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83
분신으로 절대무신 83화
자칫 자신이 그와 같은 꼴이 될 수도 있었을 일이었다.
특히나 명예를 우선시하는 강호인에게 있어서 그 같은 꼴이 된다는 것은 죽는 것보다 더 무서운 치욕스러운 일이었다.
그런 기괴한 일을 두었음에도 사내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았다.
사내에게 있어 이는 처음 겪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이상하다면 이상한 일이다.
이번 행사는 미동이 공식적으로는 처음으로 모습을 보이는 일이었다. 그러니 사내가 이를 처음 겪는 일이라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사내, 장일에게 있어서는 그 역설적인 상황이 사실이기도 했다.
눈앞의 이 미동은 망어를 관하는 십왕 중 사악의 하나인 망왕이었고, 장일은 과거 그의 목을 직접 베어낸 적이 있었다.
그러니 그가 앞서 망왕에게 한 말은 모두 사실인 것이다.
자신의 힘을 마주하였음에도 동요 따위 보이지 않는 장일에 망왕의 얼굴이 굳어졌다.
장일은 그런 망왕의 얼굴을 보며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우지 않은 채 말을 이어갔다.
“너 하나를 잡기 위해 도왕과 독군이 함께 했었지.”
망왕을 잡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방법은 안 된다는 것을 알게 된 무림맹은 세외 세력인 독왕가의 도움을 청했다.
독왕가에서는 독군을 보내었다.
훗날 독인이 되어 독존의 자리에 오른 독군이었지만, 당시 그의 경지는 그리 대단치 않았다.
반박귀진에 이르지도 못했던 것으로, 망왕을 잡는 데 큰 힘이 될지 미지수였다.
당연히 독왕이 직접 올 줄 알았던 무림맹에서는 실망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들의 실망은 그리 길지 않았다.
권능 망어를 통해 사람들을 세뇌하고 자신의 모습을 숨기는 망왕은 전검을 다루는 장일이라고 해도 쫓는 것조차 버거운 이었다.
어찌어찌 그와 대면한다고 해도, 거짓말처럼 주변에 녹아들어 사라지니 그 기약 없는 술래잡기에 장일은 지쳐갔다.
그때 그 사정을 들은 독군이 그를 찾아왔다.
“망왕이 모습을 감춘다고? 그러면 냄새를 묻히면 되겠군.”
“???”
그 말에 장일이 어이없어하는 눈빛을 보였다. 그처럼 냄새가 나는 향을 묻히는 게 쉬운 일이 아닐뿐더러 설사 냄새를 묻힌다고 한들 그 향의 범위가 그리 크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런 장일의 생각을 아는지 독군은 오만한 미소를 입에 그리며 말했다.
“천리향이라는 게 있소. 일반적으로 무독(無毒), 무취(無臭), 무색(無色)인 물건이지만, 가문에서 특별히 제조한 이걸 코밑에 묻히면 천리향을 맡을 수 있지. 이거면 망왕이 어떤 짓을 한들 그를 쫓을 수 있을 거요.”
“정말 그런 게 있단 말인가?”
쉬이 믿기 어려워하는 장일에 독군이 미간을 찌푸렸다.
“독은 나의 전부나 다름없소. 당신은 검을 두고 거짓을 두고 말하오?”
“……미안하군. 자네를 믿겠네.”
독군의 재주는 천리향만이 아니었다. 그는 망왕의 권능인 최면이 어떤 식으로 이루어지는지를 이해했다.
최면은 오감에 접촉하는 게 중요한데, 망령들과 달리 망왕은 어떻게 접촉하는지 알려지지 않았다.
하나 독군은 단 한 번 망왕을 마주한 것으로, 망왕의 접촉이 어떤 것인지 알아차렸다.
“괴물은 괴물이더군. 설마 가장 난이도가 높다는 미각으로 최면을 걸 줄이야. 그것도 무미(無味)나 다름없었으니, 알 수 있을 리 없지.”
“시각이 아니라 미각을 사용한다고?”
“그렇소. 미각이오.”
망왕은 그 끔찍한 망령들을 이끄는 자답게 최면을 다루는 방법이 기괴하면서도 강렬했다. 사람의 시선을 빼앗는 시각, 귀를 뒤흔드는 청각 이외에도 온몸이 따끔거리는 연기에 촉각과 후각에 신경이 빼앗길 수밖에 없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미각은 아예 고려의 대상도 아니었는데, 독군은 미각을 촉매로 사용한다고 단언한 것이다.
믿기 힘든 말이었으나, 이미 천리향으로 망왕의 행적을 드러내게 한 그였기에 믿지 않을 수 없었다.
“물론 망왕답게 미각만 사용하는 것은 아니겠지. 그러나 그의 가장 큰 최면의 촉매는 미각이 분명할 거요. 생각보다 미각이 뇌에 가하는 영향은 상당한 수준이기 때문이오.”
“자네의 말대로라면 망왕이 보이던 그 화려하고 기괴한 모습들은 그 미각을 촉매로 삼으려는 것을 숨기기 위한 것이라는 말이겠군.”
“과연 검존은 말이 통하는군. 그렇소이다.”
“자네의 말을 믿네.”
단순히 독군이 자신의 능력을 증명했기 때문에 믿는 게 아니었다.
이미 망왕을 잡기 위해 술법사들을 통해 여러 감각을 차단하며 경계했음에도, 그의 최면에서 자유로워질 수 없음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앞서 의심했던 시각, 후각, 청각, 촉각 모두를 둔화하고 경계했음에도 망왕의 최면에 걸렸으니, 사악 중 망왕은 가장 상대하기 싫은 자였다.
만약 망왕이 천성적으로 게으른 이가 아니었다면, 무림맹의 피해는 최소 두 배로 늘어났을 것이라는 말이 나왔을 정도다.
그러니 검존이라는 칭호를 받고 있던 장일이 사악 중 망왕을 잡는 데 전력을 가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었다.
“다만 신기하긴 하구려. 무미에 가까운 미각으로 그 정도의 최면을 걸게 하다니. 가히 권능이라는 말이 이해되는군.”
보통 미각으로 최면을 걸려면 대단히 자극적이어야 했다.
거의 통각(痛覺)이라 할 정도로 강렬한 자극을 주거나 혹은 뇌를 크게 뒤흔들 만큼 대단한 미미(美味)를 보여야 했다.
한데 망왕은 무미에 가까운 미각으로 최면을 걸게 하였다. 독군은 그것을 신기해하면서, 이내 그를 상대할 답안을 내놓았다.
“단순히 미각을 둔하게 하는 것으로는 의미가 없소. 아예 뇌와의 연결 자체를 끊어야 망왕의 최면에 자유로울 수 있을 거요.”
“그게 가능한 일인가?”
“못할 것 또 뭐요?”
독군은 그리 말하며 미각과 뇌와의 연결 일시적으로 끊어버리는 독을 만들어냈다. 혀의 감각조차도 느껴지지 않다 보니, 잘못하다 혀를 씹어 기도가 막혀 죽을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것 말고는 별다른 부작용도 없었다.
“다만 이 독을 만드는 게 쉬운 일이 아니라서 지금 당장은 다섯 사람 분량 정도가 한계요.”
“그걸로도 충분하네.”
“뭐 그렇다면야.”
장일은 방법을 바꾸어 소수로 망왕을 잡기로 결정했다. 도왕과 독군 이외 일월합벽에 이른 고수 두 사람으로 노리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독군이 장담했던 대로 망왕의 촉매는 미각이었다.
물론 망왕의 최면을 봉한다고 해도 사악 중 하나답게 망왕의 무위는 무지막지했다. 굳이 최면으로 사람들을 농락하였을 이유가 있었나? 라는 생각이 들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도왕과 검왕이 그를 보조하고 독군과 일월합벽의 고수 두 사람이 망왕을 견제하니, 결국 장일은 망왕의 머리를 거둘 수 있었다.
수백 년 전의 그때의 일을 회상하던 것은 장일만이 아닌 모양이다.
망왕 또한 그 기억을 떠올렸던지, 그의 앳된 얼굴이 와락 일그러질 정도로 충격에 빠졌다.
장일의 얼굴에서 노년이었던 그의 얼굴을 떠올린 것이다.
“어떻게?”
“이제 기억나는가?”
“너 또한 종자였군?”
자신이 율에 의해 부활한 것처럼 장일 또한 여느 신에 의해 부활한 종자라 짐작한 것이다.
당연히 그와는 거리가 멀었던 장일은 어이없어하면서도 이내 무언가를 떠올리고는 고개를 주억였다.
“자네가 생각하는 것과는 상당히 큰 차이가 있겠지만, 그 비슷한 것이기는 하네.”
아니, 사실 비슷하다고 말하는 것도 수치라 할 만큼 그 둘의 격차는 대단히 컸다.
장일이 다루는 권능 분신은 온 우주의 절반을 차지하는 근원적 존재에게서 얻은 것이니 말이다.
그런 장일의 말에 망왕은 자신의 예상이 맞다고 생각하며 이를 갈았다.
-으드득!
마치 모든 것을 으깰 듯한 섬뜩한 살기가 순간 일어나는가 싶더니, 이내 훅하니 꺼졌다.
동시에 장일과 비교가 될 정도의 신장을 지닌 거한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동의 모습을 한 망왕이 본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어느새 그가 타고 있던 나귀는 처참하게 뭉개진 상태였다.
-후우웅!
망왕은 본 모습을 드러내기 무섭게 장일을 향해 곰방대를 휘둘렀다.
그 동작은 단순하기 그지없었으나, 그 안에는 집채만 한 바위도 단번에 부숴 버릴 거력이 담겨 있어 막아도 막을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휘익!
그러나 막상 장일을 내려친 곰방대는 그를 지나 애꿎은 허공만을 갈랐을 뿐이었다.
“……사술?”
마치 그가 다루는 주술을 보는 듯한 착각을 들게 하는 재주에 망왕의 눈이 휘둥그레지는 가운데 어느새 그의 뒤를 점한 장일이 말했다.
“그럴 리가. 무공이네. 확실히 보는 눈이 없는 건 여전하군.”
“죽어라!”
-쿠르르릉!
비아냥거리는 장일의 말에 망왕은 좀 전과는 차원이 다른 움직임으로 곰방대를 휘둘렀다. 순간 곰방대에서 우레와 같은 소리가 일었고, 이에 주변 일대가 으깨지고 부서졌다.
“확실히 과거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군. 아마 불존이 이 자리에 있었다고 한들 홀로는 자네를 상대하기 어려웠겠지.”
엉망이 된 주변과 달리 장일은 어느새 그와는 먼 거리에 선 채 흔들림 없는 태연한 태도로 그를 평했다.
검존에 올랐던 그와 같은 전력이라면 최소 한 명은 더 있어야 겨우 상대해 볼 법했을 것이라 본 것이다.
그만큼 지금의 망왕은 과거와 차원이 다른 무력을 손에 넣었다.
망어의 권능을 제한다고 하더라도 사악 중 하나로서 천하를 오시할 힘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장일은 그를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실망이네. 그래도 한때는 감히 홀로는 넘볼 수 없을 존재라 여겼던 때가 있었건만.”
장일의 말은 결코 그를 흔들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니었다.
실제로 그가 보았을 때 망왕은 그 다루는 힘이 커졌을 뿐 그의 손에 목이 달아났을 때와 다른 점이 하나도 없었다.
성녀로부터 십왕의 부활이 10년 전부터 시작되었다는 것을 고려했을 때, 그는 조금도 발전하지 않은 것이다.
이는 망어라는 천하를 뒤집어버리는 권능과 그의 게으른 천성에 의해 벌어질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해도 일반적으로 정사를 막론하고 그를 홀로 상대할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아마 화왕을 상대하던 당시 장일이 지금의 망왕을 만났다면 그는 상대하기보다는 물러나는 것을 선택했을 것이다.
그러나 겨우 4년도 안 되는 시간은 많은 것을 바꾸어 놓았다.
그의 육신은 원영신을 연상케 할 정도로 높아졌으며, 그의 검 또한 분신을 통해 그때와 비할 바가 아니게 되었다.
“아니, 그만큼 내가 달라진 것로군.”
장일의 자신의 이처럼 실망한 그 근원이 그가 아닌 자신이라는 것을 뒤늦게 알고는 헛웃음을 흘렸다.
-쿠르릉! 콰가가강!
몇 차례 그와 같은 일이 반복되었다.
망왕이 일대를 부수어대었으나, 그때마다 그가 친 것은 장일이 남긴 환영이었다.
-후우웅!
그 과정이 다섯 번이나 일어나자, 망왕은 자신의 힘으로는 장일을 손도 대지 못한다는 것을 인지하고는 이내 곰방대에서 검은 연기를 뿜으며 그 속에 모습을 감추었다.
“흥!”
순식간에 모습을 감춘 망왕이었으나, 장일은 그저 코웃음을 흘릴 뿐이었다.
그가 왜 기습이 아닌 쓸데없이 망왕과 이야기를 나누고 피하며 시간을 끌었겠는가?
이는 그의 친우였던 독존이 다루던 천리향과 같은 향을 그에게 묻히기 위해서였다.
아무리 약왕이라 불렸던 장일이라고 해도 독왕가의 비법이 담긴 천리향을 재현할 수는 없는 일이었다.
그래도 그 비슷한 것을 흉내 내어 만들 수 있었다.
천리향까지는 아니어도 십 리 너머까지는 퍼지는 십리향을 만들어낸 것이다. 다만 그를 은밀히 묻히고 그를 발동하는 데 시간이 걸리는 게 문제였다.
한 번 모습을 감추면 지금의 그라고 해도 쫓기 힘든 망왕이었으니, 그로서는 자칫 이 기회를 날릴 위험이 있었다.
하여 그는 만약을 대비해 십리향이 충분히 발동할 시간을 가지도록 지금의 상황을 유도한 것이다.
그런 그의 의도는 정확하게 맞아떨어져 망왕이 모습을 감추었을 때, 이미 십리향은 발동된 뒤였다.
장일이 코웃음을 흘리며 그를 비웃은 것은 그 때문이었다.
-우우웅!
망왕이 모습을 감추자 장일의 검이 울음을 흘려댔다.
마치 이 같은 혼란에도 평소와 다르지 않은 모습으로 돌아온 저잣거리의 사람들 중 숨어 있을 망왕에 잔뜩 성이 난 모습이다.
하지만 그 검과 달리 장일은 태연자약한 모습을 보이며 그 또한 군중 속에 녹아들기 시작했다.
-이히힝!
선선한 가을날을 이기지 못한 것인지, 한편에서 꾸벅꾸벅 졸음기 가득한 상인은 몰고 있던 마차에서 굴러떨어질 것 같은 모습을 보였다. 이 때문에 고삐가 불편한 것인지 말은 번번이 울음을 흘려댔다.
그런 평화로운 상인의 일상이 뒤흔들린 것은 한순간이었다.
-번쩍.
-차아앗!
어디선가 튀어나온 검이 그의 목 줄기를 노린 것이다.
엄청난 쾌검이었고 이로 인해 핏물이 허공을 뒤덮었으나, 정작 그 검을 펼친 장일은 아쉬움이 가득했다.
“한 끗 차이로 베지 못했구나.”
허공을 뒤덮은 핏물은 아쉽게도 상인으로 변모한 망왕의 것이 아니었다. 바로 주인이 바뀐 탓에 불편함을 느끼던 말이었다.
그 한순간 망왕이 말을 방패 삼아 몸을 피한 것이다.
확실히 무력을 다루는 부분에서는 부족할지언정 도망을 치는 데 있어서는 감탄이 나올 정도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아쉽거나 하는 태도는 보이지 않았다.
이미 망왕은 그에게 꼬리가 잡힌 상태였으니, 오히려 망왕이 그런 발악을 할수록 장일은 수월하게 그를 주살할 수 있었다.
장일은 이번에도 모르는 척, 그가 모습을 감추는 것을 뒤로한 채 그 또한 군중 속에 녹아들며 그를 다시 노리기 시작했다.
-푸우욱!
장일과 망왕의 술래잡기는 허망할 만큼 허무하게 끝이 났다.
시장을 보러 온 뚱뚱한 여인으로 변모했던 망왕은 이번에는 장일의 검 끝을 피하지 못했던 것이다.
“이…… 이건 뭐지?”
심장이 검에 갈라진 순간에도 그 검의 기척을 느끼지 못했던 망왕의 얼굴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 가득했다.
-툭!
장일은 그의 심장을 찌른 검을 그대로 갈라버린 채 무뚝뚝하게 답해주었다.
“백정의 칼이네.”
“배…… 백정. 말도 안…….”
끝까지 자신을 농락하는 것이라 여겼던 망왕의 얼굴은 한없이 찌그러진 채 죽음을 맞이했다.
하지만 농락했을 것이라는 망왕의 생각과 달리 장일의 답변은 사실이었다.
그의 마지막 일검에는 소를 천 마리 이상을 도축하면서 깨달은 도(道)가 담겨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인과의 과정을 자연스럽게 자신이 원하는 형태로 비틀어대는 무검의 또 다른 모습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