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31
분신으로 절대무신 31화
“생각보다 상태가 좋지 않군요.”
황보고의 손녀이기도 한 황보려원의 상태를 살피던 장일은 고개를 저었다.
외상도 심각했지만, 그 외상도 그녀의 내상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단순히 기혈이 꼬이는 정도가 아니라, 그 기혈 자체가 굳어지려는 조짐을 보이고 있었다.
이로 인해 최근 들어 깨어난 시간보다 혼절한 시간이 점점 늘어나고 있었다.
장일은 그에 대해 짐작하는 바가 있어, 지금도 의식을 잃은 그녀를 대신해 황보고에게 물었다.
“최근에 심적으로 큰 충격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그 물음에 황보고는 쓰디쓴 표정을 보이며 고개를 끄덕였다.
어디 충격을 받은 일이 하나뿐일까? 그들이 세가를 나와 겪은 심적 고통은 감히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울 정도였다.
그들을 제외한 가문의 사람들이 잔혹하게 죽어 나갔으며, 도움을 청하려 찾아간 이들 모두가 그들을 저버리는 경험은 악몽보다도 더 끔찍한 일이다.
그들 중에서도 황보려원은 심각한 충격을 맞이했다.
혼인을 약속했던 이에게 버림을 받은 것이다. 그것도 참으로 모진 방법으로.
약혼자가 그녀를 직접 죽이려고 한 것인데, 다행히 황보고가 눈치를 채고 살아났으나 이후 그녀는 살아도 산 게 아니게 되었다.
다른 이는 몰라도 사랑을 속삭였던 그는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기에 더욱 그러했다.
장일은 그 이야기들을 황보고에 듣고는 어이없어하면서도 한편으론 또 이해가 되기도 했다.
‘가문을 선택한 것이다. 약혼을 한 사실은 알려졌을 것이니, 그 정도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판단했겠지.’
물론 이해가 된다고 해서 공감이 된다는 것은 아니었다.
‘심독(心毒)이라.’
장일은 그의 친우인 독존에게 세상에 가장 강력한 독이 무엇인가에 대해 물어본 바가 있었다.
이에 대해 독존은 의외의 답변을 해주었다.
“자네가 생각하는 형태의 독이라면 여러 개가 있겠지. 한 방울로 소 10마리를 죽이는 이두칠보사의 독이나 감각의 이상을 느끼지 못한 채 스며들어 숨을 거두게 하는 무형지독은 가히 천하십독 안에 들 만하네. 하지만 가장 무서운 독이라면 따로 있지.”
“독인인 자네가 무서워할 독이 따로 있는가?”
장일의 도움과 더불어 우연과 기연 속에 오른 독인의 경지에 이른 자는 고금을 통틀어도 몇 되지 않았다.
그야말로 수많은 독을 부리며 그 독의 영향에서 벗어난 독의 지배자인 것이다.
하니 장일이 놀라 할 만도 했으나, 독존은 미소를 지으며 답해주었다.
“있지. 바로 심독이 그것이네. 심독은 본인 스스로가 만들어낸 독이다 보니 약이 없을 만큼 매우 치명적이지. 상사병에 백약이 무효할 정도로 시름시름 앓다 죽는 이야기가 괜히 있는 것이 아닐세.”
“무슨 말인지 알겠네. 우리가 가장 피해야 하는 독인 거로군.”
활검을 다루는 장일은 그 말의 의미를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었다.
다만 이해와 별개로 장일은 당시 이 심독에 대해서 대수롭지 않게 넘겼다. 그런 것에 연연하기에는 그가 살아왔던 지난 그의 생이 가볍지 않았다.
그런 심독에 당한 황보려원이었으니 그녀의 생은 이제 길지 않을 것이다.
그러니 본래라면 여기서 장일은 가망이 없다며 고개를 털고 일어섰을 것이나, 문득 떠오른 생각이 그를 붙잡았다.
‘심법이라면 가능하지 않을까?’
의식이 아닌 무의식을 다루는 심법이라면 이 심독에 대항을 할 수 있을지 모른다.
‘아니, 근본적으로 치료하지는 못할지언정 이에 대항하는 것은 가능할지도…….’
현 운기행공의 한계를 뛰어넘는 술(術)이라면 그 가능성은 높았다.
“이리 말하기는 그렇지만, 기혈이 굳어지고 있는 그녀는 이 술을 실험하기에 최적의 대상이다.”
치료를 목적으로 두고 연구하겠지만, 설사 그 과정에서 잘못된 방향으로 간다고 해도 굳어지는 기혈에 그녀는 피해를 보지 않을 것이다.
다만 이를 위해서는 하나의 문제가 해결되어야 했다.
바로 황보려원의 생이 끊어지지 않아야 한다는 것인데, 이 문제에 대해 답은 황보고가 해주었다.
“손녀를 독괴 어르신에게 데려가 볼 생각입니다. 워낙 괴팍하신 분이라 그간은 피했지만, 상황이 이러하니 어쩔 도리가 없군요.”
독괴라는 별호와 달리 그의 의술은 천하에서 알아 주고 있었다.
그러나 워낙 성정이 괴팍한 데다, 독공의 솜씨도 뛰어나다 보니 그런 그의 의술을 이용하려는 자는 없었다.
오히려 피하기 급급해야 할 사파의 거마였다.
그런데도 황보고가 그에게 도움을 청해 보려는 이유는 전대의 가주가 그에게 도움을 주었다고 들은 바가 있어서다.
더구나 희귀한 질병을 반긴다고 하니 기혈이 굳는 손녀의 질병은 그 호기심을 충족해 줄 게 분명했다.
“같이 가도록 하지요.”
“정말입니까?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윤 씨의 말대로 장일이 얼마나 대단한 기인인지를 아는 황보고는 크게 기뻐했다. 그런 그의 모습에 장일은 잠시 머뭇거리다 말했다.
“……은혜를 갚고 싶다면 하나 바라는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입니까?”
“황보세가가 다시 세상에 나오지 않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받아들이겠습니다.”
“장로님!”
아마 예전이었다면 황보고는 놀라는 가문의 아이들처럼 반응을 하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가문이 멸문당하고 밑바닥을 전진하면서 세상의 진실을 보게 된 그는 더는 헛된 것에 집착하지 않았다.
혹시나 하여 하였던 말을 그가 그리도 쉽게 받아들이자 장일은 감탄하며 말했다.
“그리 해주신다니 저 또한 손녀분의 치료에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음 날. 장일과 윤 씨는 황보고 일행과 함께 그간의 정들었던 곳을 뒤로한 채 떠났다.
독괴를 만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았다.
전대의 가주가 독괴에게 도움을 주었다는 일이 사실이 맞았던지, 그가 알려주었던 대로 따르자 자연스레 그의 거점을 찾았기 때문이다.
의외로 그렇게 마주하게 된 독괴는 소문과는 달리 괴팍한 이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해서 고상을 떠는 이로 보이지도 않았지만, 적어도 그의 악명과는 거리가 멀었다.
“황보 가문이 멸문을 당했다고? 초 나라도 명운을 다한 모양이군.”
다행히 내치려는 모습은 아니었기에 황보고는 서둘러 그에게 반절을 보이며 바라는 바를 말했다.
“손녀를 구해주십시오.”
“흐음…….”
그 말에 독괴는 쉬이 답을 하지 않았다.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더니, 이후 그녀의 완맥을 잡았다.
그리고 잠시 후 완맥을 놓았을 때 독괴는 한숨을 흘리며 고개를 저었다.
“미안하지만 이 아이의 완치는 나로서도 불가능하네.”
“아…….”
설마 독괴마저도 불가능하다고 할 줄 몰랐던 황보고는 하늘이 무너지는 느낌을 받았다. 그때 장일이 나서 독괴에게 물었다.
“완치가 아니라 생을 유지하는 정도라면 어떻습니까?”
“그건 어렵지 않지. 다만 그게 의미가 있겠는가? 결국, 죽는 것만도 못한 삶일 것인데.”
독괴의 말은 거칠었지만 사실 틀린 말은 아니었다. 생존 활동만 가능한 식물인간 상태가 된다는 것인데, 이는 살아도 사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장일은 그것으로도 충분하다는 듯 만족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 모습에 독괴는 장일이 정말 고약한 미친놈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그 오해가 풀리는 데에는 긴 시간이 걸리지 않았고, 그 과정에서 장일은 독괴의 제자가 되었다.
그렇게 독괴의 거처에 온 지 5년이 되던 날.
독괴는 장일에게 기어이 한소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
“나도 정상은 아니지만, 너도 정말 어지간하구나. 기어이 이를 성공하다니.”
“운이 좋았습니다.”
“그게 운이 좋다고 가능한 일이더냐!”
“하하하.”
장일은 크게 웃음을 터뜨렸다. 거친 말과 달리 스승이 이를 얼마나 기뻐하는지를 알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도 화를 내는 것은 제자가 겸손으로 자신의 공을 작게 포장하려 했기 때문이었다.
시원하게 웃어대는 제자에 독괴 또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다시 황보려원의 상태를 살폈다.
“그래……. 분명 반응이 있었도다. 이제부터 시작이군.”
“그렇습니다. 이제부터 시작이지요. 앞으로도 잘 가르쳐 주십시오.”
“크흠. 생각해 보마.”
독괴는 장일의 말에 쉬이 확답하지 않았다. 아니, 못했다는 말이 맞을 것이다.
그도 그럴 게 겨우 5년 만에 장일은 독괴의 가르침을 대부분 전수받았기 때문이다.
의술이라는 것이 단순히 아는 것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행동하면서 완성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이는 말이 되지 않는 일이다.
어중간한 의원도 아닌 천하에 손꼽히는 의술을 지닌 독괴의 의술은 겨우 5년으로 어찌 넘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아마 독괴 본인도 장일을 만나기 전이었다면 자신을 모욕한다고 화를 내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그러나 장일은 이 의술에서 문일지십(聞一知十)의 모습을 보였다.
하나를 가르치면 열을 응용할 줄 알았던 것이다.
특히 장일이 돋보였던 것은 이론이 아닌 그 의술을 베푸는 실전이었다.
“설마 활검이 의술에서도 크게 활약할 줄은 몰랐지.”
장일의 말대로 활검의 묘리를 담은 의술은 실전에서 놀라운 성과를 보였다. 독괴도 최근에야 겨우 닿았던 심안을 열었던 것으로, 이 외에도 활검은 기를 넘어 영에까지 영향을 끼쳐 그 침술에서 얻는 효과를 극대화시켰다.
그런 점을 본다면 이 5년이라는 시간이 걸린 것도 독괴의 의술의 뛰어남을 고증한 일이라 하겠다.
그렇게 장일은 심법의 진화에 마침내 한 걸음을 뗄 수 있었다.
그로부터 다시 3년이 지났을 때. 마침내 황보려원은 식물인간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비록 서지도 제대로 몸에 힘이 들어가지도 않지만, 몸을 일으키고 스스로 밥을 먹을 정도로 회복한 것이다.
그리고 그때쯤에 황보려원은 새로운 사람과 혼인을 하게 되었다.
바로 식물인간이 된 뒤부터 온갖 자신의 뒤처리를 해주었던 윤 씨가 그 대상이다.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 쌍이네.”
“감사합니다, 어르신.”
“아직 치료가 끝난 것이 아니니 앞으로도 이 맘 변치 말고 그녀를 돕게나.”
“물론입니다.”
윤 씨는 자신의 말을 끝내 지켰다.
무려 치료에 5년이 더 걸렸음에도, 그는 변함없는 모습으로 그녀를 정성껏 돌보았던 것이다.
하지만 그런 고생의 기간만큼 두 사람의 애정은 더 깊어졌으니,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한 쌍을 보는 듯했다.
장일은 이들 부부의 모습에 기꺼워하면서도 또한 다른 의미로 크게 기뻐했다.
“스승님께서 살아 계셨다면 크게 기뻐하셨겠지.”
장일은 3년 전 돌아가신 스승님을 잠시 회상하며 떨리는 전율을 감추지 않았다.
황보려원을 치료했다는 것은 그가 오랫동안 바라던 심법의 진화의 문을 열었다는 말이어서다.
인위적으로 기운을 도모하는 운기행공의 길을 여는 데 성공한 것으로, 이제 남은 일은 그간의 자료를 통해 새로운 심법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이를 위해서라도 나는 다시 세상에 나가야겠구나.”
다양한 사람들의 내부를 알아봐야 해서다.
그렇게 세상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장일에게 약왕이라는 별호가 붙어졌다.
웬만한 명의는 손도 못 대는 불치병을 그는 아무렇지 않게 다스리는 일이 늘어나자 자연스럽게 그 같은 별호가 붙어진 것이다.
그리고 이때쯤 장일의 본신은 모든 일을 끝내고 고향에 도착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