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30)
투자회사로 출발한 OTK컴퍼니는 어느새 거대 지주회사로 성장했다.
기업은 단지 돈을 버는 것을 떠나 지역사회에 공헌해야 한다. 그래서 우리도 열심히 사회적 활동을 벌였다.
공유오피스 OTK게이트를 지방에도 늘려나가고 있고, 대학생들을 위한 기숙사 건립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미리 약속한 대로 부지를 제공해준 건설사들에게 건설을 맡겼고, 건설사들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건물을 올렸다. 하자 없이 잘 지어달라고 직접 사장들에게 전화해 부탁했으니, 잘 지어주겠지.
공정이 빠른 곳은 다음 학기부터 바로 학생들 입주가 가능했고, 미리 신청을 받았다. 입주경쟁률은 수십 대 1이 기본이었다.
OTK컴퍼니가 먼저 나선 이후, 눈치를 보던 대학들도 기숙사를 짓겠다고 발표했다. 또다시 원룸업자와 지역주민들이 들고 일어났지만, 이번에는 학생들도 단체로 움직였다.
일부 대학은 아예 기존 기숙사에 입주한 학생들의 주소지를 이전시키는 방식으로 대응했다. 이러면 지방선거에서 대학생들이 지자체장과 지역의원을 뽑는 데, 표를 행사할 수 있게 된다.
여론 역시 기숙사 건립을 찬성하는 만큼, 지자체들은 허가를 내주었다.
OTK연구소가 주축이 돼 설립한 호민재단은 기초과학 지원을 시행했다. 사실 한국은 전 세계에서 GDP대비 R&D 투자가 가장 높은 나라다.
문제는 성공률이 쓸데없이 높다는 것. 뭔 투자만 했다하면 성공이다. 이는 바꿔 말하면, 실패 가능성이 높은 연구에는 아예 도전을 안 한다는 뜻이었다.
따라서 호민재단은 5년 이상의 장기 프로젝트와 실패확률이 높은 연구과제에 집중지원하기로 방침을 정했다.
특히 쓸데없이 연구비가 새나가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였다.
한국에서 연구비 횡령은 비일비재하다. 빼돌리는 방법도 가지가지다. 인건비 갈취, 서류조작, 가짜특허 제출 등등.
이러한 비리가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어차피 그 바닥이 그 바닥인 데다가, 조사가 나오면 누가 신고했는지 뻔히 알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에서 교수가 가지는 영향력은 대단히 크다. 한 번 찍히면 학교에서 쫓겨나는 정도가 아니라, 취업길도 막히게 된다.
김호민 교수 역시 본인이 오랫동안 교수를 했기 때문에 그런 학계의 관행에 대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정기적으로 감사를 실시하고, 연구비 빼돌리는 것을 막기 위해 익명으로 신고를 받는 시스템을 만들었다. 신고내용이 사실로 밝혀지면 아예 신고자의 채용까지 보장해주기로 했다.
부정사용이 적발될 경우 향후 지원을 받지 못하고, 연구비를 회수하도록 시스템을 만들었고, 아예 관련 정부부처와 협력해 가이드라인을 개정하고, 이를 행정규칙으로 만들기로 했다.
일부 교수들은 불만을 토로했지만, 김호민 교수는 한발자국도 물러서지 않았다.
마음에 안 들면 지원을 안 받으면 그만이다. 지원은 받되, 감사는 안 받겠다는 건 무슨 심보야?
일제강점기 피해자들을 위한 재단설립도 차차 진행됐다. 무려 5조 원 규모다. 직접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자금출처가 어딘지는 모두가 알고 있다.
산케이신문 등에서는 ‘일본국민들의 노후자금을 털어다가 한국인에게 퍼주는 도적질’이라며 맹비난했고, 자유국민당 일부 의원들은 여전히 일본에 사과하고 돈을 돌려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먼저 의원세비를 걷어서 내면 생각 좀 해보겠다고 했더니, 일제히 입을 다물었다.
이렇게 자기 돈 소중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대체 왜 나보고는 돈을 돌려줘라 마라 난리를 치는 거야?
중국은 저우차 기술탈취 문제와 미중무역분쟁으로 인해 나에 대한 반감이 매우 컸다. 그러나 일본에서 일을 벌인 이후에 분위기가 조금 누그러졌다.
일본 때리면 좋아하는 건 주변국들이 다 마찬가지다.
저우차는 그런 꼴 당하지 않은 것에 안도하며, 합작사인 저우토요타의 경영권 장악에 나섰다. 토요타는 최대주주 지분이 갈가리 찢겨나가며, 주요 주주들끼리 분쟁이 붙는 바람에 내부수습에 정신이 없었다.
일본은 새롭게 총선을 치렀다.
당내의 숱한 퇴진요구에도 오카자키는 총재직을 내려놓지 않았고, 자민당은 가까스로 정권을 다시 잡았다.
이전에 비해 의석수는 크게 줄었으나, 오카자키 유스케는 다시 총리대신 자리에 오르는 데 성공했다.
* * *
난 일이 끝난 뒤, 택규와 함께 1층 카페에 앉아 얘기했다.
택규는 며칠 전 술집에서 있었던 일에 대해 신나게 떠들었다. 상당히 흥미로운 얘기였고, 난 주의 깊게 들었다.
“그래서 앞으로 어떻게 하려고?
“심심하면 한 번씩 연락해서 골려줘야지. 다음번에는 칠레 리튬광산으로 보낸다고 해볼까?”
“아니, 걔 말고 민하영이랑 양하나 말이야.”
곽도훈인지 뭔지 하는 놈이 어떻게 되든 별 관심도 없다.
“응? 그 둘은 왜?”
“민하영이 원래 만났다 쳐도, 양하나가 그 자리에 왜 왔겠어?”
“술 사준다고 하니까 왔겠지.”
“…….”
이 자식이 알면서 이러나, 아니면 진짜 몰라서 이러나?
“아무튼 난 먼저 간다.”
“어디 가?”
“우리 건이랑 놀아줘야지. 누나랑 매형 모두 오늘 저녁 먹고 들어온데.”
여러모로 바쁜 스케줄이다.
혼자서 커피를 마시며 오택규 추천 명작만화를 읽고 있는데, 잠시 후 유리가 내려왔다.
“오래 기다렸어요, 선배? 아니, 대표님.”
“퇴근 후에는 편하게 불러.”
유리는 정장을 갖춰 입었고, 금발은 단정하게 묶었다. 약간이지만, 금융인 같은 분위기를 풍기는 것 같기도 하다.
“잘 어울리네.”
“아빠는 애가 어른인 척하는 것 같다고 놀리던데요.”
유리는 커피를 주문하고 자리에 앉았다.
“정신없었는데, 이제 한숨 돌리겠네요.”
“상엽 선배한테 들으니 남자직원들 사이에서 인기가 장난 아니라며? 사귀자고 들이대는 사람 없어?”
내 말에 유리는 고개를 저었다.
“연애할 시간이 어디 있어요? 일 배우기도 바쁜데.”
“부정하지 않는 걸 보니, 진짜 누가 들이댔나 보네.”
“당연하죠. 저 원래 인기 많았어요.”
OTK컴퍼니에 들어온 이후 언제 밥 한 번 사줘야겠다고 생각했는데, 그동안 이런저런 일로 바빠서 시간을 맞추기가 힘들었다.
유리는 커피를 마시며 물었다.
“뭐 사줄 건데요? 맛있는 거 얻어먹어야지.”
“파스타 먹으러 가자. 이미 예약해 놨어.”
“엘리 언니는요?”
“방금 끝났다고 연락 왔으니, 곧 올 거야.”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엘리가 카페로 들어왔다. 유리는 재빨리 일어나서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언니.”
엘리는 가방에서 작은 쇼핑백을 꺼내 유리에게 주었다.
“늦었지만 취업 축하해요. 이건 선물.”
유리는 어린아이처럼 기뻐했다.
“고마워요, 언니. 지금 열어봐도 돼요?”
“그럼요.”
정장에 넣어 다닐 수 있는 작은 지갑이었다. 안에는 명함과 카드를 넣을 수 있도록 되어 있다.
“금융권에는 아직도 명함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으니, 필요할 거예요.”
“너무 마음에 들어요. 잘 쓸게요.”
“뭘요. 얼른 식사하러 가요.”
우리는 차를 타고 압구정의 레스토랑으로 향했다.
음식점은 마치 유럽 같은 분위기였고, 손님의 절반 정도는 외국이었다. 안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자, 나와 엘리를 알아봤는지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이런 것도 이제는 익숙하다.
엘리가 말했다.
“요즘 제시카와 헨리가 자주 가는 곳이에요. 음식도 음식이지만, 맥주가 특히 맛있거든요.”
난 메뉴판을 들여다보는 유리에게 말했다.
“먹고 싶은 거 다 시켜.”
“그럼 사양하지 않을게요.”
유리는 샐러드, 파스타, 라자냐 등을 골고루 주문했다. 음료는 맥주로 통일했다.
엘리가 물었다.
“어때요? 일은 할 만해요?”
“배우는 마음으로 즐겁게 하고 있어요. 그런데 모르는 게 너무 많아서 큰일이에요.”
유리의 말에 엘리는 다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저도 처음에 입사했을 때는 그랬어요. 나름 똑똑하다고 생각했는데, 몇 개월은 완전 바보가 된 느낌이었으니.”
“언니도 그랬어요?”
“실수도 많이 해서 제시카한테 엄청 혼났어요. 그러다가 친해지게 됐지만.”
나도 한마디 해주었다.
“직장생활이 쉽지 않지.”
그러자 둘은 동시에 나를 보았다.
“진후가 직장생활에 대해 뭘 알아요?”
“맞아요. 선배는 바로 사장으로 직행했으면서.”
“…….”
아니, 사장일도 직장생활 아니었어?
잠시 후, 주문한 음식들이 차례대로 나왔고, 우리는 맥주잔을 부딪쳤다. 대화를 나누는데, 식당 한쪽 켜놓은 TV에서 베스터 광고가 흘러나왔다.
엘리는 쑥스러운지 얼굴을 살짝 붉혔고, 유리는 감탄하며 말했다.
“저 이 광고 너무 좋아해요. 언니 정말 너무 예뻐요. 여자가 봐도 반할 정도예요.”
“정말요? 제 눈에는 유리가 훨씬 예쁜데.”
“앗, 감사합니다.”
서로 덕담을 주고받는 모습이 보기 좋다.
“언제 류철균 회장님과 한 잔 해야 하는데.”
“지금 중국에 출장 가셨어요.”
“베이징?”
“상하이요. 푸동.”
상하이는 중국최대 도시.
중국정부는 허허벌판이나 다름없던 푸동을 경제지구로 개발하며, 외국자본과 기업들을 유치했다. 상하이 푸동은 불과2, 30년 만에 고층빌딩이 즐비한 최첨단 도시로 탈바꿈했다.
베이징이 중국의 정치중심지라면, 상하이는 경제중심지다. 그러한 성장을 바탕으로 상하이방이라는 거대한 정치세력이 등장할 수 있었던 거고.
뭐, 지금은 다 갈려나가 명맥만 겨우 유지하고 있지만.
“최근에는 한국에는 거의 안 들어오고 계속 중국에 계세요.”
RCK브로스는 한국뿐 아니라 아시아에서 가장 큰 PEF. 국내에서 활발하게 M&A를 벌이지만, 아무래도 중국시장 투자비중이 가장 크다.
엘리는 생각난 듯 말했다.
“그러고 보니 RCK브로스가 중국 내에서 자산을 일부 매각하고 있던데.”
“사모펀드가 엑시트하는 건 당연하잖아요.”
“그렇긴 하죠.”
산업자본은 매수한 기업을 계열사로 편입해 키우는 게 목적인 반면, 금융자본은 최대한 가치를 키운 다음 매각하는 게 목적이다.
이를 엑시트라고 하는데, 펀드 레이징이나 딜 소싱보다도 중요한 게 바로 이 엑시트다. 투자금을 회수해 투자자들에게 돌려줬을 때, 비로소 수익이 확정되는 거니까.
일반적으로 엑시트는 투자하기 전에 미리 계획을 세워놓지만, 일을 진행하다보면 계획대로만 되지는 않는 법. 실제로 인수를 잘 해놓고 매각에 실패해 오도 가도 못하는 케이스는 의외로 많다.
난 류철균 회장을 떠올렸다.
“혹시 이번 기회에 중국비중을 축소하려는 건가?”
“잘 모르겠어요. 그런데 요즘 중국경제가 불안하다는 말은 많지 않아요?”
미국과의 무역분쟁 이후 중국경제의 리스크가 부각됐다.
난 엘리에게 물었다.
“어떻게 생각해요?”
“중국경제 위기론이 하루이틀 있었던 건 아니잖아요. 부채나 통계조작에 대한 얘기도 오래전부터 있어왔고.”
작년 중국의 성장률은 6.6퍼센트.
8퍼센트 성장을 사수하겠다는 바오바 정책은 깨진 지 오래고, 이제는 7퍼센트마저 깨졌다.
중국경제가 세계 2위 규모로 성장한 만큼 성장률이 떨어지는 것은 당연하다.
사실 성장률은 떨어졌어도 총액만 놓고 보면 예전 10퍼센트 성장보다 지금의 6.6퍼센트 성장이 더 크다. 기본 값이 커졌으니 당연한 일이다.
문제는 이 6.6퍼센트도 온전하게 믿기 힘들다는 것이다.
영국 총리를 지낸 벤저민 디즈데일리는 이런 말을 남겼다.
‘세상에는 세 가지 거짓말이 있다. 그럴 듯한 거짓말, 새빨간 거짓말, 그리고 통계다.’
이 말이 아직까지도 명언으로 쓰이는 것은 그만큼 통계를 조작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기 때문이다.
기업은 재무제표에 숫자 몇 개만 바꿔도 시총을 뻥튀기 시키는 게 가능하다. 국가 역시 통계를 조작하면, 얼마든지 경제가 성장하는 것처럼 보일 수 있다.
사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이지, 어느 나라 정부나 조금씩은 다 하는 짓이기도 하고.
니시다증권 사태가 터진 후, 일본은 그동안 경제지표를 조작해온 것이 밝혀졌다. 목적은 물론 오카자키노믹스의 성과를 부풀리기 위함.
한국 역시 정부에 유리한 쪽으로 통계 조사방식을 계속 바꿨다. 예를 들어 금값이 너무 오르면 아예 물가지표에서 금을 빼버리는 식이다. 이러면 물가상승률이 낮아 보이는 효과가 있다.
그래도 대부분의 나라들은 금융시장이 개방돼 있고, 국제 회계기준을 따르는 만큼 어느 정도 규정은 지키는 편이지만, 중국은 공산당 일당집권에 장핑화 장기집권까지 더해지며, 대체 어디서부터 어디까지가 조작인지 아닌지 판단하기조차 힘들다.
유리는 맥주잔을 내려놓으며 조심스럽게 물었다.
“선배는 금융위기가 또 올 거라고 생각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