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t's dirty, so I'm going to start a company RAW novel - Chapter (141)
141 자기부상열차
상하이 푸동국제공항은 크고 웅장하면서도 시끄럽고 북적거린다. 인터넷에 익히 봤던 중국의 모습들이 눈앞에 재현되고 있다.
돈을 엄청 들였을 것 같은 건물과 성조 때문인지 시끄럽게 들리는 중국말의 묘한 결합. 내가 정말 중국에 와 있구나. 디스 이즈 쭝궈!
금성전기 박준희 사장을 기다리며 푸동국제공항 이모저모를 살펴보는데, 익숙지 않은 소음 사이로 익숙한 소음이 들어온다.
중국에 두 번 와 봤다는 덕준이와 상하이에서만 4년 살았다는 민희가 중국 얘기로 이야기꽃을 피우고 있다. 나만 소외된 느낌.
“무슨 얘기를 그리 재미있게 해? 좀 조용히 얘기해. 부끄러워 죽겠네 아주.”
“얘가 나를 아주 바보로 안다니깐. 자기부상열차가 있대! 무슨 SF영화도 아니고 중국에 자기부상열차가 있냐고 그러니까, 저래 펄쩍 뛰잖아?”
“아, 진짜라니까요. 상하이 명물이에요. 운영한 지 10년도 넘었어요. 엄청 빨라요!”
시골 영감 처음 타는 기차놀이도 아니고, 창피해 죽겠네 진짜. 사소한 걸로 핏대 세우며 네 말이 맞니 내 말이 맞니 하는 꼴을 보자니, 우리나라 사람이 맞군. 자기부상열차 좀 있으면 어때?
“덕준이, 너 상하이 갔다 온 게 언제랬지?”
“월드컵 할 때였으니까…… 어휴, 야 벌써 13년이나 됐네. 시간 참 빠르네.”
“에라 이. 강산이 몇 번이 바뀌는데! 민희야, 한 부장은 일단 까고 보는 놈이니까 그냥 넘어가. 그나저나 히든카드로 온 거니까 중국 아는 티 내지 말고. 철저하게 모른 척!”
“아, 넵!”
두 중국 박사를 조용히 시키고 30분 정도 기다리니 박준희 사장도 도착했다.
선글라스를 머리띠처럼 끼고 유유히 입국장을 벗어나는 모습이 알파걸을 연상케 한다. 자그마한 캐리어 하나. 해외 출장 많이 다녀 본 느낌이다. 혹시 몰라서 컵라면과 김 등 비상식량을 챙겨 온 것이 살짝 부끄러워진다.
“어서 오세요!”
“죄송해요. 많이 기다리셨죠? 줄을 잘못 서서 한참 걸렸네요.”
천상 연기자다. 저 얼굴로 저리 미안한 표정을 지어 버리면 그 누구도 아무 말 못할 것이다.
박 사장이 예정보다 약간 늦은 탓에 서로 인사 나누기 무섭게 다음 행선지로 이동했다. 가이드 역할을 맡은 에이전트 케이가 깃발을 든 인솔자 노릇을 시작했다. 자, 가 봅시다!
“서둘러 가시죠. 고속열차 타려면 훙차오역으로 가야 하는데, 좀 번거롭게 갈게요.”
“네? 왜요?”
“상하이 왔는데, 그냥 가면 아쉽잖아요. 시간이 조금 애매하긴 한데, 자기부상열차 한번 맛보세요. 그게 룽양루역까지밖에 안 가서 택시 갈아타야 하지만, 이때가 아니면 언제 또 경험하겠어요?”
자기부상열차! 유민희의 승리다. 의기양양한 민희가 슬쩍 귓속말을 건넨다.
“자기부상열차 타러 가려면 한참 가야 해요. 중국은 공항이고 역이고 진짜 엄청나게 크거든요. 길 잃어버리는 사람도 많아요.”
“에이, 길 잃는 것은 오버 같은데? 근데 왜 상하이역으로 안 가고 훙 무슨 역? 왜 거기로 가?”
“훙차오역요. 거기가 고속철 전용이에요. 중국은 고속철 역이 따로 있어요. 대부분 남역이 고속철 역이라서 어디어디 남역 이러면 까오티에 타는구나 하죠. 거기도 어마어마하게 넓어요.”
장님 코끼리 만지는 수준인 덕준이는 아무 소리 못한다. 여행 몇 번 가 봤다고 그 나라를 다 아는 양 구는 놈들 경계해야 한다. 덕준이 자식, 어디서 아는 체야!
상하이 명물이라는 자기부상열차 타러 가는데, 에이전트 김이 쉴 새 없이 떠든다. 에이전트 일은 말빨 좋은 사람이 성공하는 법이겠지.
“지 사장님은 중국 와 보셨어요?”
“아니요. 이번이 처음입니다.”
“아휴, 그러면 제가 여기저기 관광 좀 시켜 드려야 하는데, 이거 일정을 너무 빡빡하게 잡았네요.”
“구경은 나중에 놀러 와서 실컷 해야죠. 출장으로 왔으면 일만 하는 거죠, 뭐.”
“그래요, 다음에 일 말고 그냥 놀러 오세요. 제가 가이드 제대로 해 드릴게요. 호호.”
묘하게 추파를 던지는 느낌이란 말이지. 내가 연상한테 잘 먹히는 상인가?
박 사장은 특유의 친화력으로 민희한테 다가가 하하호호 하는 중이다. 박 사장 앞에만 서면 얼어 버리는 덕준이만 조용해졌다.
그렇게 얼마를 걸어 한참을 떠들썩하게 한 자기부상열차를 타러 갔다.
이름만 자기부상열차인 줄 알았다. 인터넷에서 보던 ‘대륙의 신기술’ 같은 건 줄 알았는데, 시속 430킬로까지 나오는 진짜란다. KTX도 어마어마하게 빠르다고 생각했는데, 대단하네.
출발한 지 3분쯤 지나니 최고 속도에 도달했다. 바깥 풍경이 구경할 새도 없이 휙휙 지나간다. KTX처럼 역방향 좌석이 있었다면 백퍼 멀미 각이다.
“지 사장님, 어때요? 엄청 빠르죠? 상하이 오면 이건 꼭 타 봐야 해요. 상하이로 돌아올 때 타고 되는데, 이왕 시간 잘 맞췄으니까 뭐.”
“시간을 잘 맞췄다니요? 저희 조금 늦은 것 아닌가요? 아휴, 근데 속이 살짝 울렁거리네요.”
“눈 감고 있으면 금방 도착해요. 누가 상하이 처음 온 사람 아니랄까 봐. 호호. 이게 최고 속도로 가는 시간대가 있어요. 박 사장님이 조금 늦게 오는 바람에 시간대가 딱 맞았지 뭐예요.”
30Km가 넘는 거리를 7분 만에 주파했다. 소음이 좀 있긴 했는데, 중국인들 특유의 소음 같은 대화 소리를 막아 주니 참을 만했다. 중국 사람들 말하는 건 왜 그리 시끄럽게 들리는지 원.
번거롭게 택시로 갈아타고 훙차오역으로 갔다. 진짜 중국 사람들은 크고 넓은 것에 집착하는 것 같다. 무슨 기차역이 이리 크단 말이냐!
“시간 됐으니까 바로 탑승하시죠. 29번 승강장이니까 좀 서두르죠. 앞쪽이면 좋겠는데, 하필이면 맨 끝으로 걸렸네요.”
29번 승강장? 후덜덜하네. 기차역에서 공항처럼 수속 밟는 것도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대륙의 스케일은 신기함 그 자체네. 29번까지 가려면, 얼마나 걸어야 하는 것이냐!
부지런히 걷다 보니, 배가 살짝 동요하고 있다. 시간이 오후 4시도 안 됐지만, 1시간 시차라 배고파질 때가 되긴 했다.
지하철 5호선 환승하는 것처럼 한참을 걸어서 29번 승강장에 도착했다. 살짝 진이 빠질 지경이다. 무빙워크라도 만들어 놓지.
열차를 타는데 플랫폼에서 평지처럼 바로 들어간다. 안 그래도 힘 빠졌는데, 이건 아주 좋네. 무거운 캐리어 들고 계단 오르다 버벅거리면 그새를 못 참고 같이 들어 주는 광경은 볼 수 없겠군.
자리에 앉아 한숨 돌리려는데, 옆에 앉은 에이전트 케이가 가이드 역할을 멈추지 않는다. 내가 너무 촌티 나게 고개 좌우로 흔들며 이것저것 쳐다봤나?
“이게 까오티에라고 최신 고속열차예요. 시속 350까지 나오니까 KTX보단 빠르죠?”
“중국이 고속열차 강국이라는 기사를 보긴 했어요. 돈 벌어서 고속열차에 다 때려 붓는 모양이네요.”
“진짜로 예산 엄청 쏟아붓고 있죠. 그거 때문에 빚이 엄청나다고는 하는데, 우리야 편하게 갈 수 있으니까 좋죠.”
인터넷 커뮤니티 해외 토픽 분야에서 막강한 지분을 자랑하는 중국 얘기만 접했나 보다. 대륙 시리즈가 아닌 실제 중국을 접하니, 인터넷은 장난이었구나 싶다.
근데 에이전트 케이가 가이드 역할을 너무 충실히 한다. 중국과 사람들의 얘기를 듣는 것은 좋은데, 귀에서 피 나겠네.
“똥춰라고 속도가 좀 떨어지는 고속철도 있어요. 연식이 좀 된 거라 의자도 불편하고, 냄새도 많이 나요. 까오티에는 아주 좋죠? 새 것이라 그런데, 이것도 몇 년 지나면 냄새 많이 날 거예요.”
지하철 끝판왕이자 움직이는 할렘인 1호선이 생각났다. 까오티에가 쾌적한 9호선 완행이라면, 똥춰는 1호선이란 말이지?
“냄새 하니까 생각나는데, 중국 사람들은 씻는 것 안 좋아한다고 하던데, 진짠가요?”
“에이, 안 그래요. 사람이 원체 많아서 안 씻는 사람도 많긴 한데, 요즘은 살 만하니까 잘 씻어요. 아무래도 상하수도 보급도 느렸고, 물이 귀한 편이라 잘 안 씻긴 했지만, 요즘은 많이 나아졌죠.”
중국 사람도 잘 씻는다면서 결론은 안 씻는 사람이 많다는 것으로 끝난다. 고려 때 중국 사신이 와서는 고려 사람들은 너무 자주 씻는다고 놀랐다는 기록이 있다던데, 유구한 전통이 있는 것이로군.
“상하이면 세계적인 대도시인데도 상하수도가 없는 지역이 있어요?”
“사람이 원체 많아야죠. 좀 못사는 동네 가면 특유의 퀴퀴한 냄새나고 그래요. 그래도 화장실 없는 인도보다는 낫잖아요. 호호.”
신발 신고 침대 올라가는 양놈이나 잘 안 씻는 떼놈이나 도진개진이구만. 에이전트 케이 말대로 겐지스강 똥물로 양치질하는 인도 사람보단 나아 보이긴 한다.
하긴 우리도 매일 샤워하던 것이 얼마 되지 않았다. 생각해 보면 나도 어렸을 때 일주일에 한 번씩 가는 목욕탕이 유일한 샤워였었다. 일주일 만에 가는데도 때가 어찌나 많이 나오던지, 지금도 기억이 생생하다.
중국 사람들이 잘 씻는 것도 문제일 것이란 생각이 들었다. 물을 얼마나 많이 쓸 것인가? 지구 환경을 생각하면 안 씻는 것이 도와주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그나저나 우리가 만나러 갈 분들은 반응이 어때요?”
“뭐 일단 호의적이긴 했어요. 제가 한국에서 변압기 아주 잘 만드는 회사라고 했거든요. 이러니저러니 해도 사장님들하고 얘기가 잘돼야 하는 것이지만, 잘될 것 같아요.”
“그랬으면 좋겠네요. 이왕이면 좋은 가격에 좋은 결제 조건으로 말이죠.”
“호호. 그거까지는 장담을 못하겠네요. 중국 사업가들이 돈 욕심이 엄청나거든요. 왜 그, 서양에 유태인이 있으면, 동양에 화교가 있다고 하잖아요?”
비단 장수 왕 서방에게 비단 팔기 미션 같은 것일까? 중국 사업가들이 돈 욕심 강하다지만, 우리나라도 마찬가지지. 나도 돈 욕심 아주 강한 사람입니다.
“저나 박 사장님이나 만날 분들 잘 모르니까, 김 사장님께서 어시스트 좀 잘해 주세요.”
“어휴, 저야 당연히 그래야죠. 저도 먹고 살아야 하는데요. 호호. 지금 가는 업체가 변압기 확보가 절실한 곳이에요. 중국이 전기 사용량이 워낙 많고 빠르게 증가하고 있어서 변압기도 많이 필요해요. 근데 업체들이 물량 처리 못하면 속이 터지겠죠.”
“그래서 저희가 여기 왔죠. 저는 물량 터는데 아주 자신이 있습니다.”
“호호. 그래서 아마 잘될 거예요. 난징변압기 사장도 얘기 듣고 빨리 만나 보고 싶어 했거든요. 우리 잘해 보자고요.”
1시간 반이 걸려 난징 남역에 도착했다. 플랫폼 진입 전부터 어마어마한 크기로 압도하더니, 실제로 역에 내리니 엄청난 규모가 눈에 확 들어온다. 난징역도 엄청나네. 이것들은 일단 크게 짓고 보는구만?
엄청난 규모를 자랑하는 역들을 헤맸더니 체력 소모가 꽤 됐다. 슬슬 배가 고프네. 중국집 말고 진짜 중국 현지식을 먹을 것이란 기대감에 더 허기가 진다.
에이전트 케이의 현지 직원이 대령한 차를 타고 난징변압기로 향했다. 차 창문으로 보이는 난징은 우리나라의 여느 대도시와 달라 보이지 않았다.
중국 하면 왠지 회색빛이 감도는 광경이 떠오른다. 극심하다는 대기 오염 때문일지도. 실제로 만난 중국 대도시는 우리와 똑같이 사람 사는 곳이었다. 하늘은 안개가 짙게 깔린 것처럼 탁했지만 말이다.
난징 남역에서도 한참을 달려야 했다. 양쯔강이 보일 때쯤 드디어 목적지에 도착했다. 이동만 하다 하루가 다 갔네.
민희가 조사한 바에 따르면, 난징변압기는 매출 800억 원 정도로 민수보다는 관수로 먹고사는 회사이다. 홈페이지도 없는 난징변압기 조사하느라 민희가 고생하긴 했다.
난징 외곽 양쯔강 인근에 위치한 공장을 실제로 보니, 우리 공장 3배 정도는 돼 보인다. 구글 어스와 실물의 차이는 이리 크다.
매출 800억짜리 회사치고 공장이 과하게 크다 싶었다. 공장만 지어 놓고 하청으로 물량 채우는 회사라고 하더니, 역시구나 싶다.
중국에는 겉을 번지르르하게 지어 놓고 보조금 받아먹는 회사들 많다고 했었지? 여기가 딱 그런 회사다. 이 정체불명의 회사. 오늘 잘 구워삶아서 잘 빨아먹어야겠다.
차에서 내리자 저 멀리서 풍채 좋은 아저씨가 다가온다.
포마드 발라 기름진 머리와 살이 통통하게 붙은 얼굴. TV에서나 보던 성공한 중국 사업가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저기에 금목걸이나 금반지 보이면 딱이지.
자, 시작해 봅시다. 근데 밥은 언제 먹지?