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29)
양하나는 주로 파티장이나 와인바를 가지, 이런 술집은 거의 온 적이 없었다. 그러나 최대한 내색하지 않고 분위기에 녹아들려고 애썼다.
일단 술을 몇 잔 마신 다음 양하나는 택규에게 물었다.
“친한 친구들인가 봐요.”
택규는 고개를 저었다.
“하영이랑은 친하지만, 얘랑은 별로 안 친해요. 방금 전에도 저한테 정색하며 화내던데요.”
“어머, 그래요?”
곽도훈은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하하, 농담하지 마.”
“농담 아닌데. 너 나랑 친했어?”
“…….”
‘대체 이 자식 왜 이래?’
택규는 양하나의 소주잔에 술을 채워주며 말했다.
“학창시절 때 막 친구들 놀리고 괴롭히고 하는 애들 어떻게 생각해요? 제가 그런 일을 많이 당했는데.”
양하나는 짐짓 놀라는 표정을 지어보였다.
“정말 그런 일이 있었어요?”
“걔들은 남 괴롭히는 게 여자에게 멋있어 보이는 줄 알던데. 여자가 보기에도 정말 멋있어요?”
“그럴 리가요. 전 그런 사람이 세상에서 제일 싫어요.”
“아하! 들었지, 도훈아?”
곽도훈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지만, 화를 낼 수도 없었다. 이런 자리에서 화내면 본인만 우스운 꼴이 된다.
곽도훈은 웃으며 물었다.
“하나 씨는 하시는 일이 뭐예요? 모델? 승무원?”
“그냥 일하고 있어요.”
“그냥 일이 무슨 일인데요? 설마 연예인? 아이돌?”
“나중에 말씀드릴게요.”
이번에는 택규가 질문했다.
“게임 좋아해요?”
그러자 양하나는 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 좋아하고 관심은 있는데 기회가 없어서 많이 못해봤어요. 택규 씨가 게임 잘하신다는 얘기는 많이 들었어요.”
“제가 게임 하나 추천해 드릴까요? 이번에 나온 대박 RPG가 있는데. 사흘 동안 안 자고 간신히 깼는데, 엔딩 보고 울 뻔했어요.”
양하나는 손뼉을 치며 좋아했다.
“정말요? 저도 꼭 해보고 싶어요.”
곽도훈은 이 상황이 믿기지가 않았다.
그는 키가 크고 잘생긴 편이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다닐 때 여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입사한 후에도 여러 여자직원들이 호감을 표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는 투명인간이나 다름없었다. 더 어이가 없는 건 양하나가 택규에게 적극적으로 호감을 표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 대체 여자가 뭐가 아쉬워서 오택규에게 이러는 거야?’
뭔지는 몰라도 이대로는 안 된다. 시선을 끌 만한 반전의 계기가 필요했다.
곽도훈은 잠시 화장실을 다녀오는 척한 다음, 다시 자리에 앉으며 주머니에 있는 핸드폰과 차키를 같이 꺼내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좋아. 자연스러웠어.’
그의 차는 C클래스. 차키에는 벤츠 로고인 삼각별이 박혀 있었다.
입사하자마자 36개월 할부로 구매했다. 주변에서 다들 미친 짓이라고 말렸지만, 듣지 않았다.
젊을 때 외제차 한 번 몰아보지 않으면, 언제 몰아보겠는가?
월급이 들어오기 무섭게 뭉텅이로 빠져나가는 리스비를 보며 가끔 후회가 들기도 했지만, 이 순간만큼은 대단히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실 양하나가 몸에 걸치고 있는 것들만 해도 벤츠 한 대값 이상이다. 그러나 국내에도 매장을 찾기 힘든 명품들인 만큼 쉽게 알아보기 힘들었다.
왠지 그녀의 시선이 잠시 차키에 머무른 것 같다고 생각하며, 속으로 웃음을 짓는데, 밖에서 발렛파킹을 하는 직원이 들어와서 양하나에게 말했다.
“벤틀리 차주 분이시죠? 뒤에 차를 빼야 하는데, 잠깐 차키 좀 주시겠어요?”
“밖에 기사님 계실 거예요. 그분한테 말씀하세요.”
“알겠습니다.”
직원이 가고 나자 곽도훈은 당황했다.
‘벤틀리? 기사님?’
벤틀리에 비하면 벤츠 C클래스는 경차나 다름없다. 갑자기 자신의 애마가 초라하게 느껴졌다.
슬쩍 다시 차키를 주머니에 집어넣으려는데, 택규가 큰소리로 말했다.
“우와! 너 벤츠 타나 보네. 자랑하려고 보란 듯이 차키도 꺼내놓고.”
“아, 아니. 자랑하려는 건 아닌데…….”
“괜찮아. 벤츠면 자랑할 만하지. 나도 오늘 차 타고 왔는데.”
택규는 차키를 꺼내 테이블에 올려놓았다. 놀랍게도 로고가 금빛황소였다.
‘뭐야? 가짜?’
세상에는 차도 없으면서 여자에게 잘 보이기 위해 외제차키만 들고 다니는 인간들도 있다. 그 역시 대학생 때 그랬었고.
그래도 BMW나 벤츠라면 모를까, 람보르기니는 진짜 양심도 없는 짓이다.
아우디, BMW, 벤츠 정도는 직장인도 마음만 먹으면 살 수 있다. 카푸어가 되겠다고 작정한다면 포르쉐나 마세라티도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람보르기니는 아니다.
웬만큼 부자가 아니고서는 유지비조차 감당이 안 된다.
곽도훈은 일부러 크게 비웃었다.
“푸하! 뻥을 쳐도 작작 쳐야지, 뭔 람보르기니야? 그 가짜키 어디서 났어? 주웠어?”
“가짜키 아니라 진짠데.”
“뭔 소리야? 술집 앞에 람보르기니 없는데.”
“근처에 세워놓고 걸어왔어.”
“하하하! 그런 말을 누가 믿냐? 아예 집에 페라리, 포르쉐가 나란히 서있는데, 골라 타고 왔다고 하지?”
택규는 깜짝 놀랐다.
“어! 우리 집 주차장에 있는 차들 어떻게 알았어? 안 그래도 나갈 때마다 뭘 탈지 고민하는데.”
“재미없으니 이제 그만해.”
그러고는 바로 양하나에게 말했다.
“하나 씨는 이런 거 어떻게 생각하세요? 가짜키 가지고 자랑하고 다니는 거 꼴불견이지 않아요?”
그 말에 그녀는 정색하며 말했다.
“꼴불견이요? 친구한테 무슨 말을 그렇게 하세요? 정말 택규 씨 친구 맞아요?”
“아, 아니. 저는…….”
민하영도 한마디 했다.
“택규가 람보르기니 타는 거 내가 봤어.”
“뭐, 뭐? 진짜? 차종이 뭔데.”
택규가 말해주었다.
“음, 아벤타도르였나?
“…….”
양하나는 웃으며 택규에게 말했다.
“택규 씨는 람보르기니 좋아하시나 봐요.”
“그냥 있으니까 타는 거죠. 요즘 누나가 그 차를 잘 안 타고 다녀서요. 누나는 세단이 편하대요.”
“그럼 운전도 잘 하시겠네요. 저 나중에 운전 좀 가르쳐주세요. 매번 기사님께 운전 맡기는데, 저도 운전해보고 싶어요.”
“어차피 한국에도 자율주행차가 들어올 텐데요. 그럼 운전 배울 필요도 없을걸요.”
“아, 맞다! 그렇겠네요. 카로스 차가 얼른 한국에 들어와야 하는데. 나오기만 하면 저도 꼭 타고 싶어요.”
곽도훈은 열패감을 느꼈다.
초중고 때 열심히 공부해서 좋은 대학에 갔고, 대학교 때도 열심히 학점관리해서 그 힘들다는 대기업 취업문을 뚫는 데 성공했다. 그런데 학창시절 오타쿠짓이나 하던 놈이 람보르기니를 타고 다닌다고? 이걸 믿어야 돼?
‘혹시 지금 날 놀리려고 전부 짜고 장난치는 건가?’
그 순간, 양하나의 핸드폰이 울렸다.
“답장 안 해도 돼요?”
“아버지께서 보내신 거예요.”
“아! 맞다. 원래 오늘 밥 먹기로 했다고 했었죠?”
양하나는 웃으며 말했다.
“예. 혼자서 밥 먹게 됐다고 뭐라고 하세요.”
택규는 곽도훈을 슬쩍 보았다. 술기운 때문인지 다른 것 때문인지 몰라도 얼굴을 잔뜩 붉히고 있었다.
“괜찮으시면 여기로 오시라고 하세요. 간만에 얼굴 뵙고 인사드리게.”
* * *
20분 후.
양호영 사장이 술집으로 도착했다.
택규는 일어나서 인사했다.
“오랜만에 뵙네요. 오늘은 그냥 편하게 택규 군이라고 불러주세요.”
오기 전 이미 얘기를 들었다.
양호영 사장은 반가워하며 말했다.
“언제 꼭 술 한 잔 같이 하고 싶다고 생각했는데, 오늘 기회가 닿았군요. 정말 다행입니다.”
“이런 술집에서 괜찮으시겠어요?”
양호영 사장은 웃음을 지었다.
“하하! 물론입니다. 처음 회사 일을 시작했을 때 직원들과 이런 곳에서 자주 마셨죠. 좋은 술이란 어디서 마시느냐보다,누구랑 마시느냐가 중요한 것 아니겠습니까?”
어떻게 보면 강진후보다도 만나기 힘든 사람이 오택규다. 친분을 쌓을 수 있는 좋은 기회인데, 장소가 어디든 무슨 상관이겠는가?
택규는 곽도훈을 보며 물었다.
“혹시 이분 누군지 몰라?”
“뭐?”
“잘 생각해봐. 분명 본 적 있을 텐데.”
그러고 보니, 왠지 낯이 익었다.
택규는 실실 웃으며 말했다.
“예를 들어 입사할 때라든지, 신입사원 연수받을 때라든지.”
그 순간, 어디서 봤는지 생각났다.
곽도훈은 자신도 모르게 벌떡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아, 안녕하십니까, 사장님!”
택규가 설명해주었다.
“제 친구인데 이번에 CL화학에 입사했대요.”
양호영 사장은 곽도훈에게 물었다.
“어느 부서에서 일하나요?”
곽도훈은 깍듯하게 대답했다.
“연구개발팀입니다.”
양호영 사장은 웃음을 지었다.
“친구가 저희 회사에 입사하다니. 이것도 인연이네요.”
그러자 택규가 말했다.
“친구라고 할 만큼 친한 사이는 아니에요. 단지 고등학교를 같이 다닌, 아는 사이랄까요?”
“흠, 그렇군요.”
양호영 사장은 자리에 앉았다.
곽도훈은 어찌할지를 몰랐다. 지금은 서성SB에 밀렸다지만, CL화학은 세계 배터리산업에서 손꼽히는 대기업. 이런 회사의 일개 신입사원이 사장을 만날 일이 얼마나 되겠는가? 그것도 이런 술집에서.
찍소리도 못하고 앉아 있는 곽도훈을 놔두고 양호영 사장은 택규와 술잔을 기울이며, 농담과 웃음을 주고받았다.
게다가 양호영 사장은 택규에게 꼬박꼬박 존댓말을 쓰며 예의를 갖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정신이 혼미해질 지경이었다.
‘설마 불륜현장을 찍은 몰카라도 가지고 있는 건가?’
그게 아니라면 이 상황이 도저히 설명되지 않았다.
양호영 사장은 술을 마시며, 택규를 보았다. 겉으로 보기에는 무엇 하나 특별할 게 없어 보였다.
그러나 오랫동안 사업을 하며 사람들을 만나다 보면, 겉모습은 별로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중요한 건 바로 사람 그 자체다.
소문에 따르면, 오태규는 강진후가 유일하게 믿고 일을 상의하는 사람이다. 능력은 이미 입증된 거나 다름없다.
그럼에도 평소 트레이닝복을 입고 다니며, 공식성상에 나서지 않은 것은…….
‘자신을 숨겨 강진후를 더욱 돋보이게 만들기 위함인가?’
그렇게 생각하고 보니, 사람이 전혀 달라보였다.
무엇보다 하나를 울리거나 하는 일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재벌그룹 남자들 중에서는 마약을 하거나 유흥업소에 들락거리는 이들도 많다.
그러나 강진후와 오택규는 그런 문제에서 깨끗했다. 친구를 보면 그 사람을 알 수 있다고, 강진후는 다른 데 눈 돌리지 않고 쭉 한 여자만 만났다.
재계의 결혼이란 현실적 조건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래도 자식이 행복해졌으면 하는 건 모든 부모의 바람.
‘둘이 같이 있는 모습을 보니, 왠지 잘 어울리는 것 같기도 하고.’
양호영 사장은 몇 잔 더 마신 다음 말했다.
“전 이만 가봐야 할 것 같습니다.”
“어? 벌써 가시게요?”
“하하! 젊은 사람들 노는데 제가 껴서 뭐하겠습니까? 내일 일찍 헝가리로 가봐야 하니, 먼저 집에 가서 좀 쉬겠습니다.”
택규와 곽도훈은 배웅을 위해 따라 일어났다.
술집 앞에는 벤츠 S클래스 마이바흐가 대기 중이었다. 양호영 사장은 차에 올라타기 전에 말했다.
“오늘 정말 즐거웠습니다. 다음에 또 이렇게 편하게 술잔을 기울일 기회가 있으면 좋겠습니다.”
“언제 한 번 친구랑 회사로 놀러갈게요.”
여기서 친구란 당연히 강진후를 뜻한다.
양호영 사장은 기뻐하며 말했다.
“언제든지 환영입니다.”
그가 뒷자리에 올라타자 기사는 차를 출발시켰다.
편하게 손을 흔드는 택규와는 달리 곽도훈은 허리를 깊숙이 숙였다. 잠시 후, 차가 완전히 시야에서 사라지자, 곽도훈은 택규에게 따지듯 물었다.
“너, 너 대체 뭐야? 니가 어떻게 우리 사장님을 아는 건데?”
택규는 손가락을 까딱거렸다.
“그건 중요한 게 아니야, 도훈아.”
“그럼 뭐가 중요한데?”
“내가 CL화학 사장님과 이렇게 막역한 사이라는 거지. 넌 고등학교 시절 나를 안여돼니 씹덕이니 놀리고 빵을 사오라고 시켰으니, 연구개발보다 콩고 코발트 광산에 파견 가는 게 어떨까? 내가 추천해줄게.”
그 말에 곽도훈의 얼굴이 사색이 됐다.
“뭐, 뭐? 그게 코발트 광산이랑 무슨 상관이야?”
“나한테 빵셔틀 시켰듯, 거기서 광부들에게 코발트셔틀 시키면 돼. 적성에 잘 맞을 것 같지 않아?”
“…….”
적성에 잘 맞을 것 같지 않다.
콩고는 어디에 있는지도 잘 모르고 가기도 싫었다. 거기 지금 내전 중 아니었나?
뭐가 어떻게 된 건지 도저히 모르겠지만, 학창시절 무시하던 동창은 대기업 사장도 함부로 말을 놓지 못하는 존재가 되었다.
그러니 이제 자신의 직장생활은 오택규의 손에 달려있는 것과 다를 바 없었다.
“서, 설마 진짜 그럴 건 아니지?”
택규는 곽도훈의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다.
“너 하는 거 봐서.”
“…….”
* * *
양호영 사장이 자리에서 일어나고, 오택규와 곽도훈이 배웅을 나가자, 술자리에는 양하나, 민하영만 남았다. 둘 사이에는 왠지 어색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민하영은 조심스럽게 물었다.
“택규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세요?”
“파티장에서 만났어요.”
“아, 네.”
다시 침묵이 흘렀다.
“하영 씨는 동창이라고 했죠?”
“예. 고등학교 동창.”
“아…… 동창.”
그렇다면 훨씬 전부터 알고 지냈다는 건가? 분위기를 보니 한두 번 만난 사이가 아니다.
‘나랑 만나는 건 피하면서, 이 여자랑은 왜 그렇게 자주 만난 거지? 정말 그냥 친구 사이인가?’
민하영도 생각했다.
‘아버지가 CL화학 사장이라고? 대체 택규랑은 무슨 관계야? 어쩐지 사진을 본 것 같다고 했더니, 정말로 셀럽이었잖아!’
민하영은 어색함을 깨기 위해 소주병을 들었다.
“하, 한 잔 하실래요?”
“그래요.”
민하영은 양하나의 잔을 채워주었다.
양하나는 주로 와인을 마시지 소주는 거의 마시지 않았다. 그리고 민하영은 애초에 술을 잘 못 마셨다.
그런데 양하나가 먼저 잔을 비우자, 민하영도 따라서 비웠다.
“이번에는 제가 따라드릴게요.”
“감사합니다.”
또 다시 둘은 동시에 잔을 비웠다.
마치 경쟁이라도 하듯 술을 마시는데, 택규가 곽도훈과 함께 돌아왔다.
택규는 웃으며 말했다.
“어! 벌써 둘이 이렇게 친해졌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