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68
68화 일어날 일은 일어난다
롤랑 황제는 칙칙폭폭 소리를 내며 레일을 달리는 기차를 보고 넋이 나갔다. 집 모양을 한 작은 모형에 그 옆에 있는 작은 사람들, 유추해 보면…….
“장난감이죠. 실제 존재하는 물건을 작게 모방해서 만든 물건입니다.”
“원래는 더 크고?”
“굉장히 크죠.”
“사람도 타겠지?”
“화물도 나를 수 있습니다. 아주 많이요. 맨 앞에 있는 차량에만 동력이 있고 나머지는 끌려가는 거죠.”
“그럼 연결된 차량의 숫자가 많아지면?”
“더 많은 사람과 더 많은 화물, 네, 그렇게 됩니다.”
롤랑은 아예 엎드려서 기차를 관찰했다.
이 길 위에서 움직이는구나. 내구성이 있어야 하니 당연히 강철로 만들어야겠지?
“만약 이 길이 바리안 왕국까지 이어져 있다면 그곳까지 도착하는 데 걸리는 시간은 얼마나 되는가?”
“글쎄요. 확실치는 않지만 일주일도 걸리지 않을 겁니다.”
“하!”
롤랑은 직감했다.
에론 대륙 전체를 강타할 급진적인 혁명의 바람을 말이다.
이 기차라는 물건으로 세상이 어떻게 변할지 상상이 가지 않는다.
거짓은 아닐 것이다. 이상한 물건 가져오는 게 신탁자 능력의 전부라며 비아냥댔지만 앞에 있는 이자가 남다른 신탁자라는 건 자신도 알고 있다.
스쿠터에 대해서도 이미 들었다. 이자는 찐이다.
혁명! 변화!
바라던 바다.
에론 대륙은 바뀌어야 한다.
‘하지만 보통 일은 아니군.’
단순 계산으로도 엄청난 자본과 노동력이 들것 같다.
이해했다. 신탁자가 자신을 만나러 온 이유를.
롤랑 황제의 머리가 팽팽 돌아갔다.
물류의 혁명, 제국의 수도와 가까운 대도시만 연결해도 그 경제적 효과는 어마어마할 터.
그것은 고스란히 자신의 업적으로 환원될 것이고.
‘변화를 바라지 않던 놈들도 서둘러 일을 벌일 거야. 아마 막으려 들겠지?’
이것도 바라던 바. 어차피 한 번은 붙어야 한다.
‘드워프들의 조력을 받는 것도 어렵지 않을 거고.’
신탁자와 드워프의 관계를 보면 말이다. 이래저래 따져 봐도 해 볼 만한 사업.
제국의 역량이 전부 투입되면 속도는 더더욱 빨라지겠고.
기차에 매료된 황제를 보며 운호는 빙긋 웃었다.
표정만 봐도 안다.
‘먹혔구나.’
제대로 된 통치자라면 이미 머릿속에 수많은 구상이 세워졌을 것이다.
이쯤 해서 다른 아이템도…….
운호가 말했다.
“넓은 장소 없나요?”
“음?”
“이상한 물건이 하나 더 있습니다. 제 보잘것없는 능력의 전부죠.”
“크험, 험험.”
붉어진 얼굴을 감추려는 듯 손으로 입을 막고 헛기침을 하는 롤랑 황제.
“커, 커다란 장소야 있긴 하네.”
그랜드 홀. 흔히 대회당이라 불리는 공간은 황제가 신하들에게 정책을 보고받거나, 그들과 함께 국가의 중대사를 결정하는 곳이다. 말하자면 황좌가 자리하는 공식적인 업무실.
그래서 황궁의 구조물 중에서도 가장 넓은 공간이다.
대회당 안에 롤랑 황제와 마법사 그림워커, 그리고 운호 세 명이 모였다.
황좌 바로 앞에 모형 증기 기관차가 레일 위를 달린다. 넓은 곳으로 옮겨 재조립하니 확실히 눈에 잘 띈다.
하지만 그림워커와 롤랑 황제는 기차에 대한 관심을 잠시 접었다.
위윙!
이이잉!
윙!
그들은 현재 원격 조종기를 이용해 RC 자동차 경주 중.
장애물까지 놓았다. 마법사 지팡이에 심지어 황제가 머리에 쓰는 크라운도 장애물로 이용했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반환점을 돌아오는 그림워커의 람보르기니와 롤랑의 페라리.
그림워커는 3전 3패, 자존심에 심한 스크래치를 입었다.
그리고 곧 4패째를 기록하려는 순간이다.
“크하하하하!”
롤랑 황제의 득의만면한 표정이 운호가 봐도 얄미울 정도.
“또 이겼…….”
페라리가 람보르기니를 제쳐 버린 순간!
픽!
휘릿!
발라당!
바퀴에 뭔가 걸린 듯 튀어 오르며 거북이처럼 뒤집힌 롤랑의 페라리.
“어?”
슝!
그 틈을 놓치지 않고 그림워커의 람보르기니가 결승선을 통과했다.
“껄껄껄, 드디어 이겼구나! 이래야 맞지.”
롤랑이 폭발했다.
“그림워커, 네 이놈! 이 치사한 자식이!”
뚱한 표정으로 롤랑을 바라보는 그림워커.
“왜 말입니까?”
“마법 썼지?”
“마법이라뇨? 무슨 씨알도 안 먹히는 말씀을…….”
“내가 봤어, 봤다고! 아니면 왜 내 페라리가 갑자기 뒤집혀?”
사실 운호도 봤다.
찰나의 순간, 그림워커의 심장에서 일어났던 마나의 유동을. 너무 짧아서 평범한 사람이 보면 느끼지 못할 정도.
“증거 있습니까?”
“이, 이익!”
증거가 있을 리가 있나?
이러다 큰 싸움 날라.
운호는 씩씩대는 롤랑 황제에게 물었다.
“어떠십니까?”
“뭘 어째? 저 뻔뻔한 놈 손모가지를 부러뜨려야지. 궁정 마법사가 저렇게 치사할 줄 누가 알았나!”
“정 그러시다면 절 쫓아내시던가…….”
“한판 더해!”
“전 이걸로 만족하겠습니다. 원래 마지막에 웃는 자가 승리자죠.”
“으아아아아!”
정말 싸움 나겠다.
뭐, 둘 사이를 보면 큰 사달은 나지 않겠지만.
“자동차와 기차 말입니다. 어떠십니까? 에론 대륙과 로산트 제국의 미래.”
“흠.”
“미래라…….”
언제 싸웠냐는 듯 서로를 바라보며 눈을 맞추는 롤랑과 그림워커. 그러더니 환하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사실 첫 만남에서 삐끗했지만 이미 그림워커와 말을 맞춘 상태, 저이는 신탁자다.
신전도 없는 마당에 신의 의지를 이은 자가 에론 대륙에 그 말고 누가 있겠나?
그리고 그가 바리안 왕국에서 행한 이적들, 그것이 로산트 제국에서 재현되지 못할 이유도 없다.
“기차부터 하는 걸로 하지.”
“수도와 가까운 도시부터, 일단 한 구간만 추진해 봅시다.”
“그러죠. 너무 급하면 체하니까요.”
“제국의 역할은?”
“돈이죠. 자본을 마련해야죠.”
자본을 마련할 대안도 제시했다.
“그동안 바리안 왕국의 앙트 시에서 시행해 왔던 모든 노하우들을 가지고 왔습니다.”
“음?”
“본도자기 사업과 만년필, 그리고 종이 제작과 인쇄 사업까지요. 이걸로 자본을 마련해 보시죠.”
“오!”
“…황궁에서 직접 사업을 하란 말인가?”
“적당한 상단을 골라 계약을 맺으시면 어떠신지?”
롤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사업을 대행할 상단을 전면에 내세운다. 그리고 독점 판매권을 황명으로 걸어 버리고. 그거면 초기 자본 마련은 어렵지 않을 터.
“그대도 이익은 있어야겠지?”
“당연히 계약을 해야죠. 전 결정석으로 이익을 대신하겠습니다.”
“알겠네. 결정석이야 뭐, 원하는 대로! 그림워커, 황궁 마탑도 한발 걸칠 텐가?”
“그럼요.”
됐다.
[에론 대륙 교통 혁신을 위한 첫 발걸음을 내디뎠습니다.] [차원 기여도 300,000pt을 획득하셨습니다.]혁명의 시작이다. 그러니 30만 점도 적다.
운호는 주섬주섬 바닥에 깔린 레일과 기차를 수거했다.
“음? 그걸 왜 다시 가져가려는지…….”
“드워프들에게도 보여 줘야죠.”
“…어, 다, 다른 걸로 하나 가져가면 안 되겠나? 우리도 신하들에게도 보여 줘야 해서.”
예산을 확보하려면 그렇게 해야지.
“자동차도요?”
“무, 물론이지. 커험!”
그걸로 뭘 할 건지 뻔하긴 하지만 암튼 몇 개 더 사 와서 필요한 사람들에게 마구 뿌리면 된다.
관세가 모자라는 것도 아니고.
롤랑은 그림워커를 노려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지기 싫은 건 그림워커도 마찬가지.
“한판 더 하자고.”
“허어, 이리 나오시면… 어쩔 수 없지요. 상대해 드리겠사옵니다.”
“미리 마나 간섭장을 치지?”
“절 못 믿으시옵니까?”
“응.”
운호는 신경을 꺼 버렸다. 누가 이기든 알아서 하겠지.
황궁을 나와 바로 가까운 던전으로 들어갔다.
다시 지구로!
장난감 쇼핑몰로 이동해 기차 세트와 RC 자동차를 몇 대 산 후 관세 결제해서 드워프들에게 보여 줬다.
그들의 반응도 다르지 않았다.
철로 건설에 필요한 몇 가지 조언과 황제의 적극 협력 의사도 전했다.
황궁에서 나온 재무대신과 논의해 자신의 지분에 대한 계약도 끝냈고.
이제 할 일이 없다.
그들에게 맡겨야지.
‘돌아갈까?’
이쯤에서 빠져 주는 것이 도리.
참! 바리안 왕국 일은 어떻게 되고 있을까?
지구로 돌아가는 길에 확인해 보고 가자.
*
바리안 왕국의 수도에 진출한 골드리안 상단은 역사적인 대호황기를 맞이하고 있었다.
리안 시 골드리안 방송국에서 흘러나오는 클래식으로 아침을 시작하는 사람들.
라디오 방송을 위한 통신 수정구는 왕궁과 마탑까지 들어갔다. 리안 시의 모든 시민은 라디오가 없으면 살 수가 없을 지경이다.
병조림 공장은 순항에 순항을 거듭했다.
식품 공장과 본도자기병 공방을 만들어 바리안 왕국 군부에 전투 식량으로 공급했다.
윌리엄은 대금을 받아 그중에 운호가 가져갈 몫을 결정석으로 바꿔 차곡차곡 모아 두었다.
군대에 납품하고 남은 병조림은 시민들에게도 판매했다.
병조림 하나 사서 통째로 뜨거운 물에 집어넣어 따듯하게 데우면 훌륭한 한 끼 식사로 손색이 없었다. 물론 가격도 저렴했고.
던전을 통해 리안 시로 온 운호.
골드리안 상단으로 가기 전에 식당에 들렀다. 식당에서도 방송이 흘러나온다.
‘정말 빠르네. 수도 진출한 지 한 5개월 지났나?’
하긴! 전파가 필요하나? 라디오가 필요하나?
오로지 하나의 식별 마법으로 인챈트된 통신 수정구만 있으면 된다.
“오! 드라마 할 시간이다.”
“주인장! 소리 좀 높여 보쇼.”
통신 수정구에는 소리를 키우고 줄이는 기능도 포함되어 있었고, 듣기 싫을 때 꺼도 된다.
짤막한 광고가 끝나고 시작되는 아침 드라마.
-존! 이건 제 취향이 아니라고 몇 번 말했나요? 사랑이 식었어요. 레이먼 농장의 치즈가 더 신선하고 맛이 좋단 말이에요.
-오! 미셀, 깜빡 잊었구려. 내 다음부턴 레이먼 농장의 치즈를 꼭 준비하리다.
‘하! 이건…….’
PPL 광고네?
이렇게 노골적이라니!
그런데 가만히 들어 보니 시나리오가 전혀 새로운 내용이다.
‘자생적인 창작자가 나타났다고 듣긴 했지만.’
꽤 재미있다. 캐릭터도 살아 있고 전개도 빠르고.
‘이러면 정말 지훈이가 필요 없겠는데?’
수도 골드리안 상단의 지부에 나타나자 윌리엄이 눈썹이 휘날리게 달려왔다.
“우노 님! …지금 입고 계시는 옷이?”
“어때요? 장사는 잘되죠?”
“난리가 났습니다. 대박이 터졌지요. 참 분부하신 대로 결정석을 모아 두었습니다. 언제 찾아가실 건지…….”
“바로 찾아가죠. 참! 마법사 미오 론티아는……?”
“마탑에서 소집령이 떨어졌다고 합니다. 현재 수도 사타이어 마탑에 가신 걸로 압니다. 카렌은 제가 앙트 시로 보냈고요. 한데 지금 입고 계시는 옷은……?”
마탑 소집령이라니 무슨 일이 일어났나?
하지만 신경 쓸 필요 없고.
“그럼 전 이만 바빠서… 다음에 한번 더 찾아올게요.”
“아, 아니, 백작님! 지금 입고 계시는 옷…….”
운호는 윌리엄에게서 받은 결정석을 아공간에 담아 앙트 시로 갔다. 그곳 저택에 모아 둔 결정석들을 합치니 무려 52,000여 개.
[에론 결정석 10pt × 18,342] [에론 결정석 20pt × 17,755] [에론 결정석 30pt × 15,911]관세만 해도 100만 점이 넘는다. 20% 할인이니 80만 점.
경매에 올리자마자 순식간에 팔리겠지.
운호는 지구로 넘어갔다.
*
서울 상봉동 고층 아파트 최상층. 커튼을 친 베란다에서 펑시안은 망원경을 들고 벌써 석 달째 목표물의 출현을 기다리고 있는 중.
“젠장! 조금 전에 접근했어야 하는데.”
중국인 펑시안은 헌터가 아니다.
일본이 멍청한 짓을 저지른 후 한국의 타국 헌터에 대한 경계와 감시가 극에 달했다.
그래서 작전을 세울 때 단 한 명만 제외하고 모두 일반인들로 팀을 꾸렸다.
그래도 상관없다. 물리적으로 접근하려는 방법은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
중국은 일본처럼 무식한 나라가 아니다.
좀 더 효율적으로, 그리고 세련된 방식으로!
하지만 하늘을 봐야 별을 따지.
목표물에게 가까이 가는 것조차 이렇게 힘이 드니.
“대체 장난감 가게엔 왜 가는 거야?”
조사해 보니 기차모형과 RC 카를 사 갔다는데, 너무 바쁘게 돌아다니니 말을 붙여 보기도 힘들었다.
순간!
망원경에 목표물이 나타났다.
“오! 또 외출이야? 이번에도 장난감?”
그의 곁엔 껌딱지처럼 따라다니는 붉은 머리띠의 고양이 한 마리도 보인다.
자, 그럼 혼자 가느냐? 아니면 경호원들과 함께 가느냐?
저택을 지키는 경비 헌터들과 잠시 이야기를 나누더니 고양이와 함께 차에 타는 목표물.
기회가 왔다.
펑시안은 스마트폰을 들어 번호를 눌렀다.
“나야, 펑시안. 목표물이 차를 타고 출발했다. 차 번호는 알고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