는 모바일이 대세였다.시청도 다운로드에서 스트리밍으로 변하는 추세다.
모든 신기술이 가장 처음 쓰이는 분야가 포르노라는 말처럼, 4차 산업혁명의 바람은 포르노업계에도 휘몰아쳤다.
그리고 페이스잇은 이러한 신기술을 적극 도입해 명실상부한 포르노업계의 최강자로 거듭났다. 빅데이터를 활용한 추천 알고리즘, 4K 영상 제작, VR포르노, AI와 섹스돌과의 결합 등등.
앞으로 열릴 5G 시대 역시 포르노산업이 도약할 좋은 기회다. 페이스잇은 5G 네트워크를 활용한 버추얼섹스에 대한 연구도 한창이었다.
4차 산업혁명은 제조업 일자리를 축소시킨다. 그러나 콘텐츠 분야는 얘기가 달랐다. 서버와 홈페이지 관리와 제작에 필요한 일자리가 늘어나며, 각 업체들은 계속해서 고용을 늘리는 추세였다.
“페이스잇에 투자했을 때가 생각나네요. 그게 첫 스타트업 투자였는데.”
처음 투자한 기업이 이렇게 잘나가게 될 줄 누가 알았겠는가?
내 말에 엘리는 갑자기 뭔가 생각났다는 듯 물었다.
“아, 맞다! 그래서 그때 좋아했었다는 배우가 누구였죠?”
“배우요?”
“야동 배우 말이에요.”
“아…….”
내가 당황하자 엘리는 웃음을 지었다.
“이제는 솔직하게 말해줄 때도 됐잖아요. 어서 얘기해 봐요.”
“…….”
은퇴한 그녀의 사생활을 지켜주고 싶다.
* * *
규제개혁에 대한 청원동의가 20만 명이 넘으면 해당 부처 책임자가 답변을 해야 한다.
언론의 관심이 집중되자 여성가족부 신전미 장관이 나서서 입장을 밝혔다.
“여성가족부는 그동안 여성의 성상품화와 음란물 근절을 위해 노력해 왔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수많은 여성들이 불법촬영과 리벤지 포르노 등으로 인해 고통을 받고 있고, 심지어는 극단적인 선택까지 하고 있습니다. 여성은 즐거움과 소비의 대상이 아닙니다. 여성의 인권보호와 건전한 성문화 정착을 위해 포르노는 금지되어야 합니다.”
네티즌들은 대체로 황당하다는 반응이었다.
-ㅋㅋㅋ몰카랑 포르노를 같은 선상에 올려놓는 여가부 클래스.
-불법촬영물과 리벤지 포르노는 엄연한 범죄고, 이는 반드시 근절시켜야 한다는 데 동의함. 그런데 왜 정상적이고 합법적으로 제작된 포르노까지 같은 취급을 받아야 하는 거임?
-은근슬쩍 이 둘을 묶어서 얘기하네.
-아예 섹스를 금지하는 법안을 만들자고 하지?
-에휴! 이런 유교국가에서 뭘 바라냐?
-여성의 인권보호와 건전한 성문화 정착을 위해 포르노가 금지돼야 하는 거면, 포르노를 허용하는 미국, 영국, 프랑스, 독일 등은 여성의 인권을 유린하고 불건전한 성문화를 확산시키고 있는 건가요?
-이런 나라들 성평등지수가 한국보다 높다는 게 함정ㅎㅎ
-여가부 장관님께서 UN인권위원회에 출석해 포르노를 허용하는 나라들을 고발해야 하지 않나요?
-한국 여가부 특징=한국 한정 여포.
자유국민당 이정혜 의원은 여기서 한술 더 떴다.
“대한민국에서 포르노는 엄연한 불법입니다. 그럼에도 그동안 제대로 단속이 이뤄지지 않았습니다. 저는 포르노의 단속과 처벌을 현재보다 더욱 강화하는 법률을 만들어 발의하겠습니다.”
이정혜 의원을 포함한 당내 여성의원들이 중심이 돼 총 열 명의 의원이 법안발의에 동참했다. 여기에는 새정치당 의원도 세 명 이름을 올렸다.
포르노 금지를 위해 초당적인 협력이 이뤄진 것이다!
네티즌들은 충격에 휩싸였다.
-안 돼, 이 ㅅㄲ들아!
-차라리 내 목을 쳐라!
-아니, 규제를 풀라고 청원했더니, 규제를 만드는 건 뭔 경우야?
-성인이 성인물 보는 걸 왜 막는 거냐?
-허허! 아주 십선비 나셨네. 아! 십선비는 절대 욕이 아니라, 대쪽 같은 선비의 기개를 지니신 열 명의 의원님들을 뜻하는 겁니다.
-맞네. 앞으로 저들을 십선비라 부릅시다!
-이 십선비들아!
그러나 십선비(?)를 지지하는 여론도 만만치는 않았다.
-포르노 규제를 절대 풀어서는 안 된다!
-생각해보세요. 우리 아이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한국 같이 남녀불평등이 심한 나라에서 포르노를 허용하면, 결국 여성에 대한 착취로 이어지게 될 것입니다.
-여성차별 중단하라!
-여자의 몸은 성적대상이 아니다!
-옛말에 남녀칠세부동석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포르노가 웬 말입니까?
-조상님 보기 부끄럽지 않은가?
-야동으로 인해 가정이 무너지고, 사회가 무너지고 ㅜㅜ
-포르노가 합법화되면, 한국은 포르노 천국이 된다!
-응? 그럼 개이득.
포르노 합법화를 둘러싼 논란이 점점 커지자, 외신들도 관심을 나타냈다. 외국인들은 한국에서 포르노가 불법이었다는 사실에 놀라움을 표했다.
이번 일로 페이스잇이 주목을 받게 되자, 토비 스트롱은 페이스노트에 글을 하나 올렸다.
[한국인들의 포르노 사랑은 대단하다. 우리는 이미 한국인 유료가입자 50만 명을 확보했다.]한국인 가입자가 많을 거라는 예상은 오래전부터 있었다. 그러나 CEO가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그의 발언에 사람들은 깜짝 놀랐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 사이트 넷플레이의 한국 가입자는 35만 명 수준. 그런데 포르노 사이트 페이스잇의 가입자가 그보다 많은 것이다!
-50만 명? 한국남자들 왜 이래?
-남친 방에서 인터넷을 썼는데 페이스잇 주소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날로 바로 헤어지자고 통보했습니다.
-혹시 제 애인도 가입했을까봐 걱정이네요ㅜㅜ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야동 안 보는 남자들도 많아요.
-물어보니까, 제 남편은 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야동을 본적이 없다고 하네요. 같은 남자로서 그런 거 보는 남자들 정말 이해가 안 된다고.
-ㅋㅋㅋ태어나서 단 한 번도 야동을 본적 없다고? 과연 그럴까?
-당국은 해외 포르노 사이트에 대한 접속을 철저하게 차단해야 합니다.
-그래봐야 VPN으로 우회하면 그만.
-VPN이 뭔가요?
-세인여대 컴공 수석으로 입학한 언니에게 물어보니 Video, Porno, Nomo의 이니셜이라고 합니다.
-허얼! 가끔 남자들이 인터넷 VPN, 어쩌구 하던 게 저런 뜻이었을 줄이야.
-진짜 더럽다. 어떻게 저런 단어를 인터넷에서 아무렇지 않게 쓸 수 있죠? 성희롱으로 고발해야하는 것 아닌가요?
-아, 씨바, 할 말을 잊었습니다.
-대체 어디서부터 지적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 컴공 다니는 언니에서부터 지적해야 하나, 아니면 세인여대에 공대가 없다는 걸 지적해야 하나?
-DNS는 Dirty, Nopo, Sex의 이니셜이니 참고하세요.
-HTTP는 Hen Tai The Porn ㅋㅋㅋ
-그럼 SNS는 Swapping, Nocon, Sex겠네?
토비 스토롱의 페이스노트에는 수만 개의 댓글이 달렸다.
다음날, 그는 추가로 글 하나를 더 올렸다.
인터넷은 또 다시 뒤집어졌다.
-뭐, 뭐라구요?
-여자 가입자가 몇 명인지는 안 물어봤거든요!
-13만 명? 한국여자들 왜 이래?
-ㅋㅋㅋ미치겠다. 여자들은 왜 가입한 거야?
-페이스잇 여성향 콘텐츠가 대박이긴 하지.
-여러분! 저거 다 거짓말인 거 아시죠?
-맞아요. 저건 남자 청소년들이 엄마카드로 결제한 것도 포함한 거잖아요.
-그럼 남자가 여자카드를 썼으면 다 여성가입자로 나오겠네요. 어쩐지 이상하다 했어요.
-얘기 들어보니, 남편이 아내카드로 결제한 경우도 한둘이 아니라고 하네요.
-한국남자라면 그러고도 남음.
-대체 어떤 미친놈이 포르노 사이트에 아내카드를 긁냐?
-ㅎㅎ정신승리에 지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