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65
65화 다리가 짧아서 슬픈 종족
드워프들은 말을 타지 않는다. 말을 좋아하지 않는다는 게 그들이 내세운 변명이었다.
얼굴이 길다느니, 냄새가 난다느니, 궁둥이에서 말똥이 뚝뚝 떨어지는 게 더럽다느니 갖은 이유를 내세우지만 누가 봐도 이유는 하나다.
드워프는 다리가 짧다.
그것이 말을 타지 못하는 단 하나의 이유다.
자존심 높기로 따지면 드래곤급인 드워프들이라 쉽사리 인정하려 들지 않지만 말이다.
그러나 대륙에 살고 있는 아인종이라면 누구나 잘 안다.
드워프에 대한 흔한 농담과 별명이 그들의 짧은 하체와 관련된 것. 그들이 말을 타는 모습을 상상해 보라. 등자에 발이 닿지도 않는데!
그래서 드워프들의 이동 수단이라고는 그저 튼튼한 두 다리뿐. 간혹 급할 때는 마차를 이용하기도 하지만 그마저도 잘 타지 않는다.
마차도 말이 끄는 물건, 오랫동안 유전자에 새겨진 말에 대한 두려움 때문인지 그들은 본능적으로 말과 가까이하는 걸 싫어했다.
드워프들은 자신들과 어울리는 탈것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해 왔다. 이 기묘한 바퀴 달린 탈것을 접하기 전에는 말이다.
“오!”
“맙소사!”
“저, 저건…….”
리들쓰론 딮월드를 터전으로 삼고 있는 모든 드워프들의 관심이 운호가 타고 있는 스쿠터에 꽂혔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눈빛엔 숨길 수 없는 열망이 가득 차 있었다.
저 탈것은 가능하다.
다리가 짧아도 탈 수 있다.
올라타기 쉽게 널찍한 발판까지 달려 있고.
그러나 쉽사리 다가가지 못했다. 호기심을 이길 수 없는 아이들만이 스쿠터를 졸졸 따르고 있었다.
운호는 그게 답답하다.
‘쯧, 타고 싶다면 말이라도 해 보지. 생긴 거와는 반대로 숫기가 없네.’
블랙아이언 부족 부족장, 와일드스톤은 조금 달랐다.
구경만 하고 가까이 다가가지 않는 드워프와는 다르게 운호에게 저벅저벅 걸어가 말을 걸었다.
“큼, …신탁자?”
“남들이 그렇게 부르긴 하지만 우노라고 불러 주세요.”
“반갑네. 난 와일드스톤이네.”
통성명을 하는 와중에도 와일드스톤의 눈은 스쿠터에서 떠나질 못했다.
“지, 지금 자네가 타고 있는… 큼큼, 내, 내가… 큼.”
와일드스톤이라 불리는 땅딸막한 드워프는 주저하며 말을 잇지 못했다.
바라는 것이 있는 모양이다.
그리고 운호는 그가 원하는 것이 뭔지 잘 알고 있었다.
“타 보실래요?”
“오! 나, …큼! 나, 나도 탈 수 있나?”
“그럼요. 별로 어렵지 않습니다만.”
와일드스톤은 조심스레 핸들을 잡았다.
“냥!”
“헛! 깜짝이야! 고, 고양이인가? 무슨 목청이… 큼!”
바구니에 앉아 있던 짬타가 우아하게 땅으로 내려앉았다. 초보 운전자가 핸들을 잡았으니 승객은 당연히 하차해야지.
운호는 짬타를 품에 안고, 빙긋 웃으며 겁먹은 드워프를 따뜻하게 이끌었다.
“여기 핸들을 잡고 발판에 올라서세요. 이 핸들을 살짝 돌리면 앞으로 나갑니다. 그렇다고 너무 세게 잡아당기지는 말고요.”
“고, 고맙네. 신탁자.”
주춤, 주춤.
위이이잉!
씽!
꽈당!
“어이쿠!”
너무 세게 돌렸나? 스쿠터 앞바퀴가 위로 번쩍 들렸고 와일드스톤은 볼품없이 땅에 나동그라졌다.
“풋!”
“크하하하!”
“낄낄낄, 넘어졌다.”
하지만 와일드스톤은 블랙아이언 부족을 책임지는 긍지 높은 드워프.
한 번 넘어졌다고 포기할 그가 아니다.
쿵!
또 한 번 넘어지고.
“큼!”
위이잉, 콰당!
조금 더 나아가다 넘어지고.
위이잉, 위잉, 쿵!
이번엔 제법 가다 넘어졌고.
“큼큼!”
마침내!
위이이이이이이이잉.
“크하하하하!”
달린다. 스쿠터가 달린다.
와일드스톤은 전엔 경험해 보지 못했던 스피드를 즐기며 리들쓰론 딮월드 내부를 질주했다.
드워프들이 환호했다.
“와!”
“족장님 만세!”
“장하다, 와일드스톤!”
“달려!!”
드워프가 탈것을 탄다.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이거 일이 잘 풀리겠어.’
반응이 예사롭지 않다.
쉬지 않고 딮월드를 질주하는 와일드스톤. 부러움에 찬 눈길로 그를 바라보는 다른 드워프들.
‘저렇게 좋아할 줄은 몰랐네.’
교통의 혁신, 원래는 인간들을 중심으로 첫걸음을 떼려고 했다. 드워프들을 만난 건 그들이 가진 기술로 스쿠터 양산이 가능한지 확인해 보고 싶어서였다.
하지만 혁신의 주체를 바꿔도 문제가 없겠다. 오히려 드워프로부터 시작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라는 생각도 든다.
순간!
[드워프 종족 번성의 첫 씨앗을 심으셨습니다.] [차원 기여도 300,000pt을 획득하셨습니다.]‘오! 역시…….’
30만 점.
지금까지 받은 단일 보상으로는 가장 큰 차원 기여도 점수.
기분이다.
운호는 가지고 온 스쿠터 두 대를 아공간에서 더 꺼냈다.
“자! 여기 더 있습니다. 타 볼 사람?”
“저, 저요!”
“나!”
“내가 타 보겠소!”
“내가 먼저…….”
지원자들이 줄을 이었다.
급기야 서로 순번을 정해 앞다투어 스쿠터 시승식을 해 보는 드워프들.
바로 그때!
…메시지는 아직 끝나지 않았다.
[신어 체계를 빌려 하위 신격의 소통 요청이 들어왔습니다.]하위 신격?
[소통 요청을 받아들이겠습니까?]‘하위 신격이라니… 누구지? 목적은?’
알아보는 방법은 하나뿐이다.
‘받아들이지.’
[이미르의 요청] [드워프들에게 새로운 탈 것 보급] [수락 시 탈것 전용 관세 7,250,000pt 지급 (관세 인하 적용 불가)] [보상: 에론 대륙 전 드워프 종족의 전면적인 협조]“아!”
이미르다.
드워프들이 추종하는 불과 대장장이의 신(神)!
이미르가 하위 신격이란 말이지?
‘그런데 점수가 7,250,000pt?’
하지만 제약이 있는 점수, 탈것 전용이었다.
스쿠터를 가지고 올 때 관세가…….
[대영 모터스 SMART 에코48 스쿠터 72,500pt.]계산상으로 스쿠터 100대를 가지고 오라는 의미. 관세 인하도 적용이 불가능하다.
‘퀘스트를 받았네.’
하위 신격인데도 불구하고 점수를 꽤 많이 준다. 물론 탈것에만 적용되는 것이지만.
대박이다. 공짜로 100대 가지고 오는 셈.
운호 자신도 좋고, 드워프도 좋고, 이미르도 좋고, 다 좋은 일이지.
고민할 필요조차 없다. 드워프들의 전면적인 협조, 이거 생각보다 큰 보상이다.
‘수락!’
* * *
새로운 탈것에 대한 가능성을 보여 준 운호는 드워프들에게 귀하디귀한 손님이었다.
모두가 그를 환영했다.
옆에 있는 짬타도 아이들에게 둘러싸여 관심을 받고 있었다.
“냥!”
“귀여워!”
“맞아! 둥글둥글해.”
“비쩍 마른 인간 고양이와는 달라.”
“드워프 고양이 같아.”
“냐앙?”
짬타는 귀엽다는 말에 기분이 좋은 모양.
인간 아이들에겐 못생겼다고 타박만 들었는데.
부족장 와일드스톤은 축제를 선언했다. 오늘 하루 딮월드에서 일어나는 모든 작업 활동을 전면 중단한 것.
“도시를 걸어 잠가라! 오늘은 손님을 받지 않겠다.”
“술, 술을 가지고 와!”
“창고를 털어!”
한쪽에선 음식을 내오기 시작했고, 다른 한쪽에선 드워프들의 스쿠터 시승식이 이루어졌다.
긴 줄을 기다리며 늘어선 드워프들, 한 번이라도 스쿠터를 타 보기 위해 안달이 났다.
위이잉.
빠라바라빠바밤!
“크하하하하! 비켜!”
“시끄러워! 이상한 거 누르지 말고, 빨리 한 바퀴 돌고 와!”
“흐흐흐, 다음은 나지?”
첫 단추는 순조롭게 잘 꿰었다.
이제 이걸 자체 생산할 수 있다면 좋으련만.
사실 지구에서 100대를 가지고 온다 해도 부족하다.
그때!
“오! 드디어 술이 도착했구나!”
술이라, 드워프들이 마시는 거라면 당연히 맥주…….
“자자 [찬이슬]이 도착했으니 한잔해야지.”
…아니네?
찬이슬?
와일드스톤이 철제 병에 담긴 액체를 맥주잔에 콸콸 들이부었다.
“도수가 그저 그래. 몽땅 따라서 한입에 마셔버리는 것이 최고지.”
“아, 네, 네.”
운호는 맥주잔을 들고 조심스럽게 맛을 보았다.
순간!
“큭!”
낯설지 않은 강렬한 향기.
‘이건… 소주?’
분명하다. 소주다. 찬이슬이라는 이름을 들었을 때부터 짐작은 했지만.
그것만 이상한 것이 아니었다.
술이 운호에게 저절로 다가오고 있었다.
드르륵, 드르륵.
철로 만들어진 작은 길을 따라 그 위에 놓인, 철로 만든 작은 병들이 저절로 움직이고 있었다.
드워프들은 그저 가만히 있다가 자기 앞에 술병이 오면 집어서 마셔 버리면 그만.
‘술병들이 저절로 움직여? 발이라도 달렸나…….’
사실 많이 보던 장면이다.
“…컨베이어벨트?”
“오! 저걸 컨베이어벨트라고 부르나? 역시 신탁자로군.”
그렇다. 강철로 만들어진 작은 길은 바로 컨베이어벨트였다.
자세히 보니 딮월드의 모든 대장간이 그 벨트로 연결되어 있었다.
사람 무릎 정도의 높이, 너비는 1미터 정도.
술통은 물론 도구, 광석, 주괴 등 일상 용품들도 식별 표지를 달고 벨트 위에 놓여 도시를 지나고 있었다. 자기에게 온 물건이 있으면 그 자리에서 잡으면 된다.
운호가 호기심을 보이자 와일드스톤이 말했다.
“딮월드 술 창고에서 착안한 장치네.”
“술 창고라고요?”
“그러네. 술 창고 한번 구경해 볼 텐가?”
“당연하죠.”
술 창고에서 착안한 컨베이어벨트라,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 * *
딮월드는 인간들도 많이 방문하는 장소. 질 좋은 병기나 도구를 의뢰하러 오는 상인들과 귀족들이 자주 드나든다. 그런데 오늘 갑자기 문을 닫았다.
그나마 들어와 있던 사람들도 딮월드 안에서 모조리 쫓겨났다.
잔치가 벌어진다나? 예정에 없었는데.
쫓겨나던 중 사람들의 눈에 희한한 탈것을 타고 다니며 환호성을 지르는 드워프들의 모습이 들어왔다. 혹시 저거 때문인가?
소문은 빠르게 번졌다.
며칠 전 나타났다가 쥐도 새도 모르게 사라진 신탁자. 백방으로 찾아봤지만 냄새도 맡지 못했던 신탁자가 드워프들의 도시인 딮월드에 나타났다는 소식이었다.
황궁 마탑의 서클 마법사가 그림워커에게 말했다.
“딮월드? 드워프들 말인가?”
“네!”
“언제 거길…….”
그림워커는 하던 일을 다 때려치우고 딮월드로 달려갔다. 그러나 딮월드로 통하는 동굴 통로는 거대한 철문으로 막혀 있었다.
“헉!”
“허허, 이거 참!”
난감하다. 신탁자가 수도에 왔음에도 불구하고 아직 얼굴조차 대면하지 못했다.
“어, 어떻게?”
“뭐, 기다려야지. 별다른 수가 있나?”
방법이 없다. 드워프들이 철문을 굳게 걸어 잠근 이상 열릴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것은 현 황제 롤랑도 어길 수 없는 규칙. 500년 전 제국을 다스리던 황제와 드워프들이 맺은 조약 때문이었다.
신탁자들을 기다리는 사람은 그림워커뿐만이 아니었다.
“상단주들이 총출동했군.”
“신탁자를 만나러 온 거겠죠?”
몇몇은 천막까지 치고 장기전에 돌입하고 있었다.
‘눈도장이라도 찍으려는 모양이지.’
그러나 권력이 좋다는 게 뭔가? 결국 신탁자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바로 그림워커 자신이 될 것이다.
* * *
운호는 와일드스톤과 함께 술 창고에 도착했다.
술 창고의 정체는 정말 평범했다.
“이게 술 창고네요.”
“맞네, 인간들이 던전이라고 부르는 것이지.”
왜 던전을 술 창고로 부르는 걸까?
운호는 그 던전에 들어서는 순간 깨달았다.
공장 내부를 바쁘게 돌아다니는 언데드들, 그들의 머리 위에 떠오른 이름표.
, , …….
그들은 사람이 들어오건 말건 제 할 일만 하고 있었다.
컨베이어 벨트를 따라 병들이 움직이고 자동으로 술이 담겨졌다.
‘소주 공장 특수 던전이구나!’
스읏, 스읏.
와일드스톤이 던전 안 컨베이어 벨트를 지나는 철제 병을 집어 들며 말했다.
“처음엔 엉망이었네. 금이 간 유리병에 내용물이 새기도 하고, 주입하자마자 깨지기도 하고, 그래서 유리병을 철제 병으로 교체해 버렸지.”
마치 공장을 견학 나온 사람에게 친절하게 설명해 주는 것처럼 자세하게 안내해 주는 와일드스톤.
“내용물도 그래. 아니! 말이 되는가? 주정(酒精)에 물을 섞다니 말이야. 그래서 아예 물이 나오는 구멍을 막아 버렸어.”
희석식 소주에 물을 섞지 않았다고? …하긴, 던전산이니 주정만 담아야 도수가 그럭저럭 나올 터.
“원래 물이 있어야 할 저 커다란 통에 우리 드워프들이 만든 진짜 주정을 넣었더니 풍미가 더 살아나더군.”
그럴 바엔 직접 담가 먹지 그랬나.
“우리가 하는 수고는 병 교체와 주정을 섞어 넣는 것 말고는 없다네. 그러면 언데드들이 알아서 술을 생산하니 노동력도 적게 들고, 가격도 싸져서 돈 걱정 안 하고 물처럼 쭉쭉 들이켤 수 있고.”
여기서도 소주는 저렴한 술로 통하는가 보다.
그나저나 이 공장을 보고 컨베이어벨트를 착안했다면…….
‘대화가 잘 통하겠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