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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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창민 대통령은 청와대 수석 보좌관 회의에서 또다시 발언했다.
“일부 기업과 부유층들이 불법으로 재산을 해외에 은닉해 세금을 회피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공정과 정의를 해치는 대표적인 반사회 행위입니다. 이를 근절하기 위해 국세청, 관세청, 검찰 등 관련 기관이 합동조사단을 설치해 추적조사와 처벌, 범죄수익 환수까지 공조하는 방안을 강구해주시기 바랍니다. 과세원칙을 바로 세우고 모든 국민들이 법 앞에 평등해질 때야말로 정의가 강물처럼 흐르는 대한민국이 만들어졌다 할 수 있을 것입니다.”
대통령의 말에 청와대가 움직이고, 청와대의 움직임에 여당과 각 기관이 반응했다. 즉시, 검찰, 국세청, 관세청의 실무자들이 만나 합동조사단을 꾸렸고, 여기에 금융정보분석원과 금융감독원도 합류했다.
자진신고 받은 내역과 각 기관에서 모은 해외송금 거래를 면밀하게 분석해 탈세와 자금세탁을 적발해내겠다는 것이다.
역외탈세 문제를 놓고 그야말로 전방위적 압박이 펼쳐진 셈이다.
재벌들 중에서도 혐의가 포착돼 이름이 거론되는 이들이 열 명이 넘었다. 그나마 차명재산이나 소득을 숨긴 거라면 탈세로 끝나겠지만, 회사 자금을 빼돌렸다면 횡령과 배임이 추가된다.
반발이 있을 법도 했지만, 임진용 회장이 구속된 뒤 재계는 살얼음판을 걷는 분위기인지라, 다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너희 중 죄 없는 사람들만 돌을 던지라고 해봐야, 다들 지은 죄가 워낙 많다보니 그저 침묵하는 수밖에.
안타깝지만, 이게 한국재벌들의 현실이지.
사실 세금 제대로 걷자는데 누가 대놓고 반대할 수 있겠는가?
세금 징수는 국가가 가진 권한이자, 나라를 유지하는 근간이다. 그러나 누구도 세금을 많이 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그래서 최대한 세금을 적게 내기 위해 절세와 탈세 사이에서 아슬아슬한 줄타기를 하는 거고.
국세청의 조사가 치밀해지는 것 이상으로 자금을 빼돌리는 수법 역시 교묘해지고 있다. 쫓고 쫓기는 게임이랄까?
파나마 페이퍼즈 사건을 통해 드러났듯이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만드는 것은 이제 흔한 일이다.
어쨌거나 역외자산 자진신고와 처벌을 강화하는 법안이 입법된다 해도 딱히 우리가 타격받을 일은 없다.
OTK컴퍼니가 델라아일랜드에 법인이 있고, 그 지분관계에 대해서는 이미 모두가 알고 있다.
법인 자산 중 현금은 일부고, 대부분은 여러 회사의 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카로스, OTK게임즈, 페이스잇, M피자, 아킷, 텐웨이 등.
그 회사들 역시 전부 비상장회사라 정확한 가치평가가 쉽지 않다. 그저 언론들이 수천억 달러니, 1조 달러니 떠들고 있을 뿐이지.
자진신고서 양식에 따르면 법인의 정확한 재정 상태까지 제출하도록 되어 있다.
이렇게 되면, OTK컴퍼니가 어느 기업의 지분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어디에 투자해 얼마를 벌었는지 정부는 손바닥 보듯 들여다볼 수 있게 된다.
* * *
우리는 일단 현주 누나를 만났다. 정부의 정책변화에 금융권 역시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었다.
하루 동안 여기저기서 엄청나게 문의가 들어왔다고 한다.
“지금 난리가 난 건 우리보다 대기업과 부호들이지.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만든 개인과 기업이 한둘이 아니니까. 다들 국세청의 움직임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중이야.”
“이게 우리한테 얼마나 영향을 끼칠까요?”
현주 누나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글쎄. 정부가 외국법인에 과세할 수는 없어. 다만 자금 일부를 국내로 이전하거나, 종속기업들을 거래소에 상장하라고 압박을 가할 수는 있겠지.”
대부분의 기업들은 상장을 목표로 한다. 하지만 그중에서 실제 상장되는 기업은 극소수다.
바늘구멍 같은 심사를 통과하기 위해 애쓰거나, 합병을 통한 우회상장 같은 편법을 써서라도 상장을 하려는 이유는 투자자들에게 주식을 팔아 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다. OTK컴퍼니는 외부에서 투자를 받는 대신 각종 금융투자를 통해 돈을 벌어 자회사들에 투자했기 때문이다.
만약 투자금이 더 필요하다고 해도 이미 투자하겠다는 곳이 줄을 지어 서있는 상황에서 굳이 상장을 택할 이유는 없다.
언젠가는 해야 할 날이 올지도 모르지만, 아직은 아니다.
택규가 말했다.
“한국에서 뭐라고 하면, 미국으로 국적을 바꾸면 되는 거 아니야?”
현주 누나는 고개를 내저었다.
“그렇게 간단한 문제가 아니야.”
“어째서?”
“미국은 세금이 없을 것 같아?”
죽음과 세금은 피할 수 없고, FBI는 따돌릴 수 있어도 IRS(미국 국세청)은 지구 끝까지 쫓아온다.
선진국일수록 과세를 심하게 하면 심하게 하지, 덜하지는 않는다.
자국민의 역외소득에 대해 세금을 추징하는 것은 미국 역시 마찬가지. 아니, 오히려 한국보다 더 철저하게 추징한다.
한국은 세금 낼 돈이 없다고 버티면 그만이지만, 미국에서 그러면 바로 구속이다.
결론은 미국으로 국적을 바꾸는 건 해결책이 되지는 않는다는 거다.
“지금 와서 이러는 이유는 뭘까요?”
현주 누나는 커피를 마시며 말했다.
“임진용 회장 구속과 마찬가지야. 경제상황도 좋고, 새만금 개발 덕분에 대통령과 여당 지지율이 크게 올랐어. 다음 총선의 승리가 확실시 되는 만큼 하고 싶은 대로 하겠다는 거지.”
택규는 이해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흠, 아생연후살타인가?”
새만금 개발의 경우 수많은 국내외 자본들이 나를 믿고 투자를 결정했다. 그런 만큼 이제 와서 발을 빼기도 힘들다.
“이대로 시간이 흐르면, 정치권이 자본권력에 휘둘릴 수도 있다고 판단한 것도 있을 테고. 한국 재벌들이라고 해봐야 고작 1, 2조 원 때문에 기업이 넘어가거나 그룹이 해체되는 일이 다반사야. 그에 비하면 OTK컴퍼니는 스케일이 달라. 종속기업인 카로스가 세계시총 1위라는 말이 나오는 판이니, OTK컴퍼니는 말할 것도 없겠지. 이만한 사이즈의 기업이 조세피난처에 있고,비상장회사라는 것은 전례가 없는 일이야. 알겠지만, 이 상태가 영원히 지속되기는 힘들어.”
한마디로 계속 조세피난처에 있기에는 기업 규모가 너무 커졌다는 것이다. 그나마 투자회사와 지주회사 형태를 띠고 있어서 그렇지, 만약 직접 사업을 벌였다면 진작 문제가 커졌을 것이다.
“서성전자가 작년에 한국에 납부한 법인세만 17조 원이야. 만약 OTK컴퍼니를 데려올 수만 있다면 그 이상의 세수도 기대할 수 있겠지.”
“저희는 그만큼 수익이 안 나잖아요.”
“수익을 안 남길 만큼 계속 재투자를 하고 있으니까. 당장의 세수를 떠나서라도 법인을 옮기기만 하면 국가의 부가 1조 달러 이상 증가하는 셈이야. 어디든 탐을 낼 만하지 않겠어?”
한국정부가 갑자기 칼을 빼들긴 했지만, 진작부터 다른 선진국들 역시 조세피난처와의 전쟁을 벌이고 있었다.
제조업의 경우 각 나라에 고정사업장을 두고 그 지역에 세금을 납부한다. 그러나 데이터와 서비스는 자유주재로 국경을 넘나든다.
한국에서 서비스를 판매하더라도 수익에 대한 세금은 서버나 법인이 있는 다른 지역에 납부하는 식이다. 물론 그 지역은 주로 세율이 낮은 조세피난처이다.
이에 대해 각국은 세금을 징수할 방안을 마련하기 위한 방안을 강구 중이다.
역외자산에 대해 골머리를 앓기는 미국 역시 마찬가지다.
엔플과 구블 등은 아일랜드 등 조세피난처에 있는 외국법인에 수백억 달러의 현금을 쌓아놓고 있다.
이 돈을 미국으로 들여올 때는 엄청난 세금이 발생하기 때문에 계속 현지에 놔두는 것이다.
로날드 대통령은 대기업들에게 외국보유 현금을 미국으로 들여오라고 채찍을 휘두르는 한편, 일시적으로 송금세를 대폭 감면해주겠다는 당근을 꺼내들었다.
난 잠시 생각을 해보았다.
이게 과연 허창민 대통령이 말한 것처럼 사회 정의를 위한 걸까, 아니면 신종훈 사무관이 말한 것처럼 나를 두려워해서일까?
허창민 대통령과의 만났을 때가 떠올랐다. 그의 표정과 행동에는 강한 신념이 서려 있었다. 박시형이 오로지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했다면, 그는 자신이 생각하는 정의를 위해 행동하고 있는 건가?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내가 가진 돈이면, 정당을 세우고 대통령을 만드는 것도 가능하지 않을까?
민주주의 국가에서 정치권력은 선거를 통해 선출된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돈은 항상 선거에 큰 영향을 끼쳤다.
미국선거는 돈으로 치러지는 것이나 다름없다. 그리고 그 근간에는 슈퍼팩(Super PAC)이라 불리는 무제한으로 모금할 수 있는 정치기부금이 있다.
당선될 것 같으니 선거자금이 모으고, 선거자금이 모이니 실제 당선으로 이어진다.
로날드와 다이앤이 붙은 지난 미국대선에서 모든 사람들은 다이앤이 이길 거라 예상했다. 엄청난 슈퍼팩을 끌어 모은 다이앤과는 달리 로날드는 슈퍼팩 없이 선거를 치렀기 때문이다
때문에 로날드가 당선된 것은 엄청난 이변이었다. 그리고 슈퍼팩을 받지 않은 덕분에 후원자에 휘둘리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정책을 펼칠 수 있었다.
이러한 정치자금 기부를 통해 미국 정치권에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인물로는 코크 형제를 들 수 있다.
코크 인더스트리즈(Koch Industries)라는 거대 석유기업을 운영하는 두 형제는 공화당을 좌지우지한다.
이들의 지지를 받지 못하면 당내경선 출마조차 불가능하다는 얘기가 나올 정도다.
한국은 미국과 달리 무제한적인 정치자금 기부를 인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돈이 있으면 할 수 있는 일이 많다.
실제로 난 러스트벨트에 투자함으로써 로날드를 당선시켰다. 한국에서도 똑같이 하지 말라는 법은 없을 것이다.
* * *
국세청은 1차로 역외탈세 혐의를 받고 있는 59명을 상대로 강도 높은 세무조사에 들어갔다.
동시에 검찰도 수사에 나섰다.
관련 재벌들이 줄줄이 검찰청 포토라인에 섰다. 야당과 보수언론은 이를 재벌 죽이기라고 비난했지만, 국세청과 검찰은 아랑곳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리고 OTK컴퍼니로는 손님이 찾아왔다.
겉으로 보기에는 지극히 평범해 보이는 중년남녀였다. 얼핏 봐서는 부부처럼 보이기도 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그냥 직장 동료일 뿐이다.
“안녕하세요. 국세청 장기욱 조사과장입니다.”
“이보경 조사관입니다.”
택규는 신기하다는 듯 말했다.
“자진신고 하는데, 이렇게 직접 찾아와주시다니. 언제부터 국세청 서비스가 이렇게 좋아졌어요?”
봉급생활자에게는 상관없지만, 사업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검찰보다도 무서운 게 국세청이다. 이유는 당연히 세무조사 때문.
세무조사 한번 제대로 맞으면, 잘나가던 대기업이 휘청거리는 일도 있다.
물론 이는 그만큼 기업들의 탈세가 심각하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서성그룹의 경우 국세청이 긴급 세무조사를 하겠다고 들이닥치자, 보안요원이 못 들어오게 막는 사이 회계장부가 들어 있는 하드를 빼서 디가우징 시켰다.
박시형 전 대통령의 경우 말 안 듣는 개인과 기업을 상대로 세무조사를 전가의 보도처럼 휘둘러 댔다. 우리 역시 몇 차례 세무조사를 당한 경험이 있다. 빅원 이후로는 조용해졌지만.
두 사람은 자리에 앉아 우리가 내민 서류를 훑어보았다.
한참 동안 꼼꼼히 살피던 장기욱 조사과장은 고개를 들어 나를 보았다.
“신고내역에 누락된 게 많네요. 자료 첨부도 덜 되어 있고.”
“그럴 리가요. 제 개인자산과 소득, 그리고 납부한 세금과 지출내역 대해서는 완벽하게 정리가 됐을 텐데요.”
“그 부분은 문제가 없습니다. 하지만 OTK컴퍼니에 대해 상당한 정보가 누락되어 있습니다.”
“역외자산 세부내역에 대한 자진신고는 권유사항일 뿐, 아직 입법이 안 되지 않았습니까?”
내 말에 그는 보고 있던 자료를 덮었다.
“강진후 대표님. 대표님께서는 그동안 많은 일들을 해오셨고, 그 점에 대해서는 저 역시 존경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대표님께서도 한 사람의 대한민국 국민이고, 법과 원칙을 지키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두 사람에게는 세무공무원 특유의 분위기가 있었다. 직장이 안정적이고, 월급이 꼬박꼬박 나온다면, 굳이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그래서 상대가 재벌이든 권력자든 가릴 것 없이 그저 세금징수라는 본연의 업무에만 매진할 수 있는 것이다.
난 피식 웃었다.
“법과 원칙이요? 호랑이 목에 목줄을 매고 싶다는 것은 알겠는데…….”
“예?”
“돌아가서 전해주세요.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사항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자진신고 하겠습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은 것에 대해서는 앞으로도 할 생각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