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estors who see the future RAW novel - Chapter (98)
데이비드 류.
한국 이름 류철균.
그는 한국 금융계에서 입지전적의 인물이었다.
하버드대학교 경제학과를 졸업하고 MBA 과정을 수료한 다음 칸라인그룹에 입사해 아시아지사 M&A업무를 담당했다.
80년대 후반 만들어진 칸라인그룹은 현재 운용자산만 2000억 달러에 달하는 세계최대 사모펀드다.
류철균은 입사한지 1년 만에 HB은행 M&A를 성사시켰고, 3년 후 재매각 해 10억 달러의 수익을 회사에 안겨주었다. 칸라인그룹이 아시아에서 거둔 수익 중 최대였다.
실력을 입증한 그는 이후 아시아헤드로 성장했다. 사실상 칸라인그룹 내의 아시아업무를 전부 총괄하게 된 셈이다.
칸라인그룹은 그에게 최고의 대우를 해주었다.
하지만 그의 꿈은 조국에 자신의 이름을 딴 사모펀드를 만드는 것이었다. 이후 한국에 관련법이 생기고 분위기가 무르익자, 그는 팀을 이끌고 독립했다. 그렇게 해서 만든 회사가 바로 RCK브로스다.
우려의 시각도 있었지만, RCK브로스는 10년 만에 아시아최대 사모펀드로 성장했고, 운용자금은 40조 원으로 늘었다.
현재 RCK브로스의 관심은 엑스캅이었다. 부회장인 신병두가 직접 나서서 챙길 만큼 정성을 기울였다.
“들었어? OTK컴퍼니도 인수전에 나선다는데.”
신병두의 말에 류철균은 고개를 끄덕였다.
“골든게이트와 컨소시엄 구성한다며?”
둘은 초중고 시절을 같이 보낸 동네 친구였다.
이후 류철균은 미국 하버드대로 유학을 갔고, 신병두는 일본 도쿄대로 유학을 갔다. 류철균이 칸라인그룹에서 승승장구 하는 사이, 신병두는 노무라증권에서 애널리스트로 이름을 알렸다.
독립하기로 한 시점에서 류철균이 가장 먼저 찾은 사람이 바로 신병두였다. 절친한 친구인 걸 떠나 반드시 필요한 인재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친구의 손짓에 신병두는 미련 없이 노무라증권을 그만두고 RCK브로스에 합류했다.
같이 나온 팀원들이 싱가폴, 홍콩, 인도네시아 등에 지사를 만드는 동안, 둘은 여의도에 빌딩 한 층을 사무실로 빌려 본사를 차렸다.
몇 년 동안은 잠도 안 자며 일에 매달렸다. 사모펀드를 운용하기 위해서 제일 먼저 해야 할 일은 자금을 끌어 모으는 것이다.
운용사가 선장이라면, 출자자는 선원이다.
선장이 언제든지 버리고 떠날 수 있는 배에는 아무도 타려하지 않는다. 때문에 선장은 배가 가라앉더라도 끝까지 운명을 함께 한다는 각오를 보여줘야 했다.
이는 사모펀드와 헤지펀드의 운용관례였다.
류철균은 이제까지 모은 연봉과 투자수익 170억을 전부 넣었고. 신병두 역시 기꺼이 90억을 투자했다. 여기에는 집을 담보로 한 대출금까지 포함되어 있었다.
류철균의 인맥과 명성 덕분에 블라인드펀드로 자금을 모으는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 테마섹을 포함한 여러 국부펀드들에서 돈을 대겠다고 나섰고, 순식간에 20억 달러가 모였다.
RCK브로스는 그 돈으로 HM캐피탈을 인수했다. 그리고 1년 만에 재매각해 3천억의 수익을 올리며, 그동안의 실적이 칸라인그룹 간판 덕분이 아니라는 사실을 입증했다.
첫 투자를 성공적으로 끝마치자, 출자하겠다는 사람과 기관들이 줄을 섰다.
RCK브로스는 주로 아시아 쪽에 투자를 집중했다.
첫째는 그만큼 아시아 쪽에 저평가된 매물이 많았기 때문이고, 둘째는 선진국 시장은 칸라인그룹을 포함한 기존의 강자들이 버티고 있었기 때문이다.
사모펀드의 업무는 기업을 인수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재매각해 이익을 실현하고 나서야 비로소 끝난다.
미국과 유럽의 금융회사들은 아시아의 기업문화를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때문에 무리한 조직개편과 구조조정으로 직원들의 반발을 사거나 핵심인력이 이탈해서 오히려 기업가치를 떨어트리는 경우도 종종 있었다.
반면 RCK브로스는 아시아 국가들의 기업문화를 잘 이해하고 있었고, 이것은 차별화된 강점이었다.
10년 전과 비교해 중국, 한국, 아세안 국가들은 과거와는 비교도 안 되게 성장했다. 그만큼 매력적인 매물들도 넘쳐났고,미국과 유럽의 사모펀드들은 더 높은 수익을 찾아 아시아시장으로 눈을 돌렸다.
이는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거라는 것을 의미했다. 그리고 이번 엑스캅 인수전에서 그 우려가 현실로 나타났다.
여기에 OTK컴퍼니까지 끼어들 줄이야.
“우리 젊었을 때를 보는 것 같지 않아?”
신병두는 고개를 저었다.
“아니. 우리는 저 나이 때 저렇게 못했어.”
“하긴”
단지 핸드폰 몇 대가 폭발한 것을 보고 단종과 그 시기까지 정확하게 예측하고 과감하게 풋옵션에 투자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되겠는가?
브렉시트 당시 영국 외환시장 베팅은 마치 전성기 때의 조지 소로스를 보는 것만 같았다.
대학도 졸업하지 않은 20대 청년이 해냈다고는 믿기지 않는 일이었다.
류철균은 혀를 내둘렀다.
“한국에서 이런 놈이 탄생할 줄이야.”
이전까지 류철균은 한국에서 가장 유명한 투자자였다. 그런데 강진후의 등장으로 이제 두 번째로 밀리게 생겼다.
“대체 어떤 놈인지 한 번 만나보고 싶은데.”
“가서 커피 한 잔 마시자고 해봐. 바로 옆이잖아.”
유명 사모펀드들은 강남에 모여 있는 만큼 RCK브로스 본사 역시 테헤란로에 위치해 있다. 이곳에서 OTK컴퍼니 빌딩까지는 채 200미터도 되지 않았다.
한 번 만나보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건 신병두 역시 마찬가지였다.
사실 그는 기자회견 이전부터 강진후라는 이름을 여러 차례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나 밖에 없는 딸의 학교선배이기 때문이다.
‘유리는 왜 이렇게 이놈한테 관심을 갖는 거야?’
* * *
엑스캅 입찰은 서류만 낸다고 참가할 수 있는 게 아니다.
먼저 심사를 거쳐 자격을 얻어야 하는데, 심사에서 제일 중요한 건 자금마련 계획이다. 자금이 있으면 있다고 입증해야 하고, 없으면 어떻게 자금을 마련할 건지 확실한 계획안을 제출해야 한다.
막상 최종협상자로 선정된 후 자금마련에 실패해 계약이 캔슬되는 상황을 피하기 위함이다.(실제로 이런 일이 종종 발생한다)
심사를 통과한 후 예비입찰을 거쳐 세 개의 업체를 선정하고, 그 다음 본입찰을 거쳐 최종협상자를 선정한다.
현주 누나는 나에게 말했다.
“헨리 좀 이쪽으로 보내줄래?”
“예.”
골든게이트에서는 현주 누나가 우리 쪽에서는 헨리가 나섰다. 두 사람은 실사단이 조사한 자료를 바탕으로 엑스캅의 가치측정에 들어갔다.
중요한 건 두 가지다.
첫째는 엑스캅의 진짜 가치가 얼마인가, 둘째는 다른 업체들은 얼마라고 생각하는가?
예비입찰 직전 리테그룹은 입찰참가를 포기했다.
어느 정도 예상했던 일이다. 경영권을 놓고 형제간에 소송을 벌이는 상황이라 대규모 투자에 대한 부담이 컸겠지.
이제 대기업은 은성차 한 곳만 남게 된 건가?
그 사이 우리는 조직개편 및 구성에 주력했다. 어차피 OTK컴퍼니와 K컴퍼니는 한 몸. 내친 김에 아예 마이클 리를 양사 총괄 CHO로 임명했다.
“이제까지 이 인원으로 어떻게 운영해 왔는지 신기할 정도입니다.”
사실 나도 그게 신기하다.
지분을 보유한 기업들에게 보고만 받고, 별다른 간섭을 안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이제 그 기업들의 규모도 점점 커져서 이제까지의 방식으로는 힘들었다.
“정직원을 최소 50명으로 늘려야 합니다. 그리고 비서와 일반직원들은 따로 면접을 보고 채용하겠습니다.”
“박상엽 대표와 상의해서 진행해주세요.”
“알겠습니다.”
우리는 간만에 휴식에 돌입했다. 택규는 아예 CEO실로 게임기를 가져와 TV와 연결해서 게임을 하고 있었다.
난 어이가 없어서 소리쳤다.
“신성한 회사에서 뭐하는 짓이야, 임마?”
“우리 게임회사에도 투자했잖아.”
“OTK게임즈? 이건 거기 게임도 아니잖아.”
“경쟁사의 게임을 해봄으로써 게임산업에 대한 이해의 폭을 넓혀나가는 중이야.”
“…….”
그냥 게임이 하고 싶은 게 아니라?
“너도 쉴 땐 좀 쉬어.”
내가 한국에 돌아온 건 10월.
돌아오자마자 문제가 터지는 바람에 한동안은 빌딩 안에서 두문불출하며 일만 했고, 그 다음에는 바로 검찰에 잡혀 들어갔다. 그리고 미국대선이 끝난 후 11월에 다시 나왔다.
그리고 또 정신없이 일하다가 이제 숨 좀 돌리게 되었다. 간만에 한가해지니 뭔가 불안한 느낌이다.
일 안하면 불안해지는 게 워커홀릭 초기 증상이라던데. 이러다가 나도 현주 누나처럼 되는 거 아닌지 몰라.
어차피 당장 내가 할 일도 없었기에 업무에서 손 떼고, 소파에 누워 핸드폰으로 기사를 검색했다. 그러다가 문득 유리에게 문자를 보냈다.
별다른 이유는 없었다.
그동안 속인 게 미안하기도 했고, 학교 사정이 좀 궁금하기도 했고.
그러자 유리는 바로 전화를 걸어왔고, 어쩌다 보니 저녁 일곱 시에 만나기로 약속이 잡혔다.
“……응?”
* * *
빌딩 주차장에는 포르쉐 파나메라와 BMW i8, 벤츠 S클래스, 그리고 맥라렌 570s 스파이더가 나란히 서있었다.
맥라렌은 얼마 전 상엽 선배가 법인리스로 뽑았다. S클래스 말고 다른 차도 타보고 싶다고 해서 그러라고 했다.
그동안 열심히 벌었으면, 하고 싶은 건 하며 살아야지.
난 포르쉐를 타는 대신 상엽 선배에게 말하고 S클래스를 몰고 나갔다. 승차감이 조용하고 부드럽다.
이래서 사장님들이 대형세단을 선호하는 모양이다.
자동차업체를 인수한 만큼 다음 차는 아마도 카로스에서 출시하는 신차가 되지 않을까?
잘 팔리게 만들어야 할 텐데.
길이 좀 막히긴 했지만, 청담동까지는 금방이다.
난 근처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운 다음 갤러리 백화점 앞으로 걸어갔다.
어느새 거리는 크리스마스와 연말 분위기가 한창이었다. 곳곳에 트리와 장식이 들어섰고, 가로수를 휘감은 전구가 형형색색 불을 밝혔다.
기상이변이라도 일어났는지, 날씨는 살이 에일 정도로 추웠다. 추운 날씨 때문인지 거리를 걷는 연인들은 무릎 아래까지 오는 롱패딩을 입고 다녔다.
뒤이어 지나간 학생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직장인들도 양복 위에 롱패딩을…….
“…….”
자, 잠깐. 뭐야 이거?
어느 순간, 거리에는 롱패딩을 입은 사람들이 넘쳐났다. 멀리서 보면 마치 김밥들이 걸어 다니는 것 같은 모습이다.
검은 건 원조김밥, 흰 건 누드김밥…….
롱패딩을 입은 사람보다 안 입은 사람을 찾는 게 더 힘들 정도였다.
대체 언제부터 이게 유행하기 시작한 거야?
왠지 나만 뒤쳐진 것 같은 느낌이다. 지금이라도 백화점에 들어가서 하나 사야하나?
그렇게 생각하는데, 뒤에서 반가운 목소리가 들렸다.
“선배!”
고개를 돌려 보니, 유리의 모습이 보였다.
긴 금발을 하나로 올려서 묶었고, 검은색 H라인 스커트에 청색 벨벳 셔츠를 입었다. 짧은 스커트 아래로 드러난 다리에는 검은색 스타킹을, 그 아래에는 굽이 낮은 로퍼를 신었다.
털이 복슬복슬해 보이는 밝은 회색 모피코트를 입고, 드러난 목에는 빨간 머플러를 감았다.
다행히 얘는 롱패딩이 아니구나. 왠지 안심이 된다.
유리는 나를 보며 반가워했다.
“오랜만이에요, 선배.”
“잘 지냈어?”
“그럼요. 선배 소식은 뉴스와 기사를 통해 열심히 듣고 있어요. 그런데 CEO가 이렇게 혼자서 돌아다녀도 되는 거예요?”
“뭐 어때서? 가끔 임진용 부회장도 혼자서 공연 보러 다닌다는데.”
사람들은 의외로 남에게 별 관심이 없다.
웬만큼 유명한 연예인이 아닌 이상 주위에서 알아보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그런데 그 안경은 뭐예요? 눈 나빠졌어요?”
나는 차에서 내리기 전 검은색 뿔테안경을 꼈다.
난 쑥스러워하며 말했다.
“그, 그냥 위장용으로.”
유리는 장난스럽게 물었다.
“혹시 연예인병?”
“……그건 아니고.”
기자회견 후 한동안은 시끌시끌했다. 포털사이트에 내 사진과 기사가 도배되었고, 나를 아는 사람이든 모르는 사람이든 나에 대해 떠들어댔다.
하지만 어차피 인기는 한 순간이다.
이후 다른 이슈들이 연달아 터지며 나와 OTK컴퍼니에 대한 기사들은 자연히 뒤로 묻혔다.
내가 연예인들처럼 자주 얼굴을 노출하는 것도 아니고, 내 얼굴에 대단한 특징이 있는 것도 아니다.
안경을 쓰고 헤어스타일을 조금 바꾸는 것만으로도 대부분 못 알아보겠지.
물론 친한 사이라면 금방 알아보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눈앞에 있는 사람이 연예인인지 CEO인지 알 게 뭔가?
생각해 보니, 굳이 안경까지 쓴 건 좀 오버인가?
난 화제를 다른 쪽으로 돌렸다.
“코트 잘 어울리네.”
“헤헤, 얼마 전 지혜랑 유닉클로 매장에서 샀어요.”
“거기서 모피코트도 팔아?”
“이거 인조모피에요. 진짜 모피는 동물들이 너무 불쌍하잖아요.”
길에 서서 얘기를 나누는데, 근처에 있는 몇 명의 남자들의 이쪽을 쳐다보는 것이 보였다.
설마 나를 알아본 건가?
그렇게 생각하고 얼른 고개를 숙이려는데, 알고 보니 유리를 보고 있었다.
누가 보면 진짜 연예인병 걸린 줄.
쟤들뿐만이 아니라, 지나다는 사람들도 힐끔힐끔 고개를 돌렸다. 그만큼 유리의 외모가 시선을 끌었기 때문이다.
화장을 했는지 평소 학교에서 볼 때보다 훨씬 빛나 보였다.
안 본 사이 꽤 예뻐졌구나.
“뭐 먹고 싶어? 내가 사줄게.”
“선배가 웬일로요?”
“전부터 한 번 사주려고 했어.”
저번에는 바빠서 얘기만 하고 바로 헤어졌다.
“헤에, 그럼 비싼 거 먹어도 돼요?”
“물론.”
유리는 기뻐하며 말했다.
“그럼 어서 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