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13)
제213화
213화. 영웅의 자격(2)
“더, 더는 못해요오…….”
레제가 풀썩 쓰러졌다.
고작 한 시간 넘게 운동했을 뿐인데 쓰러지다니.
“후후, 아무리 토끼의 체력이 저질이라고는 하지만 이건 심하군요. 어서 일어나십시오.”
“히, 히이이이익!”
상자 속에 머리를 파묻은 레제를 끌어내기 위해 애썼다.
그러자 레제가 필사적으로 발버둥 치기 시작했다.
군단장도 맞는다면 생사를 장담할 수 없을 듯한 매서운 뒷발차기 공격!
그런 공격을 주인인 나에게 가하다니. 아주 건방진 토끼라 말할 수 있겠다.
‘목줄이라도 채워야 하나…….’
반려동물을 교육하는 것 또한 참된 주인의 역할 중 하나.
목줄의 구비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던 때였다.
누군가가 내 귀를 잡아당겼다.
“너 또 변태 같은 생각하지. 그러다 로델린 선배님한테 혼난다.”
성질 사나운 고양이 같은 소녀, 루나였다.
“후후, 그런 생각한 적 없습니다만? 아주 건전한 생각을 했을 뿐입니다.”
“그래? 지금 네가 생각한 걸 내가 너한테 한다고 해도?”
음…… 그럼 루나가 내 목줄을 쥐는 건가?
오히려 좋아…… 가 아니지.
“후후, 아쉽지만 그런 취향이 아니라서요.”
“……이 대화에서 취향이라는 단어가 왜 나오는 건데? 대체 무슨 생각을 한 거야?”
음, 내가 무슨 생각을 했냐고?
그야 당연히.
“후후, 비밀입니다.”
“…….”
내 몸이 루나 쪽으로 기울어졌다. 루나가 내 귀를 아주 강하게 잡아당겼기 때문이다.
“네 변태 같은 생각은 관심 없고, 잠깐만 쉬자. 레제가 힘들어하잖아.”
“기본자세를 반복해서 취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데 한 시간 만에 쓰러지다니. 꾀병에 불과합니다.”
“원래는 10분도 못 하던 걸 생각해야지. 우리 레제는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지금 우리가 하고 있는 건 [플뢰르 가문류]의 다섯 동작이다.
다양한 근육에 자극을 주고, 스탯을 올릴 수 있는 플뢰르 가문의 비기.
우리가 이 동작을 반복하고 있는 이유는 간단했다.
‘큰 수확이 있었거든.’
[정보창] 스킬을 사용, 루나의 스탯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힘 : 43.3]스탯이 정수가 아닌, 소수점이다.
그렇다. 카론이 떠남과 동시에 시작한 ‘플뢰르 가문류의 비기가 이 세계 사람들에게도 적용이 되는가?)’에 대한 실험은 성공적으로 끝난 상태였다.
‘이 세계 사람들에게도 적용된다. 플뢰르 가문류는 혁명이야!’
다섯 가지 동작을 틈틈이 반복한다면, 이 게임이 끝날 때쯤에는 엄청난 성장을 이룩할 수 있을 터.
이 사실을 알아낸 내가 레제를 굴리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개복치 토끼를 근육 토끼로 개조하는 거다!’
스탯이 오르면 근육이 생기고, 근육이 생기면 자신감이 오르고, 자신감이 오르면 전장에서 도망치는 특성이 사라지지 않을까?
-라는 논리적인 생각.
이리 보고 저리 봐도 빈틈이 없는 완벽한 논리였다.
문제라면 루나를 설득하는 게 쉽지 않다는 거?
“후후, 다 레제 양을 위한 일입니다. 성국의 아이들이 온다면, 우수반 경쟁이 더 치열해질 테니까요. 루나 양도 레제 양과 떨어지고 싶지는 않을 거 아닙니까.”
“음…… 그렇긴 하지만…….”
“게다가 듣자 하니, 성직자들은 허약한 토끼를 토막 내는 음습한 풍습이 있다고 하더군요.”
“그런 말은 처음 듣는데?”
당연하지. 내가 방금 지어낸 말이니까.
“후후, 일반인들에게는 알려지지 않은 극비 정보거든요.”
“그런 정보가 극비인 게 더 놀랍네. 그런데 그게 우리 레제랑 무슨 상관인데?”
“예? 그야 레제 양은 토끼니까…….”
“레제는 토끼가 아니라 사람이거든?”
아…… 그러고 보니 그랬다.
생물학적으로는 인간으로 분류되긴 했다.
행동거지는 토끼와 다를 바가 없었지만 말이다.
“아무튼, 잠깐 쉬고 있어. 설득해서 데리고 나올 테니까.”
루나가 상자 속으로 꾸물꾸물 들어갔다.
잠시 후, 고개를 빼꼼 내밀더니 말했다.
“아무튼 성직자 놈들은 걱정하지 마. 레제한테 손댔다간, 내가 물어 죽일 거니까.”
“든든하군요. 그 아이들이 저한테 손을 대도 그렇게 해주실 거죠?”
“그건 생각해 볼게.”
“……?”
뭔가 취급이 다른 것 같은 건 내 착각일까?
그럴 거다. 나처럼 귀여운 아이를 괴롭힌다는 것.
그건 살인과 다를 바 없는 악행이니까!
그렇게 상자 안으로 들어간 루나와 레제를 기다리고 있을 때였다.
[루시아가 놀라운 업적을 달성했습니다.] [루시아의 명성치가 큰 폭으로 증가합니다.] [놀라운 업적이 소수의 사람에게만 알려진 상태입니다.] [누군가가 정보를 통제하고 있습니다. 상승 폭이 제한됩니다.] [놀라운 업적이기에 완전한 통제가 불가능합니다. 점진적으로 루시아의 명성치가 상승합니다.] [현재 루시아의 명성치 : 48,020] [현재 당신의 명성치 : 21]시스템창이 눈앞을 어지럽혔다.
루시아의 명성치가 올랐는데 왜 나한테 시스템창이 뜨냐고?
‘루시아의 첫 번째 제자’ 칭호 효과 때문이다.
스승이 성장할 때는 대가를, 부진할 때는 페널티를 받는 거지 같은 칭호.
‘토벌대에서 한 건 했나 보군. 최악은 피해서 다행이야.’
다른 사람들은 잘 모르겠지만, 일단 루시아의 생존은 확실해 보였다.
시스템창을 하나씩 훑어나갔다.
‘50,000부터가 대륙급이니…… 머지않아 보상을 받을 수 있겠군.’
영웅급, 대륙급, 제국급, 왕국급, 벼룩급.
다섯 단계로 구분되는 명성치 시스템이다.
‘루시아의 원래 명성치가 높았기 때문에 내가 받을 수 있는 보상은 두 개뿐이지만…….’
이 정도 수치면 ‘영웅급’ 보상은 확정이라고 봐도 무방했다.
주어지는 보상이 랜덤이긴 하지만 ‘잠재력 도박’처럼 모든 게 랜덤인 건 아니다.
각 단계에 맞는 적절한 보상이 주어지는 칭호이니, 기대해 볼 만했다.
“…….”
잠시 기다려봤지만, 더 이상의 알림은 뜨지 않았다.
차분히 상황을 정리했다.
지금 알 수 있는 건 토벌대가 승리했다는 것, 루시아가 활약했다는 것, 그리고 루시아가 무사하다는 것뿐.
생존자는? 전투 양상은? 얻어낸 정보는?
궁금한 게 너무 많았다. 하지만 지금 내가 가장 궁금한 건…….
‘볼칸의 생사야.’
사천왕 중 한 명이자, 게임 후반부부터는 감히 손도 댈 수 없는 존재가 되는.
전장의 마에스트로 볼칸.
이제 2장의 초입인 시점이다.
본격적인 스토리가 진행되기도 전에 사천왕 중 한 명을 죽인다?
이것만큼 좋은 일도 없을 거다.
‘스토리가 많이 바뀌긴 하겠지만…… 볼칸의 가치를 생각한다면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야.’
미래의 정보를 알고 있다는 것. 빙의자의 최고 강점이다.
스토리에 변화가 생긴다면 그것만큼 큰 손해도 없을 터.
하지만 이런저런 계산을 때려본 결과, 손해 보는 장사는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
볼칸의 목숨에는 그만한 가치가 있었다.
‘볼칸이 죽는다면, 원래 그가 얻었어야 하는 기연과 신비, 히든 피스를 내가 독차지할 수도 있고.’
차분하게 생각을 정리하던 순간이었다.
[사람들이 사천왕의 존재를 알아차립니다.] [흑마법사들에 대한 사람들의 반감이 엄청납니다.] [온 대륙 사람들이 흑마법사들을 경계하기 시작합니다.] [사천왕의 계획 진행 속도가 크게 늦춰집니다.]긍정적인 말로 가득한 시스템창들.
하지만 나는 미간을 찌푸릴 수밖에 없었다.
‘볼칸…… 살아남은 건가.’
내가 그렇게 생각한 이유는 간단했다.
‘사천왕의 존재를 알아차립니다’라는 문구 때문이다.
만약, 사천왕 중 한 명이 죽었다면, 다른 방식으로 표기됐을 것이다. 예를 들면…… 삼천왕(?)이라거나.
‘아도니스와 엘레스터가 있는데도 실패했다라…… 정보를 더 줬어야 했나?’
볼칸은 똑똑한 캐릭터였다.
사람이 플레이하는 게 아니냐는 말이 항상 나올 정도로 말이다.
스킬과 행동 패턴, 신비, 여기에 다양한 도주 패턴까지.
궁지로 몰았다고 생각한 볼칸이 비장의 수를 하나둘 꺼내며 농락한 일이 너무 많아 모니터를 부순 유저들의 수가 부지기수였다.
‘지금은 2장 초입. 볼칸이 충분한 힘을 갖추지 못한 상태다. 그래서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건데…… 역시 쉽지 않군.’
수백 개의 행동 패턴을 가진 볼칸. 앞으로의 싸움은 쉽지 않을 거다.
하지만, 그놈은 나를 이길 수 없을 거다.
‘그 수백 개의 행동 패턴을 내가 모조리 외우고 있으니까.’
정확히는 796개의 행동 패턴. 그 이하면 이하지, 그 이상은 아니다.
실제로 내가 볼칸을 죽인 횟수만 500번은 가뿐하게 넘을 거다.
문제는.
‘단 한 번의 기회밖에 없다는 것.’
그 타이밍을 놓치는 순간, 볼칸은 영영 잡을 수 없는.
말 그대로 언터처블한 존재가 되어 버린다.
참고로 유저들이 볼칸을 죽이는 데 성공한 건 그 타이밍 딱 한 번뿐이었다.
물론, 볼칸을 죽여도 문제가 끝나는 건 아니다.
‘대륙이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볼칸과 싸우는 시간 동안, 다른 사천왕들이 날뛰는 걸 막을 길이 없다.
살아남은 사천왕들의 활약에 군단장이 강림하고, 대륙은 끝내 멸망의 길로 접어든다.
그럼 최종 보스전까지는 어떻게 갔냐고? 그건…….
‘이러나저러나 멸망하기는 마찬가지거든.’
사천왕과 군단장을 잡아도 최종 보스에게 멸망.
최종 보스를 잡아도 사천왕과 군단장에 의해 멸망.
최종 보스를 잡은 적은 없지만, 설사 잡는다고 해도 대륙의 멸망을 막을 수는 없을 거다.
인간의 멸절(滅絶).
이 게임의 최종장에서 그렇게 말하곤 했으니까.
물론, 유저들은 희망을 놓지 않았다. 그래서 최종 보스에 목을 맨 거다.
최종 보스를 처치한다면, 대륙의 멸망을 막을 수 있을지도 몰라!
-라는 일말의 희망을 품고 있었기에.
‘……나 또한 동참했었지.’
결국 남은 건 나 혼자뿐이었지만.
“…….”
고개를 털며 안 좋은 생각을 떨쳐냈다.
볼칸을 죽이는 데는 실패했지만, 이번 작전이 실패한 건 아니다.
반절…… 아니, 80% 이상의 성공이랄까?
흑마법에는 ‘인간의 생명력’이 필수.
납치와 살인이 필연적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온 대륙의 사람들이 눈을 부릅뜨고 지켜본다?
쉬울 리가 없다.
‘사천왕들은 물론, 흑마법사들의 활동도 억제하는 데 성공했다. 연구와 준비 속도도 상당히 더뎌지겠지.’
어쩌면…… 사천왕과 군단장 모두를 막아낼 수도 있지 않을까?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침착하자. 세세한 계획을 짜는 건 나중의 일이다.
카론의 보고를 들은 후에 계획을 짜도 늦지 않는다.
물론, 카론이 죽었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인간이 죽을 거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단 말이지.’
카론은 살인 전차니까.
살아남았을 거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나저나…… 얘네는 왜 이리 안 나와?’
스탯이 올라가는 [플뢰르 가문류].
이걸 이용해 성장한다면, 루나와 레제 모두 영웅이 될지도 모른다.
그만큼 사기적인 스킬이었다.
루나와 레제가 들어간 상자. 그 위를 살짝 들췄다.
쌔액 쌔액-.
……잠들어 있었다.
루나는 대(大)자로, 레제는 웅크린 채로 말이다.
짜증이 나기보다는 피식하고 웃음이 먼저 흘러나왔다.
‘영웅이라…….’
일단.
이 귀여운 애들은 무리인 걸로.
* * *
“이야아아아아!!”
전장에 루시아의 외침이 울려 퍼졌다.
엘레스터의 ‘포스’ 마법의 도움을 받아 하늘을 날던 루시아.
그녀는 문득 이상함을 느낄 수 있었다.
“어라?”
땅이 점차 가까워지고 있었다. 그것도 엄청 빠른 속도로.
“쿠웩!”
얼굴로 무사히(?) 땅에 착지하는 데 성공한 루시아.
하지만 아직 루시아의 시련은 끝나지 않았다.
화륵-!
“끄악!”
성검이 불타올랐다. 손을 잡아먹을 듯 불타는 성검.
루시아는 결국 성검을 집어던질 수밖에 없었다.
“아뜨뜨! 뭐야! 왜 또 불타는 건데?”
거부 반응이었다.
조금 전, 성검의 인정을 받은 루시아다. 그런데 거부 반응이라니.
성검이 미치기라도 한 걸까?
아도니스가 성검을 주워들었다. 이번에는 불타오르지 않았다.
“주인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
2대 성검 듀란달.
힘의 대부분을 잃었지만, 명색이 성검이라는 걸까.
주인을 가렸다.
“주인이 있는 성검을 일시적으로나마 사용했다라…… 흥미롭군.”
역사적으로도 없었던 일. 그걸 루시아가 해내다니.
아도니스는 진심으로 감탄했다.
“이상하네. 할배보다는 젊고 예쁜 내가 나을 텐데. 이 기회에 나한테 넘기는 게 어때?”
“나도 그게 올바른 판단이라고 생각하긴 한다만…….”
“한다만?”
“네가 듀란달의 인정을 받았을 때의 이야기다.”
“한 번 인정받은 거 두 번이라고 못 받을까. 걔도 젊고 예쁜 내가 주인이 되기를 바랄걸?”
“그랬으면 좋겠다만…….”
아도니스가 성검을 던졌다.
루시아는 어렵지 않게 성검을 받을 수 있었다. 그리고…….
파지직-!
“끄아아아아악!”
성검이 전기를 뿜어냈다.
감전된 루시아는 땅을 길 수밖에 없었다.
“이, 이 빌어먹을 놈이!”
루시아가 성검을 발로 밟기 시작했다.
하지만 성검은 멀쩡했다. 생채기 하나, 먼지 한 톨 묻지 않았다.
아도니스가 걸어가 성검을 회수했다.
“축하한다, 루시아.”
“……비꼬는 거야?”
“그럴 리가. 넌 못 느끼겠지만, 영웅의 자격을 충족했다. 이 성검은 무리겠지만, 다른 성검은 쥘 수 있을 게야.”
아니, 어쩌면.
‘내가 죽는다면…… 듀란달의 주인이 될지도 모르겠군.’
하지만 구태여 그런 말은 꺼내지 않았다.
듀란달이 힘의 대부분을 잃은 상태이기도 했지만, 다른 성검을 찾아 손에 넣는 게 제국의 큰 이득으로 돌아올 것이기 때문이다.
“루시아…… 고생 많았다.”
엘레스터였다. 안색이 새하얬다.
루시아가 다가가 그를 부축했다.
“괜찮으세요?”
“그래. 넌 괜찮으냐?”
“보다시피요. 본 드래곤? 저런 거 한두 마리는 더 잡을 수 있을 것 같달까.”
엘레스터가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은 몰라도, 미래의 루시아라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
고개를 든 엘레스터의 시야에 본 드래곤의 뼈가 가득 찼다.
언데드. 고통을 느끼지 못하며 체력의 손실도 없다.
같이 싸우던 아군마저 적이 되어 돌아온다.
‘……최악의 적이 나타났구나.’
빠지직-!
엘레스터가 마나를 이용해 본 드래곤의 뼈를 박살 내기 시작했다.
과거의 망령을 박살 내고, 아픔에서 벗어나는 과정.
하지만 그는 알 수 있었다.
새로운 아픔이 다시 생길 거라는 걸.
“루시아, 전쟁이 일어날 거다.”
네가 겪은 전쟁과는…… 아니, 우리가 겪었던 전쟁과…….
“비교도 되지 않는 끔찍한 전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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