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 the academy's narrow eye, but i'm not evil RAW novel - Chapter (225)
제225화
225화. 제3의 세력(11)
“저놈들 좀 봐. 맨바닥에 엎드리다니.”
“예절이라는 걸 모르는 건가?”
몇몇 아이가 기도하는 성국의 아이들을 비웃으며 지나쳤다.
“쯧쯧, 주제를 모르는 것들. 기도가 뭔지는 아는지 모르겠군.”
“내버려두자고. 설칠 수 있는 것도 지금뿐일 테니까.”
며칠간 의미 없는 신경전이 이어졌다.
선생, 교관, 수상할 정도로 쓰레기통을 아끼는 로델린 등.
지켜보는 눈이 많아 대놓고 충돌할 수 없는 탓도 있었지만, 서로의 실력을 가늠하는 탐색전의 시간인 탓도 있었다.
“언제까지 지켜만 봐야 하나…….”
“건방진 놈들…….”
동시에 서로에 대한 분노를 키우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었다.
‘슬슬 시작되겠군.’
두 번째 에피소드의 시작을 알리는 첫 스토리이자, 빅토리아와 주인공인 알렉스가 서로의 존재를 인지하게 되는 사건.
‘교류회’의 시간이 다가오고 있었다.
알렉스뿐만 아니라 테르온과 유리디아의 심경에도 큰 변화를 주는 게 바로 이번 교류회 에피소드다.
유저에게는 주·조연과 인연을 맺을 수 있는 기회도 주어졌기에 꽤 바쁘게 활동해야 하는 에피소드이기도 했다.
하지만.
“하암~.”
난 늘어지게 하품하기 바쁠 뿐이었다. 딱히 할 게 없는 에피소드였기 때문이다.
‘테르온파, 유리디아파, 그리고 빅토리아파.’
교류회는 저 세 개의 세력 중 어디 한군데에 소속되어 있어야 참여할 수 있는 에피소드다.
나는 어느 세력에도 속해있지 않은 상태이니, 교류회 에피소드는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
‘알렉스와 레이몬은 어쩌다 보니 끼게 되지만…….’
그건 그들이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그에 비해 나는 커스텀으로 만든 엑스트라 캐릭터.
어느 세력에 속해있지 않은 지금 같은 상황에서 교류회에 끼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
‘참여하지 못해도 손해는 아니야. 오히려 이득이지.’
교류회의 결과를 알고 있기도 하지만, 주·조연 캐릭터와 거리를 두어야 하는 나다.
자동으로 나를 배제하고 진행되는 에피소드이니, 이것만큼 편안한 에피소드도 없었다.
‘중요한 건 다음 에피소드니까…… 그때까지 훈련하며 힘을 비축해 둬야지.’
이다음에 진행되는 ‘파견’ 에피소드.
그걸 준비하고 있는 나에게 참여할 수도 없는 교류회 에피소드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괜히 아도니스의 의심을 사고 싶지도 않았고 말이다.
“저것들이…….”
“건방진 놈들!”
아무튼, 분위기를 보아하니 정해진 스토리대로 잘 진행되고 있는 것 같았다.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끼익!”
레제가 신음을 흘림과 동시에 발을 헛디뎠다.
그런 레제를 루나가 부축했다. 동시에 고개를 뒤로 돌렸다.
저 멀리 복도 끝. 아도니스가 서 있었다.
“저 어린놈의 자식이 또……!”
눈에 불을 켠 루나가 그곳을 향해 달려갔다. 하지만 아도니스는 이미 사라지고 없었다.
“으아아아아! 진짜 미치겠네!”
며칠째 이어진 반복 행동. 루나가 발광하는 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보는 것처럼 아도니스는 레제를 눈빛으로 공격(?)한 후 도망치는 행위를 반복하고 있었다.
‘아도니스의 의심’이라는 여섯 번째 퀘스트가 진행 중이니, 아도니스가 내 뒤를 쫓는 건 이상한 일이 아니다.
‘하지만 내가 아니라 레제를 노리는 것 같단 말이지…….’
뭔가 실험을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레제에게서 뭔가를 느낀 걸까?
“레제, 괜찮아?”
“괘, 괜찮아요. 자, 잡아줘서 고마워요.”
“어휴, 저 빌어먹을 꼬맹이 자식. 관심을 폭력으로 드러내다니. 이래서 남자란 것들이란…….”
“후후, 관심을 폭력으로 드러내는 건 루나 양도 마찬가지…… 커억!”
나는 허리를 굽힐 수밖에 없었다. 아니, 자동으로 허리가 굽혀졌다.
루나가 내 배에 정권을 꽂았기 때문이다.
“그건 무슨 의미일까? 설마 내가 너한테 관심을 갖는다는 말도 안 되는 얘기는 아니겠지?”
“후후, 아니라면 다행이고요. 그보다…… 다시 폭력적으로 바뀌셨군요. 예전으로 돌아가기로 한 겁니까?”
“……미안. 하지만 짜증 나잖아. 저 어린놈은 계속 레제를 괴롭히지, 너는 참으라고만 하지. 열불 나서 살 수가 없다고!”
루나가 발을 동동 굴렀다.
내가 루나를 막은 이유는 간단했다.
아도니스와 루나가 싸워봤자 결과가 뻔하기도 했지만.
‘아도니스에게 더 큰 의심을 사는 건 사양이거든.’
‘퀘스트 포기’라는 수가 있긴 하지만, 아도니스는 번개와도 같은 속도를 자랑하는 캐릭터다.
내가 퀘스트 포기를 선언하는 것보다 빠르게 내 목을 잘라낼 수도 있다는 뜻이다.
퀘스트 해결의 실마리를 아직 발견하지 못한 상황.
이런 상황에서 괜히 아도니스를 건드리고 싶지는 않았다.
“저, 저는 괜찮아요. 이, 이런 괴롭힘은…… 이, 익숙한 일이니까요.”
“레제…….”
“후후, 괜찮다는군요. 그러니 루나 양도 이만 신경을 끄시는 게…… 끄아악!”
루나가 내 등에 올라타더니 머리를 마구 물어뜯기 시작했다.
음,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랐다. 예전에는 이런 게 일상이었는데.
물론, 다시금 돌아가고 싶지 않은 일상이었다.
뭔가 생각났다는 듯, 손가락을 들어 올리며 말했다.
“걱정 마십시오. 곧 교통 정리에 들어갈 테니까요.”
“교통 정리?”
“예. 유리디아 양도 그렇지만, 테르온 군은 특히 이런 불필요한 체력 소모를 싫어하거든요.”
성적에 따라 세력의 위계질서가 잡히는 앤우드 아카데미의 우수반이다.
테르온파가 주도권을 쥐고 있지만, 유리디아파도 중도층을 흡수해서 세력을 불린 현재.
중간고사 때 우열을 가릴 생각을 하며 힘을 비축 중이었는데 ‘성국의 파견’이라는 변수가 발생했고.
생각보다 훨씬 큰 빅토리아파의 등장으로 인해 삼파전이 되고 말았다.
서로의 실력을 모르다 보니 학기 초처럼 시끌시끌한 게 바로 지금 우수반의 상황이었다.
“테르온 군이 곧 행동에 들어갈 겁니다. 그러니 조금만 참으시죠.”
“흐응~ 그래? 하긴 그렇지. 그놈이 참는 성격은 아니지.”
잠시 만족의 웃음을 흘리던 루나가 얼굴을 불쑥 들이밀었다.
“근데…… 친해 보인다?”
“예?”
“말하지도 않고 생각을 공유한 거잖아. 둘이 언제 그렇게 친해졌대?”
루나의 눈이 희번덕거렸다.
음, 정상적인 눈빛이 아니다.
원래도 그랬지만 지금은 더욱 비정상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그, 그런 일이 있었습니다. 밤에 산책하다가 우연히 만났거든요. 말하지 않고 생각을 공유한 게 아니라, 대화를 해서 안다는 뜻이죠. 하하하!”
“산책을 했어……? 밤에 단둘이……?”
루나의 동공이 위로 밀려 올라가더니 사라졌다.
그날 나는 다시금 떠올릴 수 있었다.
루나가 스토커라는 기억을.
* * *
다음날.
파지직! 파직!
불꽃 튀는 세 세력의 신경전.
그리고.
“끼익!”
오늘도 물리치료…… 아니, 전기치료를 받는 레제까지.
오늘도 변함없는 일상이 이어졌다.
“으으! 더 이상은 못 참아! 오늘이야말로 박살을 내주겠다고!”
아도니스를 향해 달려가려는 루나의 목덜미를 붙들었다.
루나와 내 목숨을 영위하기 위함도 있지만…….
‘이 공기, 이 위치, 이 시간…….’
감이 팍팍 왔기 때문이다.
오늘이 바로 교류회가 펼쳐지는 날이라는 감이.
“이거 놔! 저 꼬맹이 자식! 죽인다아아아!”
루나의 할퀴기 공격을 얼굴로 받아내던 때였다.
이 게임의 주인공이자 1파티 멤버. 알렉스와 레이몬이 우리 곁으로 다가왔다.
“레제는 괜찮아? 많이 아파 보이는데…….”
“마, 마귀할멈이 괴롭힌 게 분명해요.”
얘들아, 루나가 내 얼굴에 내는 상처는 안 보이니? 왜 다들 레제만 걱정하는 건데!
의자에 털썩 앉은 루나가 허리를 숙이더니, 양손으로 얼굴을 감쌌다.
필사적으로 화를 억누르고 있다는 뜻이었다.
“하아…… 둘 다 꺼져. 폭발하기 일보 직전이니까.”
“뭐, 뭐라고요? 그 더러운 성격에서 더 더러워질 수 있다는 건가요? 루나는 정말 대단해요!”
“…….”
양손으로 얼굴을 감싼 채 화를 참아내고 있던 루나.
그런 그녀의 양손이 얼굴에서 떨어졌다.
음,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표정이다. 굳이 표현하자면 악귀 같다고나 할까?
“죽어랏!”
“크엑!”
레이몬에게 스터너를 갈겨 쓰러트린 루나가 그대로 공격을 이어갔다.
허리가 뒤로 꺾인 채 절규하는 레이몬.
그런 우리를 향해 누군가가 다가왔다.
테르온과 유리디아였다.
동시에 테르온파와 유리디아파의 아이들이 우리를 에워싸기 시작했다.
이상한 일은 아니다. 그들의 뒤에는 늘 추종자들이 뒤따랐으니까.
하지만.
‘……뭔가 이상한데.’
나는 뭔가 일이 잘못되어간다는 걸 깨달을 수 있었다.
“저…… 루나 양?”
“죽어! 죽어!”
“사, 살려주세요!”
“히, 히이이익!”
꼴까닥-.
루나는 레이몬을 두들겨 패고 있지, 레제는 몰려오는 인파에 정신을 잃었지, 아이들은 우리 주변을 점점 둘러싸지.
난장판이 따로 없었다. 하지만 그 와중에도 스토리는 착착 진행되고 있었다.
‘교류회’ 에피소드의 시작점.
테르온과 유리디아의 대화가 시작된 거다.
“유리디아, 저놈들이 이대로 설치게 놔둘 생각이냐?”
“어쩔 수 없잖아요. 지켜보는 눈이 워낙 많으니…… 뭐 좋은 수라도 있나요?”
“좋은 수는 아니지만, 최악의 수는 알고 있지.”
빅토리아파가 중간고사에서 1위를 차지하고, 그 세력을 늘리는 것.
테르온파와 유리디아파가 지지 세력을 잃고, 학생회장 자리를 빅토리아가 차지하는 것.
“앤우드 아카데미의 학생회장 자리를 외부인에게 넘길 수는 없지. 그렇지 않나?”
“……그래서 어떻게 하자는 거죠?”
“힘을 합치는 게 어떤가? 저 빅토리아파를 부술 때까지, 단기 동맹을 맺는 거야.”
그 콧대 높은 테르온이 먼저 동맹을 제의하다니.
유리디아의 눈이 커지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래도 테르온파 놈들은 저렇게 건방지지는 않았지.”
“유리디아파가 귀찮게 굴긴 해도 틀린 말을 하지는 않았어.”
심지어 여론도 좋았다.
사실 유리디아파로서는 거절할 이유가 없었다.
최근 세력을 확장하긴 했지만, 테르온파에 밀리는 건 분명한 사실이었기 때문이다.
거기다 빅토리아파의 실력은 모르지만, 인원수로 밀리는 것 또한 분명한 사실이었다.
세 개의 세력 중 가장 약소한 세력. 그게 바로 유리디아파라는 뜻이다.
“적의 적은 아군이라는 말이군요.”
“그렇게 생각해도 무방하다. 너희와 손잡기는 싫지만…… 제국 출신도 아닌 놈들에게 무시 받는 건 더 싫군.”
“뭐, 동감하는 바예요. 그래서…… 좋은 수라도 있나요? 아시다시피 중간고사 전까지는 서열을 정할 방법이 없잖아요?”
테르온이 유리디아에게 귓속말을 시작했다.
잠시 후, 유리디아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를 표했다.
“협상은 나한테 맡겨라.”
“좋아요. 언제 시작하실 건가요?”
“지금 당장이다. 상대에게 생각할 시간을 주는 것만큼 미련한 일은 없지.”
테르온과 유리디아의 대담.
흔치 않은 일이었기 때문일까. 저 멀리서 빅토리아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흐응~ 좋네요. 바로 가도록 하죠.”
테르온과 유리디아가 빅토리아를 향해 걷기 시작했고, 그 뒤를 추종자들이 따랐다.
여기까진 걱정할 게 없었다. 스토리대로 잘 진행되고 있었으니까.
문제는.
“응? 뭐야. 내 몸이 왜 떠 있지?”
“마, 마귀할멈이 결국 마법까지……!”
우리가 사람의 파도에 쓸려 내려가고 있다는 거였다.
마치 그들과 한패인 것처럼 말이다.
바닥에 누워 있던 레이몬, 그 위에 올라타 있던 루나.
알렉스와 나, 심지어 기절한 레제까지.
테르온파와 유리디아파의 아이들이 착실하게 실어 나르고 있었다.
그런 우리가 도달한 곳은 너무나 당연하게도.
“……?”
빅토리아와 아도니스의 눈앞이었다.
정확히 말하자면 테르온과 유리디아가 몇 발짝 앞에 있긴 했지만, 그들과 시선을 마주할 정도의 위치라는 건 분명했다.
그걸 증명이라도 하겠다는 듯, 아도니스가 눈을 번뜩였다.
‘또 무슨 수작이냐? 네놈이 주도한 거겠지?’라는 의미가 가득 담겨 있는 눈빛이었다.
그의 눈빛에 맞서 나도 눈빛을 쏘아 보냈다.
‘전혀 아닌데요. 인파에 쓸려 내려온 선량한 학생일 뿐인데요’라는 뜻이 가득 담겨 있는 눈빛을.
누구나 인정할 수밖에 없는 선량한 눈빛이었다. 그런데.
“쿨럭!!”
빅토리아가 피를 토해냈다. 지병이 도진 거다.
“저, 저 악마가 우리를 노려보고 있다!”
“저주를 걸고 있는 게 틀림없소!”
“빅토리아 님이 당하셨다!”
“모두 신성력을 끌어올려라!”
하아아아압!!
돌아온 건 번쩍번쩍 빛나는 신성력 세례였다.
그렇게 나는 사건의 중심에 떨어지고 말았다. 교류회라는 이름을 빙자한.
싸움터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