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129)
제129화
129화. 훈련의 시작(7)
다음 날 오후 훈련장.
루나와 함께 훈련을 시작하려 할 때였다.
“저, 저 왔어요오…….”
레제였다.
훈련장 문을 열며 들어온 그녀가 파들거리면서 이쪽을 향해 다가왔다.
살짝 드러난 오른쪽 어깨에는 치료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그 흔적을 발견한 걸까. 루나가 인상을 살짝 찌푸렸다.
“괜찮아? 하루쯤은 쉬어도 괜찮은데.”
“이, 이 정도쯤은 괜찮아요.”
“……그 상태로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
“괘, 괜찮아요. 평범한 반동은 버틸 수 있으니까!”
“아니야. 오늘은 쉬는 게 좋겠어. 제로, 너도 동의하지?”
쉬는 것에 동의하냐고? 그야 당연히…….
“후후, 이런 잔부상 때문에 훈련을 쉴 수는 없지요. 저도 온몸이 근육통으로 난리인걸요.”
“음음, 맞아. 이놈 말처럼 조금 아프다고 해서 훈련을 쉴 수는…… 어라?”
뭔가 잘못됐다는 걸 깨달은 걸까.
루나가 내 쪽으로 고개를 홱 꺾었다.
“……지금 아픈 애한테 훈련을 시키겠다는 소리야?”
“이제 고작 훈련 둘째 날입니다. 저런 부상 때문에 빠진다면 앞으로도 뻔하죠. 저도 온몸이 아프지만 훈련에 임하고 있지 않습니까.”
“근육통이랑 어깨가 빠진 거랑 같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퍽퍽!
루나가 내 옆구리를 두어 대 때렸다.
근육통에 이어 타박상까지 추가라니.
오늘 훈련을 쉬어야 하는 건 레제가 아니라 내 쪽일 듯하다.
“당장 취소해! 우리 레제한테 휴식을 주란 말이야!”
내가 레제를 괴롭히는 거라고 생각하는 걸까. 주먹이 제법 매섭다.
이러다간 평생 휴식을 취해야 하는 몸이 될지도 모르겠다. 그러니까 그 전에.
“후후, 그럼 어쩔 수 없군요. 내보내는 수밖에.”
“뭐?”
“약속하셨지 않습니까. 함께 다니는 조건으로 훈련에 참여시킨다, 나가고 싶을 시에는 저의 허락을 받고 나간다.”
그날의 약속을 떠올린 걸까.
당황한 루나를 향해 한 발짝 내디디며 말했다.
“후후, 아직 큰 싸움이 벌어지기 전이니, 별문제는 없습니다. 레제 양이 떠나는 걸 허락하겠습니다. 자아…… 전 약속을 지켰습니다. 루나 양도 당연히 그러시겠죠?”
“……치사하게! 하루만 봐줘! 내일부터 열심히 하면 되잖아!”
루나가 이를 뿌득 갈았다.
아아, 여기서 단호하게 거절한다면 저 이가 내 살을 파고들겠지.
하지만 물러설 생각은 없다.
하루가 이틀이 되고, 이틀이 사흘이 되고.
사흘이 평생이 되는 법이니까.
루나가 달려들 태세를 취하고, 내가 다가올 운명에 순응하려던 때였다.
“……했잖아요.”
“응?”
“후, 훈련한다고 했잖아요.”
“레제, 안 해도 괜찮아. 이제 훈련 둘째 날에 불과한걸? 무리할 필요는 없어.”
루나가 고개를 숙인 채 서 있는 레제를 위로했다.
그에 레제가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도, 도움이 될 수 있는 거잖아요? 이, 이런 저라도…….”
“…….”
“루, 루나 양에게 도움이 될 수 있다면…… 해 볼게요. 아, 아니…….”
레제가 고개를 들어 올리며 말을 이었다.
“하, 하게 해 주세요.”
올바른 대답을 찾기 힘들다는 듯, 더듬더듬 내뱉은 말.
하지만 그 속에 담긴 내용은 그렇지 않았다.
‘대단하네.’
당당하게 자신의 의견을 피력하다니.
레제의 소심한 성격을 고려한다면, 이는 엄청난 사건이었다.
‘마도 총의 위력 때문인가? 자신감이 조금 생긴 것 같네.’
자신도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게 기쁜 건지, 아니면 그간 활을 쏘는 게 너무 힘들었던 건지.
무엇 때문인지는 알 수 없지만, 나에게는 잘된 일이다.
‘……뭐, 아슬아슬하게 합격점인가.’
합격을 줄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앙다문 입에서 레제의 의지가 전해져 왔으니까.
심지어 우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다.
커튼 같은 앞머리 때문에 잘 보이지는 않지만…….
소심한 레제가 이 정도로 강력한 의지를 보이다니. 놀라웠다.
‘그새 성장했다는 건가?’
어쩌면 그리 멀지 않은 걸지도 모르겠다.
레제가 우리의 진정한 동료가 되는 날이.
툭툭-.
루나가 팔꿈치로 내 옆구리를 가볍게 두드렸다.
“야, 진짜 내쫓을 거야? 저렇게까지 하는데?”
“후후, 애초에 이런 상황을 만든 건 루나 양 아니십니까. 훈련을 하고 싶다는 아이를 강제로 쉬게 하려 하시다니.”
“그래~ 다 내 잘못이다. 이제 됐지? 그럼 레제는 우리랑 계속 함께하는 거다?”
“뭐, 그렇게 하시죠.”
“좋았어! 레제! 이리 와! 내가 널 구해 냈다고!”
“루, 루나 양! 저 감격했어요! 이, 이런 저를 위해 애써 주시다니!”
루나와 레제가 서로를 끌어안은 채 우정을 느끼기(?) 시작했다.
잘못한 건 루나고, 양보해 준 건 난데 왜 루나한테 고마워하는 걸까?
정상인인 내 머리로는 도통 이해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후후, 우정도 좋지만…… 미리 몸을 풀어 두는 게 어떻겠습니까? 루시아 님이 언제 오실지 모르니까 말이죠.”
“아아, 그래야지. 레제, 괜찮다는 건 알겠지만……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 알겠지?”
“네! 거, 걱정 마세요!”
그렇게 우리 셋은 간단한 체조를 시작했다.
국민…… 아니, 제국민 체조.
근육의 긴장을 풀어 주는 스트레칭 동작으로 가득한 체조였다.
사담을 나누기 딱 좋은 체조라는 뜻이다.
“그런데 우리 레제는 어떡하지? 배울 게 마땅찮을 것 같은데.”
“후후, 루나 양. 주어가 빠져서 무슨 말인지 알 수가 없습니다만.”
“친구라면 이 정도는 알아들어야지! 척하면 척 몰라?”
루나야, 친구는 텔레파시가 가능한 존재를 말하는 게 아니거든?
‘무슨 외계인도 아니고.’
그리고 만약 그게 가능하다면 지금 내 생각 정도는 당연히 읽을 수 있을 거다.
안 그래? 이 바보야?
일순간, 루나의 눈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너 방금 내 욕했지?”
……아무래도 우리 루나는 외계인이었나 보다.
“후, 후후…… 그, 그럴 리가요. 루나 양이 오늘도 아름답다는 생각을 하는 중이었습니다.”
“그런 당연한 걸 뭐하러 생각하는데? 하여튼 너무 예뻐도 문제라니깐.”
잠시 툴툴거리던 루나가 말을 이었다.
“아무튼, 개인 지도 때문에 그래. 우리는 상관없지만…… 루시아 님이 마도 총에 대해 알고 계시려나? 우리 레제한테 도움이 되는 조언을 해 주시면 좋을 텐데…….”
나는 그제야 루나의 걱정거리를 알아차릴 수 있었다.
루시아는 검을 주력으로 사용하지만, 명색이 제국 십검(十劍) 중 하나.
웬만한 병장기 정도는 기사 수준으로 다룰 것이고, 검을 사용하는 루나와 나는 큰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거다.
‘문제라면, 거기에 마도 총은 포함되지 않는다는 거지.’
마도 총이 등장한 지 얼마 안 된 탓도 있지만, 어제 한 손으로 들고 쏜 것만 봐도 그 점을 알 수 있었다.
완전 초보자였다.
목각 인형 두 개를 한 번에 없앤 거?
그건 그냥 압도적인 양의 마나로 그 범위 전체를 날려 버린 것에 불과하다. 게다가…….
‘애초에 레제가 루시아를 가르쳐야 할 수준일걸?’
레제의 사격 실력은 신기(神技)에 가까운 수준이니까.
오히려 루시아가 한 수 가르침을 받아야 할 것이다.
이렇듯 레제는 루시아의 지도를 기대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그렇다고 도움을 받을 구석이 하나도 없는 건 또 아니다.
“후후, 마나를 효율적으로 늘리는 방법을 알고 계실 겁니다. 그것에 대해 조언을 구하죠.”
“아, 그러면 되겠네! 우리한테도 큰 도움이 되겠는걸? 레제는 물론, 우리 셋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걸 떠올리다니. 역시 나는 천재라니깐?”
“……??”
루나야, 네가 말하고도 뭔가 이상하지 않니?
대체 어떻게 하면 그렇게 뻔뻔해질 수가 있는 건데?
“저, 저기요오…….”
체조를 이어 나가던 와중, 레제가 조심스레 웅얼거렸다.
오, 그렇지. 너도 이상하다는 걸 눈치챘구나?
어서 루나의 잘못된 점을 지적해 주렴!
“저, 저기…… 아까부터 무, 무슨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루, 루시아 님이 왜…….”
“응? 어제 오셨잖아.”
“그, 그건 아는데요. 지, 지도라니…… 그게 무슨 말이에요?”
보아하니 루시아와 우리가 나눴던 대화를 하나도 듣지 못했던 모양이다.
그만큼 아팠고, 정신이 없었다는 뜻이리라.
“오늘부터 루시아 님이 훈련을 도와주신다고 하셨거든. 너한테도 도움이 되는 걸 알려 주실 거야. 히힛! 잘됐다. 그치?”
“히, 히이이이익!!”
루나의 살인 미소가 너무 살인적이었던 걸까.
레제의 머리 위에 난 바보털이 빙글빙글 회전하더니, 자지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상자를 꺼내 그 안으로 쏙 들어간다.
“무, 무리……! 무리예요!”
콰앙!
상자 뚜껑을 닫은 레제가 순식간에 자취를 감췄다.
저 빌어먹을 토끼는 갑자기 또 왜 이러는 걸까.
평소에도 그랬지만, 지금만큼 저 머릿속이 궁금했던 적이 없다.
“뭐야! 너 또 무슨 짓 했어! 하여튼 이 변태 자식. 조금도 방심할 시간을 안 주는구나?”
“……대화를 한 건 루나 양입니다만?”
그렇다. 나는 한 마디도 하지 않았다.
레제를 상자에 숨게 만든 범인은 루나라는 뜻이다.
“흠흠! 지금 그게 중요해? 우리 레제를 찾는 게 더 중요하지. 빨리빨리 움직여!”
그렇게 말한 루나가 이곳저곳을 들쑤시기 시작했다.
나에게 빨리 찾으라며 채근하는 건 덤.
화를 내도 이상하지 않은 상황이지만, 나는 전혀 화가 나지 않았다.
‘이게 루나란 아이니까.’
친구의 소중함을 알고 그 무엇보다 아끼지만, 표현하는 것을 부끄러워하는 아이.
그래서 괴롭히는 것으로 애정 표현을 대신하는 아이.
‘어린 남자아이나 할 법한 짓을 하다니…… 하여튼 귀엽다니깐?’
지금 상황만 봐도 그렇다.
“내가 무슨 실수를 한 거지? 웃음이 너무 컸나? 말을 너무 많이 했나? 역시 말투가 너무 싸가지 없었던 걸지도…….”
새로 사귄 친구를 잃기라도 할까 봐 전전긍긍하는 모습.
이게 바로 루나란 아이였고, 내가 화를 내지 않는 이유다.
‘귀여우니까.’
나를 괴롭히는 거?
내 기준에서는 어린아이…… 아니, 성질 사나운 새끼 고양이의 깨물기 정도로 보일 뿐이다.
귀여운 행위에 불과하다는 뜻이다.
그럼 귀엽지 않았다면 어떻게 했을 거냐고? 그야 당연히…….
‘모조리 도륙을 내 버렸겠지.’
콰아아-.
내 손으로 알 수 없는 기운이 모여들 때였다.
[초감각]이 발동했다.근처에 레제가 숨어 있다는 뜻.
주변을 더듬던 나는 머지않아 레제가 숨어 있는 상자를 발견할 수 있었다.
상자를 가볍게 두들기며 물었다.
“후후, 레제 양. 여기서 뭐 하십니까?”
“저, 저 레제 아닌데요? 훈련장에 흔히 있는 상자 138인데요?”
그렇군. 요즘 훈련장에는 말하는 상자도 있는 건가.
그렇다면 그냥 지나갈…… 리가 없지.
뽈깍-.
“후후, 안녕하십니까. 상자 138 양?”
레제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아까부터 대체 왜 이러는 걸까?
내 얼굴이 무서워서는 아닐 테고…… 아, 루나의 살인 미소가 무서워서 그렇구나?
그럴 수 있다. 나도 가끔 루나가 무서우니까. 특히, 얼굴이.
“후후, 루나 양의 얼굴을 무서워하는 마음은 이해합니다만…… 레제 양이 선택한 친구 아닙니까. 싫어도 버티셔야죠.”
“그, 그런 거 아니거든요? 루나 양은 귀엽고 아름답고, 예쁘단 말이에요!”
상자 안에 있는 레제가 소리를 빽 질렀다.
뭐야. 그러면 왜 그러는 건데?
“가, 강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주, 죽는단 말이에요!”
……?
이 참신한 개소리는 또 뭐지?
“후후, 무슨 말인지 모르겠군요. 루시아 님이 레제 양을 왜 죽인단 말입니까?”
“기, 기운으로! 기운으로 죽는단 말이에요! 가, 가까이 있는 것도 힘든데 누, 눈을 마주치기라도 했다간……!”
풀썩-.
그 광경을 상상한 걸까.
레제가 상자 속에서 픽 쓰러졌다.
강한 사람과 눈을 마주치면 죽는다니.
이 정도면 토끼가 아니라 개복치다, 개복치.
내가 아까 뭐라고 했지? 성장했다고?
머지않아 동료가 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했던가?
취소다.
‘이 개복치 토끼 자식…….’
전혀 성장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