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said that his brother possessed the novel RAW novel - Chapter 275
275화
눈을 떴을 땐, 온 세상이 백색이었다.
“뭐야 여긴.”
―이제야 일어나는 거야?
“네가 여기로 데려온 거야?”
겔탄이 평소와 다를 바 없는 모습으로 내 눈앞에 나타났다. 장소는… 평소랑 다르지만.
“내가 왜 여기 있는 거지?”
―그래. 기억 못 할 거로 생각했어. 하지만 시간은 없으니 그건 생략하자.
“시간이 없다고?”
―너 지금 상당히 위험한 상태거든? 네가 세계 멸망의 원인이 되기 직전이라고.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지금 너는 마왕의 힘을 가져 자아를 잃었어. 왕의 계략이지. 그리고 주변 헌터들을 전부 쓸어버렸고. 죽은 이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지만… 대부분 빈사 상태인 건 확실하지. 네 형도 지금 네 공격에 반격조차 못 하고 있어.
“뭐? 아니 대체 왜.”
―뭐… 자세한 건 나도 잘 모르지만 네가 그만큼 강한 상태라는 거지. 지금 네가 자아를 가지고 있는 것도 내가 겨우 버티고 있으니 그런거고.
“…힘없다며?”
―그게 중요해? 하여튼. 내 눈의 힘이야. 하자가 있긴 해도 결국 왕의 유전이니까.
이해할 수 없는 겔탄의 말에 머리가 혼란스러웠지만, 하나는 알 수 있겠다.
지금 상황이 개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 주범이 나고.
“…그래서. 그 개판을 멈추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데.”
―내가 할 수 있는 건 네 자아를 잠깐 되찾게 해주는 거야. 하지만 그것도 잠깐이며, 조금이지. 네 몸을 마음대로 움직일 수도 없을 거야.
“그 아무것도 못 하는 상황에서 내가 무언갈 해야 한다. 이건가.”
―그래. 그 틈도 겨우 만드는 거라고? 그리고 멈추는 방법은… 뭐. 좋은 방법도 있겠지.
“그래. 그럼 날 깨워 지금. 시간만 지체해 봤자 안 좋다며?”
―……그래. 그럼 내 몫까지 잘 살고. 이겨야 한다?
“뭐?”
―말했잖아? 내 눈의 힘은 하자가 있다고. 그건 바로 목숨을 대가로 힘을 사용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러니까, 나를 보는 것도 지금이 마지막인 거고.
“…살고 싶어서 들어온 게 아니야?”
―살고 싶으니까 살았고. 네 몸에 붙어서 삶의 의미를 찾았지. 다만, 여전히 모르겠네. 본래 고향은 나를 배신자 취급하고. 너의 세상에선 몬스터, 적 취급하고. 뭐! 둘 다 맞지만.
“…….”
―그리고, 내 잘못의 비중이 작긴 해도 내 잘못이 있긴 하잖아? 그러니까 네 세상에 더 붙어살기도 그렇고. 그러니까! 난 여기서 끝내보려고.
“그러냐.”
―안 붙잡아? 네 인생의 파트너인데.
“그런 거 만든 적 없고. 난 남의 선택을 방해하진 않아서.”
―하하! 그래. 그럼 천천히 따라와. 열심히 살아. 안녕!
그 순간, 겔탄이 아주 잠깐 괴인 때의 모습처럼 보였다. 해맑게 웃는 모습이 옅어지고, 눈앞에는 내 낫에 찔려 맥을 못 추는 형의 모습이 보였다.
“지언아. 지언아.”
낫을 빼내고 싶지만, 몸은 움직이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반항할수록 더욱 형을 죄어갔다.
이 인간은 왜 가만히 있는 거야?
“지언아.”
형이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말했다.
“미안해.”
“…뭐가 미안한지 모르겠고.”
“지언아?”
정신이 회까닥할 것 같다. 겔탄이 정말 잠깐의 틈을 만든 거군. 이러면 방법을 생각할 겨를도 없잖아.
‘딱 하나. 당장 생각나는 거가 있긴 하지.’
딱 하나. 당장 이 상황을 끝낼 방법.
“형. 날 죽여.”
“…….”
“죽이라고.”
형도 어쩌면 알고 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지 못했거나, 안 했겠지.
그러니 지금 내가 움직이지 않을 때. 형이 해야 했다.
“빨리 죽이라고!”
“…….”
형이 떨리는 손으로 검을 쥐었다.
참으로 잔혹했다. 어떻게 지금 내 눈앞에 있는 게 다른 사람도 아니고 형이라니.
형이 겨우 검을 한 손으로 들며, 결국 눈물을 흘렸다.
“형. 지금 말곤 없어. 다시 내 의식이 사라질 거야. 그러니까 지금. 부탁이야. 어쩌면 내 마지막 부탁일지도 몰라.”
“진짜… 너는.”
“그러니까 날 죽이고 나 대신 세상 좀 구해주라.”
“…….”
형이 검을 높게 들었다. 그리고 내 의식이 서서히 사라져갈 무렵, 가슴팍에 검이 꽂히는 감각과 함께 모든 것이 어두워졌다.
♧♣♧
손에 끔찍한 감각이 느껴졌다. 지언이의 검은 날개가 허공으로 흩어졌다가 깃이 바닥으로 추락했고. 뿔은 언제 자라났었냐는 듯 작아지며 사라졌다. 호박빛으로 변한 눈동자는 본래의 검은 눈동자로 돌아가고, 아득한 공포가 느껴졌던 힘은 완전히 사라졌다.
내가 아는 지언이다.
내가 아는 지언이었다.
“…….”
머리 위에 균열에서 또다시 몬스터가 튀어나오기 시작했다. 주변에서는 고통의 소리가 들려왔다.
“싫어… 이젠.”
“왜 내가 이러고 있어야 하는 거야… 그냥 죽여달라고.”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살려주세요.”
“세상이 망하든 말든! 난 당장 살 거야!”
“…엄마. 아빠.”
그 와중에도 일어나 싸우려는 이는 존재했다. 그러나 그중에 나는 없었다.
나는.
“…….”
네가 이런 기분이었을까. 아주 작은 기적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아주 작은 이변이라도 일어나길 바라는 마음 말이다.
…지쳤다. 몸이든 마음이든. 우습게도 이런 걸 계속 느꼈을 네 몸을 부여잡고. 이런 생각을 한다.
참으로 우습게 느껴지겠지.
‘그래도.’
마지막 부탁을 이루려면, 움직여야 했다. 지키지 못했다면, 그 마음이라도 이어주어야 했다.
난 강하니까. 강하니까. 강해야 하니까.
‘그만 울고.’
일어나서.
이 모든 걸. 끝내야 한다.
왼손 손목에 있던 문양이 안개 흩어지듯 사라졌다. 하얀 반 가면이 얼굴에 씌워졌다가 이내 사라지고. 검은 두루마기의 끝이 불처럼 일렁거렸다. 허리에 묶여있던 끈이 푸르게 변하고. 하체는 검어 그림자조차 지지 않았다.
몬스터 무리 너머. 햇빛을 향해 손목을 비춰보았으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유아한이나 유주한처럼 문양의 몬스터가 말을 걸어오지도 않고, 아주 조용히. 문양은 사라졌다.
‘스스로 잘하라는 건가.’
여전히 팔에 들려있는 지언이를 바라봤다. 문양 개방까지 풀려, 추욱 늘어져 있는 상태였다. 갑자기 활기가 넘친다거나 문양 개방을 할 일은 없을 거다. 아마, 내가 죽을 때까지.
아니면. 평생.
‘회귀도 이변이 생겼다고 했으니.’
그렇기에 나한테 부탁하고 간 게 아닐까. 내가 아닌 본인의 생을 끊은 것도.
걸음을 걸을 때마다 땅에 어두운 그림자가 졌다. 그림자 위에 낙하한 몬스터들이 그대로 빠져 사라졌다. 검을 굳이 쓰지 않아도 손을 움직여 능력을 사용하는 것만으로 수없이 많은 몬스터가 쓰러져 갔다.
“한지운 씨.”
너덜너덜한 지화연이 뒤에서 다가왔다. 내가 고개를 돌자 주춤 뒤로 물러난 지화연이 잠시 당황한 듯 서 있다가 한숨을 내쉬며 물었다.
“한지언 씨는…….”
“…….”
“감사한 게 있는데 전하지도 못했네요.”
“그렇습니까.”
“덕분에 용기를 냈거든요. 결과는 좋았고.”
“…….”
“이야기하지 않아 오해하던 것들을 풀었어요. 그래서 관계도 회복됐고요.”
나한테 하는 말이 아니었기에 굳이 답하진 않았다.
“그래서, 한지언 씨에겐 보답이라도 드리고 싶었는데… 늦었네요.”
“…….”
“한지언 씨가 무언가의 도움을 바라실 것 같진 않지만요. 한지언 씨에겐 지금 제가 말없이 몬스터를 처리하는 게 더 보답이 되겠죠.”
촤악. 지화연이 레이피어를 앞으로 크게 휘둘렀다.
“한지운 씨 문양은 어땠나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냥 사라졌습니다. 아무런 말 없이.”
“그렇구나. 저희 집 문양은 많이 까다로운가 봐요. 말은 많고, 무언가 설득할 만한 행동을 해야 하는 것 같은데. 제 문양은 얼굴만 보고 왔으니… 얼굴에 상처라도 내야 하나.”
“……굳이 말을 안 걸으셔도 됩니다.”
비척비척 상처가 많아 치료도 제대로 되지 않은 상태에서, 내 옆에서 몬스터를 처리하며 말을 걸어왔다. 아마 지언이를 끌어안고 있는 꼴 때문이겠지.
“산 사람은 살 겁니다. 살 거니까 멸망을 막을 거고요.”
“좋네요.”
“…치료부터 하세요.”
“그러는 한지운 씨야말로, 강해지긴 했지만 피는 계속 흐르는 걸요.”
“이 정도는 괜찮습니다. 오히려 있는 편이 낫고요.”
“나을 리가 없잖아요?”
아니. 이게 낫다. 지키지 못해 생긴 상처니까. 일종에… 벌인 거다.
“그나저나, 이상하네요.”
“뭐가 말입니까.”
“균열이 더 커지지 않아요?”
그 말에 천천히 고개를 들어 올렸다. 잘 모르겠다. 신경을 쓰고 있지 않아서.
“이제 정말 끝인 걸지도 모르겠네요.”
끝. 아마 마왕이 나오는 것을 뜻하는 것일 거다. 이 만신창이인 상황에서 마왕이 나오면, 그대로 모두 전멸하겠지. 마왕은 어쩌면 그걸 바란 게 아닐까.
완벽한 승리.
최선을 다해 막을 거지만. 실패할 거다. 으레 지언이가 그랬듯이.
아무리 강해지더라도, 불가능한 것이 있는 것처럼.
‘그래도.’
끝까지 해볼 거다. 온 힘을 다해, 지언이의 부탁이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