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20)
를 보는 투자자 419 >
자동차는 노동집약적이고 기술집약적이며, 세계 교역량의 1순위를 차지할 만큼 중요한 산업이다.
그래서 모든 나라들이 기간산업으로 자동차산업을 육성한다.
은성차는 이러한 정부의 지원과 내수시장 독점, 그리고 끝없는 기술개발 덕분에 세계적인 자동차 메이커로 올라섰다.
고 한민구 회장이 대단한 경영자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러나 말년에 여러 실책으로 인해 은성차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은성차가 수소차에 매달리고, PAS 에어백 리콜로 혼란이 휩싸인 사이, 자율주행차는 상용화 됐고, 군집주행을 하는 물류트럭들은 도로를 달렸다. 이어서 무인택시가 등장했고, 뉴욕 한복판에서 무인버스도 시범운행 중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기술의 발전은 판매량 하락이라는 결과로 나타났다. 필요할 때 얼마든지 편하게 사용할 수 있는 만큼 굳이 소유할 필요가 없어진 것이다.
그동안은 중국과 인도 등 신흥국의 성장이 수요를 받쳐줬으나, 이제 그것도 한계에 다다랐다. 이미 세계 자동차 판매량은 역성장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들 생존을 위한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난 한찬영을 보았다.
그 역시 자신의 경영능력의 한계를 알고 있을 것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그보다 경영능력이 뛰어나다는 건 아니다.
그래서 난 투자만 하지 경영에는 간섭하지 않는다. 모르면 가만히 있는 것도 능력이다.
한찬영은 어떤 선택을 할까?
그가 알아서 물러나지 않고 끝까지 버틴다면, 주총을 열어 표 대결까지 가게 될 것이다. 어쩌면 서로 우호지분을 확보하기 위해 주식매입에 나서게 될 수도 있겠지.
어느 쪽이든 내가 질 리는 없다.
한참 후, 한찬영은 담담하게 말했다.
“은성차를 잘 부탁드리겠습니다.”
그 말을 마지막으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 * *
[(속보) 한찬영 회장, 은성차 대표이사 퇴임] [개인적인 사유라고만 밝혀] [은성차, 카로스에 넘어가나?] [카로스 측, 은성차에 대한 지원을 더욱 강화할 것] [은성차의 새 대표이사는?]한찬영 회장의 퇴임소식은 금세 속보로 전해졌다. 이는 단지 한찬영 한명이 물러난다는 것을 뜻하지 않는다. 조만간 그의 가신으로 분류되던 이들도 전부 물러나게 될 것이다.
OTK컴퍼니는 이제까지 수많은 기업에 투자했지만, 경영권을 탐낸 적은 한번도 없었다. 그런데 이번에 처음으로 경영진을 갈아치운 것이다.
일각에서는 인수합병을 우려했지만, 카로스와 OTK컴퍼니 양측에서 가능성을 강하게 부인했다.
아무리 은성차가 품질과 이미지로 욕을 먹어도, 내수 자동차시장 70퍼센트를 독과점하는 국민기업.
관련 산업과 협력업체도 많은 만큼 시장은 이를 큰 충격으로 받아들였다.
국민들의 반응은 엇갈렸다.
-이야! 강 형이 제대로 뒤통수 쳤네~
-카로스랑 은성차가 제휴할 때부터 알아봤다. 애초에 경영권 노리고 손 내민 거.
-이게 경영권 빼앗는 헤지펀드들과 다를 게 뭐냐?
-아무리 빨아줘봐야 강진후는 애초에 투기꾼이었어.
-전형적인 기업 사냥꾼
-형 실망ㅜㅜ 그동안 좋게 봤었는데.
-한찬영 일가가 한국 자동차산업을 이렇게 성장시켰는데, 어떻게 이럴 수 있냐?
-ㅋㅋㅋㅋ 경영자 바뀌는 게 뭐가 잘못이야? 그럼 은성차는 천년만년 한찬영이 경영해야 돼? 한찬영 죽고 나면 아들에게 물려주고?
-경영자 교체하니 주가가 5퍼센트 가까이 오르는 걸 보면, 주주들은 좋아한다는 건데. 주식 한 주 없는 니들이 왜 난리?
-어차피 독자 기술력으로는 생존이 힘들어. GM과 포드도 카로스와 손을 잡았으니, 은성차에게는 차라리 잘된 걸 수 있음.
재계 역시 혼란에 휩싸인 모습이었다.
그동안 한국에서는 재벌들의 족벌경영을 당연시했다. 따라서 지분 매입이나 경영권 분쟁 같은 주식시장의 정당한 행위조차도 마치 죄악처럼 취급했다.
그런데 이번 일은 지분 싸움에서 지면 경영권을 박탈당할 수 있다는 당연한 사실을 새삼 일깨워주었다.
만약 강진후가 국내기업들을 집어삼키겠다고 나선다면, 버틸 수 있는 기업이 얼마나 될까?
재계는 재빨리 보유자산과 우호지분을 확인하고, 대주주의 지분율을 높이기 위해 사재로 주식을 매입하는 방안 등도 검토했다.
그러나 가장 충격을 받은 것은 바로 은성차노조였다. 항상 그래왔듯이 연례행사처럼 파업을 준비하고 있던 노조는 발칵 뒤집혔다.
“잠깐. 한찬영이 물러나면 어떻게 되는 거야?”
“이제부터 한찬영이 아니라 강진후를 상대해야 하는 거야?
“그럼 이번 파업은? 저번에 못 올린 것만큼 임금 올려야 하는데.”
“이미 한찬영 이름 적은 현수막도 다 만들어놨는데. 강진후로 바꿔야 하나?”
은성차에게 있어서 내수판매량은 절대적이다. 노조의 동의 없이는 해외공장에서 생산된 차를 수입해올 수 없는 만큼,국내생산이 멈추면 판매도 올스톱이다.
때문에 매년 파업을 벌이며 임금인상과 복리후생 증진을 요구해왔고, 이는 그대로 먹혀들었다.
덕분에 은성차 생산직 노동자의 임금은 IT나 특수제품 등을 제외하면, 제조업 중 최고 수준이고, 미국이나 독일과 비교해도 높았다.
이미 노조는 지난 파업 때 강진후와 맞붙은 적이 있었다. 결과는 모두가 알다시피 노조의 완패.
엄청난 국민적 비난만 받고, 아무 소득 없이 파업을 철회해야 했다. 이는 은성차노조 파업 역사상 최초였다.
은성차에게 있어서 한국이 가장 중요한 시장이지만, 카로스 입장에서는 많은 시장 중 하나에 불과하다.
군산에 이어 새만금에도 전기차산업단지가 들어오기로 한 만큼 은성차 노조의 영향력은 점차 약화되었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앞으로 매번 강진후를 상대해야 할지도 모른다고?
같은 포식자라고 해도 말이 먹히는 상대가 있고, 안 먹히는 상대가 있다. 한찬영이 여우라면, 강진후는 호랑이다.
양수형 노조위원장은 소리치며 말했다.
“이대로는 안 됩니다! 투기자본에 의해 경영진이 교체되는 이런 상황을 지켜봐서는 안 됩니다! 노조가 나서서 은성차를 지켜야 합니다!”
대체 언제부터 노조가 회장님 자리까지 걱정했는지 모르겠지만, 노조원들 모두가 격하게 동의했다.
“옳소!”
“한찬영 회장을 다시 데려와라!”
“우리 회장님, 우리가 지키자!”
은성차 노조는 그동안 한찬영을 향해 경영실패의 책임을 지고 물러나라며 소리쳐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한찬영의 복귀를 부르짖으며 시위를 벌였다.
* * *
은성차노조는 한찬영을 경영복귀시키지 않으면 총파업을 벌이겠다고 결의했다.
어떻게 보면 은성차 경영진과 노조는 그동안 적대적 공생관계였다. 그런데 한쪽이 물갈이 되자, 이 공생관계가 깨지게 생긴 것이다.
난 데릴과의 통화에서 말했다.
“파업하고 싶으면 하라고 해요. 사람이 하고 싶은 건 하고 살아야죠,”
세계적으로 분업이 가속화되며 개발, 생산, 판매의 연결고리는 점차 약해지고 있다.
지금 전 세계 자동차공장들은 생산물량을 확보하기 위해 생산성 경쟁을 벌이는 중이다. 그동안 한국 소재 공장들은 이 경쟁에서 벗어나있었지만, 더 이상은 안 된다.
경영진이 바뀐다고 기존에 노사협약을 무효화할 수는 없다. 따라서 기본급을 깎거나, 인원을 감축하는 것도 불가능하다.하지만 물량을 줄여 초과근무를 없애 수당을 줄이는 것은 가능하다.
설사 한국 판매가 한동안 중단되더라도 앞으로는 철저히 생산성에 따라 물량을 분배할 예정이다.
노조입장에서는 부당하다고 생각할지 몰라도 경영자 입장에서는 생산성이 떨어지고, 잦은 파업으로 생산차질이 벌어지는 공장에 물량을 줄 이유가 없다.
데릴은 내 의견에 동의했다.
[은성차는 그동안 경영진도 문제고, 노조도 문제였습니다. 한국 자동차산업이 살아나기 위해서라도 이번 기회에 확실하게 문제를 해결해야 합니다.]* * *
세상은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빠르게 변한다.
불확실성은 사람을 두렵게 만든다. 따라서 사람들은 항상 미래를 알고 싶어 했다.
과거 사람들이 점을 쳤지만, 요즘 사람들은 분석이라는 걸 한다. 각종 변수를 대입해 미래를 예측하는 것이다.
엄청난 자본이 오가는 금융시장에 있어서 향후 경제흐름은 대단히 중요하다. 그래서 각 기관들과 전문가들은 자신들만의 방법으로 온갖 전망을 쏟아낸다.
과거에는 권력자들이 정보를 독점했다면, 요즘은 세상이 좋아져서 클릭 몇 번으로도 얼마든지 정보를 접하는 게 가능하다.
세계경제흐름을 분석해 놓은 글들부터, 업종과 섹터별 글들까지 자료가 넘쳐난다. 이중에서 양질의 자료를 골라낼 수 있느냐가 문제지만.
얼마 전, 닥터둠으로 유명한 뉴욕대 누리엘 루비니 교수의 경제전망이 언론에 실렸다.
택규는 그것을 보더니 깜짝 놀랐다.
“뭐야? 앞으로 1년 안에 세계증시가 붕괴된다고?”
“정확히 봐봐. ‘붕괴된다’가 아니라, ‘붕괴될 수도 있다’잖아.”
“이게 무슨 차이야?”
“나중에 말을 바꿀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지.”
기본적으로 경제전망이란 둘 중 하나다. 오르거나 내리거나. 따라서 어떤 전망을 내놓은 대체로 절반은 맞추기 마련.
하지만 폭등이나 폭락 같은 극단적 전망은 맞추기가 대단히 힘들다.
주사위 세 개를 던졌을 때 숫자의 합을 예상한다 치면 중간 값인 9, 10, 11, 12가 나올 확률이 가장 높다. 반면 숫자조합이1,1,1과 6, 6, 6 하나밖에 없는 3이나 18이 나올 확률은 216분의 1.
만약 이런 걸 맞춘다면 엄청난 유명인이 될 수 있다.
누리엘 루비니 교수는 금융위기가 발생하기 전 부동산 폭락을 정확하게 예측해 유명세를 탔다. 이는 ‘블랙스완’의 저자 나심 탈레브도 마찬가지.
루비니 교수는 그 뒤로도 늘 거품과 폭락을 외쳐왔지만, 최근 타율은 별로 좋지 못하다. 그의 외침에도 불구하고 증시와 부동산은 계속 상승세니까.
“이런 경제전망은 니가 해야 하는 거 아니야?”
사실 인터뷰 요청은 셀 수도 없이 많이 들어온다.
그 인터뷰만 다 해도 1년치 스케줄이 꽉 차지 않을까? 그래서 다 거절했다. 심지어는 타임과 포브스까지.
무엇보다 할 말이 없는 게 가장 큰 이유다. 경제학자들이야 경제를 분석하는 게 본업이지만, 내가 할 줄 아는 일이라고는 가끔 미래를 보는 것뿐이다.
괜히 그럴 듯하게 말했다가 나중에 틀린 것으로 밝혀지면 얼마나 욕을 먹겠는가?
안 그래도 세상에는 내 욕하는 사람들도 넘쳐나는데, 굳이 더 늘릴 필요는 없겠지.
택규와 얘기를 하는데, 엘리가 함께 점심을 먹기 위해 건너왔다. 날이 더워 밖으로 나가는 대신 우리는 구내식당으로 향했다.
엘리는 나에게 물었다.
“혹시 김주광이라는 사람 알아요?”
“김주광이요?”
“가수라고 하던데.”
“아, 당연히 알죠.”
“요즘 노래 듣고 있는데, 가사가 너무 예뻐요.”
“무슨 노래 듣고 있는데요?”
“매직캐슬이요.”
한 세대 전의 음악이지만, 워낙 유명하고 리메이크도 많이 돼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들으면 아는 곡이다.
택규가 재빨리 말했다.
“아! 매직캐슬 진짜 명곡이죠. 그거 게임하다가 삘 받아서 만든 음악인 거 알아요?”
“정말요?”
“예. ‘아라비아의 왕자’라는 게임 클리어하고 만들었대요.”
엘리는 신기해했다.
“그런 사연이 있었군요.”
나도 몰랐다. 가사가 동화적이라고 생각했는데, 설마 게임에서 영감을 얻어 탄생했을 줄이야.
“며칠 전에 일 때문에 만났거든요. 사인 CD도 받았어요. 연말에 콘서트 한번 할 거라고 하는데, 같이 보러가요.”
택규는 이해가 안 된다는 듯 물었다.
“일 때문에요? 골든게이트랑 무슨 일인데요?”
“지금 부동자산운용 본부장으로 있는데, 저희 쪽 ETF를 자주 매매하거든요.”
엘리의 말에 택규는 더욱 이해가 안 된다는 표정이었다.
“부동자산운용 본부장이요? 누가요?”
난 택규에게 말했다.
“몰랐어? 김주광 본업이 펀드매니저야.”
택규는 경악했다.
“뭐? 진짜?”
“심지어는 자신이 직접 운용을 맡은 매직캐슬펀드라는 패시브펀드를 출시하기도 했지. 수익률도 꽤 괜찮았어.”
“뻥 치는 거 아니야?”
“진짜야. 어차피 인터넷 검색하면 다 나오는데.”
금융권 사람들이라면 다 아는 얘기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이 잘 모르는 사실이다. 일반인들에게는 펀드매니저보다는 가수로 훨씬 유명하기도 하고.
나도 경영학과에 입학한 뒤 알게 된 사실이다.
난 옆 테이블에서 직원들과 밥을 먹는 정기홍 팀장에게 물었다.
“부동자산운용에서 일하는 김주광 본부장님 예전에 우리 학교도 오지 않았어요?”
정기홍 팀장은 재빨리 말했다.
“아! 물론입니다. 취업설명회 때마다 매년 와서 몇 곡씩 부르고 가셨습니다.”
택규는 그제야 믿는 눈치였다.
“매직캐슬 말고도 ‘이별편지’나, ‘늑대야’나, ‘서울소녀’ 같은 다른 명곡들도 많잖아. 그런데 본업이 가수가 아니라고?”
“응. 가수는 취미활동이나 부업이지.”
“부업으로 그런 명곡들을 냈다고?”
“그러게.”
세상에는 별 연관 없어 보이는 양쪽 재능을 다 지닌 사람도 존재한다.
대부분의 가수들은 온힘을 다해 노력해도 히트곡 하나 내기 힘든데, 누구는 취미로 만든 노래가 세대를 지나서도 불려진다.
이런 걸 보면 새삼 세상이 공평하지 않다는 사실이 실감난다.
하지만 이런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세상에는 모델 같은 미모를 지닌 변호사도 있고…….
“너만 해도 본업은 부대표지만, 부업은 오타쿠잖아.”
택규는 화를 내듯 소리쳤다.
“뭔 소리야!?”
“농담이야.”
“난 본업이 오타쿠고, 부업이 부대표야.”
“…….”
아, 그런 거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