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nvincible Alter ego RAW novel - Chapter 89
분신으로 절대무신 89화
아니, 연대구품을 다루었다고 해도 확실히 잡을 수 있을지도 의문이다.
이는 그만큼 투왕의 권능이 생각한 것보다 까다로워서다.
투왕의 권능은 간략히 말하자면 감각이상화(感覺異常化)다.
어찌 보면 망왕의 권능을 연상케 하지만 그와는 확연히 달랐다.
망왕이 최면을 통해 상대에게 거짓을 진실로 여기게 했다면 투왕의 권능은 말 그대로 상대의 감각을 뒤흔들어 놓았다.
어찌 보면 투도를 관하는 투왕다운 권능이라 할 수 있겠다.
도둑질에서 중요한 것이라면 은밀함이니 말이다.
그도 그럴 게 뛰어난 도둑이라면 대상이 인지도 하지 못하게 물건을 훔쳐야 한다.
소매치기로 예를 든다면 그 업으로 삼는 자들은 최소 두 명이서 협력하여 움직인다.
대상의 관심을 끄는 사람과 그 틈 사이를 노려 물건을 훔치는 사람이 그것으로, 이 중 후자 못지않게 전자의 역할이 중요했다.
그런 점에서 투왕의 감각이상화는 실로 경이로울 정도다.
단순히 감각을 약화시키는 정도가 아닌, 일정 부분에 대한 감각을 완전히 차단시키기 때문이다.
아예 인지조차 하지 못하게 하는 것으로, 과거 불존과 법왕이 협력한 것은 투왕의 이런 감각이상화를 상대하는 수단이 쉽지 않아서다.
불행히도 장일은 그런 투왕에 대해 잘 알지 못했다.
투왕을 잡는 과정이 그리 순탄치 않아 이래저래 시끄러웠음에도 그러했다.
이는 그 시기에 장일이 화왕에게 복수를 하기 위해 수련에 매진하고 있었을 때라서다.
그나마도 감각의 이상을 일으킨다는 것은 알고 있었으나, 장일은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그리고 그것이 그를 위기로 몰아넣었다.
과거의 투왕도 불존과 법왕이 합격을 해야 했을 만큼 대단했겠지만, 그 투왕도 현재의 투왕에 비할 바가 아니었다.
그 무력은 능력에 취해 그 스스로의 무력을 잘 다루지도 못한 망왕 따위와는 비교되지 않았다.
-쿠르르릉!
겨우 세 번. 삼 합을 나눈 것만으로도 투왕은 장일과의 격차를 알아차렸다.
그를 인지한 순간 투왕은 감각이상화를 한껏 다루며 몸을 피하기 시작했고, 장일은 그런 그를 뒤쫓기 시작했다.
“괴물 같은 놈!”
그렇게 시작된 술래잡기에 투왕은 저도 모르게 그와 같은 말을 내뱉어야 했다.
극독에 중독시키고, 감각이상화에 적중되었음에도 그를 노리는 장일을 떼어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전설로 여겨지던 이형환위를 아무렇지 않게 펼쳐대었으며 과연 자신의 감각이상화에 걸린 게 맞는지 의문이 일만큼 그 시야는 넓었다.
분명 시야만 10에 7, 8을 가렸음에도 그러했다.
그러나 이는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장일은 전검을 깨우친 자였고, 그런 그의 1, 2할은 능히 여는 이들의 시야 이상의 것을 볼 수 있었다.
-쿠우우웅! 카가가강!
이 때문에 투왕은 본래 그가 예상했던 것과 달리 스물 합 이상을 다시 장일과 겨루어야 했다.
당연히도 합을 나눌수록 투왕의 안색은 창백해졌다.
무검의 극의에 이르러 펼쳐지는 검기도 검기지만, 장일의 검에 담긴 살의가 상상을 초월했기 때문이다.
그의 신경을 거스르게 하는 용의 울음을 닮은 검명이 광룡의 울음으로 바뀌었을 정도였다.
하지만 정말 무서운 것은 그 살의 이상으로 그의 검이 사납게 날뛴다는 점이다.
정말로 광룡을 검에 봉인한 게 아닌가? 라는 의문이 들 정도로 검에 깃든 광기는 투왕조차도 감당할 만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반대로 그런 검이 그처럼 집요하게 노려댔음에도, 그는 스물 합 이상을 버티고 있는 것이다.
자잘한 내상을 제외하고는 별다른 부상도 입지 않은 것으로, 이만 보아도 투왕의 진가를 알아볼 수 있다.
그러나 투왕이 진짜 무서운 것은 계략이었다.
-……탁.
집요하게 투왕을 노리며 이형환위를 펼쳐대던 장일의 신형이 어느 순간 멈추었다.
그렇게 멈추어 선 장일의 얼굴은 한없이 굳어갔는데, 그런 그의 모습에 투왕은 피식 웃으며 자신의 쥐꼬리 같은 수염을 매만졌다.
“늦었네. 이 사람아.”
놀리는 듯한 그의 말에도 장일은 항거할 수 없다는 듯 한숨을 흘렸다.
“하아. 오만하였구나.”
나지막한 그의 말이었지만 투왕이 그를 못 들을 리 없었다.
그러나 투왕은 그 말을 비웃기보다는 오히려 어이없다는 눈빛으로 고개를 저어댔다.
오만은 능력이 되지 않는 자가 그 이상을 바랄 때 보이는 추태를 말한다.
그리 본다면 장일은 오만과는 거리가 대단히 먼 자였다.
장일은 그 나이가 믿어지지 않을 만큼 냉정하게 자신의 상황을 인지했고, 하여 투왕을 잡으려고 했다.
투왕이 피해를 막론하고 하루빨리 그를 죽여야 한다고 계산했던 것처럼 그 또한 그리 판단을 한 것이다.
아마 장일이 망왕과 망령들을 그처럼 무참하게 죽이기 전이었다면, 투왕은 장일의 생각대로 결국 그에게 목이 달아났을 것이다.
그러나 장일에게는 불행히도 검선이라는 명성이 높아질수록 투왕은 그를 경계했고, 그 결과 투왕은 장일을 자신의 살망(殺網)에 몰아넣는 데 성공했다.
아마 투왕이 그 피해를 보는 가운데 고심하게 펼친 감각이상화에 조금이라도 빈틈이 있었다면 장일은 그 살망이 채 완성되기도 전에 몸을 빼었을 것이다.
하지만 운이 좋다고 해야 할지, 아니면 그만큼 장일에게 주입된 극독이 제 역할을 하고 있었던 건지 장일은 끝내 투왕의 감각이상화 너머에 펼쳐진 살망을 알아차리지 못했다.
아니, 지금이라도 그가 살망을 알아차린 것은 대단한 일이었다.
하여 투왕은 투덜거리듯 끝내 말을 내뱉었다.
“오만하다는 말은 이럴 때 쓰는 게 아니네.”
장일을 높이는 듯한 그의 말이었지만, 장일은 그저 쓴 미소를 지을 뿐이다.
투왕이 어찌 생각한 들 그는 자신의 생각을 철회할 생각이 없었다.
만약 그가 망왕을 상대했던 것의 반의반만이라도 투왕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분석했다면, 이렇게 허망하게 당하지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그가 이처럼 일을 벌인 것은 망왕을 죽임으로써 생긴 확신 때문이다.
바로 혈마를 제외한다면 그를 어쩔 수 있는 이는 천하에 없다는 확신 말이다.
그러나 그 자신감은 그에게 극독에 중독되도록 만들었으며, 그럼에도 투왕을 잡을 수 있을 것이라 인지하게 만들었다.
‘교토삼굴(狡免三窟)이라 했건만.’
그와 같은 교활한 이가 함정을 하나만 만들었을 리가 없었다. 그럼에도 강행했다는 점에서 그는 스스로를 오만하다 생각했다.
단 한 번 오만을 보인 대가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투왕이 펼친 살망은 가히 십 리에 이르렀고, 그에 투입된 사람만 수천에 달했다.
이 중 무인만 일천이 넘었으니, 아무리 여의주를 취해 원영신의 반열에 이르렀던 장일이라고 한들 그를 감당할 수 있을 리 없었다.
무엇보다 투왕은 이 무서운 함정을 판 자답게 무서운 독심을 보였다.
그는 투입된 수천 명을 모두 죽는다고 해도 된다는 모습을 보였다.
무인도 주술사도 아닌 평범한 교인들을 미끼로 던졌으며, 그가 빠져나오지 못하게 자진(自盡)과도 같은 명령을 아무렇지 않게 명하기도 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혈교의 교인들은 그 명령을 받아들이며 뛰어들었다.
“정말 끔찍한 자로다.”
장일이 투왕을 두고 무서운 독심을 지녔다고 생각했다면 반대로 투왕 또한 그를 그같이 여겼다.
비록 그가 의도한 것이라고 하지만, 보통 저처럼 무수히 많은 살인을 하게 되면 사람은 둘 중 하나가 되기 때문이다.
광인이 되거나 아니면 동족을 죽인다는 죄책감에 둔화되거나 하는 것인데, 장일은 그 둘 모두에 해당되지 않았다.
벌써 천 명이 넘게 죽어 나갔음에도 그의 칼은 한 점의 흔들림도 없었다.
무인이든 주술사든 아니 제대로 된 항거도 하지 못하는 민간인이든 그의 칼은 냉정히 그들의 수급을 끊을 뿐이었다.
이성을 잃은 광인은 결코 다룰 수 없는 칼이었고, 그만큼 쓰이는 힘의 손실도 대단히 적었다.
아마 색왕이 호기심에 이번 일에 끼어들지 않았다면, 장일은 정말로 투왕의 살망을 뚫고 벗어났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색왕이 이번 일에 함께하게 되면서 장일은 더 이상 훗일을 꿈꿀 수 없게 되었다.
-아아아!
살육이 판을 치는 피비린내 나는 전장과는 어울리지 않는 여인의 교태 소리에, 장일이 흔들리기 시작해서다.
색왕의 권능은 색욕을 끌어 올리는 힘을 지녔다.
단순히 이를 본다면 그리 별것 아닐 것이라 생각할 것이다. 겨우 이따위 힘이 사악을 관하는 왕의 권능이라기에는 보잘것없다 여길지도 모른다.
강호에 널린 음약과 이게 다를 게 뭐란 말인가?
하지만 색왕의 권능은 그와 격이 다르다.
그녀가 다루는 색욕은 부처의 가운데 도막마저도 세울 힘을 지녔고, 이는 그녀가 사실상 무의식을 건드린다는 말과도 같았다.
색욕은 식욕과 수면욕과 함께 인간이 가지는 가장 원초적인 욕구이다.
그런 만큼 삼대 욕구는 무의식 속에 자리를 잡고 있었다.
색왕이 건드리는 것은 그런 무의식 너머의 색욕이다.
이것을 어찌 다루냐에 따라 한 사람의 인생관을 뒤바꿀 수 있었다. 조신한 처녀를 한순간에 색욕에 미친년으로 만들 수 있었으며, 순박한 사내도 색의 노예로 만들어내는 것은 여반장이다.
물론 수백 년의 경험을 지닌 장일이었으니, 아무리 색왕의 색욕이라 할지라도 그리 휘둘리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극독에 당하고, 투왕의 감각이상화에 마주하였으며 수많은 이들을 죽이는 과정에서 그의 육신도 마음도 크게 지친 상태였다.
그런 가운데 색왕의 색욕이 그에게 펼쳐진 것이다.
아무리 장일이라고 해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이때부터 장일은 집중력이 떨어졌고, 그의 검 끝도 흔들리기 시작했다.
마치 애벌레가 잎을 갉아 먹듯이 아주 천천히 그를 몰아넣고 있었고, 그 결과 장일은 더는 도망을 칠 수 없게 되었다.
그의 이형환위로도 빠져나오지 못할 만큼 살망이 옥죌 대로 옥죄인 것이다.
“…….”
그리고 그를 그렇게까지 몰아넣었던 투왕은 오히려 말문을 잃고 말았다.
여기까지 도달하는 데 전력의 절반을 날려 버렸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그보다 이런 상황에서도 꺾이지 않는 그의 의지 때문이었다.
‘아무리 담대한 자라고 해도 이런 상황에 놓이면 흔들려야 하건만.’
마치 철인이라도 되는 듯이 희망 한 점 없는 이 절망에서도 장일은 오히려 그 살의를 더욱 불태우고 있었다.
단순히 마지막 몸부림이라고도 볼 수 있겠지만, 그러기에는 또 너무도 고요할 만큼 침착하니 투왕으로서는 섬뜩함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언제까지 뒤에서 깔짝거리기만 할 거야! 네 일이라고!”
그렇기에 색왕의 짜증이 그를 향했음에도 투왕은 쉬이 전면으로 나서지 않았다.
상황상 말이 되지 않았지만 그가 앞으로 나서는 순간 분명 장일이 자신을 노릴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그의 직감은 장일이 혈인이 되다시피 한 상황에 다다랐음에도 달라지지 않았다.
“아! 나는 이제 몰라!”
색왕 또한 뒤늦게 섬뜩함을 느낀 것인지 그녀는 더는 몰아치지 않은 채 몸을 물렸다.
-사사사삭! 서걱!
-끄아악!
당연히 중축이던 그녀가 빠지자 수많은 죽음으로 겨우 옥죄였던 살망이 다시 흔들리기 시작했다.
“으음!”
그제야 투왕은 어쩔 수 없다는 듯 나서야 했다.
그 직감을 무시할 수 없지만, 그렇다고 해서 저 괴물 같은 자가 살망을 흔들고 있는 것을 가만히 볼 수도 없는 일이었다.
-휘익! 후우우웅!
그는 색왕이 빠진 자리에 들어서기 무섭게 숨겨둔 비전들을 모두 풀어내기 시작했다.
-쿠르르릉! 콰가가강! 쿠구궁!
그로 인해 펼쳐진 광경은 숨이 막힐 만큼 강렬했다.
굳이 저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싶을 정도로 모든 힘을 퍼부어대는 만큼 그 파장 또한 상상을 뛰어넘었던 것이다.
만약 장일의 검이 신검이 아니었다면 오래전에 부러져 버렸을지도 모른다.
투왕이 펼친 무시무시한 힘은 능히 일대를 뒤엎었고, 이 때문에 일순간 정적이 일어야 했다. 바로 시야를 어지럽힌 흙먼지 때문이다.
그리고 이것은 오히려 장일을 불리하게 만들었다.
안 그래도 투왕의 감각이상화로 인해 감각의 상실이 일게 된 그에게 있어서 그나마 사용할 만한 것은 시각이었다.
한데 그 시각이 막혀 버렸으니, 그에게 위기인 것은 확실했다.
-스걱! 피익!
과연 그 흙먼지를 방패 삼아 그의 영역에 들어선 불나방들이 그에게 상처를 남기기 시작했고, 장일의 안색은 더없이 창백해져 갔다.
투왕은 그의 그 모습을 보고는 더 이상 망설이지 않았다.
저 상황에서도 끝내 치명상을 입지 않은 장일은 괴물이라는 말로도 부족했지만, 여기까지라고 본 것이다.
하여 그는 뇌리에 일말의 경고를 날리는 직감을 무시한 채 마지막 일격을 날리기 위해 몸을 날렸다.
“죽어라!”
-콰르르릉!
불왕의 천수여래장을 뛰어넘는 어마어마한 일장이 펼쳐졌고, 그렇게 펼쳐진 힘은 능히 장일을 지워 버리기에 충분했다.
-번쩍!
하지만 마지막 그 순간 장일의 검에서 광망(光芒)이 일었다.
그리고 그것으로 모든 것이 끝이 났다.
장일이 끝내 핏덩어리가 되었다면, 그가 일으킨 광망은 투왕은 물론 삼 장 안에 있는 모든 것을 지워 버렸다.
나무고 바위고 사람이고 무엇이고 간에 그 광망에 닿은 모든 것이 사라져 버린 것이다.
“……꿀꺽.”
그 터무니없는 비현실이 믿어지지 않았던 것일까?
섬뜩한 직감에 몸을 빼내었던 색왕은 갑작스럽게 찾아온 그 적막 속에서 그저 요란스럽게 침을 삼켜댈 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