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36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36화
자신이 아니면 스승님의 흔적조차 찾지 못할 것이 뻔한데.
올리븐은 두 사람이 자신의 소중함을 모른다는 게 너무 답답하고 서러웠다.
“스승님이 보고 싶어……!”
올리븐은 두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울먹였다.
스승님만 곁에 계셨어도 이런 서러움은 겪지 않아도 됐을 텐데!
“그럼 말해. 스승님 위치가 어디인지.”
벤야민은 서러움에 훌쩍이는 올리븐의 마음 따위는 가뿐하게 무시한 채 말했다.
그러자 올리븐도 이제 본론을 이야기하지 않으면 큰일이 날 것만 같은 기분에 입을 열었다.
“크롬벨 제국이야.”
“제국 어디?”
“그건 모르지.”
올리븐은 어깨를 으쓱해 보였다.
벤야민은 눈을 가늘게 뜨며 올리븐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 뻔뻔한 낯짝 어디에도 숨기는 것 하나 없어 보였다.
“진짜야. 정확한 위치를 파악하지 못할 정도로 반응을 보인 건 아주 잠깐이었어.”
올리븐은 품 안에서 푸른빛을 띠는 마력석을 꺼냈다.
두 개로 갈라진 영혼을 가지고 있는 스승은 제 영혼과 희미하게 이어진 마력석을 만들어 냈다.
그중 하나는 스승이, 또 나머지 하나는 올리븐이 가지고 있었다.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은 지금 이 세계에 있는 스승의 영혼을 상징하는 마력석이었다.
“연구를 시작한 이후부터 스승님께서는 본래의 마력을 사용하지 않으셨잖아? 아주 사소한 마법이라고 해도 저쪽 세계에서 죽어 가게 될 영혼의 마력을 끌어다 쓰셨다고.”
“그게 지금 스승님 위치랑 무슨 상관이지?”
초조한 벤야민의 목소리가 올리븐의 말을 끊었다.
그에 벨루나가 잠시 미간을 좁혔으나 그녀 역시 궁금했는지 별다른 제지를 하지 않았다.
올리븐은 스승의 일이라면 앞뒤 가리지 않고 이성의 끈을 놓아 버리는 두 사람을 보며 크게 한숨 쉬었다.
여기서 제대로 머리가 돌아가는 사람은 그 하나뿐인 듯했다.
“생각이라는 걸 좀 해 봐. 내가 가지고 있는 마력석이 반응하려면 스승님 본래의 마력을 쓰셔야 해. 알아들어?”
“그렇다면…….”
“지금 스승님께서는 본래의 마력을 봉인한 상태야. 무의식적으로라도 본래의 마력을 쓰지 않도록 조절 중이셨다고.”
스승께서 앞으로 다른 쪽 세계에 있는 영혼이 죽을 때까지 이쪽 세계의 마력을 쓰지 않겠노라 맹세했던 것을 깰 정도의 일이 있었다는 것이다.
“잠시나마 이어진 거야. 그쪽과 이쪽의 영혼이.”
벤야민과 벨루나의 표정이 동시에 일그러졌다.
스승과 함께 연구를 진행하면서 그녀가 그들에게 알려 주었던 점이 있었다.
이쪽의 영혼과 그쪽의 영혼이 이어지는 순간은, 몸이 뒤바뀌는 때밖에 없다고.
“6년 동안 그쪽으로 돌아갈 수 없다고 하셨는데 이제 와 이어질 리 없지. 크롬벨 제국에서 스승님께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크롬벨 제국에서 스승님이 대체 뭘 하시는 거지?”
“그건 우리가 알 필요 없지. 너나 나나 벨루나나. 스승님만 찾으면 그만 아니야?”
벤야민은 질척이는 감정을 숨기지 못하고 비아냥거리는 올리븐을 노려보았다.
“올리븐.”
“왜? 내가 틀린 말 했어?”
조금 전까지 다소 들떠 보였던 올리븐의 얼굴이 순식간에 싸늘하게 가라앉았다.
그는 제 손에 들린 마력석을 손이 새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쥐며 말했다.
“우리는 그만한 가치가 없는 거야, 스승님한테. 그저 그 빌어먹을 만큼 복잡한 힘을 연구하는 데 운 좋게 우리가 쓰인 것뿐이라고.”
“스승님을 모욕하는 건 용서하지 않아.”
벨루나의 손에서 은색 마력이 날카롭게 벼려진 채 올리븐의 목덜미에 드리워졌다.
잠깐 스치기만 하더라도 여린 목덜미의 살은 무참히 찢기고야 말 것이다.
하지만 올리븐은 오히려 아무렇지도 않은 얼굴로 어깨를 으쓱하며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서 무슨 생각을 하시는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얼굴을 가지고 어떤 목소리를 가졌는지. 아무도 몰라.”
“스승님은 만일을 조심하신 거다. 특별하신 분이니까.”
“합리화하지 말고 현실을 받아들여. 스승님이 그걸 밝힐 만큼의 가치가 우리에겐 없는 거야. 못 알아들어?”
올리븐은 손에 들린 마력석을 내려다보다가 허탈한 웃음을 내뱉었다.
“스승님께 가치 있는 건 단 하나야. 우리가 연구하던 그 힘. 그 힘의 주인. 난 그걸 찾을 생각이야.”
“…….”
“…….”
벤야민과 벨루나는 은근한 집착이 묻어 나오는 올리븐의 얼굴을 바라보다가 이내 서로를 마주 보았다.
평생에 가까운 세월을 함께 보냈으니 싫어도 알 수 있었다.
저 올리븐이 한번 맛이 가서 폭주하기 시작하면 스승 외에는 말릴 사람이 없다는 것을.
벨루나는 올리븐의 목에 드리웠던 마력을 거두며 말했다.
“스승님부터 찾지.”
“좋은 생각이야. 우리 평화롭게 가자고, 응? 때리지 좀 말고…….”
올리븐은 생긋 웃으며 방금까지 위협당했던 목덜미를 쓸어내렸다.
지질하게 그녀의 눈치를 살살 보면서 하는 말과는 달리 그의 눈빛은 아주 태연하기 짝이 없어서, 벨루나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같잖은 수는 스승님 앞에서나 써.”
“냉정하네 정말! 스승님만 찾으면 너네 다 일러 줄 거야.”
“쓸데없는 소리.”
벤야민은 올리븐의 말을 끊어 버리고는 몸을 돌렸다.
본격적으로 스승을 찾기 전에 준비해야 할 것들이 많았다.
각자의 목적과 각자의 생각을 꾹꾹 눌러 담은 채, 스승을 찾기 위해 드디어 마탑의 제자들이 몸을 움직이기 시작했다.
“…….”
그 모습을 기척을 죽이고 몰래 지켜보던 인영이 하나 있었다.
마탑에서 유명한 대장로의 세 명의 제자들은 평소 작은 이야기라도 새어 나가지 못하게 마력으로 소리를 차단하고 있는 탓에 무슨 이야기를 하는지 파악할 순 없었다.
다만 그들의 표정과 몸짓, 돌아가는 상황을 보면 저들이 곧 무슨 일을 하게 될지는 짐작할 수 있었다.
“대장로님께 알릴까요.”
그는 제 옆에서 심각한 얼굴로 굳어 있는 1장로에게 속삭이듯 말했다.
1장로는 잠시 골똘히 생각하더니 물었다.
“대장로님이 남기고 가신 아티팩트에 메시지를 보내야겠다. 답은 없어도 확인은 하실 테니.”
“알겠습니다.”
그의 뜻대로 대장로에게 메시지를 보내던 마법사는 잠시 생각하더니 1장로의 눈치를 슬쩍 보며 다른 곳에 다른 메시지를 하나 더 보내 두었다.
“…….”
그러자 투닥거리던 세 명의 제자들 중 하나가 이쪽을 돌아보았다.
* * *
햇볕이 내리쬐는 창가에 의자를 두고 앉아 사라는 가만히 시계에 비치는 거울을 바라보았다.
거울에 비치는 햇살이 유독 따갑게 느껴지는 것이 그저 기우에 그쳤으면 좋으련만. 사라는 그렇게 생각하며 느리게 눈을 깜빡였다.
푸르게 빛나는 맑은 눈동자에 거울 위로 떠오른 붉은 글자가 어지럽게 번졌다.
[대장로님의 제자들이 아무래도 크게 일을 터트리려는 모양입니다. 각자 바쁘게 움직이는 것을 보니 마탑 밖으로 나갈 것 같습니다. 이 메시지를 보실지는 모르겠으나, 대비하셔야겠습니다.]사라는 메시지를 남겨 주는 아티팩트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이내 다시 품에 넣었다.
조금 전까지 달게 잔 낮잠으로 나른한 기분에 취해 있었는데, 찬물을 뒤집어쓴 것처럼 정신을 확 차리게 해 주는 소식이었다.
‘그 아이들이 기어코……. 이렇게 빠르게 움직일 줄은 몰랐는데.’
그녀의 미간이 살짝 좁혀졌다. 얼핏 보면 내리쬐는 햇살에 눈이 부셔 그런 것처럼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사라 님, 클로드 님께서 준비를 다 마치셨습니다.”
그런 사라를 유심히 보고 있던 메이는 조심스러운 목소리로 말을 걸어왔다.
그러자 허공을 맴돌던 사라의 시선이 메이에게 가 닿았다.
메이는 한 폭의 그림과도 같다는 생각을 하며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
나긋나긋한 손짓으로 손을 내미는 사라의 모습에 메이는 꿀꺽 침을 삼키며 그 손을 마주 잡았다.
“영식들은 전부 모였니?”
“네. 정원에 자리를 마련했습니다. 클로드 님도 곧 내려가실 겁니다.”
“그래? 서둘러야겠구나.”
사라는 메이의 부축을 받으며 의자에서 몸을 일으켰다.
깊은 잠에 취한 이후부터 그녀는 가끔 이렇게 낮잠을 자곤 했는데, 그럴 때마다 바로 몸을 일으키는 것을 힘들어했다.
잠시 메이의 손을 잡고 몇 걸음을 떼자 거동하는 것이 편해졌는지 사라는 저 멀리 있는 지팡이를 마력으로 순식간에 끌어당겨 손에 쥐었다.
“…….”
편한 슬립 차림이었던 사라의 차림새는 그녀의 손길 하나하나에 천천히 뒤바뀌어 갔다.
실크 소재의 원피스는 순식간에 손님맞이용 드레스로 변하였고, 길게 풀어 헤친 머리카락은 단정하게 끌어 올려져 말끔하게 묶였다.
마지막으로 손에 실크 장갑까지 낀 사라는 언제 낮잠을 잤는지 모를 정도로 완벽한 대외용 모습을 갖추었다.
“가자.”
사라는 자신을 바라보는 메이를 스쳐 지나가며 방을 빠져나갔다.
그 뒷모습을 메이는 마치 홀린 것처럼 바라보았다. 몇 번을 보았지만 평생토록 익숙해지지 않을 것이다.
마법을 이런 일상생활에서 숨 쉬듯이 자연스럽게 구사하는 사라를 볼 때면 그녀가 진정으로 자신과는 다른 세상을 살고 있는 것만 같았다.
그런 존재가 이 암브로시아 공작가에서 겨우 클로드의 유모를 하고 있다는 것이 기적처럼 느껴질 정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