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became the Three Kingdoms Sackcloth RAW novel - Chapter 113
113화. 수신제가가 먼저.
***
이곳은 어딘지?
고통에 인상을 찡그리지만, 눈은 떠지지 않았다. 단지 희뿌연 의식만이 있을 뿐. 분명 입을 열어 말하고 있지만, 움찔거릴 뿐 실제 음성이 튀어나오지 않았다.
희뿌연 의식과 어두컴컴한 물비린내.
예전 서서에게 붙잡혔던 그 토굴과 비슷했다.
설마?
몽롱한 의식에 두통이 몰려왔다.
그러나 토굴에서 느낄 수 없었던 감각이 등 뒤에 있었다.
포근하게 감싸는,
추위에 떨지 말라고,
향긋한 냄새는 덤으로 함께였다.
이 냄새는 분명 살내음.
그 편안함에 다시금 잠이 들었다.
꿈.
분명 꿈을 꾸고 있으리라.
꿈속에서 나는 사랑을 나눈다.
“상공, 사모합니다.”
“…..”
나는 누구를 끌어안고 있었나? 꿈인 줄 알았는데…
“소녀는 당신의 종이에요. 어디든 따라갈게요.”
“…..”
날이 밝았다. 어두컴컴한 이곳이 점점 밝아지는 게 느껴졌다.
거기다가 들려오는 소리는 새들의 지저귐.
짹. 짹. 짹.
그 소리에 엉뚱한 소리를 했다.
“누가 TV를 좀 꺼봐? 동물농장 좀 끄라고.”
일어나기 싫어 이불을 끌어당긴다. 그 이불로 눈가를 가리니 이번에는 발이 시리고, 다시금 이불을 내려 가리니, 이번에는 눈가로 햇살이 찾아왔다.
이불이 짧아.
눈을 뜨지 않으려고 해도 의식이 돌아왔다. 비몽사몽이 아니라 확실히 정신이 들었다.
그리고 보았다.
새벽녘 떠오르는 햇살과 그 빛으로 구분이 가능해진 달덩이 두 개.
뽀얗고 하얀.
그리고 그녀가 돌아눕자 이번에는 잘록한 허리와 풍만한 엉덩이가 보였다.
“문희.”
그 부름에 그녀가 수줍게 웃는다.
“상공. 정신이 드세요?”
“…..”
나는 이 상황이 낯설었지만, 직감적으로 일의 경과를 알았다.
밤새 그녀가 간호한 것이다.
추위에 떠는 나를 덥히려고, 온몸으로 간호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를 쳐다보니 더 수줍게 안겼다.
짜릿한 감각.
피부는 매끈했으며 미소는 눈부셨다.
그것도 이른 아침.
한참 고등학생인 내 나이에… 도발을.
으으으. 어쩌라고.
수줍은 도발에 굴복하고 말았다.
그렇게 일주일.
남녀가 부둥켜 안고 있으니 일은 벌어졌다.
상처는 아물어갔고,
지극 정성인? 채염의 간호에 원기를 회복했다.
그 시간은 정말 행복했다.
살아온 날 중 가장 행복한 기억.
이리 차이고, 저리 차이며, 수많은 도전 속에 안도할 수 있는 날이 지금이었다.
영웅이 미인을 얻는다는 말을 실감했다.
“문희, 어째서 이곳에 온 것이요?”
“상공, 저도 몰라요. 흑랑이가 이끄는 대로 따라가다가 보니 이곳이었어요.”
그 말에, 멀리서 풀을 뜯는 애마愛馬를 쳐다보며 답했다.
“흑랑. 이 녀석! 어째서 이곳에서 멈췄어? 혹시 네놈도 신랑이(적토마) 보고 싶으냐?!”
시답잖은 소리를 했다.
그 말에 채염이 웃는다. 수줍게. 내가 한 말의 뜻을 모르지 않으리라.
일어나 걸었다.
절룩.
상처의 이질감으로 아팠지만, 이제는 걸을 정도가 되었다.
그만큼 채염의 지극 정성으로? 몸이 나아졌다.
풀어놓은 짐을 정리하고 길을 나섰다.
도대체 얼마나 시간을 보낸 건지?
혼절해 시간과 정신을 차리고 육체의 피로를 푼 시간까지, 대략 10일은 시간을 보낸 듯했다.
뚜벅. 뚜벅.
흑랑이 이끄는 대로 견 가장으로 향했다. 이제는 흉노의 위협도 사라진 듯 보였고, 마음도 가벼워 팔도를 유람하듯 천천히 산천을 구경하며 걸었다.
“문희.”
“네. 상공.”
“약속하리다. 당신을 지켜주고 그대의 동생들도 찾아주리다.”
그 말에 문희는 대답 대신 노래를 불렀다.
그녀가 부른 노래는
호가십팔반胡笳十八拍이었지만, 예전처럼 슬프지도 비탄에 잠겨 애간장을 녹이지도 않았다.
노래를 듣고 보니 기분이 좋아졌다. 그리고 그녀를 보면서 물었다.
“문희는 못 하는 게 뭐요?”
“어릴 적부터 시와 음률, 학문을 배웠습니다.”
“얼마나 배웠소?”
“아버님께서 말하기를… 너무 뛰어나면 박복하다고 했지만, 저는 배우는 게 너무 좋았습니다.”
“그 재주 중에 상재商材도 있으시오?”
“물론이지요. 상재와 함께 의서도 읽었고, 농토를 가꾸는 방법도 배웠습니다.”
“대단하오. 그대의 재능이 나보다 열 배는 낫구료.”
“과한 칭찬에 부끄럽습니다.”
얼굴이 붉어진 채염과 그녀를 놀리고 싶은 나.
나는 장난기 가득하게 다시 물었다.
“그래도 못하는 게 있겠지? 혹시 춤은 출 줄 아시오? 내가 듣기에 장안 최고의 가기歌妓가 초선이라 하던데.”
그 말에 채염의 표정이 변했다. 홍시처럼 물든 얼굴이 아름답다. 그리고 머뭇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상공, 춤사위는 가기歌妓만 하는 것입니다. 저 같은 귀족 여식이 하진 않지요. 혹여 춤을 췄다면 아버님께 혼쭐이 납니다.
하지만 그거 아세요? 장안 최고의 춤사위는 초선이 아니라 저랍니다.”
“호오- 춤과 노래까지. 그대는 정말 못 하는 게 없소. 걸그룹이요?”
“상공! 걸인이라뇨?”
문희는 알아듣지 못하고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모습까지 귀여워 볼을 잡아당겼다.
그리고 그녀가 부끄러워하자 말했다.
“걸인이 아니라. 그대의 춤사위가 보고 싶다고 하였소.”
“상공께서 원하시면, 언제든지 춤을 출 수 있어요.”
“정말?”
“견 가장에 도착하면, 거문고 선율에 맞춰 상공께 보여드릴게요.”
“하하하. 좋소이다.”
그렇게 일주일.
드디어 견 가장에 도착했다. 하지만 너무 늦은 저녁.
총관만 간신히 깨우고 방을 얻어 채염과 단둘이 여독을 풀었다.
다음날.
채염이 머물던 방문이 벌컥 열리고 견희가 들어왔다.
그녀는 말괄량이 같은 표정을 지으며
마대가 있다고 생각한 이불을 향해 몸을 던졌다.
폴짝!
“오라버니!”
이불은 짓눌리고, 마대가 누웠다고 생각한 곳에 체중이 실렸다.
“…..!”
그럼에도 상대가 답이 없자 견희는 더 장난스럽게 말했다.
“오라버니! 도대체 얼마나 늦은 거에요. 나는 말이죠. 금방 올 줄 알았어요. 근데…. 어?!”
견희는, 이불 안에서 들린 작은 목소리에 의아했다.
이 소리는 사내가 낼 소리가 아니었다.
분명, 마대 혼자 있다고 해서 장난쳤는데?
근데 이 목소리는…. 여성의 그것.
그리고 이불을 확 잡아당기려 하니 상대가 이불을 붙잡고 버텼다.
견희는 대번에 얼굴을 붉혔다. 그리고 날카롭게 쏘아붙였다.
“누구야? 너 누구냐고?!”
그러자 부들부들 떤 그녀가 이불 속에서 대답했다.
“당신은 누구세요? 저에게 왜 이러시는데요?!”
확실히 알았다.
여자다.
분명 여자의 목소리다.
견희의 얼굴을 붉어지고 눈썹을 치켜떠 앙칼지게 소리쳤다.
“그러는 너는 왜 그러는데? 네가 누군데, 우리 오라버니 이불 속에 있는데?!”
견희는 쌀쌀맞게 답했다. 마치 불륜 현장을 붙잡은 것처럼 소리쳤다.
그 말에 이불 속의 채염은 주춤거렸다.
“저, 저는….”
“그래 누구냐고? 네년이 누군데?!”
“…..”
채염은 본능적으로 알았다. 이불 밖 그녀가 마대의 정인情人일 거라고…
주춤거리는 채염과 목소리가 커진 견희. 상황이 역전된 듯했다.
“빨리 말해! 이년아! 너는 누구냐고?!”
“…소, 소녀는 주인을 모시는.. 모, 몸종입니다.”
“허! 그래!!!”
견희는 의기양양해졌다. 감히 몸종 주제에 오라버니를 넘봐. 그런 표정이 얼굴에 가득했다.
“네가 몸종들을 아는데. 너 같은 년은 혼쭐이 나야 해! 감히 우리 오라버니 이불 속에 숨어들어! 네년이 그런다고 오라버니가 쳐다나 볼 것 같아?!”
그리고 돌돌 말은 이불을 향해 주먹질, 발길질이 난무했다.
그 안의 채염은 오둘오둘 떨며 그걸 감내했다.
“흑! 으윽!”
신음을 삼키고 오가는 주먹질에 아픔을 꾹 참았다.
“감히 어디서! 나도 오라버니에게 안기지 못했는데! 네년이 먼저 들어가!”
견희의 우악스러운 힘으로 이불 한쪽이 벗겨지고 채염의 머리카락을 붙잡았다. 그리고 한 움큼 뽑아내며 꼭꼭 숨은 채염을 끄집어냈다.
“나와! 이리 나오라고!”
“카아악! 이거 놓으세요. 아파요. 제발!”
“이년아, 아프라고 당겼지. 하- 고년 얼굴은 반반하네. 어디서 창기娼妓 같은 게 오라버니를 꼬드겨!!”
견희의 힘에 채염이 끌려다녔다.
온 방 안을 헤집고,
그녀의 머리카락이 이곳저곳에 떨어져 내리고,
채염은 울었다.
머리카락이 뽑히는 고통에 아파서 울었다.
그뿐만 아니라,
지금의 고통이 가족을 잃은 설움처럼 느껴져 울었다.
채염은 부모를 잃은 천애고아.
그에 반해 견희는 지체 높은 호족 가문의 여식.
채염은 부모도 잃고 가문도 사라져 비빌 언덕이 없는 천한 사람이 되었다.
머리카락을 붙잡힌 채 반항하지 못했다.
부모 잃은 설움.
보호해줄 사람은 이제 없다.
채염은 그 생각을 하다가 마대를 떠올렸다. 하지만 눈앞의 아름다운 견희를 보자 자기는 몸종의 신분으로 떨어질 거라고 지레짐작했다.
견희는 의기양양해서 더 몰아쳤다.
“고년, 잘 운다. 이제 알았지! 오라버니를 꼬드기면 어떻게 되는지?”
방 안은 난장판이다. 수많은 자가 방문 앞으로 모여들고 이 광경을 보았다.
하지만 그 소리를 들은 누군가가 고함을 질렀다.
“그만! 뭐 하는 짓이야?!”
견희는 그 목소리에 흠칫 놀랐다. 하지만 상대를 알아보고 미소를 지었다.
“오라버니!”
“견희! 이게 무슨 짓이야?!”
소리치는 과정에도 기가 막혔다.
새벽 수련을 마치고 돌아오니 보인 광경이란 난장판.
“견희, 설명해! 무슨 짓이야?”
“그, 그게 아니라. 오라버니 요년이.”
“그만!!”
요년이란 표현에 말을 끊었다. 그리고 방바닥에 널브러진 채염을 일으켜 세웠다. 그리고 그녀를 보듬으며 말했다.
“문희.”
“사, 상공.”
채염은 내게 안겼다. 그러자 그걸 본 견희의 눈동자가 뒤집혔다.
“저 종년이!!! 또 저런다. 오라버니! 도대체 종년을 끌어안고 뭐하는 겁니까?!”
그 말에 견희를 쏘아보았다.
“감히 종년이라고?! 채염은 내 안 사람이 될 여자다.”
그 말에 채염이 울었다.
아내라는 표현에 서럽게 울었다.
그런 채염을 다독이고 말했다.
“울지마라. 내가 지켜준다고 했잖아.”
그러자 견희의 얼굴은 붉게 변했고 발을 동동거리며 소리쳤다.
“악!!! 그럼 안 돼! 안 된다고!!!”
커다란 괴성. 견희는 이성을 잃은 듯 발을 굴렀다. 그러다가 분에 못 이겨 씩씩거리며 통보하듯 말했다.
“오라버니 왜 그러세요?! 이러시면 정말 실망할 거에요. 그냥 몸종이라고 하세요. 그러면 오늘 일은 눈감을게요. 남자가 그럴 수도 있다고 생각할게요.”
그러나 견희를 쏘아보는 난 변하지 않았다.
“그만해! 몸종이 아니라고 했다. 그녀는 고귀한 집안의 자손. 그리고 내 아내 될 사람이고 더는 무례를 용서하지 않겠다!”
내 말을 들은 견희는 휘청거렸다. 하지만 그런 견희를 모른척하자 방문을 왈칵 잡아당기며 나가버렸다.
그 뒤로 채염을 다독였다.
울고 있는 채염의 어깨를 두들기고 그녀를 진정시켰다. 그러다가 밖에서 들린 소리에 고개가 돌아갔다.
“허허허. 주군. 오셨군요. 너무 큰소리가 나서 안 나올 수가 없었습니다.”
노인네의 웃음소리.
이가 빠진 노인네가 웃는 듯 괴상한 소리였다. 하지만 그 얼굴을 알아본 나는 반겼다.
“노옹이(이유) 왔어.”
그 말과 함께 돌아보니 이유를 업은 서영이 보였다.
이유는 베시시 웃으며 답했다.
“주군. 제가 먼저 온 게 아니라 주군께서 늦으신 겁니다. 또한, 상황을 보건데 주모님이 생긴 모양입니다. 허허허. 그럴 때지요. 영웅은 호색이라고 많은 여자를 가지십시오.”
이유의 말에 머리를 긁적거렸다. 절로 머쓱한 얼굴. 그리고 난처함에서 벗어나려고 다른 말을 했다.
“성의는? 그를 보았나?”
“성의라면, 전예와 함께 아침 훈련 중입니다.”
“전예?! 전예가 왔어??”
“전예는 물론, 정은, 장횡, 이당지도 있어서 서영을 치료하고 있습니다.”
“다 모였어. 이제야 다들 모였어.”
기뻤다. 그동안 원했던 게 절로 이뤄지자 안 웃을 수가 없었다.
“당장. 그들을 만나고 싶다.”
그러나 이유는 고개를 저으며 웃었다.
“허허허. 주군, 성급합니다. 지금은 주모님부터 챙기시지요.”
“….”
“수신제가 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 내 몸을 갈고닦아 집안을 평안하게 안돈하며 그 안정을 이뤄내야 천하가 품에 들지 않겠습니까?”
“그, 그건..”
“주군, 집안부터 다독이십시오. 허허허.”
이유는 그 말을 하며 서영을 시켜 방문을 닫게 했다.
나는 그 행동에 말문이 막혔지만, 울고 있는 채염을 보니 안아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말로는 이유를 이길 수 없다.
한 방 먹은 거 같아.
그 생각을 하며 품에 안은 채염을 바라보았다. 채염은 발그레한 얼굴로 나를 끌어당겼다.
한동안 방문은 열리지 않았다.
뜨거운 오전은 그렇게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