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33)
보는 투자자 032
32화.
할머니는 유리의 손에 억지로 지폐를 쥐어줬다.
“괜찮긴! 할미가 주면 그냥 ‘감사합니다’ 하고 받는 거야.”
어쩔 수 없이 돈을 받은 유리는 다시 고개를 숙였다.
“감사합니다, 할머니.”
“그래그래. 그럼 늙은이는 이만 가볼 테니, 젊은이들끼리 즐겁게 놀아. 그 데이트인가 뭔가 잘 하면서.”
데이트 아닌데요.
나는 뒷짐을 지고 걸어가는 할머니를 향해 인사했다.
“조심히 가세요.”
그러고는 유리에게 물었다.
“아는 분이야?”
“옆집에 사시던 할머니에요. 예전에 갤러리 백화점 있던 자리에서 장사하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절 많이 예뻐해 주셨어요.”
“저 할머니도 재건축되기 전부터 여기 사셨던 거야?”
“예. 그때는 8층짜리 작은 아파트였어요.”
단지 안은 입주민이 아니면 들어오기 힘들다.
“여기 계속 사셔?”
“그럼요. 지금은 옆 동에 사세요. 자녀들 것까지 포함하면 집이 세 채예요.”
“헉.”
가장 작은 평수 한 채가 23억이다. 세 채면 거의 70억이다.
시골 할머니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완전 알부자다. 이래서 사람은 겉모습만 보고 평가하면 안 되는 것이다.
내가 흥미를 보이자 유리는 몇 가지를 얘기해주었다.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쯤. 할머니는 장사로 모은 돈에 대출받아 아파트를 분양받았다.
딱히 투자 목적은 아니었다고 한다. 그때는 청담동이 이 정도로 부촌이 될 줄은 몰랐을 테니까.
그저 자기 집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아파트를 분양받았고, 이후 자녀들이 근처에 살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한 채를 더 사들였다.
이웃들이 집을 팔고 이사 갈 때도 할머니는 계속 그 자리를 지켰다. 수십 년이 지나며, 아파트는 점점 낡았다. 천장에서는 물이 새고, 수도관이 부식돼 녹물이 흘러나왔다.
슬슬 재건축 얘기가 나오기 시작하자, 이때부터 집값이 치솟았다.
재건축이 실제로 이뤄지기 전까지는 수많은 절차와 과정을 거쳐야 한다. 관계기관의 승인, 조합원들의 동의, 시공사 선정 등등.
그 사이 누군가는 10억이나 15억쯤 팔고 나갔다.
“예전 아파트 분양가가 얼마였는지 알아요?”
“얼마였는데?”
“1800만 원이었대요.”
“······.”
그 후, 40년이 넘게 흘렀고, 재건축이 시작되었다.
8층짜리 낡고 작은 아파트가 철거되고, 그 자리에는 수십 층짜리 고층 새 아파트가 들어섰다. 용적률은 두 배 이상 올랐고, 두 채의 아파트는 세 장의 입주권으로 변했다.
“할머니뿐만 아니라, 예전부터 이곳에 살던 사람들은 전부 재건축으로 돈방석에 앉았어요. 아빠한테 들었는데, 재건축 수주전도 꽤 치열했나 봐요.”
강남에서도 부촌에 위치한 대단지 아파트다. 수주만 받으면 분양흥행은 보장된 거나 다름없었다.
2천 세대면, 시공금액만 1조원은 족히 되지 않았을까? 시공을 맡은 건설사 역시 큰 수익을 냈을 것이다.
난 곰곰이 생각해보았다.
언론에서는 분양한 아파트에 프리미엄이 얼마나 붙었는지에 대한 기사를 쏟아낸다. 분양을 받은 사람들도 집값 올랐다는 뉴스에 기뻐한다.
그러나 진짜 돈을 번 사람은 따로 있다. 재건축이 이뤄지기 전부터 그곳에 땅과 집을 가지고 있던 사람과 시행하는 건설사다.
재건축은 자선사업이 아니다.
분양가는 조합원들과 건설사의 이익이 충분히 보장된 금액으로 책정된다. 분양을 받는 사람들은 사실상 소비자다.
이 아파트를 지금 사려면 23억이다. 3년 전쯤 분양을 받았으면 18억이다. 재건축이 결정되기 전에 샀으면, 15억이나 그 이하였을 것이다.
만약 재건축 이전의 아파트를 분양 받았다면, 1800만원이면 충분했을 테고. 수익률만 놓고 봤을 때 가장 큰 이익을 본 사람은 다름 아닌 아까 만난 할머니다.
기업 역시 마찬가지다.
보통 주식회사들은 상장을 목표로 한다.
성공적으로 상장이 이뤄지면, 회사를 만든 창업주, 그 창업주를 믿고 초기에 투자한 투자자들, 그리고 IPO를 주관한 기관 등은 막대한 이익을 챙기고 축포를 터트린다.
상장이 끝난 주식을 거래하는 투자자들은 몇 퍼센트 오르고 내리는 것에 일희일비한다.
성공할 기업에 투자하고 싶다면, 상장 이후보다는 비상장일 때, 기왕이면 창업 초기에 투자해야 최대한의 수익을 거둘 수 있다.
모호하게 머릿속을 떠돌던 생각들이 하나로 정리되었다.
그동안 완전히 헛다리짚고 있었다. 그래서 백날 주식들을 살펴봐도 아무 것도 떠오르지 않았던 건가?
이번에는 확실하게 감이 왔다.
내가 걸음을 멈춘 채 멍하니 서있자, 유리가 나를 쳐다보았다.
“왜 그래요, 선배?”
나는 빙그레 웃음을 지었다.
“뭘 해야 할지 이제야 알 것 같아서.”
유리는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게 무슨 말이에요?”
“난 이만 가볼게.”
“예? 커피도 안 마시구요?”
“다음에 마시자.”
한가하게 커피나 마시기에는 마음이 급하다.
몸을 돌리려던 나는 멈칫했다. 저번에도 그렇고 이번에도 그렇고, 얘를 만나면 뭔가 하나씩 얻어가는 느낌이다.
“고마워,”
유리는 당황하며 물었다.
“대체 무슨 일인데요?”
“잘 되면 나중에 비싼 밥 사줄게.”
* * *
난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현주 누나에게 톡을 보냈다.
집으로 들어가자 택규는 거실에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일찍 왔네.”
“지금 게임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
“그럼 뭘 할 때인데?”
“우리가 뭘 해야 할지 알았어.”
택규는 바로 하던 게임을 중단시켰다.
“뭐야? 오라클 아이로 뭔가를 본 거야?”
“그건 아닌데, 얘기를 들어봐.”
난 청담동 아파트에서 만난 할머니에 대해 얘기해주었다.
1800만 원짜리 아파트 두 채가 45년이 지나 23억짜리 아파트 세 채가 되었다. 대충 계산해도 150배다. 그동안의 물가 상승률도 감안해도 엄청난 수익률이 아닐 수 없다.
“완공된 아파트를 거래소에 상장된 기업에 비유한다면, 분양은 IPO(기업공개)인 셈이야. 재건축이 결정되기 전의 낡은 아파트는 비상장 주식일 테고. 아파트값이 계속 오른다고 가정한다면, 분양이 끝난 후 사는 것과 재건축이 결정되기 전 사는 것 중 어느 쪽이 더 수익률이 높겠어?”
택규는 놀랐는지 눈을 크게 떴다.
“그냥 후배라더니 집까지 따라갔어?”
“······지금 그게 중요하냐?”
이 자식은 대체 뭘 들은 거야?
난 예를 들어가며 계속 설명했다.
“산업혁명 시대에는 새로운 산업이 기존 산업을 대체해. 자동차가 등장한 후 마차가 사라진 것처럼 말이야.”
자동차가 마차를 완전히 대체하기까지는 100년이 넘는 시간이 걸렸다. 그러나 현재는 그 속도가 상상을 초월한다.
“남는 방을 빌려주는 숙박공유업체인 에어비앤씨(Air BnC)는 방 하나 없이 호텔체인그룹인 힐튼의 가치를 넘어섰고, 라이딩 쉐어링 서비스를 제공하는 아이버(Iber)는 전통의 자동차기업인 GM의 가치를 넘어섰지. 불과 10년도 안 돼서 벌어진 일이야.”
설명을 들은 택규는 혀를 내둘렀다.
“에어비앤씨와 아이버가 그 정도야?”
잘 모를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에서 에어비앤씨는 제한적으로만 허용되고, 아이버는 아예 불법이니까.”
에어비앤씨의 경쟁자는 호텔을 포함한 숙박업소, 아이버의 경쟁자는 택시업체들이다. 기존 사업자들 입장에서는 생계가 걸린 문제인 만큼 격렬하게 반발하는 게 당연하다.
정부 역시 그들의 표를 의식하고 있는 만큼 함부로 규제를 풀어줄 수 없다.
자동차가 영국에 등장했을 때만 해도 마차를 끄는 마부들은 결사적으로 반대했다. 심지어는 자동차가 마차보다 빨리 달릴 수 없다는 법안을 만들어 통과시켰다.
그러한 노력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늦췄을 뿐, 멈추게 하지는 못했다. 그저 영국이 자동차 산업에서 뒤처지는 결과만 초래했을 뿐이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택시를 잡기보다는 아이버를 부르는 게 일상이 되었다.
난 결론을 말했다.
“스타트업(Start Up)에 투자할 거야.”
“스타트업이 뭔데?”
“아이디어를 들고 신사업에 뛰어드는 신생중소기업을 뜻해. 에어비앤씨와 아이버 역시 스타트업에서 출발해서 현재는 시총이 수십조가 넘는 유니콘으로 성장했어.”
“유니콘이면, 판타지에 나오는 그 뿔 달린 말?”
“정답.”
유니콘(Unicorn)은 기업가치가 10억 달러를 넘는 비상장 스타트업을 뜻한다. 상장되기도 전에 10억 달러가 넘는 것은 상상 속에서나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현재는 그런 기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이것 역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나타난 현상 중 하나다.
“스타트업의 생존확률은 극히 낮아. 십중팔구는 3년 안에 망한다고 보면 되지. 혹시 닷컴버블 기억해?”
택규는 고개를 저었다.
“기억 안 나는데.”
뭐, 우리가 그 세대는 아니니.
“우리나라에는 코스닥 버블로 더 잘 알려져 있지.”
20세기가 끝날 무렵.
인터넷 세상이 열리자 사람들은 열광했다. 당시 사람들에게 인터넷이란 무궁무진한 가능성을 지닌 신대륙이었다.
위험을 무릅쓰고 아메리카 대륙으로 건너간 백인들이 (원주민을 학살하고) 나라를 세웠듯이, 용기 있는 사람들은 앞장서서 인터넷 세상으로 달려들었다.
그곳에 깃발을 꽂기만 하면 엄청난 부가 쏟아져 나올 것 같았다. 투자자들은 그 모습에 열광하며 아낌없이 투자금을 쏟아 부었다.
닷컴버블은 태평양을 넘어 한국에도 상륙했다.
당시 한국은 IMF위기를 벗어나는 과정에서 IT인프라 구축과 벤처 육성에 힘쓰고 있었다. 이것은 새로운 투자기회였다.
전국에 코스닥 광풍이 밀어닥쳤다. 인터넷 관련주라면 투자자들은 너도나도 매입에 나섰다.
아기를 업은 주부와 속세를 떠난 스님 할 것 없이 모두가 객장에 나타나 돈을 흔들며 코스닥 주식을 사겠다고 외쳤다.
심지어는 인터넷과 관련이 없는데도, 단지 코스닥에 있다는 이유만으로도 주가가 폭등하는 일도 있었다.
대표적인 게 바로 새롬기술이다. 주식은 매일 상한가를 쳤고, 다들 못 사서 안달이었다.
투자자들의 열화와 같은 성원에 힘입어, 2500원이던 주식은 30만원까지 올랐다. 수익 한 푼 못 내는 기업이 재계서열 7위까지 오르는 기염을 토해낸 것이다.
그러나 버블은 언젠가 반드시 터진다.(안 터지면 애초에 버블이라는 이름이 붙지도 않는다)
투자자들의 기대와는 달리 당시는 인터넷 속도는 물론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기술이 형편없는 수준이었다.
기대와 희망이 주가를 끌어올렸지만, 기업들은 약속했던 실적을 내지 못했다. 수익이 아닌 투자금으로 연명하던 기업들이 더 이상 투자금이 들어오지 않자 도산하기 시작했다.
역대 최고치까지 올랐던 코스닥은 순식간에 70퍼센트 이상 폭락했고, 상당수의 주식은 휴지조각이 되었다.
코스닥은 이후 여러 가지 투자자 보호 장치를 만드는 자정노력을 하고, 지수산출 방식까지 바꿨지만, 현재까지도 전 고점의 절반도 회복하지 못하고 있다.
닷컴버블은 비눗방울처럼 허망하게 사라졌다. 그러나 아무 것도 남기지 못한 것은 아니다.
“당시 투자를 받았던 대부분의 기업들이 부실했지만, 그중에도 극히 일부 건실한 기업들이 존재했어.”
그 기업들은 닷컴버블 속에서도 살아남아, 이후 본격적으로 열린 인터넷 시대를 맞이했다. 그리고 기술의 발전과 더불어 또 다른 스타트업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경쟁자들이 죽어나간 땅에 깃발을 꽂고 금광을 캐내기 시작했다.
“닷컴버블은 3차 산업혁명의 산물이지. 그리고 지금은 4차 산업혁명 시대고.”
신산업에 뛰어드는 스타트업들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다. 대부분은 망할 테지만, 몇몇은 살아남아 대기업으로 성장해 향후 경제를 이끌어나갈 것이다.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살아남을 기업들을 골라내는 거야.”
“그게 가능해?”
“물론 쉽진 않지.”
성공할 스타트업에 투자하면 큰돈을 벌 수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이지만, 누구도 함부로 투자에 나서지 못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까다로운 심사를 통과해 상장된 기업들 중에서도 성장할 기업을 찾아낸다는 것은 힘든 일이다.
괜찮은 기업이라 생각하고 투자했는데, 상장폐지를 당해 주식이 휴지조각 되는 일도 종종 벌어진다.
하물며 이제 시작 단계인 스타트업은 어떻겠는가?
수많은 스타트업들 중 망하지 않고 성장할 기업을 찾아낸다는 것은 백사장에서 바늘 찾는 것과 비슷하다.
“그런데 우리에게는 남들이 없는 게 있잖아.”
택규는 중얼거리듯 말했다.
“오라클 아이.”
난 손가락을 튕겼다.
“바로 그거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