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 is the nanny of the Villain RAW novel - Chapter 56
흑막 남주의 시한부 유모입니다 56화
* * *
“빌어먹을 새끼, 네까짓 게 감히 날 무시해!”
“아, 아닙니다, 황자님. 제가 어떻게 감히……!”
“내가 언제까지 이곳에 있을 거라고 생각하느냐! 난 이 제국의 황제가 될 몸이다! 그런 나를 네까짓 게, 네까짓 게!”
“아아아악!”
1황자가 거처하는 알톤 영지의 영주 성은 언제나 찢어지는 듯한 고함과 비명 소리가 쉬지 않고 들렸다.
오늘도 별반 다를 바 없는 날이라서 알톤 영주 성의 시종 하나가 1황자의 심기를 건든 탓에 매질을 당하는 소리가 울려 퍼지는 중이었다.
“……쯧, 오늘도 누구 하나 죽어 가는군.”
알톤 영지의 영주, 필립 알톤은 그 소리를 들으면서도 혀를 차며 걸음을 마저 옮겼다.
그 뒤를 조용히 따르던 필립의 차남 파웰이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아버지, 1황자를 진정 저대로 내버려 두시렵니까?”
불만이 가득 묻어나는 목소리에 필립은 걸음을 멈추고 물었다.
“그럼 어쩌자는 말이냐?”
“1황자의 행패를 언제까지 저희가 받아 주어야 하냔 말입니다.”
“……그래도 제국의 1황자가 아니냐. 신하 된 몸으로 주인을 모시는 건 당연한 일이다.”
“1황자의 처지를 모르십니까? 그는 이제 끝났습니다. 우리의 주인이 되실 분들은 저기 수도에 있고요!”
“파웰 알톤, 말을 조심하거라.”
“아버지……, 이렇게 1황자의 편의를 봐주다가 누구 눈 밖에 나게 되는지 아시지 않습니까.”
아들이 걱정하는 것이 이 가문과 영지라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필립은 조용히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지금 우리의 주인은 폐하이시다. 그리고 저분은 폐하께서 가장 사랑하는 아들이고.”
“……황제 폐하께서 가장 사랑하는 것이 저 못난 아들일까요, 아니면 이 제국일까요.”
“파웰!”
“아버지도 보는 순간 바로 알아차리지 않았습니까. 1황자는 황제가 될 인물이 못 됩니다! 폐하도 그걸 알기에 가장 사랑하는 아들에게 아직까지 황위를 넘겨주지도 못하고 어영부영하다가……!”
짜악, 하고 뺨을 올려붙이는 소리와 함께 파웰의 몸이 크게 휘청하였다.
필립이 파웰의 뺨을 친 것이다. 파웰은 욱신거리는 제 뺨을 부여잡고 놀란 눈으로 아버지를 바라보았다.
“불충이다, 파웰.”
“…….”
나직하지만 엄중한 말을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 가는 아버지의 뒷모습을 보며 파웰은 입술을 깨물었다.
크롬벨 제국을 향한 저 곧은 충심을 한때 존경했었던 때가 있었다.
하지만 이제 그의 눈에 아버지는 가문보다 저 빌어먹을 황제의 핏줄에 연연하는 나약한 남자에 불과했다.
“이대로 우리 가문이 엉뚱한 줄을 잡게 둘 순 없습니다, 아버지.”
파웰은 휙 몸을 돌려 아버지와 반대로 걸어갔다.
1황자의 방이 있는 쪽이었다.
“살려, 살려 주십시오! 살려……!”
방 안쪽에서는 1황자의 심기를 거스른 시종이 매를 맞는 소리가 한창이었다.
파웰은 얼굴을 와락 일그러뜨리며 주먹을 꽉 쥐었다.
1황자가 황궁에서 데려온 시종들은 대부분 다 초주검이 되어서 시름시름 앓고 있다.
지금 저 매를 맞는 1황자의 마지막 시종까지 앓아눕고 나면 그다음 시중을 들어야 할 것은 알톤가의 사용인이 될 것이다.
‘알톤가의 사람들까지 희생시킬 순 없어. 불필요한 낭비야.’
파웰은 그렇게 생각하며 1황자의 방문을 두드렸다.
“1황자님, 파웰 알톤입니다. 잠시 들어가도 되겠습니까.”
“내가 교육 시간엔 들어오지 말라고 말했을 텐데?!”
“죄송합니다, 급한 일이라…….”
“들어와!”
신경질적으로 대답하는 1황자의 목소리를 들으며 파웰은 애써 표정을 관리하려 했다.
잠시 숨을 고르던 그는 얼굴 만면에 웃는 낯을 꾸며 문을 열었다.
“1황자님.”
“……하아, 무슨 일이지?”
1황자는 한 손에는 채찍을 든 채 땀을 뚝뚝 흘리고 있었다.
알톤 영지에 온 이후로 방 안에 처박혀서 제대로 먹지도 않고 술만 먹었다.
그전에는 우람한 덩치를 자랑했던 1황자라도 그런 생활을 반복하니 살이 쫙 빠져서 꽤나 초췌한 모습이었다.
“멀리서 1황자님을 위해 구해 온 선물이 있다고 해서 말입니다. 특별히 가져와 보았습니다.”
파웰의 말에 1황자는 얼굴을 구기며 대답했다.
“이딴 볼품없는 곳에서 내 격에 맞는 선물을 들여올 수는 있고? 쓸데없는 짓을 했구나.”
아직도 저가 미래의 황제라도 되는 듯이 행동하는 것을 보면 한심하다는 소리가 목구멍까지 차올랐다.
황위 계승권을 박탈당했다는 게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언제든 황제가 마음이 바뀌면 돌아갈 수 있다고 생각하는군.’
이제 앞으로 1황자는 영영 수도의 땅을 밟지 못할 것이다.
황위 계승권을 박탈당했으니, 외국 왕실과 혼인한 황녀가 낳은 아들이 크롬벨 황제가 된다고 해도 그에겐 자격이 없었다.
그것을 알면서도 외면하는 것을 보니 파웰이 판단하기에 1황자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멸망한 왕조에서 숨겨 둔 보물이라고 하더군요.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를 소환한다는데, 아티팩트 같습니다.”
“아티팩트?”
“예.”
파웰은 고개를 끄덕이며 품에서 신비로운 빛을 내뿜는 구슬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았다.
딱 보아도 평범해 보이지 않는 물건은 영지에 있는 베이커의 여관에서 유통되던 것이라고 했다.
베이커의 여관은 영지민들의 삶을 살펴보기 위해 그가 눈과 귀를 심어 놓은 곳이었다.
거기서 신분이 심상치 않아 보이는 상인 하나가 거래를 제안한 물건이었는데, 바로 그에게 보고되었다.
“아시다시피 아티팩트는 그 존재만으로도 귀한 것이 아닙니까. 저희 영지에서 이런 걸 소유하실 만한 분은 1황자님뿐이기에…….”
“당장 내놔!”
1황자는 허겁지겁 테이블에 달려들어 파웰이 내려놓은 아티팩트를 손에 쥐었다.
금방이라도 파웰이 빼앗아 갈 것처럼 경계하는 눈빛이 조급해 보였다.
겨우 이 외곽의 한미한 영지에 제 발로 찾아온 떠돌이 상인이 판 물건이 진짜 아티팩트일지 아닐지 알게 뭔가.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헛웃음을 삼킨 파웰이 두 손을 들어 보이며 말했다.
“아주 원대한 갈망이 있는 자에게만 반응을 한다고 했습니다. 이 작은 영지에 만족하는 저에게는 없는 감정이지요.”
파웰은 그렇게 말하며 구석에서 덜덜 떨고 있는 1황자의 시종을 향해 눈짓을 해 보였다.
시종은 그가 자신을 살려 주려 한다는 것을 깨닫고 조용히 존재감을 지우며 방 밖으로 빠져나갔다.
아티팩트에 정신이 팔려 침을 흘리고 있던 1황자는 제 시종이 나가는 것도 눈치채지 못했다.
“소원을 들어주는 존재라!”
“아티팩트에는 신비한 힘이 깃들어 있다지요. 부디 원하는 것을 얻을 힘이 깃들어 있기를…….”
파웰 또한 고개를 숙여 보이며 방문을 닫고 나왔다.
“……가서 치료부터 하거라. 황실의 시종이면 신분부터가 다를 텐데, 1황자께서도 참.”
“감사,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꼭 갚겠습니다.”
“몸부터 추스르도록.”
“예, 예…….”
1황자의 시종은 절뚝이는 걸음으로 숙소로 돌아갔다.
그 뒷모습을 보며 파웰은 씁쓸한 감정을 꿀떡 삼켜 냈다.
결국 1황자의 시중을 알톤 영지의 사람들에게 맡길 수 없어서 살려 낸 것에 불과했다.
파웰은 더는 1황자에게 볼일이 없는 것처럼 휙 하고 몸을 돌렸다.
1황자는 아티팩트 하나에 눈이 돌아간 듯하니 아마 당분간 화풀이할 시종은 찾지 않을 것이다.
그사이 앓아누운 1황자의 시종들을 제대로 치료하면 다시 시간을 벌 수 있겠지.
“아버지를 설득하고야 말겠어.”
그전에 이 영주 성에서 1황자를 쫓아내고야 말겠다는 결심을 파웰은 다시 한번 더 다졌다.
그래서 그는 1황자의 방 문틈 사이로 신비로운 빛이 쏟아질 듯 새어 나오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아무 생각 없이 그저 시간을 벌기 위해 건네준 물건이 진짜일 수도 있다는 생각은 하지 못한 채.
* * *
“……!”
1황자는 자신이 구슬을 손에 넣자마자 신비한 빛을 뿌리며 빛나기 시작하는 걸 멍하니 보고 있었다.
그 빛에 서서히 녹음을 닮은 색이 스며들더니 이내 복잡한 수식이 어지럽게 빙글빙글 돌며 마법진의 형상을 만들어 냈다.
“하, 하하…….”
1황자는 파웰이 건네고 간 아티팩트가 진짜라는 사실에 실없는 웃음을 내뱉었다.
원대한 갈망이 있는 존재에게만 반응한다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그때, 아티팩트가 더 환한 빛을 내뿜더니 그 작은 구슬에서 엄청난 돌풍이 몰아치기 시작했다.
“헉!”
1황자는 강한 바람을 이기지 못하고 뒤로 나뒹굴었다.
그 구슬을 중심으로 엉망이 되어 가고 있는 방 구석에서 1황자는 서서히 형태를 갖춰 가는 사람의 형상을 보았다.
화려한 문양이 어지럽게 수놓아진 로브를 뒤집어쓰고 있는 사람이었는데, 그의 형태가 완전히 다 갖춰졌을 때 구슬에서 나오던 바람이 거짓말처럼 멈췄다.
“스승님께 선물하려고 했던 건데…….”
구슬에서 소환된 남자는 크게 숨을 내쉬다가 이내 1황자를 발견했는지 신이 잔뜩 난 몸짓으로 다가왔다.
얼굴의 반을 가리는 로브 밑으로 보이는 입이 찢어질 것처럼 웃고 있었다.
“찾았다.”
그는 자신을 멍하니 보고 있는 1황자의 목덜미를 손가락으로 콕 찌르며 말했다.
“너, 그 힘에 당한 적 있구나. 잔재가 남아 있는 게 보여.”
“……!”
그는 마치 뱀처럼 1황자의 귓가에 그가 그토록 원했던 말을 부드럽게 흘려보냈다.
“그 저주받은 힘의 주인이 누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