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a dimensional bag RAW novel - Chapter 92
92화 찜질방 개업 (2)
제국의 황제가 궁 밖으로 나올 때는 그를 수행하는 이들이 최소 100명 이상은 따라붙는다. 호위 병력 빼고도 그렇다는 말이다.
가끔씩 암행을 나올 때도 있지만 그러하더라도 철저한 안전 대책이 보장되어야 하고, 정해진 동선으로만 움직인다.
하지만 오늘 아침부터 시작된 황제의 찜질방 행사는 그럴 필요가 없었다. 초대된 이들은 드워프들과 황궁 마탑의 마법사들뿐, 거기에 9서클 대마법사 그림워커도 같이 왔다.
그러면 오히려 궁 안에 있는 것보다 더 안전하지.
탕 안에 들어온 롤랑 황제는 모든 것이 신기하다.
욕조야 황궁에 있는 것이 더 화려하고 사치스럽다.
그런데 저 꼭지들은?
손잡이를 돌리면 물이 나오고, 뜨겁게 차갑게 온도 조절까지 가능하고, 게다가 큰 물줄기를 수십 개의 가는 물줄기로 갈라 주는 이 샤워기라는 물건.
더불어 곳곳에 놓인 비누라는 물건으로 몸을 씻으니 그야말로 신세계. 향기가 어째 이리도 좋을까.
미끌미끌 손안에서 가지고 놀다가.
뽁!
쑥 빠져 멀리 떨어지는 비누.
“음?”
“페하, 제가 비누를 주워 올까요?”
“…아, 아니. 됐네. 가만히 있게.”
왠지 그러면 안 될 것 같다.
목욕탕 안에 여러 가지 시설들이 보인다. 자그마한 간이 폭포에 종류별로 온도가 다른 탕에 수상쩍은 밀실도, 밀실이라… 저긴 뭘까?
참을 수 없는 호기심에 롤랑은 바로 몸을 헹구고 밀실 문을 열었다. 그림워커도 황제 뒤를 따랐다.
벌컥!
화아악!
문을 열자마자 덮쳐 오는 뜨거운 열기.
“허어!”
“으으…….”
덜컥, 롤랑은 다시 문을 닫았다.
“수련장이군. 저기 앉아서 심신을 단련하는 것 같은데… 안 되겠지?”
“뭐, 전 가능합니다만 폐하께서 힘들어 하시니.”
“내가 언제 힘들다고… 응?”
그때!
삐거덕.
문이 저절로 열린다.
고개를 숙여 아래를 보니 꼬리를 위로 한껏 추켜 올린 고양이 한 마리가 앞발로 사우나실 문을 열고 들어갔다.
“…고양이가 왜 목욕탕에?”
“신탁자가 키우는 고양이 같사옵니다.”
“그렇군. 납득했어. 저 고양이라면 그럴 만하지.”
고양이가 물을 싫어하는 것은 상식이지만 짬타가 어디 보통 고양이인가?
일전에 지구에서 운호와 함께 목욕한 이후로 몇 번 더 탕에 들어갔다. 그러다 보니 익숙해지고, 그러다 보니 사우나도 부담 없이 즐길 수 있게 된 것.
“고양이도 들어가는데…….”
“질 수 없사옵니다.”
그래서 롤랑 황제와 그림워커는 굳은 결심으로 문을 열고 들어갔다.
뜨거운 열기가 뿜어 나오는 사우나실.
두 명의 인간, 그리고 고양이 한 마리.
“음.”
“하아!”
“냥.”
묘한 기류가 형성되었다.
누가 먼저 말을 하지 않았지만 승부의 장이 열렸다.
먼저 나가면 진다.
“후우.”
“끄응.”
“나냥…….”
보통 사람 롤랑 황제, 오러 마스터를 뛰어넘는 경지의 짬타, 9클래스 대마법사 그림워커.
먼저 나오는 이는 누구?
의외로 제일 위험한 이는 그림워커였다.
‘포기하고 나갈까?’
하지만 먼저 나갔다가 롤랑 황제는 두고두고 자신을 놀려 먹을 것이 틀림없고.
‘젠장할.’
그러나 자신이 누군가! 대륙을 호령하는 대마법사가 아닌가?
먼저 세수하는 척 손바닥을 얼굴에 가져다 대고.
‘아이스 핸드!’
아주 살짝 심장의 서클을 한 바퀴 회전시켰다.
“냥?”
“어?”
옆에서 느껴지는 서늘한 기운. 그러자 얼굴이 일그러지는 롤랑 황제, 짬타도 그림워커를 노려봤다.
“그림워커, 네 이놈! 또 마법을?”
“냐아아아앙!!”
“모, 모함입니다. 즈, 증거 있사옵니까?”
“부끄러운 줄 알아!”
“캬악!”
운호는 건물 3층, 여러 종류의 찜질방이 모인 곳에서 점검을 하고 있었다.
불가마방, 소금방, 황금방, 보석방, 푸른숲방… 갖가지 테마의 방들.
통신 수정구에선 쉴 새 없이 라디오 드라마와 음악이 흘러나오고, 일찍 목욕을 끝내고 온 마법사들과 드워프들이 삼삼오오 모여 각자 가지가 원하는 방에 들어가 담소를 나누고 있다.
정겨운 광경이다.
‘역시, 찜질방이야.’
나가려는 사람도 없고, 싫은 티를 보이는 사람도 없고.
급기야.
[에론 대륙 최초의 종합 유흥 목욕탕을 건설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30,000pt를 획득하셨습니다.] [개인 위생 보급으로 질병의 위험성을 대폭 하락시켰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100,000pt를 획득하셨습니다.] [로산트 제국민들에게 놀이와 휴식을 통한 정신적 치유를 선물하셨습니다.] [보상으로 차원 기여도 300,000pt를 획득하셨습니다.]…….
올 것이 왔다.
그에 따른 차원 기여도 보상 메시지 또한 어지러울 정도로 울렸다.
이 정도면 사업 성공이지.
“냐앙!”
목욕을 끝마쳤는지 짬타가 어슬렁거리며 운호에게 다가왔다.
“우리 돼지 왔어? 이젠 목욕에 잘 적응했구나. 마침 잘 왔다.”
“냥냥, 냥!”
“왜? 화났냐? 무슨 일이 있었길래… 가만히 있어 봐.”
운호는 미리 준비해 온 작은 수건을 짬타에 머리 위에 씌웠다.
“냥?”
“금방 끝나.”
수건을 이마까지만 덮고 수건 양 끝을 잡고 돌돌 동그랗게 말아 끼우니.
“냐앙.”
누가 봐도 심장에 터질 것만 같은 귀여운 양 머리의 짬타.
“크크크크, 너 정말…….”
“냥?”
다른 사람이 봐도 그랬다.
갑자기 옆에서 풍기는 싱그러운 향기.
“어머?”
짬타를 보며 어쩔 줄을 몰라 하는 미오 론티아.
“너, 너무 귀여워요.”
“어…….”
순간 운호는 말을 이을 수가 없었다.
평범한 찜질방 의복을 입고 나타난 그녀, 펑퍼짐하지만 감춰진 몸매를 숨길 수는 없었다. 게다가 늘씬한 다리에 아직 물기에 젖은 빨간색 머리.
“제, 제가 해 드릴까요?”
“네?”
“양 머리…….”
“아! 이걸 양 머리라고 하나요? 네, 해 주세요.”
운호는 심쿵하는 마음을 애써 참으며 미오 론티아의 머리에 수건을 얹었다.
미오의 얼굴도 그녀의 머리 색만큼 붉어졌다.
양 머리를 하고 휴게실을 돌아다니는 짬타의 모습은 사람들의 관심을 한 번에 사로잡았다.
“귀여워라!”
“아아아아! 어떻게 저런……?”
“우, 우리도 만들어 써 볼까?”
지구에서처럼 에론 대륙에서도 양 머리는 찜질방 패션의 기본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다.
한편.
드워프 부족장 와일드해머는 시원한 음료를 들이마시며 찜질방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낯선 물건을 발견했다.
‘음? 이건 언제 생긴 거지?’
의자 같은데…….
아마도 신탁자가 가져다 놓은 것일 터, 다섯 개가 나란히 놓여 있었다.
‘평범한 의자는 아닐 테고.’
와일드해머는 의자에 발을 딛고 올라가 자리에 앉았다.
‘별거 없군.’
뭔가 다를 줄 알았는데, 푹신푹신하기는 하다. 체형과 맞지 않아 문제지.
그런데 이 요상한 물건은?
의자 옆에 달린 작은 물건을 들어 보았다.
‘이 툭 튀어나온 건 뭐지?’
무심결에 안마의자 스위치를 누르는 와일드해머.
지이잉.
투두둑! 두둑! 두둑!
꿀렁꿀렁.
“어허?”
뒤에서 느껴지는 시원한 진동, 그리고 등받이 안에서 무언가가 자신의 등을 어루만져 준다.
“으흐흐흐.”
천천히 롤링을 하며 목으로 올라갔다가 엉덩이까지 내려오고, 꾹꾹 누르고, 두드리고, 주무르고.
“허허허!”
뭉쳐진 어깨 근육과 목덜미가 어느새 사르르 녹았다.
“천상이로다!”
기분이 너무 좋다.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이 의자에 앉으니 그동안 쌓여 왔던 피로가 모두 풀리는 것 같다.
어느새 스르르 감기는 눈.
그러다 갑자기 와일드해머가 번쩍 눈을 떴다.
‘이 기막힌 물건이 왜 다섯 개밖에 없지?’
그래선 안 된다.
이건 1드워프당 하나씩 가져야만 하는 물건이다.
그리고 또 하나.
‘인간들 체형에 맞춰져 있어 우리에겐 안 맞아.’
개조를 한다면 효과는 더더욱 좋아질 터.
와일드해머는 참을 수 없었다.
‘신탁자에게 하나 달라고 해야겠군.’
딮월드로 가져가서 완벽하게 분해한 후 새로 만든다.
하지만 지금은 좀 더 즐기고.
정말 도통 모르겠다. 물건을 만들어 내는 기술에 있어선 드워프를 쫓아올 수 없다고 와일드해머는 평소 자부하고 있었다.
물론 그 말은 아직 유효하다. 하지만.
‘기술은 아무것도 아니야. 중요한 건 창의적인 발상이지.’
점심때가 되자 찜질방에 입점한 식당 주인들은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시원한 허브차 한 잔에 완숙 오리알 하나.”
“난 두 잔 주쇼.”
“얼음 동동 띄운 허니밀크, 잘 구운 감자도.”
“반숙 오리알 세 개!”
주문이 폭주하고 있었다.
예상도 못했다.
뜨거운 물에 목욕을 하고 수분과 허기를 보충하기 위함도 있겠지만 가격이 그리 비싸지 않아 사람들이 서슴없이 주머니를 열고 있는 것이 더 크다.
처음 차가운 음료를 팔라고 했을 땐 식당 주인들은 이구동성으로 반대했다.
늦가을 쌀쌀한 날씨에 차가운 음료라니.
하지만 이곳에 들어와 보니 알겠다.
이미 겉옷을 벗고 있지만 포근하기 그지없는 온도, 뜨거운 음료를 내놨다면 어쩔 뻔했나?
‘내가 멍청했구나. 신탁자님이 하시는 일인데.’
지금은 시범 운영이라 한다. 그런데도 이 정도 매출이라면?
‘기존에 하던 식당은 때려치워도 되겠어.’
잠시 반성의 시간을 가지자.
다음에 신탁자 우노 님이 뭘 하신다고 하면 제일 먼저 달려가 눈도장을 찍어 둬야겠다.
대성황이었다.
원래 시범 운영은 저녁까지 하지만 사람들이 밖으로 나가려 하지 않는다. 여기서 밤을 새울 모양.
롤랑 황제와 그림워커는 안마의자에서 내려오지 않았다. 어떻게 리클라이닝 기능을 작동했는지 몰라도 아예 의자를 뒤로 눕혀 숙면을 취하고 있었다.
운호는 혀를 끌끌 찼다.
‘쯧쯧, 저 두 사람은 오지 말게 해야겠다.’
황제와 대마법사라니!
저러고 있으면 정작 제국민들은 얼씬도 하지 못할 터.
운호는 보다 많은 사람이 찜질방을 즐겼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야 차원 기여도 점수도 두 배, 세 배로 들어올 테고.
이제 정식운영까지 순조롭게 진행되는 걸 확인하고 다시 지구로 돌아가야지.
* * *
광휘는 특수 던전 안에서 지구와의 연결 통로를 열었다. 이곳의 신이 자신을 불러왔을 때 전해 준 신력을 이용했다.
아마 지구에서도 인식을 했을 터, 이제 제물이 도착하길 기다리면 되는데.
화악!
제단에서 솟아나는 빛.
“왔구나.”
제단 위엔 지구에서 보낸 듯한 태블릿 하나가 놓여 있었다. 10여 년 전처럼 아마 별 쓸데없는 정보가 가득 차 있겠지.
자세히 몰라도 상관없다. 어차피 멸망한 자신의 차원과 지구는 과학 문명이라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었으니까, 물론 그 차이는 비교도 되지 않지만.
광휘도 재단 위에 태블릿을 올렸다.
지구의 것이 아니다.
고향이 멸망하기 전 직접 관세를 지불해 들고 온 물건, 그 안엔 자신이 연구한 마나 공학의 회로도가 저장되어 있었다.
“그래, 어디 한번 마음껏 발전해 봐라.”
광휘는 안다.
이 발전된 과학의 이론이 어디에 쓰일지.
노골적으로 욕망을 자극하는 것. 그로 인한 갈등은 필연적일 터.
‘어디건 인간이 제일 추잡하다는 건 진리지.’
이 물건이 가지고 올 결과는 이제 자신의 알 바가 아니다.
책임은 지구와 그 신탁자가 질 것이다.
쏴아아아!
제단을 감싸는 눈부신 빛무리.
등가교환의 법칙, 그리하여 광휘의 태블릿 기기도 차원을 넘어갔다.
‘이제 남은 할 일은…….’
특수 던전을 나온 광휘는 축구공 크기만 한 금속체를 들고 고민에 빠졌다.
자신의 차원을 멸망시키는 데 일조를 했던 물건이다.
저 먼 우주 상공에서 지상의 모든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해 전송하는 소형 우주 위성, 드래곤 하트를 에너지원으로 삼아 수명도 반영구적.
단점은 있다.
정운호라는 놈이 던전 안에 들어가면 탐색이 불가능해진다.
하지만 그 단점은 신경 쓰지 않아도 될 만큼 작은 것. 이걸 에론 대륙 차원 위 우주 궤도상에 띄우면 아무런 도움 없이 홀로 대륙의 상황을 꼼꼼하게 파악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신의 눈이다.
‘으음…….’
정말이지 이것까진 사용하고 싶지 않았다.
무엇이든 시작이 무서운 법.
사용하다 보면 더 새로운 걸로, 더욱더 강력한 걸로, 그러다 보면 브레이크는 사라지고, 종래엔 에론 전체를 멸망시킬 물건들도 줄줄이 나올지도 모르고.
‘아니야, 나만 사용하면 그만이야. 그러면 돼.’
자신은 에론 대륙의 보호자다.
그래서 광휘는 명분은 자신에게 있다고 생각했다.
대의를 위해선 독약을 삼키는 것도 마다 않는다. 모든 것이 마무리된 후 파괴시켜 버리면 그만이니까.
그렇게 자기 합리화를 끝내고 광휘는 소형 위성을 작동시켰다.
위이잉.
찌잉!
슈융!
소형 위성은 팽그르르, 회전하더니 무지막지한 속도로 하늘 위로 솟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