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76
276화
【왕】
몬스터를 쓰러뜨리고, 쓰러뜨려도 변하는 건 없었다. 그런데도 몬스터를 쓰러뜨렸다.
칼을 놓칠 때도, 발을 헛디딜 때도, 피부를 뚫는 고통이 느껴져도 왼손에 들린 지언이를 놓지 않았다.
너는 이걸 계속 반복했겠지. 도대체 무슨 마음으로 한 걸까. 나는 도저히 못 버틸 거 같은데. 너를 붙잡고 있으니 버티는 거다. 아마 너를 놓치면 그 상태로 자리에 주저앉겠지.
얼마나 지났을까. 아무리 강해진 힘이더라도 결국 사람이었고, 상처를 입는 횟수가 늘어나고, 실수하는 횟수가 늘어났다.
그래서인지는 몰라도, 불쑥 화가 치밀어오르기 시작했다.
분노는 다양한 곳으로 뻗었다. 지언이와 나의 운명에 분노하기도 했고. 막지 못하는 나에게 분노하기도 했고, 지금 상황에 분노했고, 왕에게 분노했―
쾅!
누군가 허리춤을 붙잡고 뒤로 당겼다. 앞에 누군가 대신 나서 공격을 막아냈다.
쿠당탕! 바닥을 뒹굴고 나서야 상황을 파악할 수 있었다. 허리춤을 붙잡고 다녔던 유주한이 말했다.
“으아악! 죄송해요! 반사적으로!”
“…….”
지언이는, 멀쩡하다. 고개를 올려 앞의 상황을 확인하니, 균열 너머로 수없이 뻗어 나오는 검은 팔이 사방으로 뻗어 나가려 들었다.
눈앞의 류천화와 지화연, 승현이 막아섰고, 다른 쪽은 처음 보는 헌터들이 막아 나섰다. 하지만 탱탱볼처럼 중구난방으로 뻗어가는 데다가 빨라서 쉽사리 막진 못했다.
류천화가 내 꼴을 흘긋 보곤 말했다.
“재정비 좀 하고 오지 그래. 한지언 헌터도 놓고.”
“…….”
“안 뺏으니 눈 좀 제대로 뜨지 그러나. 그러다가 그것마저 잃어버리면 어쩌려고. 그냥 두고 오지 그러나.”
“알아서 할―”
덥썩. 눈을 깜빡인 사이 몸 여러 곳이 붙잡혔다. 곧이어 지언이의 몸에도 검은 손이 붙은 걸 깨달아 곧장 몸을 움직였다. 몸에 생채기가 잔뜩 나서야 지언이를 겨우 붙잡을 수 있었다.
“내 말이 맞지 않나.”
“…….”
“뒤쪽에 유아한 헌터도 있으니 맡기고 오지 그래.”
“…….”
“도대체 저게 무슨 고집인지.”
지화연이 말했다.
“뭐… 충격 안 받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나는 안 받았었다만.”
“비교할 걸 비교해요.”
“…두 분. 위를 봐주십시오.”
“위에요? 또 뭐 나왔…….”
승현의 말에 지화연이 고개를 올리곤 말을 말았다. 류천화가 위를 바라보더니 표정을 잔뜩 찌푸렸다.
“저건.”
뻗어 나오는 검은 손 사이. 사람의 인영이 보였다. 새하얗고 긴 머리카락과 양의 뿔. 새하얀 속눈썹이 닫혀있다가 열리며, 호박빛 눈동자를 드러냈다. 여성을 감싼 검은 손이 합쳐지고, 뭉개지고, 떨어져 나가며 검은 드레스를 만들어 냈다.
따각. 저 여성이 땅에 내려오자마자 헛구역질이 올라왔다. 뒤이어 다른 이들도 안색이 창백해지며 주저앉거나, 도망치려다 그대로 넘어져 오줌을 지렸다.
짓눌리는 감각에 저것이 무엇인지, 단숨에 눈치챌 수 있었다.
“…왕.”
하얀 속눈썹 아래에 깔린 호박빛 눈동자가 천천히 구르다가 나를 바라봤다. 정확히는… 내 품에 있는 지언이를 바라봤다.
또각, 부러지진 않을까 싶을 정도로 날카로운 검은 힐로 소리를 내며 내게 걸어왔다. 무언가 소리치려는 이가 보이기도 했지만, 겁에 질려 목소리가 안 나오는지 당황한 모습을 보였다. 누군가는 일어날 생각조차 안 하고, 몸을 웅크려 벌벌 떨고. 누군가는 발버둥 치려 다짐하나 실패하는 모습을 보였다.
“…꺼져.”
딱. 왕이 내 눈앞에 섰을 때는, 도망치고 싶은 마음과 엎드려 절해야 할 것 같은 감정을 느끼기도 했으나, 혀를 찢어버릴 듯한 고통으로 참아내고 지언이를 더욱 감쌌다.
왕이 한심한 듯 내려보다가 팔을 뻗었다. 곧이어 검은 구 하나를 만들어 냈다.
‘저건, 피해야 한다.’
못을 박은 것 같이 무거운 다리를 겨우 움직여 뒤로 물러나자, 파바바박! 나를 따라 거대한 가시가 하늘에서 떨어졌다. 네발로 기어서라도 도망치다가 검으로 튕겨냈다. 그리곤 보기 좋게 데굴데굴 굴렀다.
지언이를 놓쳐 지언이의 몸이 땅바닥을 구르다가 추욱 처졌다. 왕이 그걸 보곤 천천히 걸어왔다. 팔로 기어 지언이에게 다가갔다. 그리곤 내 몸을 위에 덮어 어떻게든 막았다.
‘지킬 거야.’
지켜야 해. 이거라도. 이것만이라도.
아무것도 못 해줬단 말이야. 지키지도 못했단 말이야. 이것마저 빼앗아 가지 마. 제발.
“…지켜야 해.”
“누가 누굴 지켜.”
목소리에 곧장 고개를 옆으로 돌리자, 눈을 끔벅이는 지언이의 얼굴이 보였다.
“…지언, 아?”
“왜.”
“…지언아.”
“왜 부르냐니까.”
“…….”
지언이가 몸을 일으켜, 나는 곧장 몸을 치웠다. 그리고 무거운 몸을 팔로 지탱해, 자리에서 일어나는 지언이를 멍하니 바라봤다.
눈앞이 일렁이며, 코끝이 찡해졌다. 당장 자리에서 펑펑 울고 싶었다. 다행이다. 지언이는, 살아있어. 살아있어.
울고 싶은 마음을 겨우 추스르고, 입을 열었다.
“괜찮아?”
“뭐. 나쁘진 않아. 그리고… 저쪽이 이번에 새로운 왕인 거지?”
“…아마.”
“기분 나쁜 감각 보니까 맞네.”
“지언아, 너 괜찮아? 일단 문양 개방부터 빨리해……!”
“아 문양 개방?”
펄럭. 지언이의 등 뒤로 하얀 두루마기 하나가 덜렁 걸쳐졌다. 이전의 검은 답호의 모습은 모이지 않았다. 그걸 제외하면, 그냥 지언이었다. 내가 아는 내 동생 말이다.
* * *
질척이는 감각에 깊이 빠졌다. 이전과 다른 죽음에 편안하게 눈을 감을까 생각하다가, 도저히 그냥 감기에는 마음 한편이 석연치 않았다. 하지만 질척이는 검은 죽음은 나를 계속 잡아당겼고, 나는 움직이지도 못한 채 그 흐름에 따라 빠졌다.
그러다가 불쑥 내민 손에 멱살이 잡혀 죽음의 늪에서 빠져나왔다.
“쿨럭! 컥! 커헉!”
내장부터 진득한 검은 액체가 뿜어져 나와 역한 감각이 멈추지 않았다. 쥐어짜이는 듯한 느낌과 함께 액체가 계속 흘러나오다가, 이내 내 아래에 액체가 고여있을 정도가 되어서야 멈췄다.
“콜록. 컥.”
입가를 닦으며 위를 올려다보자, 악몽에서 보았던 ‘내가’ 서 있었다. 저 녀석이 날 도와준 건가? 왜? 행복 어쩌고만 오르골 반복되듯이 말한 녀석이?
“또 뭘 물어보려고.”
“…있잖아.”
그래도 이번에는 깔끔하네.
또 행복이니 뭐니 하는 말을 내뱉을 거로 생각하고 속으로 한숨을 내쉬던 차에 또 다른 내가 말했다.
“왜 세상을 구하려고 해?”
상상도 못 한 질문에, 답을 하려 입을 연 그대로 멈췄다. 왜 구하냐니? 그야… 그래야 끝날 테니까… 아니, 그게 나한테 주어진 사명… 아니.
……그러게? 난 왜 형에게 마지막 부탁으로 세상을 구해달라는 말을 했지? 그걸 정말 바란 거였나? 막 내뱉은 말이었긴 한데.
또 다른 내가 답을 재촉했다.
“말해 줘.”
“…….”
처음은 내가 회귀하는 것이 세상을 구하라는 신의 계시인 줄 알았다. 그러나 계속 반복하기만 하고 별다른 소득이 없자 그때 한 번 절망했고, 세상을 미워했다.
내 알 바 아니라는 듯 구하기에 여념 하는 게 아니라 집안 구석에 박혀있는 것에 집중했다.
그러다가… 다시 일어났다. 망할 회귀를 끝내려고. 멸망을 막으면 해결될 거로 생각하고, 무작정 반복했다.
그렇게, 그렇게 반복했다가. 그저 하나의 책무로 짊어져 뜻도 없이 반복했다.
…굳이 그럴 필요가 있었나?
“……허?”
인제 와서야 깨달은 것 같은 기분에 나 자신이 멍청하다고 느껴졌다. 난 왜 이렇게 노력한 거지? 무엇을 위해? 멸망할 걸 알면서도 왜? 만약이라는 거에 희망을 걸 만큼, 나에게 무언가의 이변이 있긴 했었나?
‘…아니.’
어쩌면 말이다. 웃기게도 말이다.
“지독하게 살고 싶었나 봐.”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려고 다시 일어나고. 살아있다는 감각을 느끼려고 안 될 걸 알면서 시도했다.
그렇게 살고, 살고, 살다가.
“소중한 사람들을 구하고 싶었고…….”
생각 없이 말했던 말들이. 사실은 무의식적으로 그렇게 생각했기에 나왔던 말들이라는 걸, 이제야 깨달았다.
“그 사람들의 소중한 사람도 지키고 싶었고.”
그렇게 소중한 것들이 늘어나고 늘어나. 나는 그걸 적당히 생각해서 떠오른 것들이라 생각했다. 그래서 두루뭉술하게 생각한 거라고.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소중한 게 너무 많아서. 사랑하는 게 너무 많아져서. 딱 하나만 떠올릴 수 없었던 거다.
“그냥. 세상이 싫었는데. 살다 보니 좋아졌나 봐. 아직은 더 세상이 돌아가는 걸 보고 싶었나 봐.”
“…….”
“그렇게. 그냥 사랑했나 봐. 이것저것. 그래서 구하고 싶었나 봐.”
“그렇구나.”
이전과 달리 대답이 만족스러웠는지, 또 다른 나는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였구나. 너도, 나도.”
“…….”
또 다른 나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지만, 나는 더 이상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뒤로 돌았다. 그리곤 양팔을 펼쳐 고개만 내 쪽으로 돌리더니… 밝게 웃었다.
정말 밝게.
나조차 언제 지었는지도 모를 맑은 미소로.
동시에 검은 하늘에 수없이 많은 별과 은하수가 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