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76
76화 직원 채용
야마다 지로는 부라쿠민 출신이다. 우리말로 하면 부락민.
일본의 대표적인 천민 계급인 망나니, 장의사, 백정 등이 모여 사는 부락 출신들을 일컫는 말.
지극히 폐쇄적인 일본 사회에서 부라쿠민 출신은 재일 조선인들과 함께 노골적으로 차별받아 왔다. 예를 들어 관동 대지진 때나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인들의 분노를 대신해 해소시켜 줄 희생양들이었다.
헌터로서 희소한 능력을 가진 야마다였지만 쓸모가 줄어들자 길드 내에서도 이지메를 당했다. 겉과 속이 다른 개새끼들.
그래서 한국으로 귀화했다. 낯설지 않은 나라다. 또한 자신의 친구 중엔 재일 조선인들이 많았다. 그래서 쉽게 한국어를 배울 수 있었고.
또 하나의 이유라면 정운호라는 헌터. 자신과 마찬가지로 던전에서 건드리지 못하는 물건들을 아이템화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 알려진 헌터.
그를 만나고 싶었다. 동질감이 느껴진다. 아마도 자신과 같은 능력을 가지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알고 보니 큰 착각을 하고 있었다.
‘대, 대체…….’
여긴 어디지? 여긴 마치…….
‘도시형 던전?’
지형, 도로, 건물 배치, 저기 멀리 보이는 마탑까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굉장히 많이 보던 익숙한 곳.
그러나 분명 던전은 아니다. 부서지고 낡은 건물은 없었다. 언데드도 없다. 생동감이 넘치는 거리의 분위기, 다양한 감정의 사람들, 여긴 진짜 사람들이 살아가는 세상이었다.
“어물거리지 말고 잘 따라와요. 앙트 시 상업 지구가 요즘 복잡해졌어요. 길 잃을지도 모르니까.”
“아! 네, 네.”
앙트 시? 이곳의 지명인가?
‘상업 지구라면… 똑같잖아!’
야마다는 운호 뒤만 쫓았다. 가면서 점점 확신이 들었다.
‘틀림없어. 지구가 아니야. 여긴 이세계야.’
야마다의 심장이 세차게 두근거린다.
정운호가 지나가자 공손하게 머리를 숙이는 사람들.
“백작님, 오랜만입니다.”
“안녕하세요. 백작님.”
뭐라는 거지? 인사인가?
무슨 말인지는 모르지만 정운호는 이곳에서 상당히 높은 사람 같다.
고양이에게도 인사를 하고.
“짬타님, 풍채가 훤해지셨습니다.”
“냐앙.”
“살 좀 빼셔야…….”
“냥?”
“아! 제, 제가 실수를!”
게다가 동그란 수정구에선 귀에 익은 음악까지.
‘음? 이건 클래식…….’
지구의 음악이 왜 저기서 들리는 걸까.
점점 확실해졌다. 여긴 이세계이고, 정운호는 꽤 오래전부터 이곳을 왕래했다.
운호는 상업 지구 마법 용품 전문점으로 들어갔다.
“어서 오십시오, 우노 백작님.”
“상인용 마법 계약서가 필요하다. 그리고 언어 통역 반지도.”
“아! 요즘 마탑이 문을 닫아서 물량이 많지 않습니다. 그래서 가격이 좀… 헤헤.”
“본 백작이 가난뱅이로 보이나? 바가지를 씌워도 좋다. 물건이나 내놓아라.”
“어이쿠! 아닙니다요. 정가만 받겠습니다.”
운호는 상인에게 200골드를 건네고 양피지로 된 계약서와 언어 통역 반지를 구매했다.
그사이 야마다는 신기한 눈빛으로 상점 이곳저곳을 구경했다.
‘오!’
익숙한 곳이다. 기억이 새록새록 떠오른다. 지구에서 경험했던 도시 던전의 한 상점. 이런 구조의 상점에서 처음 마법 반지를 주웠는데.
야마다는 더 이상 참지 못하고 물었다.
“여, 여긴 혹시 이계입니까?”
“그래요. 에론 대륙이라고 부르죠.”
“아하, 그렇구나. …그런데 왜 저를?”
“딴 게 아니라 우리 일 하나같이 합시다. 대우는 섭섭지 않게 해 드릴게.”
“일이라면……?”
“내가 여기서 벌리고 있는 일이 있는데 아무래도 혼자라 좀 벅찹니다.”
이계에서 일을 하라니!
‘이거 꿈이야?’
사실 야마다는 일본 판타지 라노벨의 애독자다. 마치 소설을 읽고 있는 것 같다.
“언어 문제는 걱정하지 말아요. 이 반지를 끼면 되니까.”
“아…….”
운호가 준 반지를 손에 착용하자 그제야 이계 사람들의 언어가 귀에 쏙쏙 들어왔다.
‘이런 식으로 아이템들을 가지고 왔구나.’
기어이 야마다는 알았다. 운호의 비밀을 말이다.
사실 이계 자체가 야마다의 로망. 거절할 수 없는 제안.
마음이 동했다.
그러나 마음에 걸리는 것이 있었다.
“지구로 다시 돌아올 수는 있는 겁니까?”
“물론이죠. 그렇지 않아도 좀 있다가 바로 돌아갈 겁니다.”
“하, 하겠습니다.”
“그럼 우리 계약서부터 작성해야죠?”
“그거 혹시 비밀 엄수 마법이 걸린……?”
“네, 계약 조항으로 적힌 건 절대 발설하면 안 되죠. 발설하면 끔찍한 고통과 정신 이상이…….”
“꼭 해 보고 싶었습니다. 입만 꾹 다물면 되는 거 아닙니까! 합니다. 무조건 하죠.”
야마다는 아무런 문제 없다는 듯 맹렬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
베일 왕국 수도 바인 시, 근위 기사단 건물 지하에 위치한 감옥.
러스 네이든은 목, 손목, 발목, 세 군데에 마나 억제 고리로 채워진 채 무기력하게 감금되어 있었다.
“으어어, 아으.”
러스 네이든은 구슬프게 흐느꼈다. 마법에 당한 것이 아니다. 주먹으로 맞았다. 그래서 더 비참하다.
생각하면 할수록 말이 되지 않았다.
그 하늘에서 날아오던 막대기는 대체 무엇이었지? 그 안에서 나온 돌멩이들이 터지자 대규모 캔슬레이션 현상이 나타났는데……. 그건 마법이었을까?
억울하다. 성공이 거의 눈앞이었다.
타일러는 자신에게 약속했다. 일을 성공적으로 완수하면 그 찬란한 광휘의 마탑의 일원으로 들어가게 해 주겠다고.
그런데 신세가 이게 뭔가?
솔직히 말하면 바리안 왕국도 괜찮았다.
‘끄응, 그때 그 폭발만 아니었어도…….’
신탁자에게서 받은 를 연구하다 치명적인 마나 역류를 당했다. 때문에 마탑 내에서 입지가 좁아지고 스승의 눈 밖에도 났다.
그래서 파문도 감수하고 이곳까지 왔지만.
‘신탁자 그놈이 제일 수상해.’
놈이 그 본체에 이상한 짓을 해 둔 것이 아닐까?
‘만나기만 하면…….’
신탁자가 제국에 나타났다는 말을 타일러에게 들었을 때 러스를 속으로 쾌재를 불렀다. 어디 갔나 했더니 제국에?
아마 놈은 모를 것이다. 에고 가이드에 세뇌 마법이 걸려 있다는 것을. 그건 타일러에게도 말하지 않았다.
‘일단 만나서 정신 억압 마법으로…….’
그럼 충성스런 노예가 되겠지.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아직 반전의 기회가 남았다.
더구나 특별하다고 에론 대륙 전체에 소문난 신탁자. 자신이 놈을 노예처럼 부릴 수 있다는 능력이 있다는 알게 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눈에 선하다.
‘흐흐흐, 내 가치가 얼마나 올라갈지 상상도 못하겠군.’
그 생각을 하니 고통이 조금 줄어든다.
바로 그 순간!
휙!
‘음?’
스슷, 철커덕, 끼이익.
누군가 감방 안으로 들어왔다.
“누구……?”
“쉿!”
“허억! 너, 넌?”
이 여자가 왜 여기서 나와?
“나, 날 구하러 온 거냐?”
“비슷해요.”
“그럼 이 억제구부터 어떻게 해다오.”
“일단 여기서 나가서 풀어 드리죠.”
“그래. 흐흐흐, 고맙구나. 미오 론티아. 내 이 은혜는 반드시 갚겠다.”
러스 네이든은 미오 론티아를 따라 성 밖으로 이동했다. 경비병과 문지기는 쓰러져 자고 있어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하긴, 마법사가 모습을 드러냈다면 모든 준비는 끝났다고 봐야지.
바인성 밖으로 멀리멀리 도망가는 두 사람, 이윽고 고즈넉한 숲속에 도착했다.
러스 네이든은 크게 안심하며 웃었다.
“으하하하하! 살았군. 살았어. 이제 자유롭게 해다오. 어서어서! 낄낄낄, 역시 스승님이 7클래스 마법사인 이 러스를 버릴 리가 없지.”
그러나 미오 론티아는 움직이지 않았다. 그저 가만히 그를 노려볼 뿐.
“음? 어서 빨리 풀어 주지 않고…….”
“러스 네이든!”
“이런, 6클래스 주제에 무례하게. 큼큼. 뭐, 그 정도야 용서해 줄 테니 어서 이 억제구부터…….”
하지만 러스도 눈치가 빠른 자다.
‘왜 눈빛이 갑자기 돌변한 거지?’
불안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 왔다.
“사파이어 마탑의 종주이신 콜라시오 카엘 탑주님의 전언이다.”
“……?”
“넌 파문이다.”
“파, 파문?”
설마?
그리고 뒤늦게 알아챘다. 자신의 발밑에서 요요롭게 빛나는 오망성의 마법진을.
“이건!”
러스도 안다. 7클래스가 되어야 펼칠 수 있는 소환진, 하지만 미오 론티아는 6클래스 아니었나?
“너, 호, 혹시 7클래스에 올라섰나?”
“덕분에. 사실 얼마 되지 않았어.”
덕분이라니 자신이 도움을 준 게 뭐가 있다고.
무슨 영문인지 모르지만 빨리 벗어나야…….
“홀드!”
“허억!”
“…헬파이어!”
“이, 이런 제기라알!!”
그리고 마침내 소환된 지옥불, 헬파이어.
“뜨아아아악!”
꺼지지 않는 악마의 불이 러스 네이든을 휘감았다.
“사, 살려…….”
화르르륵, 활활!
마탑에서 파문은 곧 죽음이다. 그건 자신도 예외가 없다.
미오 론티아는 씁쓸한 눈빛으로 재가 되어 사라지는 그를 끝까지 지켜보았다.
‘쯧, 멍청하긴.’
차라리 아무도 모르는 곳에서 숨어 지낼 일이지. 이 복마전 같은 곳에 와서 무슨 성공을 바라겠다고.
어리석은 마법사의 최후는 뻔하다.
*
그림워커는 급하게 발걸음을 옮겼다.
가는 도중 마법 병단의 책임자 아놀드가 그에게 보고했다.
“뭐? 꽁무니에 불꽃 달린 막대기가 날아와서 캔슬레이션 마법을 시전했다고?”
“그렇죠.”
이게 무슨 어이없는 소리?
“아놀드, 네 이놈! 요즘 마법 연구는 게을리하고 근육 키우는 훈련만 한다던데.”
“게, 게을리하다뇨! 남자는 근육이 있어야…….”
“마법사 놈이 무슨 근육이더냐! 머릿속도 근육으로 가득 찼구나. 그런 허황된 사실을 나 보고 그걸 믿으라고?”
“나 말고 증인도 있습니다. 캐머딘 국왕께서도 목격한 일입니다.”
“…정말이냐?”
“틀림없습니다.”
아티팩트인가? 드래곤이라도 나타난 거야?
어찌 되었든 반란을 막아 낸 것은 천만다행. 하지만 이상한 건 그 말고도 더 있다.
그림워커는 황궁 마탑의 연구실에 도착했다. 그곳엔 매우 낯익은 마법사의 시체가 놓여 있었다.
“허허. 정말이구나. 정말 그놈이야.”
광휘의 마탑 소속 마법사 타일러. 매우 성가신 놈이었다. 7클래스 밖에 안 되는 놈이 간교하고 교활한 건 9클래스 이상이었다.
직접 만나면 모가지를 따 줄까 벼르고 있었는데…….
“수고를 덜었어. 놈! 잘 뒈졌구나!”
“러스 네이든이란 놈도 이 새끼가 데리고 왔을 겁니다.”
“그럴 줄 알았다. 촌구석에서 얼빵한 마법사 한 놈 데려다가 앞세우고는 뒤에서 몰래 개입했겠지.”
그림워커는 안력을 강화해 타일러의 시체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상반신이 걸레가 되었네. 자상을 보니 뾰족한 창 같은 것에 찔려… 음!’
믿을 수 없었다.
7클래스 마법사가 근접 무기에 당했다고?
“이놈 스펠 세이브를 가지고 있었지?”
“네, 최상급으로 착용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분석해 보니 50개 마법을 다 소진했더군요.”
“뭐?”
스펠 세이브에 저장된 마법은 거의 즉시 주문으로 발현된다. 물론 고위급 마법은 시간이 조금 더 걸리긴 하지만.
‘블링크나 실드 마법은 스펠 세이브에 필수로 저장되어 있을 텐데.’
그 장비가 개발된 이후로 마법사들은 기사들에게 거리를 허용한 적이 없다.
그것도 그렇지만 버릇처럼 실드를 시전하는 놈들이 클래스 마법사, 그런데 놈들의 방어막을 뚫고 구멍을 냈다고?
그림워커는 손으로 타일러의 시체를 가리켰다.
“윈드 커터!”
서거걱!
그러자 시체의 상반신이 쩌억 갈라진다.
“욱!”
입을 막고 눈을 찔끔 감는 아놀드.
하지만 그림워커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손을 집어넣어 내장까지 주물렀다.
‘이건… 오러 블레이드의 흔적이군.’
확실하다. 타일러의 마나로드가 조각조각 끊어져 있다.
오러 블레이드라니!
마스터라고 알려진 기사들이 발현해 내는 궁극의 기술. 그림워커도 안다.
진짜라면 아마 찔리는 순간 꼼짝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하지만 진짜가 있을 리 있나?
과거 마법사들의 천적이 기사였던 시절이 있었다.
하지만 어느 순간 저울추가 역전되더니 클래스 마법사들에 의해 진짜 기사들은 모조리 숙청되고 말았다. 오래전에 일어난 일이다.
기사들의 오러 연공법은 모조리 불태워졌고 오러 유저 이상급의 기사들은 붙잡혀 땅에 생매장당했다.
현재 기사라고 부르는 자들은 모두 가짜들. 마법사들의 의해 통제되고 만들어진 허상의 오러를 가진 기사들.
‘기사들의 오러로는 불가능해. 과거라면 모르겠지만…….’
진짜 기사들은 이미 황혼 속으로 사라졌다.
‘아니지. 은거 기인이 없으리란 법이 없지.’
마법사들의 숙청에서 간신히 벗어나 은둔한 오러 마스터가 아무도 몰래 제자를 키우고 있었다면?
“껄껄껄, 재미있어지겠군, 마법사 놈들, 똥줄이 타겠어.”
그림워커는 통쾌하다는 듯 웃었다. 사실 자신도 마법사면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