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31)
난 중얼거리듯 말했다.
“금융위기라…….”
유리의 말을 듣는 순간 뭔가 섬뜩한 느낌을 받았다. 그만큼 그 단어가 갖는 무게는 크다.
그런데 어째서 경제위기가 아닌 금융위기일까? 그 이유는 세계경제가 끝없는 통화팽창과 부채 위에서 돌아가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이다.
2008년 세계금융위기의 경우 문제의 시작은 부동산이었다. 그런데 부동산 위기가 발생한다고 해서 건물이나 집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다. 위기발생 전이나 후나 건물과 집은 그 모습 그대로다.
그러나 그것의 가치를 나타내는 숫자가 변했다.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자, 사람들은 대출을 제때 갚지 못했고, 대출을 해준 상업은행과 관련 파생상품을 발행하고 사들인 투자은행은 줄줄이 파산했다.
수많은 사람들이 집을 잃고, 일자리를 잃고, 거리에 나앉았다. 공장은 멈춰 섰고, 상점의 물건은 팔리지 않았다. 무료급식소 앞에는 사람들이 길게 늘어섰다.
어렸을 때였지만, 당시 봤던 뉴스들이 선명하게 머릿속에 남아있었다. 그 사람들은 대체 무슨 잘못을 했던 걸까? 그저 가족을 위해 열심히 일했을 텐데.
“금융위기가 언젠가는 오겠지.”
시장경제체제에서는 필연적으로 호황과 불황이 반복된다. 수많은 경제학자들이 호황이 영원히 지속될 수 있는 방법에 대해 연구했지만, 아직 그런 방법은 나오지 않았다.
현재로서는 위기가 오기 전에 관리하고, 위기가 발생하면 빠르게 대응책을 내놓는 것이 그나마 최선이다.
FRB(연방준비제도 이사회) 의장을 역임한 유명 경제학자 앨런 그린스펀은 ‘파티가 한창일 때 접시를 빼라’는 유명한 말을 남겼다.
이는 중앙은행이 경기가 지나치게 과열되는 것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화려하고 멋진 파티는 모두를 행복하게 만들어준다. 그러나 파티는 언젠가 반드시 끝난다. 파티가 늦게 끝날수록 다음날 후유증은 더욱 커진다.
누군가 나서서 손님들이 들고 있던 샴페인잔과 테이블 위에 놓은 접시를 치우고, 이제 파티가 끝나가고 집에 돌아갈 시간이라는 것을 알려야 한다.
문제는 누구도 파티가 끝나기를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가 불황보다는 호황을, 긴축보다는 확장을, 하락보다는 상승을 좋아한다.
정작 저 말을 한 앨런 그린스펀조차 제때 접시를 빼는 데 실패했다.
유리는 몸을 앞으로 내밀며 물었다.
“선배는 언제 올 거라고 생각하는데요?”
난 피식 웃었다.
“글쎄. 그걸 알면 누구나 돈을 벌 수 있지 않겠어?”
진짜 큰 부자는 흉년이 지나고 탄생한다.
위기가 오면 돈이 많든 적든 모두가 손실을 입게 된다. 서민들은 당장의 위기를 버티기 위해 가진 자산을 매각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부자는 위기를 맞아도 버틸 만한 여력이 있다.
부자는 헐값에 쏟아지는 주식과 부동산을 사들인다. 침체가 끝나고 회복이 시작되면, 폭락한 자산은 원래 가치를 찾아간다. 그렇게 부자는 더욱 부자가 되고, 빈자는 더욱 빈자가 된다.
실제로 IMF 이후 중산층은 무너져 내렸지만, 부자의 숫자는 크게 늘었다. 금융위기가 서민들에게 더 끔찍한 이유다.
과거와는 달리 현대사회에서 금융위기는 좀 더 복잡한 형태로 나타난다.
세계금융위기의 경우 단지 대출만이 문제였다면, 그 정도 위기까지 생기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투자회사들은 더 큰 수익을 얻기 위해 ABS(자산유동화증권), MBS(주택저당증권), CDO(부채담보부증권)니 하는 파생상품들을 만들어내 팔았고, 이는 결국 금융시스템에 폭탄으로 작용했다.
인간은 언제나 그러하듯 자신들이 제대로 이해하지도 못하고, 잘 다루지도 못하는 것들을 만들어낸다.
미국이 위기를 해결한 방법은 더 많은 돈을 푸는 것이었다. 그래서 실질금리를 0퍼센트까지 낮췄고, 그래도 안 되자 양적완화를 시행해 달러를 마구잡이로 풀었다.
화폐 공급량이 늘어나면 물가가 치솟기 마련. 그러나 달러는 기축통화. 미국이 찍어낸 달러는 전 세계로 뻗어나갔고, 인플레이션은 외국으로 수출됐다.
신흥국들은 그동안 미국이 뿌려댄 달러로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언젠가 파티가 끝날 것은 알고 있지만, 미국이 갑자기 접시를 치우기 시작하자 다들 당황했다.
중국의 경제성장률은 심각하게 떨어졌고, 아르헨티나는 또다시 부도가 나서 IMF에 손을 벌리는 신세가 됐고, 터키는 극심한 외환외기를 겪고 있다.
일부 신흥국들의 화폐가치는 절반으로 폭락했고, 이를 막기 위해 기준금리를 4, 50퍼센트로 끌어올렸다.
“그걸 금융위기의 전조라고 보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너무 신경 쓸 거 없어. 극단적 위기론은 사람들의 시선을 끌기 마련이지.”
금융위기가 오면 마치 모든 것이 끝나는 것처럼 보인다. IMF 때는 한국이 망할 거라 생각했고, 세계금융위기 때는 금융시스템이 끝장날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그 모든 위기는 극복됐고, 세계경제는 여전히 성장을 지속했다.
엘리는 웃으며 말했다.
“결국 비관보다는 긍정이 승리하는거죠.”
유리는 고개를 끄덕였다.
“맞는 말이에요, 언니.”
난 맥주를 마시며 생각했다.
사람들은 국가체제와 경제시스템이 무너지지 않을 거라는 확고한 믿음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기꺼이 대출을 받아 집을 사고, 차를 산다.
선진국에 사는 사람이라면, 어느 날 세계대전 급의 전쟁이 일어나 삶이 파괴될 거라고 걱정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다. 그러나 금융위기가 터져 일상이 파괴되는 일은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다.
전쟁이 추상적이고 사라진 위협인 반면, 금융위기는 명확하고 실존하는 위협이다.
과연 우리가 괜찮다고 믿는 시스템이라는 게 얼마나 견고한 걸까?
* * *
카로스가 AD3와 AD4를 내놓은 지도 수개월이 흘렀다.
그동안 자율주행전기차는 세상을 바꿔놓았다. 눈에 띄게 생긴 변화는 사고율이 줄었다는 점이다.
카로스차에서 발생한 사고의 90퍼센트는 다른 차가 들이받은 것이고, 나머지 10퍼센트도 외부적 요인에 의한 것이다.
시스템 오류로 인한 사고는 단 한 건도 없었다. 이상이 생기면 그전에 차를 멈추거나, 운전자에게 제어권을 넘겼다.
또한 주기적으로 소프트웨어 업데이트를 통해 성능을 개선했다.
이전에 AD1과 AD2를 출시했을 때만 해도 자율주행기술의 위험성을 경고하던 기사가 많았으나, 더 이상 그런 얘기는 나오지 않았다.
밀려드는 주문을 소화하기 위해 생산능력을 끌어올리는 사이, 카로스는 또 하나의 새로운 차를 출시했다.
바로 자율주행트럭 T1이다.
엄밀히 말해 신차는 아니고, 카로스가 인수한 은성트럭에서 이전부터 생산해오던 차에 자율주행시스템을 장착했다.
이미 몇 차례의 무인주행과 군집주행 실험을 성공적으로 끝마쳤다.
AD 시리즈와 기본시스템은 같지만, 차량이 크고 형태가 다른 만큼 모듈에는 차이가 좀 있다. 크기가 크기인지라 한 번 사고가 났다 하면 대형사고로 이어지는 만큼 안전장치 역시 훨씬 강화했다.
출시 전부터 AMZ, 월마트, Fedex 등의 기업들은 수백 대를 선주문하고, 기꺼이 계약금을 납입했다.
경제발전과 전자상거래의 성장으로 물류수요는 계속 증가추세였다.
그러나 물류업계는 열악한 노동조건과 낮은 소득으로 인해 심각한 인력난을 겪고 있고, 운전수들의 고령화와 과로는 심각한 문제였다.
실제 음주와 졸음으로 인한 대형사고는 빈번하게 발생했다. 언제든 물류가 끊길지도 모른다는 위기감마저 있었다.
자율주행트럭은 그러한 문제들을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만큼, 가히 물류의 혁명이라 불릴 만했다.
트럭은 마치 열차의 한 량처럼 줄을 지어 움직였고,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선두 트럭에 한 명의 기사만 탑승해 있으면 된다.
트럭운송에 있어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인건비. 회사마다 약간씩 차이는 있지만, 인건비 비중이 40퍼센트, 그리고 유류비 비중은 20퍼센트 수준이다.
인건비를 5분의1로 줄일 수 있는 것은 물론 공기저항과 정속주행으로 연비를 20퍼센트 이상 끌어올릴 수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데릴은 확신을 가지고 말했다.
“카로스의 T1은 물류비용을 크게 절감하고, 사고를 획기적으로 줄이게 될 겁니다.”
카로스는 텐웨이와 협력해 자회사를 만들고, 물류중개서비스에 뛰어드는 한편 운전수를 직접 고용했다.
트럭운전수 처우개선에 나서는 것은 물론, 실직자 재교육과 우선고용을 하기로 운전수노조와 합의했다.
인건비 절감으로 수익성이 개선될 것으로 판단돼 관련 기업들 주가는 크게 올랐다.
언제나 그러하듯 변화는 사람들의 생각보다 빠르게 다가온다. 그리고 너무나도 쉽게 그 변화에 적응한다.
필름카메라를 쓸 시절에는 당장 결과물을 확인하지 못하는 것도, 사진관에 인화를 맡겨야 한다는 것도 불편이라 인식하지 못했다. 그게 당연한 절차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디지털카메라의 등장은 그 당연한 절차를 불편함으로 인식시켰다. 이처럼 사람은 한 번 변화에 적응하면, 다시 이전으로 돌아가기 힘들어진다.
카로스가 AD시리즈를 출시하기 전까지만 해도 자율주행전기차는 기존 자동차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힘들 거라는 예상이 지배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명확해졌다.
자동차가 마차를 사라지게 만들었듯, 자율주행전기차는 기존 내연기관차를 멸종시킬 것이다.
또 하나 새롭게 열린 시장은 바로 카인포테이먼트다.
운전은 대단히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다. 1, 2초만 한눈을 팔아도 치명적인 사고로 이어질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자율주행차는 운전자가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만약의 상황에 대비해 그저 자리에 앉아 있기만 하면 된다.
이전과는 달리 차가 이동하는 시간 동안 업무를 처리하거나, 공부를 하거나, 영화나 드라마를 보는 것도 가능했다.
관련 스타트업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기존 업체들도 뛰어들었다.
페이스잇은 포르노시장에서 쌓은 경험을 살려 시장에 진출했다. 고객이 이용한 콘텐츠들은 카로스에 빅데이터로 모였고, 페이스잇이 가진 알고리즘을 통해 분석해 다시 추천을 해주었다.
컴퓨터나 스마트폰에 장착된 OS와 마찬가지로 콘텐츠 판매를 통해 수익을 올릴 수 있는 길이 열린 것이다. 잘 키우기만 하면 또 다른 캐쉬카우가 될 것이다.
서성전자는 자사의 스마트폰을 차량과 연동시키는 데 적극적이었다. 스마트폰을 리모컨처럼 활용해 시동을 걸고 예열을 하고, 주행경로를 입력하는 것은 기본이고(여기까지는 다른 자동차업체도 다 한다), 스마트폰으로 하던 각종 작업을 차량에서 할 수 있도록 연결했다.
구블과 MS는 생태계 구축에 적극 협력하겠다고 밝혔고, 디즈니는 자사 컨텐츠 제공에 합의했다.
그동안 세계최대 시총은 IT기업들의 차지였다. 구블, 엔플, AMZ, MS, 페이스노트 등.
기술발전 속도와 영업이익 면에서 자동차기업은 IT기업의 상대가 되지 않았다.
엔진과 미션이라는 장벽이 사라지고, 전기로 움직이며 각종 전자장비를 달고 있는 자율주행전기차는 IT기업과 자동차기업이 맞닥뜨리는 지점에 존재했다.
때문에 IT기업들은 그동안 막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자동차시장 진출을 노려왔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의 상황이 펼쳐졌다.
좋은 기업이란 사업의 핵심목표가 명확해야 한다.
CEO 데릴은 직원들에게 보낸 이메일에서 밝혔다.
“우리의 목표는 한 가지입니다. 바로 사람들에게 이동의 편리함과 즐거움을 주는 것입니다.”
이는 사업영역을 모빌리티로 한정 짓는 것과 동시에 모빌리티 시장 전체를 장악하겠다는 것을 의미했다.
해외시장 공략, 전기트럭 출시, 승차공유 진출 등 앞으로도 해야 할 일은 차고도 넘쳤다.
좋은 기업은 좋은 인재를 끌어들이고, 좋은 인재는 더 좋은 인재를 끌어들인다.
카로스에는 다양한 인재들이 몰려들었다. 엔플과 구블, 니콜라에서 이직해온 사람들도 많았다.
작은 스타트업에서 출발한 카로스는 어느새 IT 공룡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초거대기업으로 성장했다.
* * *
카로스가 잘나가는 것과는 별개로 OTK컴퍼니 손에 떨어지는 건 단 1달러도 없었다.
실제로 우리가 인수한 이후 카로스는 단 한 번도 배당을 실시하지 않았다. 이는 돈을 잘 벌 때나 못 때나 마찬가지였다.
당장의 수익은 포기하더라도 계속 사업영역을 확장해야 한다는 점에 데릴과 내 의견이 일치했다.
어느 전문가의 말마따나 수익을 내지 않기로 작정한 대기업만큼 무서운 경쟁자는 없으니까.
이 경우 채권이나 신주발행을 통해 지속적으로 투자를 받아야 하지만, 카로스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지주회사가 얼마든지 자금을 지원해줄 수 있기 때문이다.
신기술은 새로운 수요와 기회를 만들어낸다. 그 과정에서 어떤 기업은 새롭게 성장하고, 어떤 기업은 도태돼 사라진다.
한국은 미국과 마찬가지로 자율주행을 제한적 범위 내에서 허용하기로 하고, 국토교통부는 관련법령을 개정했다. 그리고 카로스의 AD시리즈의 수입을 승인했다.
여기에는 두 가지 현실적 이유가 작용했다.
첫째로 자동차 문제로 중국과 일본이 미국에게 차례대로 두드려 맞는 것을 본 만큼 알아서 기는 것이고, 둘째는 은성차가 카로스와 협력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미 국내에 전기차산업 단지를 짓고 있고, 은성차도 자율주행전기차로 대전환에 나선 만큼 굳이 발을 뺄 이유가 없었다.
평택항을 통해 1차 수입분 300대가 한국에 들어왔다. AD3의 1호 구매자는 서성그룹 임진용 회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