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49
49화 마지막 관문 (2)
연회장 안에 사람들은 침묵했다. 자괴감으로 가득한 기사들. 국왕 사스티안도 침묵했다.
마나의 힘이 자행하는 압도적인 폭력 속에서 오로지 9클래스 마법사 콜라시오 카엘만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유유히 걸어와 입을 열었다.
“으흥, 감축드리나이다. 전하! 드디어 숙원을 이루셨군요.”
“…덕분에.”
마법사의 상징이라고 볼 수 있는 긴 수염, 눈 전체를 덮은 풍성한 눈썹, 푸른색 보석이 주렁주렁 달린 로브를 입은 콜라시오가 여유로운 몸짓으로 국왕에게 고개를 숙였다.
“제가 한번 봐도 되겠나이까?”
“원하는 대로 하시오. 어차피 당신에게 허락을 받아야 하니.”
“에잉, 그런 흉측한 말씀을! 소신을 어떻게 보시고!”
콜라시오는 연회장 한편에 놓인 K2 소총을 들어 구석구석 살펴보았다.
“으흥, 흐음… 음?”
순간 운호와 눈이 마주친 콜라시오.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그를 유심히 관찰했다.
“으흥, 이제야 얼굴을 마주하는구만. 반갑네, 신의 의지를 이은 자여. 나는 마나의 의지를 이은 탐구자이자 구도자 콜라시오 카엘이라 하네. 흐응, 콜라시오라고 불러도 좋고.”
“…우노입니다.”
마나의 의지를 이었다? 신(神)과 마나를 동급으로 취급하나? 오만한 자다.
좋다. 마법사가 그냥 나타나지 않는 건 안다. 여긴 왕궁이지 않나. 굳이 이럴 필요가 있었을까?
‘관종이네.’
이건 단순한 자기 과시였다. 그래서 첫 만남의 인상은 그리 좋지 않았다.
“그대가 이 천둥 무기를 가져왔나 보군. 으흥, 좋아, 좋아. 참! 혹시 나한테 줄 물건은 없나? 우리 미오와 약속을 했다던데, 잊힌 번개용의…….”
아무런 대꾸 없이 운호는 아공간에서 를 꺼냈다.
“오오오! 역시! 빨리 마탑에 가 봐야겠어. 연구 거리가 생겼으니까, 으흥, 당분간 심심하지는 않겠구먼.”
바리안의 국왕 시스티안은 콜라시오의 눈치를 살폈다. 기분이 좋아 보인다.
마법사가 지배하는 세상, 그의 허락을 받지 못하면 천둥 무기의 양산화는 물 건너간다. 콜라시오가 마지막 관문이었다.
국왕은 관문을 넘기 위해 근엄한 어조로 입을 열었다.
“콜라시오 카엘, 사파이어 마탑의 탑주여. 천둥 무기를 본 소감이 어떤가? 그대의 의견을 말해 보라.”
“으흥, 흠…….”
콜라시오는 이미 분석을 시작했다. 저 멀리 제국으로부터 흘러나온 소문, 마법사를 죽일 수 있다는 물건. 하지만 실제로 보니 딱히 대단한 점은 보이지 않았다.
‘이 구멍을 통해 발사체가 나오는 모양이군. 으흥, 완력을 써서 활시위를 당기는 것보다는 효율적이야. 명중률도 높아질 것이고.’
제국에서 이미 양산화되기 시작했다. 양산화는 물건의 가치를 증명했다는 것, 하찮은 물건이라면 이미 폐기되었을 테니.
‘마음에 들지 않아.’
사실이든 아니든 마법사를 죽이는 물건이라는 별칭이 달렸다는 것 자체가 기분 나쁘다.
그러나 여기서 틀어막아 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는 노릇, 차라리 곁에 두고 감시하며 연구해 보는 게 더 낫지.
일단 위력을 실험해 볼까? 마법사들은 지적 호기심을 위해선 드래곤 레어라도 뛰어들 족속들, 그건 콜라시오도 마찬가지.
“흐응, 신탁자여. 부탁하나만 들어 줄 수 있겠나?”
“무슨 부탁을…….”
“이걸 내게 써 주게. 아무래도 너무 궁금해서 참을 수 없지 뭔가.”
총을 쏴 달라? 무기의 위력을 보려 하나? 안 될 건 없지. 9클래스 마법사가 과연 어떤 존재인지 확인해 볼 기회이기도 하고.
그래, 마나를 이은 자가 얼마나 대단한지 한번 보자.
지구에서도 총기는 만만한 것이 아니다. 일반 무기에 결정석 탄환을 쓰는 것만으로 3클래스의 실드를 갉아먹었다.
그리고 지구 화약 무기 체계에서 개인화기는 가장 기본적인 무기 아닌가!
“그렇게 하죠.”
운호는 탄 박스를 열어 5.56mm 열 발을 꺼내 탄창에 삽입했다.
드르륵.
그리고 서서 쏴 자세로 콜라시오에게 총구를 겨눴다.
“갑니다.”
“으흥, 어서 오게나.”
마나에 억눌려 있지만 기사들도, 사스티안도, 운호의 사격 자세를 눈여겨보고 있었다. 저렇게 사용하는 거구나.
조정간 단발.
딸각.
삽시간에 고조되는 긴장감!
발사!
찰칵!
픽!
“응?”
“에잉, 그게 뭔가!”
미치겠네. 불발이다. 곱게 가져와도 이 모양이다. 사람들도 실망했다는 표정. 빌어먹을 메이드 인 던전.
반면 콜라시오는 그럴 줄 알았다는 표정. 역시 소문은 과장이 절반 이상이다.
“후우, 다시 한번 더 가겠습니다.”
“이번엔 기대하지.”
불발탄을 빼낸 후 운호는 신중하게 콜라시오의 심장을 조준했다.
찰칵.
타앙!
총알은 성공적으로 발사되었다.
그런데.
훅!
명중되기는커녕 푸른색 로브도 건드리지 못하고 힘을 잃고 휘어져 떨어지는 5.56mm 탄환.
“쯧쯧.”
툭.
왜 이러지? 실드 주문도 없었는데…….
‘음? 아! 젠장, 역장이구나!’
원인을 알았다. 콜라시오 카엘은 9클래스 마법사. 가만히 있어도 실드의 효과를 가지는 일종의 ‘마나 역장’이 기본적으로 발현되어 있었다.
무공으로 따지면 ‘호신강기’ 같은 거, 그걸 뚫지 못한 것이다.
“실망이야. 실망! 이런 쓰레기에 기대감을 가진 것이 실수지. 에잉!”
빠직, 운호의 이마에서 힘줄이 불끈 솟아오른다. 묘하게 기분 나쁘네. 에잉, 으흥거리는 말투도 너무 듣기 싫고.
‘씨발!’
이대로 넘어갈 수 없지.
“…한 번! 한 번만 더 부탁드립니다.”
“뭐, 별로 달라질 것도 없을 듯한데, 아무튼 해 보게.”
운호는 가만히 K2 소총을 어깨에 견착했다.
심호흡 한 번.
군던에서 우리 돼지가 몸소 구해 온 물건, 지구의 총기와는 다르다. 마나가 충만한 던전에서 생성된 물건이다.
총을 이루고 있는 금속 자체에서 마나의 향기가 느껴진다. 총알도 마찬가지 마나금속은 마나를 받아들인다.
‘그렇다면?’
운호는 주위의 마나에 감응했다. 정신 집중! 끌어모은다. 그리고 이해하고 분석한다.
그러자 운호에게 내재되어 있는 권능의 힘이 아주 조금, 정말 미세하게 마나와 섞였다.
마법사들이 마나의 의지를 이었다고? 그게 뭐!
그들은 옛날 그리스 철학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만물의 근원을 마나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에론 대륙의 모든 사물에는 마나의 기운이 스며들어 있으니까.
문제는 그리스 철학자들도 틀렸듯 마법사들의 생각도 잘못되었다는 것.
그들은 신의 권능 또한 마나라고 착각하고 있었다. 하긴, 고도로 발전된 마법은 권능이나 다름없다.
신의 권능은 알고 보면 정말 단순한 힘이다. 그러기에 근원적이다.
차원을 생성하고 유지하며 파괴하는 힘, 흔히 자연의 힘이라 부르는 것. 그리고 마나는 자연에 포함된 물질일 뿐.
콜라시오에 의해 억제되었던 연회장의 마나가 풀려나면서 운호를 중심으로 소용돌이 쳤다.
우우우우웅.
[마나 감응력이 상승합니다.] [마나 감응력이 상승합니다.] [마나 감응력이 상승합니다.]…….
“호오! 이거 흥미롭구먼! 으흥, 흥미로워!”
콜라시오는 솔직히 놀랐다. 생각도 못했다. 마나 억제에서 벗어나다니.
스스스슷.
K2 전체에 운호의 권능 섞인 마나가 주입되었다. 총열에도, 노리쇠뭉치에도, 탄창에도, 탄창에 든 총알에도.
위이이잉, 우우웅!
“냐앙! 냥!”
돼지도 응원했다.
사스티안도 마찬가지 천둥 무기는 왕국의 오랜 숙원. 그런데 위력이 좀 전 그대로라면 이만저만 실망이 아니다.
마침내 운호는 방아쇠를 당겼다.
찰칵.
타앙!
스파파파파팟!
5클래스 마나, 거기에 신이 준 권능을 품고 대기를 가르며 발사되는 총알. 순식간에 콜라시오의 마나 역장을 꿰뚫었다.
팡!
콜라시오는 화들짝 놀랐다.
‘마나 역장이 깨져?’
찰나의 순간!
시간이 정지된다.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경험했던 생사의 순간들이 파노라마처럼 눈앞에 펼쳐졌다.
오싹.
콜라시오는 등골이 서늘했다. 정말 오랜만에 느껴 보는 위협, 9클래스에 오른 후 단 한 번도 느껴 보지 못했던 생소한 감정.
죽음!
그래서 반사적으로 외칠 수밖에 없었다.
“…실드!”
지이잉.
그러나 두꺼운 실드벽을 통과하면서 무섭게 폭발하는 총알.
팡! 팡! 팡! 팡!
기세를 잃지 않은 채 장렬하게 앞으로 나아갔다.
파파파팡!
파파팡!
파팡!
파…….
툭!
데구루루르르.
결국 힘을 잃은 채 푸른색 로브에 맞고 떨어져 굴러가는 탄두.
‘…실드가 깨, 깨지다니.’
충격을 받은 콜라시오, 멍하니 운호를 바라보았다.
“자네…….”
바로 그때!
쩌저적!
K2 소총에 가느다란 실금이 거미줄처럼 생겼다.
파사사삭!
그리고 조각이 되어 운호의 발밑으로 후두둑 떨어져 내렸다.
완전하게 부서졌다. 운호의 마나를 견디지 못한 까닭이다.
“헉!”
“아, 안 돼!”
“저 귀한 것이!”
곳곳에서 들리는 탄식.
‘오오오오!’
반면 사스티안 국왕의 얼굴엔 환희가 가득하다.
저거다! 자신이 상상하던 천둥 석궁의 위력! 저래야 한다. 새로운 개념의 무기, 그걸 토대로 하는 전투 집단의 재편성.
운호도 아쉽다. 거들먹거리는 마법사, 큰코다치게 해 줬으면 속이 시원하련만 그래도 아마 조금은 놀라지 않았을까?
‘어쩌면 지구의 총보다 성능이 더 좋겠는데?’
에론 대륙은 마나의 세상이다. 몸체를 구성하는 철도, 화약도, 총알도 다 마나를 품은 물질, 마나 금속, 마나 화약. 그냥 만들어도 마력 총기가 되는 것이다.
던전산(産)이 이 정도다. 양산화에 성공한다면 훨씬 더 뛰어난 물건이 될 터, 나중에 역수입해서 지구로 가져갈 수도 있겠고.
한편 콜라시오는 뒤통수를 사정없이 내려찍는 듯한 충격을 받았다.
‘저 신탁자는 대체…….’
대체 무기의 능력인가? 아니면 저자만이 가진 독보적인 능력인가? 정황을 봐선 후자에 가깝겠지.
그러나 분명한 건 있다. 저 천둥 무기 또한 마법 활처럼 마나를 주입하여 사용할 수 있다. 위력은 더 강할 것이고.
투사체가 실드를 부술 때마다 각인되는 두려움. 대체 얼마 만인가? 죽음에 대한 공포! 잊고 살았다. 타성에 젖어 너무 무료하게 살았다.
전신을 휩쓰는 흥분감, 잠자고 있던 전투 마법사의 본능이 눈을 떴다. 오래전부터 DNA에 새겨진 투쟁심이었다.
‘하아, 정녕 안일하게 살았구나.’
마법사는 그냥 나타나지 않는다. 알고 보면 얼마나 한심한 말인가!
그냥 나타나면 혹시라도 당할까, 할 수 있는 모든 사전 준비를 다 하고, 이상 없다 싶으면 비로소 몸을 드러내는 마법사.
그로 인해 마법사들은 음습해졌고 괴팍해졌으며 교활해졌다.
예전 마법사들은 그렇지 않았다. 누구보다 용감했고 누구보다 화끈했다.
돌진해 오는 기사에 맞서 정면 대결을 펼치기도 했고, 죽음 직전 목이 잘려 나가는 와중에도 입을 움직여 결국은 마지막 주문을 완성해 내고 죽었다.
지금은 그저…….
‘겁쟁이지.’
사스티안 국왕이 물었다.
“마탑주여, 그대의 소감은?”
머리가 질끈 아프다. 짧은 순간 너무 많은 생각을 했다. 이럴 땐 단순한 것이 제일.
“…훌륭한 무기이옵니다.”
“그, 그 말은?”
“나중에 양산이 시작되면 마탑으로 한 자루만 보내 주시길.”
“오! 허허허! 좋소! 내 약속하리다!”
그러고 나서 운호를 가만히 쳐다보는 콜라시오. 그러더니 피식 웃는다.
왜 웃어?
“전하, 소신은 오늘 바쁜 일이 있어 이만 물러나야겠습니다. 그리고 신탁자여, 언제든 마탑으로 찾아와 주시오.”
인사를 한 다음 천천히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는 콜라시오. 동시에 대연회장을 누르고 있던 압력도 씻은 듯이 사라졌다.
“허억.”
“후우…….”
“제기랄! 올 때마다…….”
하지만 일이 잘 풀린 것 같아 만족.
생각보다 괜찮은 마법사다. 역장을 꿰뚫고 실드를 부숴 버렸는데 그에 대한 언급은 없었다. 벼락이라도 떨어질 줄 알고 내심 긴장했는데.
마법사들이 차원 성장을 막고 있다고 했는데 지금까지 만나 본 그들은 악의 축이라기보다는 그냥 오만하고 엉뚱한 괴짜들.
“저, 저어기…….”
우물쭈물 운호에게 말을 잇지 못하는 사스티안 국왕,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겠다.
“기다리세요. 몇 개 더 가져다 드리죠.”
“오! 그, 그럼 정말 고맙지… 요.”
총만 갖다 줄까? 아니지, 일 한 번 제대로 벌려 보자.
“돼지야!”
“냐앙?”
짬타가 운호의 품으로 펄쩍 뛰어올랐다.
“가자.”
“냥!”
K2 몇 자루에, 아니 하는 김에 유탄발사기 장착된 걸 가져와야지. K3 기관총이 5.56mm 사용하니까 그것도 업어 오고.
딱 여기까지다. 총기 사업은 당분간 접어 두자. 이제부터 저들의 몫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