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42)
142 니하오
“니하오마?”
포마드 바른 아저씨와 에이전트 케이가 반갑게 인사를 나눈다. 포옹까지 할 정도라니, 꽤 친한 사인가 보네.
“인사 나누세요. 난징삐엔야치 총경리 왕웨이예요. 왕 종이라고 하시면 됩니다. 총경리가 종징리인데, 줄여서 종이라고 하거든요. 우리말로 왕 사장이죠.”
“니하오!”
기름진 풍채만큼 악력도 상당하다. 문화나 관습에 대해 전혀 알지 못하니 관상만 보고 어떤 사람인지 감이 오지 않는다. 협상 잘해서 계약만 하면 되겠지 뭐.
“미스터 왕이 공장을 보여 주겠다고 하네요. 그런데 직원들이 다 퇴근해서 생산하는 모습은 내일 다시 와서 보랍니다. 호호. 여긴 칼퇴가 기본이거든요. 우리가 좀 늦게 오긴 했죠? 간단하게 공장 구경하고 식사하면서 얘기하죠.”
왕 종이 시끄럽게 뭐라고 얘기하는데, 당연히 못 알아먹겠다. 조용히 에이전트 케이를 따라 공장에 들어갔다.
이렇게 쾌적한 공장은 처음 본다. 권선기가 10대 정도 놓여 있지만, 공장이 원체 넓어서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벽에 크게 내건 빨간 플래카드만 눈에 들어온다. 중국스럽네.
“박 사장님. 현장 보니까 역시 생산보다는 외주로 많이 돌리는 것 같네요?”
“그래 보이죠? 공장 크기에 비해 설비가 많이 빈약해 보이네요. 공장이 너무 쾌적해요.”
“권선기가 저 정도면, 건조로가 못해도 3기 정도는 있어야 하는데, 딱 하나밖에 없어요.”
나나 박준희 사장이나 변압기 밥 꽤 먹은 사람들이라 딱 보면 각이 나온다. 변압기는 대부분 수작업이라 설계와 설비만 있다고 해서 나올 수 있는 제품이 아니다.
여긴 변압기 제조 공장이라기보다 유통 창고 같은 느낌이다. 어떤 이유건 여기 난징변압기가 생산에 힘을 쏟지 않는다는 것은 우리에겐 유리한 조건이다. 내가 저 넓은 자리를 변압기로 꽉 채워 드리리다.
“김 사장님, 여기 월 생산량이 어떻게 됩니까?”
에이전트 케이가 내 말을 번역해 전달하니, 왕 종이 한참을 떠든다.
언어 장벽이 있어서 대화하기가 쉽지 않겠네. 덕준이가 난징변압기 직원 앞에서 손짓발짓하며 얘기하는데, 말이 안 통하니 직원은 미소로 화답할 뿐이다.
“주상변압기는 월 4천 대는 만들 수 있다고 하네요. 성수기 때는 생산이 달려서 외주로 돌리기도 하는데, 요즘은 비수기라 대부분 자체 생산으로 충당한다고 해요.”
월 4천 대? 왕 종 저 사람 허세 한번 세게 부리네. 저 정도 설비면 죽어라 해도 천 대도 안 나오겠구만. 시작부터 신경전을 벌이겠다 이거군.
생산 설비, 시험 설비 대충 둘러보고 나니 20분 정도 흘렀다. 공장 모습이야 어디든 비슷하니 유심히 볼 것도 없더라. 밥이나 먹으러 가자.
“미스터 왕이 한국에서 손님 왔다고 한식당으로 예약을 했다고 하네요. 종종 가서 먹는 곳인데 맘에 들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시장하실 텐데 서둘러 가시죠.”
기름에 지지고 볶고 튀긴 현지 음식을 먹고 싶었는데! 기내식이 너무 형편없어서 잘 요리한 현지식이 당겼는데, 좀 아쉽군.
식당으로 가는데 에이전트 케이가 이 지역 한국 기업 흥망성쇠에 대해 한참을 떠들었다.
“중국 붐이 일었을 때 한국 공장이 정말 많이 생겼어요. 지금은 많이 줄긴 했는데, 그때는 정말 길 가다가도 한국 사람 흔하게 만날 수 있었죠.”
“지금은 왜 줄었나요?”
“뻔하죠. 중국 가면 떼돈 번다고 해서 무작정 왔는데, 뭐 중국이라고 사업이 쉽나요? 싼 인건비만 믿고 왔다가 망한 회사도 많아요. 지금 가는 식당도 그때 생긴 건데, 음식 맛이 좋아서 그런지 한국 기업들 철수하고도 계속 남아 있더라고요.”
기사로 접하긴 했다. 요즘은 베트남에 많이 진출하는데, 중국 진출했다 망한 경험이 도움이 된다고 하더라.
“중국에 공장 세웠다가 왜 다시 유턴했을 것 같아요?”
“제일 중요한 건 사람 관린데, 해외 공장은 그게 쉽지 않을 것 같은데요?”
박 사장이 에이전트 케이의 질문에 능숙하게 답한다. 사람을 중요하게 생각하는 박 사장다운 대답이다. 그게 정답이기도 하고.
“맞아요. 우리나라 사람도 관리 못하는 회사가 중국 와서 잘하겠어요? 많아야 네다섯 명 보내 놓고 중국인 수백 명 관리하라고 하니 당연히 안 되죠. 그리고 본사에서 누굴 파견 보내겠어요? 승진 밀린 사람, 잠깐 있다 복귀할 사람, 이런 사람만 보내니 잘되겠어요?”
“그래서 중간 관리자로 조선족을 많이 고용한다고 하더라고요.”
“조선족도 중국인이죠. 우리나라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중국이라고 하면 깔고 보는 경향이 있잖아요? 여기 사람들이 자존심이 얼마나 센데, 깔보면 좋아하겠어요? 생산량은 안 나오지, 서로 못 믿지, 한국인이고 중국인이고 돈 빼먹는 애들은 많지, 망한 기업들 수두룩해요.”
10년 전까지만 해도 날이면 날마다 중국 현지에 공장 세웠다는 기사가 쏟아졌었지. 생산직 임금이 20만 원이 안 된다면서, 황금알을 낳는 거위라며 노래를 불렀었다.
하지만 그때 진출했던 기업들 중에서 성공했다는 얘기는 들어 본 기억이 별로 없다. 역시 사람이 핵심이야.
“그래도 우리나라 기업들 여전히 많죠?”
“장쑤성이 나름 메카였으니까요. 요즘은 뭉쳐 있어요. 창저우에 가면 한국 공장만 몰려 있는 공단이 있어요. 몰려 있으니까 서로 정보 교환하면서 잘 버티는 모양이에요. 일본 애들이 그렇게 하는데, 우리나라도 따라 하더라고요.”
어느 업종이건 망한 기업들 얘기는 비슷하다. 변압기 업계도 그렇지.
제대로 준비도 안 하고 인건비 따먹기로 뛰어들었다가 시장질서만 더럽히고 문 닫는 회사들 말이다. 기술과 정보의 중요성을 모르는 회사는 오래 버티기 힘들다. 그런 중소기업이 정말 많다는 것이 현실이다.
옆에 앉은 박 사장이 한마디 거든다.
“얼마 전에 필리핀에서 현지 공장 하나 세우자고 제의를 하더라고요. 품질이 좋으니까 물량만 늘리면 좋겠다는 거죠.”
“거절하셨을 것 같은데요?”
“맞아요. 리스크가 너무 커요. 인건비는 엄청 싼데, 인건비 싸다고 될 사업이었으면 진작 했죠. 월급 많이 줘도 기술 좋고 일 열심히 하는 우리나라만 한 곳이 없어요. 대기업도 조선소 지어서 말아먹는 판인데요 뭐.”
“몇 푼 아낀다는 것이 아끼는 것이 아니죠.”
말 몇 마디 더 했더니 더 시장해진다. 여행이건 출장이건 먹는 재미가 있어야 하는데, 곡기를 끊은 지 너무 오래됐어!
차로 20분 달려 도착한 한식당은 말 그대로 한식당이었다. 처음 온 중국에서 익숙한 곳에 머문다는 것도 색다른 경험이다. 김치에서 젓갈 맛이 안 나는 것은 좀 아쉽긴 하지만.
“식사하시면서 자연스럽게 대화 나누세요. 미스터 왕이 두 회사에 대해서 잘 알고 있다면서, 바로 얘기를 했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거두절미하고 바로 사업 얘기로 들어가자는 왕 종. 에이전트 케이가 일 순위로 소개한 업체답게 계약 가능성이 가장 높은 곳이다. 나나 박 사장은 당장이라도 계약할 수 있다.
관건은 결제 조건이다. 나도 바로 본론으로 들어가자.
“결제 조건을 확인해 주시죠. 발주 시 선금 50프로는 지급해 줘야 합니다.”
박 사장도 고개를 끄덕인다. 선금 없이 물건 만들었다가는 망해 버린 태양전기 꼴 난다.
중국말이 한참 들리고 나서, 에이전트 케이가 대화 결과를 토해 냈다.
“월 발주가 최소한 4~5천 대는 될 것 같다고 하네요. 처음에 샘플로 받아서 이상이 없으면 바로 발주 들어가는데, 적어도 석 달 동안은 헤비테일 방식으로 했으면 좋겠다고 하네요. 미스터 왕도 위험 부담이 있는 모양이에요.”
“안 됩니다. 헤비테일이면 변압기 인도하고 나서 대금 지급하겠다는 것인데, 신용장 발행하는 것이나 다를 바 없잖아요?”
박 사장이 선수를 치고 나섰다. 나도 동의! 변압기 만들다가 어그러지면 그 비싼 자재들 버려야 하는데, 안 되지.
“왕 종도 잘 알지 않습니까? 자재비만 70프로가 넘어가는데, 저희 위험 부담이 더 큽니다. 신용장이라고 해도 결국 물건 다 만들고 나서야 진행하는 것 아닙니까?”
“지 사장님 말씀이 맞아요. 설사 신용장 거래가 성사돼도 30일짜리면 저희는 최소한 2달 뒤에 대금을 받는 것인데, 그만큼 금융 비용이 발생하는 것이라 부담이 큽니다.”
“어차피 둘 다 거래하겠다는 의지는 확실하지 않습니까? 왕 종이 조금만 양보해 주면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데요. 원하는 물량을 제 날짜에 보내는 것은 확실하게 보증을 하겠습니다.”
“선금 50프로에 나머지 50프로는 선적 시 30일짜리 신용장. 이건 어떤가요? 신용장은 취소 불능으로 하고요.”
하춘화와 고봉산이 ‘잘했군 잘했어’를 부르듯, 나와 박 사장이 주거니 받거니 말을 토해 냈다.
생각해 보면 오늘 처음 만난 사이인데, 선금 50퍼센트 달라고 하는 것이 허무맹랑할 수도 있다. 만난 지 1시간도 안 되어 사업 얘기 깊숙이 하는 것도 급발진 같지만.
내가 왕 종이었다면, 이것들을 뭘 믿고 대뜸 돈부터 주겠냐고 한 소리 했을지 모른다. 그러나 우리도 마찬가지이다. 우리가 뭘 믿고 대뜸 물건부터 만들겠나?
무엇이든 뚫을 수 있는 창과 무엇이든 막을 수 있는 방패이지만, 뚫으면서도 막기도 하는 것이 협상일 것이다. 계약은 믿음이지만, 그걸 이용해 사기 치는 놈들도 참 많다. 나이지리아 사업가랍시고 접근하는 놈들이 대표적이지.
수출입 거래는 더하다. 죄수의 딜레마라고 할까? 서로 믿고 거래하면 가장 좋지만, 그렇지 못해서 은행만 수수료와 대출 장사로 재미를 본다.
중국말이 한참 오가더니 에이전트 케이가 다시 입을 열었다.
“미스터 왕 말이 석 달 동안 문제가 없으면 그렇게 하겠다고 하네요. 사장님들도 전향적으로 생각을 해 주세요. 처음엔 이렇게 거래하면서 서로 신용 쌓는 것이 좋지 않겠습니까?”
박 사장이 바로 치고 나섰다. 역시 수출 베테랑 답구만. 불고기나 먹고 있자.
“저나 지 사장님이나 대한전력이 보증하는 트러스티드 파트너예요. 대한전력이 아무한테나 파트너 조건 부여하는 것이 아니에요. 그것으로도 부족하면 환급 보증도 해 드리겠습니다. 서로 믿고 거래할 수 있는 장치를 만들면 되지 않겠어요?”
저 정도면 왕 종도 별수 없을 것이다. 돈이 없거나 사기 치려고 맘먹은 것이 아닌 이상 거절할 이유가 없다. RG 발급까지 해 주겠다는데 못 믿을 이유가 없지.
“미스터 왕이 일단 차차 논의하고 견적에 대해서 얘기해 보자고 하네요. 견적만 좋으면 원하는 대로 해 주겠다고요. 저도 거래가 성사돼야 좋은 거니까 성사되는 쪽으로 얘기하고 있어요.”
견적이야 좋고말고. 박 사장이 눈빛으로 자기가 얘기하겠다고 전했다. 얼마든지. 난 불고기나 먹고 있겠소.
지난한 협상이 이어졌다. 왕 종도 충분히 만족한다는 표정이지만, 입에서 나오는 말은 더 낮춰 달라는 소리뿐이다.
그래도 이 자리에서 결실을 맺자는 의지만큼은 양쪽 모두에게서 느껴진다. 번거롭게 왔다 갔지 하지 말고 단박에 끝내 버리자고. 말이 좋아 출장이지, 여기까지 오기가 쉬운 일은 아니니깐.
50kVA 기준으로 80만 원에서 시작한 협상이 결국 마지노선인 77만 원까지 내려갔다. 내심 더 받았으면 좋겠지만, 예상했던 결과이니 나쁘지 않다.
“가격이 맘에 안 드실지 모르겠지만, 최소한 한 달에 사오천 대 이상은 발주가 나갈 것이니까 할 만하시죠? 내일 가는 회사에서 또 그만큼하면 어때요? 괜찮죠?”
에이전트 케이는 계약만 하면 2퍼센트씩 받아 가니, 성사시키려고 안간힘이다.
말대로 물량이 그만큼 된다면 좋겠지. 금성전기와 나눠도 월 2, 3천 대는 족히 될 것이니, 잘만 하면 관수에 버금가는 실적이 될 것이다.
“김 사장님, 거래 성사시키고 싶으시면 리베이트는 최소한으로 하시죠. 없는 것이 가장 좋지만요. 하하.”
리베이트로도 한참을 실랑이를 벌였다. 3퍼센트는 달라는 왕 종과 1퍼센트 이상은 못 주겠다는 우리 주장이 맞물리면서 식사가 끝나고 나온 차가 식을 때까지 협상이 이어졌다.
결국 2퍼센트로 결정이 됐다. 1퍼센트라도 줄어들었으니 식은 차를 마시는 것도 괜찮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