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431)
를 보는 투자자 430 >
사실상 자진신고를 거부하자, 청와대와 여당은 불편한 심기를 숨기지 않았다.
어쨌거나 자료를 넘기지 않는 한 정부가 마음대로 해외법인의 자산과 거래내역을 들여다볼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래서 지금도 국내에서 송금한 내역과 해외법인의 매출과 수익, 자금흐름을 추적해 역외탈세를 잡아내는 거고.
이번 일로 우리보다 더 난리 난 기업이 있었으니, 바로 리테그룹이다.
리테그룹은 재일교포 출신 진경호 회장이 일본에 차린 기업이다. 일본에서의 성공을 바탕으로 1960년대후반 한국에 진출했고,현재는 한국재계 5위로 성장했다.
문제는 그후 일본리테의매출은정체된 반면 한국리테의 매출은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것. 두 법인의 매출은 진작 역전돼 매출의90퍼센트가 한국리테에서 발생하지만, 여전히 일본리테가 한국리테를 지배하는 지배구조를 그대로 두고 있다 보니 계속해서 잡음이 나왔다.
여론이 악호되자 한국리테를 맡고 있는 진동민 부회장은 리테호텔을 상장시켜 일본 본사와의 계열분리에 나서겠다고 약속했다.
회사에서 나오는데,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따라 붙었다.
“역외자산 자진신고를 거부하셨다고 들었습니다.”
“정부의 정책에 반대하시는 겁니까?”
“다른 기업들은 멀쩡하게 세금을 납부하고 있는데, 조세피난처에 법인을 두고 있는 게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해야 한다는 대통령의 말씀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한국증시에 상장하실 계획은없습니까?”
“국민들께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난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제 일은 제가 알아서 합니다. 법으로 정해져 있지도 않은 일에 대해 누가 이래라 저래라 한다고 해서 따를 생각은 없습니다.”
* * *
OTK컴퍼니가 조세피난처에 있다는 건 모두가 아는 사실.
그런데 정부가 역외탈세를 조사한다고 나서며, 새삼스럽게 다시 논란이 불거졌다.
OTK컴퍼니 주도로 새만금 개발이 진행 중이고, 나와 미국과의 관계도 있는지라, 청와대와 여당도 더 이상의 언급은 자제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언론은이런저런 얘기들을 떠들어 댔다.
난 뉴스를 보며 생각했다.
과연 대중의 눈에 비친 내 모습은 어떨까?
성공한 사업가? 혜안을 가진 투자자? 아니면, 돈밖에 모르는 냉혈한?
여러 가지 생각으로 인해 머릿속이 복잡하다. 늦게 퇴근해 집으로 돌아온 엘리는 나를 보더니 말했다.
“왜 그래요? 진후 표정이 안 좋아 보이는데.”
“아무것도 아니에요.”
“아니긴요.”
엘리는 내 옆에 털썩 주저앉았다.
“자, 얘기해 봐요.”
“그냥 내가 잘하고 있는 건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요.”
자수성가한 많은 사람들은 어린 시절부터 인생계획을 세워 차근차근 실행에 옮겼다. 워렌 보트가 그랬고, 송 마사요시가 그랬다.
하지만 나는 그저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에 돈을 벌었고, 어쩌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됐다.
딱히 무슨 목표의식이 있었던 것도 아니고, 사명감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OTK컴퍼니가 이렇게 성장할 거라고는 나조차도 몰랐다.
불과 5년 사이 너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자율주행전기차는 이제 일상 속으로 들어왔다. 포르노는 가상현실과 리얼돌의 결합으로 새로운 시장을 열었다. 온라인게임은 1억 명이 넘는 사람들이 즐길 VRMMORPG가 제작 중이다. 러시아에는 진행파원자로가 건설 중이다. 허허벌판이던 새만금에는 새로운 도시가 만들어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이 불과 5년 전만 해도 상상도 못했던 일이다. 그렇다면 앞으로 5년 후에는 또 어떻게 될까?
가끔 미래를 보긴 하지만, 미래의 모습이 잘 그려지지는 않는다. 그리고 내 모습 역시 마찬가지다.
내 얘기를 들은 엘리는 웃음을 지었다.
“그거 알아요?”
“뭘요?”
“진후는 자신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좋은 사람이에요.”
난 피식 웃었다.
“엘리만 그렇게 봐주는 게 아니라요?”
엘리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제가 기분 좋게 해줄까요?”
“어떻게요?”
“이렇게요.”
엘리는 내 무릎 위에 올라타 두 팔로 나를 끌어안고 키스했다.
“어때요? 기분 좋아졌어요?”
“이건 반칙 아니에요?”
한창 정신없이 키스를 하는데, 뒤에서 택규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어, 음. 혹시나 해서 묻는 건데, 지금 하고 있는 건 아니지?”
“응. 아니야.”
소파 뒤쪽에서 보면 오해를 살 수도 있는 자세긴 하지.
“나 나갈 거니까 거기서 계속 해도 돼.”
“어디 가게?”
“하영이가스토리 안 풀린다고 바람 쐬고 싶다고 해서.”
여전히 연애사업으로 바쁜 오타쿠다.
택규가 나가고 나자 엘리가 말했다.
“우리도 바람 쐬러 가요.”
“어디로요?”
“한강이요.”
“지금요?”
“기분이 별로일 땐 강이나 바다 보면 좋아지잖아요.”
난 엘리의 손에 이끌려 차를 타고 한강으로 향했다.
날씨가 풀려서 그런지, 늦은 시간임에도 사람들은 꽤 많았다. 우리가 차에서 내리자 사람들은 바로 알아보았다.
“어, 저 사람 강진후 아니야?”
“와! 진짜네.”
“애인이랑 같이 왔나봐.”
“잘 어울린다.”
우리는 주위시선을 신경 쓰지 않고 팔짱을 낀 채 강가를 걸었다. 확실히 밖에 나오니 좋다.
우리는 다리 밑에서 걸음을 멈춘 채 강을 바라보았다. 다리의 조명이 강물에 비치고, 저 너머에서 남산타워의 불빛이 보였다.
“서울은 한강이 있어서 참 좋네요.”
항상 바다가 보이는 곳에서 자라서 그런지 엘리는 물을 좋아한다.
난 그녀의 손을 꼭 붙잡으며 말했다.
“우리 다음에 홍콩에 놀러가요.”
* * *
현주 누나 결혼식 날짜가 가까워지며 세계 투자자들의 이목이 한국으로 집중됐다.
정부는 투자자들을 맞이하기 위해 여러 준비를 했다. 아예 투자유치를 위해 실무자들을 제주도로 내려 보내기도 했다.
이런 상황에서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바로 사우디아라비아 술라이만 빈 살만 왕세자의 방한이다. 왕세자가 온다는 소식에 국가 전체가 발칵 뒤집혔다.
사우디아라비아 측에서는 방문목적을 아람코 자회사인 K-Oil의 복합시설 준공식 참석을 위함이라고 밝혔다.
-왕세자가 왜 와?
-혹시 강진후 만나러 온 거 아니야?
-이야! 세계최고 투자자와 석유왕자의 만남인가?
-술라이만 왕세자가 그렇게 대단함? 만수르에 비해서는 어때?
-비교도 안 되지. 지금 아람코 시총만 2조 달러 얘기 나오고 있는데. 술라이만 왕세자가 단독주주이자 CEO나 다름없어.
-헐~ 그럼 강진후보다 두 배는 많은 거 아님?
-2조 달러는 사우디 뇌피셜이고. 실제로는 1조~1조5천억 달러 정도일 듯.
-그 정도만 해도 미친 건데, 아람코뿐 아니라 다른 국영기업들도 한둘이 아님. 그게 전부 국왕 거.
-왕정국가니 정부가 가진 땅값이랑 세금징수권 같은 것도 더해야지.
-그럼 5조 달러도 되지 않을까?
-부럽다ㅜㅜ
* * *
세계최대 기업은 어디일까?
엔플? 구블? MS? AMZ? 카로스? 아니면, OTK컴퍼니?
놀랍게도 세계최대 기업은 비상장기업이고, 중동에 있다. 바로 사우디아라비아 국영기업 아람코(ARAMCO)다.
민주주의가 잘 발달된 네덜란드와 노르웨이, 알래스카주 등은 사회적 합의를 통해 석유 판매로 벌어들이는 돈을 투자와 복지에 사용한다.
하지만 왕정국가인 나라들은 석유 판매대금을 지배계층이 독점한다.
이는 사우디아라비아 역시 마찬가지. 애초에 사우디아라비아라는 국명 자체가 사우드 가문의 아라비아 왕국이라는 뜻이다.따라서 석유 이권은 전부 왕가가 가져간다.
아람코의 지난해 매출은 3550억 달러, 영업이익은 무려 1110억 달러다. 시가총액은 최저 1조 달러에서 2조 달러까지 보는 중이다.
현재 금융권이 가장 주목하고 있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이 아람코의 상장 문제다.
사우디아라비아는 투자자금 마련을 위해 아람코의 지분 10퍼센트 정도를 상장할 예정이다. 10퍼센트만 해도 대략 1500억 달러다.
상장규모로 보면 그야말로 세계최대 수준.
지금이야 엔플이나 AMZ가 1조 달러가 넘는다고 하지만, 상장 당시 시총 규모는 100분의 1에도 못 미쳤다.
또한 보통 100억 달러 가치의 기업을 상장한다 치면, 실제 공모를 하는 비중은 20~50퍼센트다. 그러나 아람코의 경우 부분상장인 만큼 100퍼센트를 공모한다.
이 정도 상장을 한 번에 감당할 만한 거래소가 없는 만큼 대여섯 개 거래소에 나눠서 상장할 계획이다.
사우디아라비아는 기본적으로 JP모건과 긴밀한 관계에 있지만, 골든게이트와도 계속 거래를 해왔다.
특히 이번 아람코의 뉴욕거래소 상장 문제를 놓고, 골든게이트와도 협상을 진행 중이다. 상장주관사로 선정될 경우, 엄청난 수수료 수입을 얻을 수 있는 만큼 골든게이트 역시 최선을 다하는 중이다.
택규가 물었다.
“그렇게 대단한 사람이야?”
“현재 국왕이 고령으로 인해 정치일선에서 물러나 있으니, 사실상 국왕이나 다름없지.”
입헌군주국도 아니고, 왕정국가다. 당연히 왕이 갖는 권한은 엄청나다. 게다가 사우디아라비아는 모두가 아는 석유부국.
석유 판매로 1인당 국민소득이 5만 달러가 넘는다. 하지만 최근 사정은 별로 좋지 않다. 원인은 유가가 떨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사우디아라비아의 경제는 국제유가가 좌지우지하는 거나 다름없는데, 유가하락으로 인해 국가 재정에 빨간불이 켜졌다.
술라이만이 처음부터 왕세자였던 것은 아니다.
사우드 왕조는 형제 상속제를 택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사촌형인 무함마드가 다음 왕이 되어야 하나, 술라이만은 그를 밀어내고 권력을 잡았다.
그는 왕세자 자리에 오른 뒤 개혁과 부정부패 척결을 내걸고 왕족과 기업인들을 잡아넣었다.
그 숫자가 무려 수천 명이다.
“아니, 뭔 왕족이 그렇게 많아?”
“아랍 왕족은 부인을 네 명까지 둘 수 있잖아. 그러니 부인과 자식들이 한둘이겠어?”
심지어 초대 국왕은 22명의 부인을 뒀다.
“아하! 감옥에 가뒀어?”
“호텔에 가뒀지.”
구금 장소는 세계적 호텔체인 리치칼튼 호텔. 때문에 리야드의 리치칼튼 호텔은 한때 세계에서 가장 호화로운 감옥으로 불렸다.
술라이만 왕세자는 석방을 위한 조건으로 적게는 절반, 많게는 70퍼센트까지 재산헌납을 강요했다.
지금까지 국고로 회수한 돈만 2000억 달러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쯤 되면 왕족들의 부정부패 스케일에 기가 막힐 정도다. 여기에 더해 일부는 회사 지분과 경영권까지 내놓아야 했다.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이미 술라이만이 왕세자가 권력을 장악했고, 여론마저 등에 업고 있는 터라 다들 입을 다물었다.
류정훈 국무총리는 공항까지 마중 나가 술라이만 왕세자를 영접했고, 청와대는 환영만찬에 이어 정상회담을 열었다.
허창민 대통령과 술라이만 왕세자는 반갑게 인사를 나눴다. 허창민 대통령은 사우디와의 경제협력 강화를 요청했고, 술라이만 왕세자는 기꺼이 화답했다.
기존의 건설과 에너지는 물론, 향후 첨단산업, IT, 통신, 자동차 등의 분야에서도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두 정상은 함께 K-Oil의 정유와 석유화학 복합시설 준공식에 참석해 두 나라의 친분을 과시했다.
5대 그룹도 나섰다. 서성그룹은 총수의 부재를 대신해 서성전자 권낙연 사장이 대신 참석해 향후 투자를 논의했다.
술라이만 왕세자는 마치 돈 보따리를 풀듯 한국기업들과 100억 달러 규모의 MOU를 체결했다.
* * *
골든게이트 지사는 비상이 걸렸다.
정상회담을 끝마친 술라이만 왕세자가 방문한다는 연락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쪽의 요청에 따라 헨리, 나, 택규, 엘리도 자리를 함께했다.
잠시 후, 차가 정문에 도착했다.
롤스로이스 팬텀에서 사우디아라비아 전통복장을 입은 남자가 내렸다. 얼굴을 뒤덮은 수염 때문에 4, 50대쯤으로 보이지만, 실제 그의 나이는 30대 중반.
이목구비가 뚜렷하고, 꽤나 잘생긴 얼굴이다. 국민들에게 인기가 많은 데는 외모 역시 한몫하고 있을 것이다.
왕정국가의 왕세자라…….
이런 사람을 직접 만나니, 역시 세상은 넓다는 사실을 새삼 깨닫게 된다.
술라이만 왕세자는 내 손을 잡으며 기뻐했다.
“반갑습니다, 강진후 대표님. 꼭 한번 만나고 싶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