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10)
110 사장 면접
이제 구슬을 서 말이나 구해 놨다. 이걸 보배로 만들려면 직원들이 부지런히 꿰면 될 일이다. 그중에서 가장 뺑이 칠 사람은 단연 유재준 이사이다. 우리 복덩이 유 이사!
내가 회의 시작하면서 구슬을 풀어 놓았을 때, 참석자들은 모두 유 이사를 희망 가득한 눈빛으로 바라봤다. 유 이사 입에서 가장 단내가 나야 함을 알기 때문이다.
“유 이사님! 지금도 많이 바쁘시겠지만, 설비 제작에 만전을 기해 주세요. 설비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니, 이사님이 고생 좀 해 주셔야겠습니다.”
“조합 회원사들한테 자동권선기 다 돌리려면 몇 대나 만들어야 하는 겁니까?”
“아무리 못해도 업체당 3대씩은 들어가야 할 겁니다. 넉넉잡고 50대는 봐야겠죠?”
“어휴. 한 달에 끽해 봐야 서너 대 만드는데, 50대를 어느 세월에 다 한담?
“당장 오늘이라도 인원 충원해서 교육 끝나는 대로 배정해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생산부도 여유가 생기면 설비 제작으로 돌려서 돕게 해야죠. 공장장님, 그렇게 해 주실 거죠?”
“아이, 그럼! 우리 유 이사 살게는 해 줘야지.”
공장장이 싱글벙글이다. 태양전기 때부터 죽이 잘 맞았던 절친들이 죽어나는 것이 마냥 좋은 모양이다. 애정이 듬뿍 담긴 저 눈빛. 그 눈빛을 바라보는 유 이사는 자포자기한 표정이다.
“가족들 나주 내려와서 좋아라 했더니, 당분간 줄야근해야겠네요. 하하. 사장님, 야근해도 눈감아 주시죠?”
“그럼요. 꼭 필요한 야근은 얼마든지 하셔도 됩니다. 대신 체력 관리 잘하세요. 바쁘다고 몸 축내 봐야 본인이나 회사에 도움 되는 일 없으니까요. 그리고! 일보다는 가족이 먼저입니다.”
유 이사가 이번 전투의 핵심 멤버다. 만들어야 할 설비가 산더미다. 지금도 안성파워에 넘길 자동권선기 만드느라 끙끙거리고 있는데, 내가 왕창 일거리를 물어 왔으니 죽을 맛일 것이다.
그것뿐이랴. 자재 생산량 늘리는 것도 설비 없이는 불가능하다. 죄다 유 이사 손을 거쳐야 한다. 산더미를 허물었더니 또 산더미가 나온 형국이다. 미안하지만, 어쩔 수 없다. 올해도 두둑한 성과급 맛을 보여 줄 수밖에.
유 이사 옆에 앉은 김신우 이사가 뭔가 부지런히 메모를 한다. 회의 끝나면 회의록과 별도로 자신이 정리한 내용을 인트라넷에 올리는 꼼꼼한 사람답다. 눈에 들어왔으니 일 잔뜩 시켜야겠군.
“김 이사님은 ODI 공장 완공하기 전까지 설계 업무 잘 챙겨 주세요. 기존 설비들 개선할 부분이 적지 않을 테니까 설계진 잘 다독여 주시구요.”
“김 이사님! 자동권선기를 자동으로 만들어 주는 설비는 못 만듭니까?”
유 이사의 푸념으로 회의 분위기가 화기애애해진다. 그런 기계 있으면 참 좋겠네.
“최 부장 갈궈서 뭐라도 만들어 볼까요? 하하. 암튼, 사장님. 뭐든 빨리 설계해서 유 이사 고생 안 하게 하겠습니다. 이거 아몰퍼스 코아 만들러 왔는데, 설계에 파묻혀 있네요.”
“아몰코스 코아 생산은 어디까지 진행됐습니까?”
“설비 제작 마무리되고 있으니까, 이달 말까지는 시제품 나올 것 같습니다.”
“고생 많으셨습니다. 앞으로 업체에서 찾아와서 기술미팅하자고 할 테니, 잘 처리해 주세요.”
코아 기술자로 데려온 김 이사가 이제는 설계 총괄자로 제몫을 다 하고 있다. 설계진들 군만두 먹이면서 신명나게 설계를 뽑아내는 중이다.
이제 하늘에서 뚝 떨어진 신통한 기술이 아닌 이상, 자체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수준까지 올라왔다. 문자님은 여전히 고마운 분이지만, 문자님 의존도를 조금이나마 낮출 수 있다는 사실이 나를 뿌듯하게 만든다.
저기 얌전히 앉아 있는 황미연 사장이 눈에 들어온다. 얌전히 있다가도 발언권만 주면 불을 내뿜는 두 얼굴의 아마조네스.
더부살이 중인 황 사장은 기대한 대로 새 회사 ODI를 잘 이끌고 있다. 관리라는 것이 항상 평상심을 유지해야 하는데, 늘 차분하면서도 때론 과감하게, 그러나 선을 넘지 않는 절묘한 수준을 잘 지키고 있다.
“황 사장님. SPRD는 4월부터 납품 차질 없도록 해 주시고, 코아 판매도 곧 이뤄지니까 자재 관리며 납품이며, 신경 써 주세요.”
“네, 알겠습니다. SPRD는 지금 계속 생산 중인데, 아무래도 공장을 빨리 지어야 할 것 같아요. 공간이 턱없이 부족하네요. 코아도 본사 공급하기 벅찬데, 생산량을 늘리려면 역시 공장이 있어야겠죠?”
이럴 줄 알았으면 처음 회사 세울 때 만 평 정도 분양 받을 걸 그랬다. 돈만 있었다면 말이다.
3천 평이면 너무 큰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 정도는 해야 된다고 큰소리쳤지만, 지금은 오히려 부족한 형편이다.
회사가 너무 빨리 커 버리니 성장통이 꽤 아프다. 허벅지에 튼살 남지 않도록 크림 부지런히 발라 줘야겠다.
“2월 초에 공장 착공하니까 빠르면 4월 중에는 완공되겠죠. 공장 완공되면 시원하게 만들어 주세요.”
“계약 체결 후 5개월이 지나야 토지 이용 가능하다는 조항은 어떻게 변경이 안 된대요? 제가 혁신산단에 찾아가서 따져 볼까요?”
“하하. 저도 이 공장 세울 때 몇 번을 얘기했죠. 절차가 그래서 안 된다고 하더라구요.”
늘 우리를 도와주려고 하는 혁신산단 이정용 과장이 안 된다고 하면 그냥 안 되는 것이다. 아무리 내 사업이 급해도 절차를 무시하면 양아치 같은 놈들의 먹잇감만 되는 것이겠지.
“공장 완공까지 석 달만 기다리면 됩니다. 황 사장님도 아시겠지만, ODI도 아주 빠르게 성장할 테니까 준비 단단히 해 주세요.”
“준비야 다 됐죠. 할 건 많은데, 공장이 없으니 답답하네요.”
황 사장 눈이 돈 벌겠다는 의지로 이글거린다. 저런 욕망 가득한 눈빛, 아주 좋다. 저 눈빛이 다른 직원들에게까지 확산됐으면 좋겠군.
할 얘기 다 하니, 공장장이 공백을 헤집고 들어온다.
“다들 알아서 잘하니까 나는 뭐 할 것이 없네 그려. 허허.”
“공장장님은 저랑 바둑이나 두실랍니까? 이러니저러니 해도 공장 이것저것 챙기고 신경 쓰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죠.”
“나야 뭐 바둑판 훈수꾼처럼 돌아다니면서 잔소리하는 것 말고 더 있나?”
“하하. 변압기 생산이야 이제 걱정할 것은 없고, 외함 제작만 신경 써 주세요. 조합 회원사들하고 외함 공급 계약 맺으면, 못해도 월 만5천 대씩은 뽑아야 합니다.”
“내가 유 이사 닦달해서 설비 빨리 만들라고 할 테니 염려 말어. 설비만 추가되면 몇 십만 대고 만들어 낼 테니까.”
공장장이 채찍을 꺼내 유 이사에게 휘둘렀다. 누구한테 얘기해도 결국 유 이사로 귀결된다. 일복 터진 유 이사님, 군만두 맛있게 잡수시길.
전달할 내용은 다 전달했고, 서로 할 얘기도 충분히 했다. 두 사람만 빼고.
“오늘 회의는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서로 소통 잘하시면서 일 진행에 차질 없도록 해 주세요. 그냥 말만 하기 그렇다 싶으면 나가서 맛있는 것 사 드세요. 회식비는 얼마든지 드리겠습니다.”
“회식할 시간이나 주고 회식하라고 해야지! 하하.”
“갈 길이 아직 멀어서 그러니 좀 이해해 주세요. 여름부터는 수출도 본격적으로 진행할 생각이니까, 미리 각오 단단히 해 두세요.”
수출 얘기까지 꺼내니 일벌레, 일귀신들 입에서 곡소리가 흘러나온다. 월급 인상과 성과급 맛을 봤으니, 흘러나온 곡에서 단맛이 날 것이다.
“수출은 전에 얘기한 대로 중국으로 할 생각인가?”
“네, 공장장님. 중국 수출만 자리 잡으면 동남아나 동유럽, 아프리카 등등 다른 지역은 껌이죠. 봄 되면 관수 물량 줄어드니까 바로 추진해서 일 좀 받아 오겠습니다.”
“이거 한 달에 만 대 만드는 것으로는 어림도 없겠는데?”
“저도 그럴 거라고 생각은 합니다. 그래도 수출이 어떻게 될지 모르니 섣불리 캐파 늘리기는 그렇고, 일단 준비만 하면서 봄까지 기다려 보시죠. 계획을 가지고 있는 것이랑 아닌 것은 차이가 크지 않겠습니까?”
“일이 엄청 많은데, 이상하게 힘들지가 않단 말이야. 자, 자, 회의 끝났으니까 가서 곡소리 나게 일들 해 보자고.”
“그래요. 곡소리 나도 즐겁게 일하자구요. 상무님과 한 부장은 할 얘기 더 있으니까 남아 주세요.”
회의 한다고 붙잡아 둔 직원을 서둘러 내보냈다. 바쁜 사람들 붙잡고 교장 훈화 말씀 하는 회의는 빨리 끝내는 것이 좋지.
회의가 끝났는데도 할 말이 있다고 붙잡아 놓은 상무와 덕준이가 무슨 영문인지 모르겠다는 표정이다. 그것도 잠시, 이 상황을 즐기기 시작했다. 타고난 영업쟁이‘들’.
“사장님, 우리 이러다 대기업 되는 것 아닌가 모르겠어?”
“상무님이 더 분발해 주셔야 대기업 되죠! 올해는 민수 60억 매출 충분히 가능하죠?”
“그럼! 가격 만 원만 내려도 사방에서 주문이 쏟아지는데, 일도 아니지. 난 요새 전화 상담원 된 것 같어. 전화가 어찌나 많이 걸려 오는지 원.”
“부럽습니다, 상무님. 전 요새 자재업체들 죽는소리 듣느라 제가 다 죽겠습니다.”
덕준이가 진득한 푸념을 내던진다. 큼직한 자재들을 자체 생산으로 돌렸으니, 기존 거래업체들이 온갖 아쉬운 소리를 다 하는 중이다.
안타깝기도 하지만, 사업의 세계는 냉정하지 않나?
자재업체들 지금껏 땅 짚고 헤엄치면서 돈 벌었으면, 그에 상응한 노력을 했어야지. 자재 품질은 그대로인데 단가만 매년 오르니, 내가 돈을 얼마나 퍼다 줘야 하는가!
외함 제작했더니 구입 가격의 절반도 안 되더라. 물론 문자님이 주신 외함 제작 설비 덕이 컸지만, 그래도 너무 많이 받아먹었다.
아마 태진기업 김 사장은 대어를 놓쳤다는 생각에 이불 걷어차고 있을 것이다. 태진기업은 프라임일렉트릭이라는 거물 거래처를 잃은 것만으로도 큰 타격을 입었다.
그걸로 족할 내가 아니지. 우리 회사에 가래침을 뱉고 갔는데 말이야. 태진기업이 담당하는 거래처 네 곳 중 우리 조합 회원사가 두 곳이다. 거기가 우리로 넘어온다. 얼마나 비싼 가래침 뱉었는지 계산해 보시라.
“우리 한 부장 고생이 많다. 근데 이를 어쩌나. 할 일이 또 많은데?”
“일신우일신이로다. 늘 각오하고 있수다.”
“한 부장, 너 인마. 난 혼자서 영업 뛰면서 몇십억씩 받아 오는데, 뭐 죽는소리야! 사장님이 사람까지 뽑아 줬잖아?”
“상무님, 저랑 일 바꿔서 해 보시겠습니까? 진짜 이 일은 많기만 하지, 티도 안 난다니까요. 이러다 일에 파묻혀 총각으로 죽게 생겼어요.”
레드군단 무찌르고 도망치는 와중에 결혼 걱정하던 클리닝도 아니고. 걱정 마, 총각으로 죽게 내버려 두진 않을 테니까!
“오호? 한 부장 뭐 만나는 사람이라도 있는 거야?”
“상무님, 덕준이가 기자랑 썸씽이 있나 봐요. 저는 함 짜고 있는데, 상무님은 오징어 잡아서 말리시죠?”
“그으래? 기자라면 저번에 취재하러 온 광주시민일보 기자 그 사람이야?”
“네, 맞아요. 상무님도 보셨죠? 둘이 꽁냥꽁냥한 거?”
“어쩐지. 둘이 아주 웃음꽃이 만발하다 싶더니, 그랬구만? 오늘 당장 동해 가서 오징어 잡아 와야겠네.”
맥락 없는 밀어붙이기에 덕준이가 허탈하게 웃고 만다.
“너 인마, 왜 웃어? 그 기자 생각만 해도 웃음이 나와? 막 죽겠어? 결혼 잘 생각해라.”
“아오 진짜. 일거리나 던져 주셔.”
덕준이랑은 원래 그랬지만, 상무하고도 아무 소리를 주고받아도 부담이 없다.
영업쟁이로서 타고난 성격과 50이 넘었음에도 꼰대 냄새 전혀 안 나는 젊은 오빠 감각이 있어서다. 그래서 상무가 참 좋다. 어렸을 때 보약 잘못 먹어 얼굴만 늙어 버린 친구 같다.
“우리 한 부장은 연애하면서 틈틈이 설비 제작에 차질 없도록 부품 수급 제대로 해 주세요. 생산동 2층으로 확장하는 것도 서둘러야 하는데, 이건 내가 할게. 바쁜데 일 나눠서 해야지.”
“아이고, 고맙습니다.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그리고 이제 우리 조합 회원사에서 자재 구매로 사람들 계속 올 거야. 그거 알지? 별것 아닌 걸로 괜히 기분 상하니까, 빈정 상하지 않게 잘 응대해 줘.”
“오케바리. 그건 내 전문이니까 걱정 마셔. 근데 왜 나랑 상무님은 따로 남으라고 했어?”
“그래, 우리한테 뭐 시킬 일이라도 있어?”
이제 본론에 들어갈 시간이다. 두 사람을 남게 한 이유 말이다.
폴리머부싱 만들 회사 태인산업의 사장 자리. 아무리 살펴봐도 후보는 딱 정해져 있다. 이 자리는 그걸 정할 면접 자리가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